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방재승 교수 "참담한 심정"
"빅5병원에도 개두술 가능한 의사 2~3명뿐, 없는 병원도 수두룩"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방재승 교수는 3일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사건을 보도한 기사에 댓글을 달며 사건의 본질을 봐달라고 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방재승 교수는 3일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사건을 보도한 기사에 댓글을 달며 사건의 본질을 봐달라고 했다.

“사건의 본질은 우리나라 ‘빅5병원’에 있는 뇌혈관외과 교수가 기껏해야 2~3명이라는 점이다. 그 큰 서울아산병원도 뇌혈관외과 교수는 단 2명뿐이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뇌출혈 사망 사건을 둘러싼 논란에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뇌혈관외과) 방재승 교수는 안타까움을 토로하며 이같이 말했다. 신경외과 전문의 중에서도 두개골을 절개하는 개두술(Craniotomy)을 할 수 있는 뇌혈관외과 교수는 빅5병원에 속한 대형병원이라고 해도 2~3명 밖에 없다는 것이다.

방 교수는 3일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사건을 보도한 기사에 실명으로 장문의 댓글을 직접 써서 올렸다. 이 글을 통해 방 교수는 당시 서울아산병원의 상황을 전하며 서울아산병원 의료진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방 교수에 따르면 일요일이었던 지난 7월 24일, 서울아산병원에서 개두술이 가능한 신경외과(뇌혈관외과) 교수 2명 중 한명은 해외학회에 참석 중이었고 나머지 한명은 지방 출장 중이었다. 당일 새벽 간호사가 뇌출혈로 쓰러지자 뇌혈관내시술을 전문으로 하는 신경외과 교수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색전술을 시행했다. 색전술은 동맥류 속에 미세도관을 삽입 해 동맥류 속 혈류를 막는 치료법이다. 하지만 출혈 부위를 막기 힘들었고 개두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방 교수는 “개두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병원에 없으니 뇌혈관내시술 전문 교수는 파장이 커질 것을 각오하면서 간호사인 환자를 살려보려고 병원을 수소문해서 서울대병원으로 보내 수술을 하게 한 것”이라고 했다.

방 교수는 “그 큰 서울아산병원에서 뇌혈관외과 교수 2명이 1년 365일을 ‘퐁당퐁당’ 당직을 서가며 근무하고 있다”며 “의사도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실력 있는 의사가 되려면 세계 학회에 참석해 세계 유수한 의사들과 발표하고 토론해야 수준이 올라가니 의사의 해외학회 참석을 마냥 노는 것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방 교수가 올린 글 전문이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뇌혈관외과) 방재승 교수입니다. 실명으로 올립니다.

서울아산병원 현직 간호사가 그것도 근무 중에 쓰러졌는데 수술을 집도할 뇌혈관외과 의사가 없어 서울대병원으로 전원해 수술했으나 사망했다는 사실 자체는 매우 안타깝고 충격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국민들의 분노에 찬 댓글들을 보면 큰 병원에 수술 집도할 의사가 학회 참석으로, 지방 출장으로 부재중이었다는 점에 공분해 의사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내용이 많아 나이 50대 중반의 뇌혈관외과 교수로서 참담한 심정입니다.

사건의 본질은 우리나라 빅5병원에 뇌혈관외과 교수는 기껏해야 2~3명이 전부라는 점이다. 그 큰 서울아산병원도 뇌혈관외과 교수는 단 2명뿐입니다.

한 명은 해외 학회 참석 중이었고, 또 한 명은 지방 출장 중이어서 그 날은 뇌혈관외과 교수가 아니라 뇌혈관내시술 전문 교수가 어떻게든 환자를 살려보려고 색전술로 최대한 노력했지만 결국 출혈부위를 막을 수 없어 개두술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개두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당연히 병원에 없으니, 뇌혈관내시술 전문 교수는 파장이 커질 것을 각오하면서 간호사인 환자를 살려보려고 병원을 수소문해 서울대병원으로 보내 수술을 하게 한 것입니다.

그 날 서울아산병원의 당직 뇌혈관내수술 전문 교수는 본인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큰 서울아산병원에서 뇌혈과외과 교수 달랑 2명이 1년 365일을 ‘퐁당퐁당’ 당직을 서가며 근무하고 있습니다. 과연 국민 여러분들은 나이 50세를 넘어서까지 그렇게 자기 인생을 바쳐 과로하면서 근무할 수 있는 사람이 몇%나 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의사도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실력 있는 의사가 되려면 세계학회에 참석해 세계 유수한 의사들과 발표하고 토론해야 수준이 올라가니 의사의 해외학회 참석을 마냥 노는 것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뇌혈관수술의 위험도와 중증도에 비해 턱없이 낮은 의료수가로 인해 지원자도 없다. 작금의 한국 의료의 현실 속에서 그나마 뇌혈관외과 의사를 전임의까지 양성해 놓으면 대부분이 뇌혈관외과 의사의 길 보다는 뇌수술을 하지 않는 뇌혈관내시술 의사의 길을 선택하는 게 현실이입니다. 큰 대학병원이니 뇌혈관외과 교수가 그나마 2~3명이라도 있지 중소병원이나 지방 대학병원에는 1명만 있거나 아예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뇌혈관내시술 의사가 뇌혈관외과 의사보다 편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뇌혈관외과 수술에 비해 뇌혈관내시술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머리를 직접 열지 않으니 의사들이 그나마 육체적으로 수술에 올인하는 시간이 적어 그 쪽으로 지원을 더 많이 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40대 이상 실력 있는 뇌혈관외과 의사는 거의 고갈 상태로 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제가 뇌혈관외과 의사로서 인생을 걸고 살아보니 세계 유수의 의사들과 실력을 경쟁할 정도의 수준이 되려면, 한국처럼 의사를 기계 소모품처럼 24시간 돌리는 상황에서도 40대 중반은 돼야 그나마 가능합니다. 그것도 빅5병원처럼 1년에 휴가 10일 정도 외에는 기계처럼 일만 해야 가능한 정도입니다.

이런 상황이니 자라나는 의대생들이 신경외과, 특히 뇌혈관외과를 지원할 리 없고 그나마 뇌수술을 하겠다는 꿈을 갖고 들어온 신경외과 전공의들도 4년의 수련기간을 마치고 나면 현실의 벽 앞에서 절망하며 척추 전문의가 되는 게 현실입니다.

현직 뇌혈관외과 의사로서 살아보니 마치 한일합방시대에 독립운동 하는 느낌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밤에 국민들이 뇌출혈로 급하게 병원을 찾았을 때, 실력 있는 뇌혈관외과 의사가 수술하러 나올 수 있는 병원은 전국에 거의 없는 게 현실입니다.

국민들도 제발 이 같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중증의료분야 지원’, ‘뇌혈관외과분야 지원’ 이야기가 나오면 ‘의사들의 밥그릇 논쟁’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의사들에게 힘을 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보건복지부와 정치권에서는 ‘중증의료’ 이야기만 하지, 정작 신경외과는 ‘필수 진료과(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에서 빠져 있어 허공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존경했던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가 중증의료 치료에 매진하다가 의료 현장을 떠난 진짜 배경을 국민들도 알았으면 합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자만 처벌하고 끝나서는 안 됩니다. 고갈돼 가고 있는 뇌혈관외과 의사를 보호하고 실력 있는 후학 양성을 할 수 있는 제도 개선만이 다시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지 않을 근본대책입니다.

단순히 공공의대를 만들어서 의사 수만 늘린다고 되는 게 절대 아닙니다. 돈은 못 벌어도 자기 인생을 걸고, 실력 있는 뇌혈관외과 의사가 돼서 국가와 민족에 이바지하겠다는 젊은 의사를 키워야 합니다. 하지만 대학병원 뇌혈관외과 교수를 하다 업무 강도나 스트레스에 비해 너무나도 개인적인 희생이 크니 교수직을 그만두고 개원가로 나가서 현실적인 의사가 되는 게 작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지난 주 프랑스에서 의과대학 5학년 학생이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를 2주간 견학하고 나서 한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의사들, 특히 중증 의료전문 의사들은 너무나 없고 국민들은 MRI 한 번 찍으려면 3개월 대기가 기본이라 의사들 욕을 그렇게 하는 데 정작 프랑스 의사들은 근무 조건이 열악하니 프랑스에서 의사하기를 원하지 않고 스위스나 두바이 등으로 이직하려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프랑스 의료 자체가 큰일이다.”

미국의 ‘완전 자본주의’ 의료가 가장 좋은 것도 아니고, 유럽과 프랑스 같은 ‘사회주의 의료’는 더욱 아닌데, 한국의 의료 접근성과 시스템은 전 세계를 돌아다녀 봐도 이렇게 좋은 것은 사실 정부도 정부지만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들의 개별적·집단적 노력과 희생의 결과라는 것을 국민들은 제발 좀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의사들은 유전자가 매우 뛰어나다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의사가 될 수 있는 유전자가 있습니다. 중증의료제도 지원 개선책 마련에 현직에 있는 저 같은 의사도 한 목소리 낼 테니 국민들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점점 밝아지는 쪽으로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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