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혈액종양학회 "전문의 부족과 수도권 쏠림 갈수록 심화"
국가적 지원 없으면 완치율·생존율마저 못 지켜…대책 마련을

소아청소년과 인프라 붕괴 우려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마저 점점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소아청소년과 인프라 붕괴 우려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마저 점점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강원도 춘천시에 거주하는 A씨는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자녀의 체온이 조금만 올라도 바로 서울 교통편을 찾는다. 춘천시내에도 대학병원이 2곳 있지만 소아혈액종양 전문의가 없기 때문이다. 가까운 다른 시도 마찬가지다. 미열만 나도 담당 의사를 찾아 서울로 갈 수밖에 없다.

비단 강원도와 춘천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2022년 현재 강원도 전체와 경북 지역을 통틀어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는 단 1명도 없다. 광역시인 울산이 그나마 은퇴한 교수 홀로 외래 진료를 보고 있다.

다른 광역시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인천과 광주가 1명, 대전은 2명이 전부다. 대구와 부산처럼 지역 내 전문의가 4~5명 이상이어도 각 병원으로 따지면 실상 전문의 1~2명이 모든 환자를 감당하는 셈이다. 언제 발생할지 모를 응급 상황에 대처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가 6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현재 진료 중인 국내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는 단 67명이다. 이 가운데 60% 이상이 서울과 경기·인천 등 수도권에서 근무하고 있다.

따라서 타지역 환자 쏠림 현상이 심할 수밖에 없다. 서울을 제외한 소아청소년 환자 절반 이상이 치료받기 위해 사는 곳을 떠나 다른 지역 병원을 찾고 있다.

2022년 현재 소아혈액종양 전문의 전국 현황과 거주지역 외 타지역에서 치료받는 소아청소년암 환자 비율 (자료 제공: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2022년 현재 소아혈액종양 전문의 전국 현황과 거주지역 외 타지역에서 치료받는 소아청소년암 환자 비율 (자료 제공: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지난 2015년 기준 강원(86%)과 충북(80%)은 소아청소년 환자 80% 이상이 거주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치료받았다. 10년 전인 지난 2005년보다 각각 36%p, 18%p 늘어난 수치다. 반면 같은 기간 서울 소아청소년 환자 타 지역 치료 비율은 6%에서 2%로 오히려 줄었다.

소아혈액종양학회는 전문의 부족과 수도권 쏠림 현상이 앞으로 더 심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활동 중인 전문의 67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31명이 10년 내 은퇴한다. 5년 내 은퇴예정자만 14명이다. 그러나 선배들을 이어 환자를 돌볼 신규 전문의는 턱없이 적다. 해마다 새로 배출되는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는 평균 2.4명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최근 5년 평균 수치고 앞으로 더 줄어들 수도 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 자체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소아혈액종양학회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없는 지방병원은 소아혈액종양 전문의 1~2명이 주말도 없이 입원환자와 외래환자를 매일 관리하는 실정"이라면서 "그 어떤 의사도 주말도 없이 혼자 중증 환자 진료를 책임질 수는 없다. 몇 명 남지 않은 소아혈액종양 전문의가 사명감만으로 버티는 데 한계가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대책은 요원하다는 게 학회 지적이다. "진료할 수록 적자"인 수가 구조, 전무한 국가 지원 상황을 타개하지 못하면 소아청소년암 치료 인프라가 완전히 무너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소아혈액종양학회는 "대부분 입원치료가 필요하고 365일 24시간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항암치료 특성상 병원별로 소아혈액종양 전문의가 최소 2~3인 이상은 필요하다"고 했다.

소아혈액종양학회는 "병원이 의사를 더 고용하면 되겠지만 중증진료를 할수록 적자인 의료보험수가 구조와 국가 지원이 전무한 현실에서 어떤 병원도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를 더 고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소아혈액종양학회는 "혹자는 의사 절대수를 늘려 중증 의료 담당 의사를 충원하자고 한다. 그러나 과거 군 필수의료진 보강 시도가 실패한 것에서 보듯이 의사 수만 늘려서는 필수 혹은 중증의료제도가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지금 안전한 소아청소년암 치료를 포기하고 약 85%로 국제적 수준인 생존율과 완치율이 하락할 위기에 처했다"며 "태어난 소중한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도록 소아청소년암 치료에 국가적인 지원이 시급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