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의료전달체계 왜곡 갈수록 심화
"새끼손가락 찢어졌다고 상종 응급실 찾는다"
붕괴 위기 극복 위해 국가 차원 지원 요청

대한전공의협의회는 4일 기자회견을 열고 필수의료체계 붕괴 위기에 대한 대책을 촉구했다.

필수의료 붕괴 우려에 전공의들까지 나섰다. 근본적인 개편과 전폭적인 지원 없이 필수의료가 기피과가 되고 수도권·상급종합병원으로 환자가 쏠리는 현상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4일 대한의사협회 용산임시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국가 차원 지원을 요청했다.

대전협 여한솔 회장은 "필수의료체계 붕괴는 수십 년에 걸쳐 조용히 찾아온 대한민국의 거대한 재앙이 될 것이다. 그 심각성을 알리고자 이 자리에 섰다"고 입을 열었다.

국가적 지원 없이는 고(故) 송주한 교수와 고(故) 윤한덕 교수처럼 필수의료 의료진은 스러질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여 회장은 "의료계의 열정과 헌신이 오늘날 대한민국에 선진국을 뛰어넘는 의료공급체계를 세웠다. 그러나 턱없이 부족한 국가 지원으로 곳곳에 구멍이 뚫렸고 몸이 갈려가며 중환자를 치료하던 의료진이 목숨을 잃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의료진이 열악한 현장에 갈려나가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필수과 담당 의료진이 국민 건강의 마지막 보루라는 자존심을 지킬 수 있도록 대우와 처우를 개선해달라"고 촉구했다.

"필수의료 하고 싶어도 현실 참혹, 갈려나가기 전에 탈출"

필수의료 위기 속에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외과 등 이른바 기피과를 전공하려는 의사도 급격히 줄고 있다고 했다. 의사 수가 부족한 게 아니라 필수의료를 하려는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여 회장은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은 3년 연속 정원 대비 75%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는 3년만에 지원율이 88%에서 23%로 추락했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신규 흉부외과 전문의 수는 24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여 회장은 "우리 전공의는 바보가 아니다. 지원을 하고 싶어도 맞닥뜨린 현실이 참혹해 지원할 수가 없다. 그들처럼 갈려나가기 전, 현명하게 다른 과를 하거나 전공을 포기하고 탈출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여 회장은 "필수의료협의체에서 많은 논의가 오갔다고 하지만 전공의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근본적인 개선은 하나도 되지 않았다"며 "전체 인력은 부족하지 않다. 필수의료 분야 확대와 근무 환경, 일자리 확충이라는 답이 나와야 한다. 실제 현장이 체감하는 필수의료 관련 인력이 턱없이 모자라다"고 지적했다.

"의료전달체계 왜곡 심화되는데 국가 정책 못 따라가"

대전협 여한솔 회장은 "의료계가 돈 문제만 되뇐다고 해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라고 했다.

의료전달체계 왜곡도 갈수록 심화되지만 마찬가지로 실효성 있는 정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여 회장은 "모든 의료진이 심정지 환자에 투입됐는데 새끼손가락 상처를 빨리 봐주지 않는다며 응급실을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모기에 물렸다고 119에 신고하고 대학병원을 찾아온다. 응급의료관리료 몇만원 외에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이용을 제한할 문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여 회장은 “국민 인식에는 ‘무조건 큰 병원, 무조건 서울’이 자리 잡았다. 그러나 대한민국 의료정책은 이런 추세를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며 “항상 해오듯 지난 정부 의료정책을 그대로 이어가면 대한민국 의료계 앞날을 기대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풍부한 의료인적 자원에도 불구하고 비정상적인 수가로 필수의료를 홀대하고 비용과 성형 등 비급여 진료가 난무하는 왜곡된 의료시장 형성에 일조했다"면서 "이를 인정하는 데서 의료전달체계 문제 해결이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바이탈과는 멍청이만 간다"…국가 지원 요구

결국 필수의료와 의료전달체계 문제를 해결하려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대응처럼 국가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여 회장은 " ‘돈보다 생명을’이란 문구가 있다.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살리려면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아직도 바이탈 과를 가려는 멍청한 의사가 있느냐'가 농담 반 진담 반이 됐다. 바이탈 과를 선택한 이들은 국민 생명을 책임지는 장본인이다. 국가가 이들을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여 회장은 "코로나19 재난에서 (국가가) 수조 원을 투입했고 많은 환자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삶으로 돌아왔다"며 "돈보다 생명이 소중하기에 이 감염병 극복처럼 국민의 생사를 책임지는 의료 현장에 아낌없이 지원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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