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회 뉴스레터에 ‘필수의료 기준’ 관련 기고
“기성세대 의사들, 남 탓만 해선 한국의료 미래 없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방재승 교수는 대한의학회 E-뉴스레터에 기고한 '필수의료 기준이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글을 통해 의료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사진출처: SBS 스토브리그 홈페이지)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방재승 교수는 대한의학회 E-뉴스레터에 기고한 '필수의료 기준이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글을 통해 의료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사진출처: SBS 스토브리그 홈페이지)

“각자가 가진 무기 가지고 싸우는 건데 핑계 대기 시작하면 똑같은 상황에서 또 지게 됩니다.”
“해왔던 것들을 하면서 안 했던 것들을 할 겁니다.”
“말을 잘 듣는다고 달라지는 게 하나도 없던데요?”
“왜 야근만 하고 야근수당 신청은 안 합니까? 아무리 돈 많아도 자기 권리는 챙기세요.”
“적어도 부당하다고 생각되어 바꾸지 못한다면 저항이라도 하십시오.”

SBS 인기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배우 남궁민이 연기한 ‘드림즈’ 백승수 단장이 부당한 압력을 받았을 때 한 말이다. 필수의료 강화 방안 논의를 지켜본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방재승 교수가 의료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방 교수는 “현재 한국의료 현직에 근무하는 의료인들이 양심적으로 한 번 새겨두었으면 한다”고 했다.

방 교수는 14일 대한의학회 E-뉴스레터 11월호에 기고한 ‘필수의료 기준이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글을 통해 ‘남 탓’만 하지 말고 기성세대 의료인들이 나서서 의료제도의 불합리성과 부당함을 알리고 싸워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방 교수는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뇌출혈 사망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의료 현실을 지적한 글로 주목 받은 바 있다. 당시 방 교수가 ‘답답한 마음’에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을 다룬 방송 유튜브 채널에 단 장문의 ‘댓글’ 하나가 서울아산병원만 비판하던 여론을 바꾸는 데 일조했다.

방 교수는 “서울아산병원 사건 발생 직후 언론이 ‘의료계의 여러 문제점에 대한 질타’ 쪽으로 주제를 잡았다가 이후 ‘필수의료 살리기’라는 주제로 바꾸면서 의료계도 ‘반격(?)’에 나선 것은 그나마 천만다행이지만 여기서 다시 문제 되는 게 ‘도대체 필수의료의 기준이 무엇인가’이다”고 지적했다.

방 교수는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신경외과가 필수의료과목에서 빠졌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개인적으로 자괴감에 빠진 적도 있을 정도”라며 “오늘도 퇴근 못 하고 의사 자신의 수명을 단축하면서까지 수많은 밤을 병원에서 지새우며 환자를 진료하는 많은 신경외과 의사들의 사기를 꺾은 당사자들은 정작 누구란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방 교수는 이어 필수의료 기준에 대해 “‘생명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의료인가’라고 기준을 세워서 ‘날카로운 잣대’로 평가해보면 답은 나온다”고 했다. “전공의 지원율 감소라는 기준으로 필수의료 기준을 세우다보니 정작 신경외과가 필수의료에서 빠지는 사태가 온 것을 보면 신경외과 말고도 필수의료인데 보건복지부 선정과에 포함되지 못해 속병 드는 과도 분명 있다”고도 했다.

이어 정해진 ‘파이’를 두고 의료계 내부 싸움으로 번지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 교수는 “의료계 외부 여러 단체나 언론, 권력기관들이 각자의 ‘이차적 이익(secondary gain)’을 위해서 의료계 전체를 공공의 적으로 돌리거나 전체 파이는 정해져 있고 각 진료과끼리 싸움을 붙여서 힘센 자가 가져가게 하는 식의 파행을 또 답습하는 과정으로 흘러간다면 향후 (적어도 필자가 의료인 활동을 하는 기간에는) 한국 의료계의 희망은 없다”고 말했다.

방 교수는 “의료인들도 ‘내가 하는 진료 행위가 생명과 직간접으로 연관된 의료가 맞는가’라는 기준에서 평가할 때 초등학생 때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서 ‘양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필수의료만 힘드냐? 생명과 직결되지 않은 필수의료 아니면 안 힘든 줄 아냐?’라는 식으로 의사들 사회를 소위 ‘갈라치기’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더욱 한국 의료의 미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와 같은 의료 환경을 만든 원인에는 의사들의 책임도 있다고 쓴소리했다.

방 교수는 “거의 모든 과가 죽도록 고생하고 거기에 맞는 국민들의 존경이나 신뢰보다는 수술실에 CCTV를 달아서 의사들이 딴짓하지 않는지 의심받아야 하는 환경이 된 데에 의사들 자신은 책임이 없고 정부와 국민 탓만 할 수 있겠는가”라며 “남 탓(국민 탓, 정부 탓, 국회 탓)을 할 게 아니라 현재 의료인 업무를 행하고 있는 우리 기성세대 의료인들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현직에 있는 의료인들 중 소위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50대, 60대 의료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의료제도의 불합리성과 부당함을 국민과 언론에 알리려고 노력해야 한다”며 “이런 노력은 하지 않고 본인들만 소위 ‘명의’로 정년퇴직이나 현직에서 물러나고 후배 의사들의 처우는 어떻게 되든 필수의료는 공부 못하는 의사들이나 하고 공부 잘하는 의사들은 돈이 몰리는 과로 가면 된다는 식의 근시안적인 사고를 가진 의사들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의료인들은 한일합병 시대의 매국노와 다를 게 없다”고 비판했다.

방 교수는 “정부도 지금처럼 누가 뭐라고 징징대면 의료수가 약간 올려줘서 울음 그치게 만드는 ‘땜질식 처방’만 해서는 한국 의료의 미래는 없다”고 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