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형식으로든 삶을 바꿔놓는 '병'을 사이에 두고 일어나는 환자와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낸 의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청년의사가 주최하고 한미약품이 후원하는 '제23회 한미수필문학상' 시상식이 지난 9일 서울 송파구 한미약품 2층 파크홀에서 개최됐다.의사들의 신춘문예인 한미수필문학상은 의사와 환자 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지난 2001년 제정됐다. 올해는 총 153편이 응모돼 역대 최대 경쟁률인 11대 1을 기록했다.23회 한미수필문학상 대상은 고대 안암병원 내과 정진형 전공의가 쓴 이 차지했다.청년의사 이왕준 회
앗, 하는 순간에 열 개도 넘는 빈 반찬통이 찬장에서 우르르 쏟아진다. 얼마 전까지 갈비찜이며 장조림, 내가 좋아하는 물김치와 우엉볶음 등이 들어있던 반찬통이다. 색깔도 모양도 크기도 전부 다른 반찬통이 다시 쏟아지지 않게 가지런히 쌓으면서 마치 내가 테트리스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모양과 색깔이 각각 다른 블록을 빈틈없이 쌓는 그 게임 말이다. 그 순간 날카로운 한 목소리를 떠올렸다.“그러니까, 선생님은 지금 우리 애가 이렇게 게임만 해도 괜찮다는 말씀이세요?”내 앞에서 항의하는 어머니의 아이는 부모와 싸우고
길 떠날 시간을내가 택할 수 없으니,스스로 길을 찾아야 하네이 암흑 속에서.…사랑스러운 사람, 잘 자요!밤 인사(구테 나흐트 Gute Nacht)슈베르트 연가곡집 중 제1곡“당신 누구야? 의사면 다야?”“저는 주치의삽니다.”“주치의? 니같은 인턴 나부랑이 말고 박사를 불러와 박사말이야!”“그런데 당신은 누구시죠?”“나? 환자 동생이다!”“그런데 무슨 일이시죠?”“환자 데리고 실험하는 것 집어치워, 죽은 사람 데리고 장난치지 말란 말이야!”악을 쓰고 대드는 이 사람의 거친 숨에서 알코올 냄새가 배어 있다. 이 사람이
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병원에서 근무한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기존에 7년가량 근무하던 지역에서 나를 따라 이동한 환자들이 내 전체 환자 중 상당수를 차지한다. 자가용이 있으면 몰라도 그 지역에서 현재 병원까지의 거리는 왕복 2-3시간이 걸리는, 꽤 오기가 부담스러울 수 있는 위치다.이렇게까지 환자들이 나와 함께 치료를 이어가려 노력한다는 것은 나를 믿고 의지하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당사자들에게 직접 확인해 봤을 때 환자들의 대답은 나의 예상과 많이 달랐다.환자 A : “선생님에 대한 믿음은... 완전히 믿는다가 100%라
"소원이 하나 있는데 들어줄 수 있을까요?“가쁜 숨을 몰아쉬던, 환자는 병실을 나가던 내 손을 꼭 잡았다. 검고 거친 피부, 움푹 파인 볼과 앙상한 손가락 그리고 주위를 떠도는 오래된 냄새가 곧 다가올 할아버지의 죽음을 암시해 주는 듯했다. 마지막을 향해 쏜살같이 지나가던 시간도 잠시 멈춘 그 순간, 간절한 염원을 담은 그분의 새까만 눈동자만이 어두운 병실 안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2차 병원의 내과 의사로 20년 넘게 근무하다 보니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유언 같은 소원을 자주 듣곤 한다. 보통의 그것은 낯선 곳으로 여행, 하지 못
평양의 하늘은 맑았다. 심양을 거쳐 14시간 만에 도착한 평양을 바라본 나의 첫 소감은 이랬다. 서울에서 차를 몰아 달려도 두어 시간이면 족한 길을 이렇게나 멀리 돌아오니, 그간 일과 연구에 바빠 한 번도 제대로 생각지 못했던 분단국가라는 내 시대의 현실이 체감된다.나는 지난 9월 27일부터 약 일주일을 평양에 머물렀다. 통일부 정책사업의 하나인 ‘북한 의료진 교육사업’에 초청받은 것이 그 이유이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에는 미처 고민해볼 새도 없이 대뜸 참가 의사를 밝혔다.북한의 이름난 의료진을 만나볼 기회가 언제 또 있을까 했
“센터장님 11월 24일에 돌봄터 행사 있어요? 구청장님도 오신다는데 참석 가능하시죠?” 돌봄터 시설장이 결재서류와 함께 행사 전단지를 보여주었다.“네? ‘우리들의 블루스’ 금요일이네요? 그날 부산에 치매학회 가기로 했는데….”“그래요 어떡하지요? 심사위원도 맡아 주셔야 하는데요?”“알겠습니다. 그러면 뭐 참석해야지요?”나는 떨떠름하게 대답하고 부랴부랴 학회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이야기하고 사전등록 취소를 부탁하고 예약해놓은 기차표도 취소하였다.2020년 가을,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병원 기획팀 부팀장이 관내 치매
‘띠링’휴대폰 알림벨이 울린다.‘평안입니다.’낯익은 메시지의 첫 문장이 보인다. 형준이 엄마가 보낸 메시지다. 형준이는 22살이지만 소아청소년과에 다니고 있다. 형준이는 부신백질이영양증으로 12년 전 진단받아 서울 쪽 병원을 다니다가 집 근처 병원을 다니게 되면서 나와 만나게 되었다.부신백질이영양증은 희귀질환으로 긴꼬리지방산의 대사에 이상이 생기면서 신경계와 내분비계를 비롯한 여러가지 전신 문제들이 생기게 된다. 형준이를 만났을 때 이미 질환이 꽤 진행된 편이라 거의 누워 지내는 상태였다.외래에서 만나는 형준이 엄마는 씩씩하고 밝아
“열 명 중 세 명은 결국 안구를 적출합니다.”나는 아이들의 눈에 생기는 암인 망막모세포종을 진료한다. 이만 명이 태어나면 한 명에서 생기는 병이다 보니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일 년에 보통 열다섯 명 남짓의 환자가 발생한다. 저마다 병원을 찾는 이유는 다양하다. 눈 속에 하얀 점이 보여서 오기도 하고, 사시로 알고 지내다 병원을 찾기도 한다. 소위 ‘큰 병원’인 대학병원을 찾은 부모의 얼굴에는 걱정이 한가득이다.아이의 눈 속에 덩어리가 있다는 말은 이미 들어서, 인터넷에서 잔뜩 글을 읽은 터다. 눈에 암이 있으면 안구를 통째로 들어내
스트레스가 극심한 환경, 고령화 등 요인으로 밤에 잠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수면 장애는 단순히 만성 피로를 부르는 데 그치지 않고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예방과 치료가 중요하다.수면 장애에 시달리는 현대인을 위한 ‘숙면 처방’ 가 출간됐다.수많은 불면증 환자를 진료해 온 웰케어클리닉 김경철 원장은 책을 통해 풍부한 임상 경험과 다양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수면 장애의 다양한 원인과 대처법을 소개한다.사람마다 잠 못 드는 이유는 모두 제각각이다. 급성 또는
그날도 어김없이 암병원의 길고 복잡한 복도를 걷고 있었다. 병원의 복도는 환자들의 이야기와 운명이 교차하고, 각자의 고통과 희망이 얽히고설킨 곳이다. 그 무게만큼 나의 발걸음은 가볍지 못했고, 그것을 이겨내려 괜스레 발걸음을 재촉하던 나는 분명히 지쳐있었다. 눈부시게 비치는 햇살에 무심코 내다본 창밖에는 이름 모를 여름꽃이 피어있었다. 따뜻한 햇볕 아래 살랑거리는 여름꽃 풍경을 보자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소리는 나를 그때로 돌려보냈다.몇 해 전 여름, 나는 외과 주치의로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내가 만난 환자들
새해 목표 중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다이어트’다. 특히 연말 건강검진에서 체중을 줄이라는 권고를 받은 사람들은 목표 체중을 정해두고 체중계 눈금에 매달린다.그러나 신간 〈내 몸 혁명〉은 애초부터 체중계 눈금을 목표로 설정한 게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각종 대사 이상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오는 ‘건강체중’이라고 강조한다. 예전의 날씬했던 체중이 아니라 각종 대사와 관련된 임상검사 결과가 다 정상으로 나오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저자인 성균관의대 가정의학과 박용우 교수는 지난 1991년부터 30여년 동안 비
뜬금없이 예전 바티칸 여행 때 봤던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벽화가 떠올랐다. 이렇게 침대에 누워서 보면 훨씬 편하게 볼 수 있었겠는데. 근데 대기실부터 수술방까지 거리가 이렇게 멀었나. 휙휙 지나가는 하얀 천장을 바라보며, 나 걸어갈 수도 있는데… 하는 생각을 했다.침대차에 실려 드디어 도착한 2번 수술방은 서늘하고 다소 어두웠다. 내가 집도 할 때는 느끼지 못하던 냉기가 온 몸을 휘감았다. 같은 수술 방 온도라도 의사와 환자가 느끼는 온도차가 이러했던 것인가. 그러나 지난 약 두 달 간의 고뇌는 이미 끝나 마음은 편안했다. 동시에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청량한 제주도의 배경에서 펼쳐지는 따뜻한 이야기로 큰 호응을 얻었다. 그중 다운증후군 장애 언니 영희와 그의 동생 영옥의 이야기는 잔잔한 감동을 줬다. 영희 역을 맡은 정은혜 화가가 실제 다운증후군 장애인이라는 점도 주목받았다.그렇다면 현실의 다운증후군 당사자와 가족은 어떨까? 다운증후군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과 이를 진단하는 의사의 이야기를 담은 〈아름, 다운 증후군〉이 출간됐다.책의 저자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들을 키우는 ‘엄마’ 연세대 간호학과 최은경 교수와 다운증후군 장애 언니를 둔 '동생' 한림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을 지내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김선민 근로복지공단 태백병원 직업환경의학과장이 그의 삶과 꿈을 담은 책을 냈다. 〈아픈 의사, 다시 가운을 입다〉로, 투병하며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을 마쳐야 했던 ‘아픈 의사’가 보건의료정책 전문가에서 다시 임상 현장으로 돌아온 과정을 담았다.저자인 김 과장은 가정의학과 전문의이면서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이다. 여성 최초로 심평원장을 지냈으며 세계보건기구(WHO) 수석기술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의료 질과 성과(HCQO) 워킹그룹’ 의장 등을 역임했다. 심평원장 임기를
35년간 코만 진료해 온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코 건강 가이드라인을 펴냈다. 바로 가 그것이다. 저자는 이비인후과 전문병원인 하나이비인후과병원 이상덕 원장이다.이 원장은 35년간 축농증 환자를 치료해 온 경험과 과정을 이 책에 담아냈다. 20여년 전 축농증으로 공군사관학교 합격이 불투명했던 고등학생 환자가 축농증 내시경 수술 후 공군사관학교 합격은 물론 전투기 조종사가 될 수 있었던 일화도 책에 실렸다.이 원장은 최근 생활습관과 환경이 코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방향으로 바뀌면서 비염 환자가 늘고 있다고
의료계 신춘문예 ‘한미수필문학상’ 23번째 대상작으로 고려대안암병원 내과 정진형 전공의(3년차)의 〈미워도 다시 한번〉이 선정됐다. 우수상은 ▲수술방의 온도(박천숙 이샘병원) ▲창 밖에 핀 여름꽃은 당신인가요(안상현 동안미소의원 원장) ▲확률과 선택 (조동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조교수)에 돌아갔다.장려상으로는 ▲평안입니다(강준원 충남대병원 소아청소년과 부교수) ▲우리들의 블루스(구본대 국제성모병원 신경과) ▲평양일기(김창근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천식알러지센터) ▲마지막 소원(박관석 신제일병원 원장) ▲이번엔, 제 차롑니다
의사에게 인생 환자가 있듯이, 의국에도 그런 환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타이틀을 무려 두 개의 과에 걸쳐 가지고 있는 환자가 있었다. 호흡기내과와 흉부외과 의국의 ‘인생 환자’ 타이틀 2관왕을 성취한 사내.‘비만 유발성 급성호흡곤란증후군’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진단명을 가지고 중환자실로 들어와, 두 달간의 기계호흡과 체외막순환기(ECMO)치료 끝에 60kg을 감량하고 당당히 살아난 역전의 사나이. 퇴원 날 의료진과 함께 찍은 사진은 흉부외과 의국에 자랑스럽게 걸려 있었다.마지막 근황 또한 전설과도 같았다. 당시 주치의였던 전공의가
몇 시인지 확인하려고 스마트폰을 봤다가 때마침 친구에게서 문자가 온다. 답장하고 있는데 누군가 좋아요를 눌렀다는 SNS 알림이 울리고, 확인만 하려다가 피드에 올라온 게시물들을 전부 구경한다. 우연히 뜬 동영상을 보다가 갑자기 생각난다. ‘아 맞다, 지금 몇 시지?’이렇듯 누구나 집중력이 흩어지는 순간들을 종종 경험한다. 그런 경험들이 누적되다 보면, 혹시 내가 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ADHD)가 아닐까 의심이 든다. 한 국내 기사에 따르면, ADHD 진단을 받은 성인들이 최근 5년간 5배나 증가할 정도로 집중력 문제를 호소하는 사람
현대인들에게 만연한 질병을 치료할 새로운 방법으로 장내 미생물이 주목 받고 있다. 신간 〈똥이 약이다〉는 건강한 사람의 대변 속 미생물이 현대병을 치료할 열쇠라고 말한다.저자는 최근 10여년간 진행된 연구결과를 제시하며 자가면역질환, 과민성대장증후근 등을 똥으로 고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건강한 사람의 대변 속 미생물총을 환자의 장에 이식해 난치병을 치료해 온 증거를 보여준다.책은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는 소화관에서 발병하는 질환과 치료법을 개괄하고, 2부에서는 대변 이식을 통해 여러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가설을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