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뇌혈관외과 의사 증원 불가능했나”
시스템 개편 없는 수가 인상 시 의료 왜곡 심화 우려도
“첫 단추 잘못 끼웠는데 나머지 제대로 끼워지겠나”

의료체계 개편 없는 수가 인상은 '빅5병원'으로 대표되는 수도권 대형병원 인력 쏠림 현상을 가중시킬 뿐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사진: 청년의사 DB).
의료체계 개편 없는 수가 인상은 '빅5병원'으로 대표되는 수도권 대형병원 인력 쏠림 현상을 가중시킬 뿐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사진: 청년의사 DB).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 논란이 ‘의사 증원’과 ‘저수가 개선’ 논쟁으로 번졌다. 시민사회단체와 대한간호협회 등은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의료계는 필수의료 전공 의사가 적은 원인은 낮은 수가에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수가만 올리면 또 다른 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땜질식 처방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리셋(reset)’한 후 다시 정립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한두 군데 고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뇌혈관외과 전문의 부족 문제도 수가 인상으로만 해결하려 한다면 대형병원 인력 쏠림은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수가 인상 후 수익을 내는 분야가 되면 빅5병원으로 대표되는 수도권 대형병원들이 관련 분야 의료 인력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것이란 우려다.

때문에 수가 인상이나 의료전달체계 재정립 등 제도 개편뿐만 아니라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병원 차원의 책임의식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신경외과 전문의가 25명이나 되지만 그중 개두술이 가능한 의사는 2명뿐이었으며 중재술이 가능한 의사는 1명이었다.

한 종합병원 원장은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과 같은 일이 발생하면 습관적으로 저수가 얘기를 한다. 물론 낮은 수가도 원인 중 하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수가 문제를 먼저 꺼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며 “국내 최고이고 세계적인 병원인 서울아산병원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더 충격적으로 받아들인다. 또 가장 많은 신경외과 전문의를 고용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지방 대학병원 중에도 개두술이 가능한 신경외과 전문의를 서울아산병원보다 더 많이 고용한 곳들도 있다”며 “다른 대학병원보다 더 많은 의료 인력을 확보하고 있는 서울아산병원이 뇌혈관외과 전문의는 2명만 고용해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뇌출혈 관련 수가 인상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수가 인상 후 빅5병원 의료 인력 쏠림 현상은 더 심화되고 지방 대학병원의 의료인력난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뇌혈관 관련 수가를 대폭 인상하면 지방 대학병원에 한두 명씩 있던 뇌혈관외과 전문의들을 빅5병원이 다 끌어가는 일이 생길 것”이라며 “수익이 되는 진료 영역으로 바뀌는 순간 수도권 대형병원들이 인력을 쌍끌이식으로 끌어갈 것이고 지방 대학병원들은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의사 수를 늘리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의대 정원을 확대한다고 해도 전문의 양성까지 10년은 걸리고 늘어난 만큼 필수의료 분야를 전공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 의료 상황은 한두 가지 고쳐서는 바뀌지 않는다”며 “문제가 생기는 부분만 땜질식으로 고치다보니 상황이 이렇게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상태에서 나머지 단추들을 제대로 끼우려고 하니 되겠느냐. 의료전달체계는 붕괴되고 과잉진료를 해야 유지되는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 리셋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A대학병원 교수도 “뇌혈관 수술은 응급인 경우가 많아 부담스러워한다. 때문에 대형병원에도 2~3명 밖에 없다. 하지만 서울아산병원 측 잘못이 아예 없다고도 못하겠다”며 “1명이 연수를 가면 나머지 1명이 풀 당직을 서야 하는 구조로 운영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그는 “이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된 배경도 봐야 한다. 왜 아무도 뇌혈관 수술 파트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지를 봐야 한다”며 “이런 의료환경을 바꾸려면 시스템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가 체계 개편도 숙제다. 대한의사협회는 응급, 난이도, 위험도를 고려해 수가를 책정해야 하며 중증 필수 의료 분야 지원을 위해서는 ‘파이가 정해진’ 건강보험재정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별도 기금과 특별예산을 편성하는 등 재원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병원들이 필수의료 분야 인력을 고용하도록 인건비를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기피과인 흉부외과에 대한 지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정부가 지원하는 만큼 병원도 투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B대학병원 교수는 “상대가치점수제 하에서 뇌동맥류처럼 응급 수술에 대한 수가를 더 높이 책정하기는 쉽지 않다”며 “필수의료 분야 전문의 인력을 확충하려면 인건비를 지원하는 방식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정부 지원금으로만 인건비를 지급하려고 하면 나아지는 게 없다는 걸 우리는 외상외과나 흉부외과 등의 사례에서 이미 경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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