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술지 JKMS에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관련 기고
“누가 뭐라고 해도 돈 문제인데 돈 문제가 아니라고?”
“획기적인 수가 개선 정책 말고는 해답 없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방재승 교수는 지난 19일 국제학술지  ‘JKMS(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에 '‘Vulnerable Shadows in Splendid Korean Big Hospitals’란 제목의 사설을 기고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방재승 교수는 지난 19일 국제학술지 ‘JKMS(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에 '‘Vulnerable Shadows in Splendid Korean Big Hospitals’란 제목의 사설을 기고했다.

“뇌수술을 하면 할수록 병원 입장에서는 수익이 느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감소하는 현실이기에 굳이 뇌혈관외과 의사를 더 구할 필요성 자체를 못 느낀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뇌출혈 사망 사건이 발행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지목한 글로 주목을 받았던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방재승 교수가 다시 한 번 펜을 들었다. 이번에는 국제학술지인 ‘JKMS(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에 기고했다.

방 교수는 ‘Vulnerable Shadows in Splendid Korean Big Hospitals’란 제목의 사설(Editorial)을 통해 화려해 보이는 한국의료의 이면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신경외과 전문의 중에서도 두개골을 절개하는 개두술(Craniotomy)을 할 수 있는 뇌혈관외과 의사를 구할 수 없는 의료환경은 외면한 채 “마녀사냥 하듯 비난했다”고도 했다.

방 교수는 이번 사건의 본질을 “가용한, 숙련된, 뇌혈관외과 의사(cerebrovascular surgeon)의 절대 수 부족”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50~60대 사람들 중 얼마나 1년에 180일 이상을, 당직 또는 호출당직을 서는 생활을 받아들이고 사명감만으로 그런 직업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묻고 싶다”고 했다.

방 교수는 한국에서는 손꼽히는 초대형병원인 서울아산병원이 뇌혈관외과 의사 2명이 동시에 자리를 비우지 않도록 당직 시스템을 만들지 못한 게 문제이기는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숙련된 뇌혈관외과 의사를 한 병원에서 3명 이상 쉽게 구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뇌혈관외과 의사가 부족한 원인은 뇌수술을 하면 할수록 수익이 감소하는 현실에 있다고 했다.

방 교수는 “뇌수술을 하면 할수록 병원 입장에서는 수익이 느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감소하는 현실이기에 굳이 뇌혈관외과 의사를 더 구할 필요성 자체를 못 느낀다”며 “설령 구하려고 해도 요즘 뇌혈관외과 전임의 과정을 거치고 나온 의사들 대부분이 뇌혈관외과 수술보다 신경중재(neurointervention) 쪽을 더 선호한다. 배움의 learning curve가 상대적으로 낮고, 시술 시간이 짧아 체력 소모가 적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방 교수는 “시간이 갈수록 숙련된 뇌혈관외과 의사의 숫자는 늘지 않고 줄어만 가는 것이 문제이지만, 국민 건강을 위해서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프랑스를 사례로 들었다. 분당서울대병원에 실습교육을 왔던 프랑스 의대생은 “프랑스에서는 중증 의료는 다 망한 것 같다. 실력 있는 외과 의사들이, 프랑스에 남아 있지 않고 스위스 등 다른 나라로 이직하고자 하는 열망이 커서 지금도 큰일이지만 향후가 더 큰일”이라고 했다고 방 교수는 전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돈 문제인데 돈 문제가 아니라고?

방 교수는 저수가 구조를 한국 의료의 가장 큰 문제로 꼽으며 “획기적인 수가 개선 정책이 아니고서는 해결책이 없어 보인다”고 강조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건 돈 문제인데 돈 문제가 아니라고 우기거나 다른 논리를 펴는 의료정책가나 일반인들을 보면 인간의 내면이 왜 이리 솔직하지 못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자기소신을 마음대로 저버리는지 이해되지 않아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고도 했다.

방 교수는 “한국의 의료 수가는 OECD 회원국 중에서도 아주 낮은 수준이다. 의료 수가의 상대적 가격 수준을 미국을 100으로 하였을 때, OECD 평균은 72, 일본은 71, 한국은 48로,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러시아, 헝가리,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의 구 공산권 국가 밖에 없다”며 “뇌혈관외과 쪽의 수가는 더욱 처참해서 일본 뇌혈관외과 수술 수가의 1/4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방 교수는 “기존 건강보험재정 총액제한 제도는 일부 수가를 올리려면 다른 분야 수가를 내려야 가능하다. 이런 조삼모사식 총액제한 정책으로는 향후 한국 뇌혈관외과 의사의 씨가 말라 10~15년 뒤에는 숙련된 뇌혈관외과 의사는 거의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가 MRI 급여 확대 등의 인기영합 정책을 줄이고, 중증질환이나 고난도 의료행위에 대해 건강보험 재정을 별도로 추가 신설하는 획기적인 수가 개선정책 말고는 여기에 대한 해답은 없다”고 강조했다.

수가 인상에 부정적인 여론에 대해서는 “수가가 올라가면 한국 국민들 중에는 ‘의사 봉급만 오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의사 봉급 보다는 ‘중증의료에 팀으로 종사하는 의사/간호사/의료기사 등이 지금처럼 착취당하면서 일하고 보람도 못 느끼는 의료환경 개선’에 투자돼 1명이 하던 일을 2명이, 2명이 하던 일을 3명이 하게 되면서 노동의 질 향상에 기여해 향후 중증의료에 자기 인생을 걸겠다는 뜻있는 의료인의 지원이 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방 교수는 “이런 정책적인 지원 없이, 그냥 의사 월급이나 당직비 좀 올려주는 것으로는 뇌혈관외과 의사의 소멸 현상을 막을 수 없다”고 했다.

고난도 수술의 상대가치 인정하지 않는 현상, 서글프다

지난 2017년 5월 시행된 심뇌혈관질환법(심뇌혈관질환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도 수술하는 외과 의사들을 소외시켰다고 비판했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도 ‘잘못 제정된 심뇌혈관질환법’으로 인해 심장수술을 할 수 있는 흉부외과 전문의가 없어도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로 지정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방 교수는 “신경외과 의사들은 수술실에 1주일 내내 갇혀서 환자 살리느라 온 힘을 다 쏟다 보니, 국가가 주도하는 심뇌혈관질환 정책에서 철저하게 소외돼 있다”며 “실제 수술이나 시술을 하지 않는 의사들이 탁상공론식으로 만들어 놓은 심뇌혈관질환법을 그대로 따르면 역시나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은 늘어날 것이 자명하다”고 말했다.

방 교수는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기술자를 천시하는 유교문화 때문에 현재도 의사를 중인으로 취급하는 우리 문화는 이해하겠지만 의사 집단 내에서 조차도 외과 의사를 기술자로 천시하면서 숙련된 고난도 수술의 상대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현상은 서글프기까지 하다”고도 했다.

방 교수는 이어 “정부의 의료정책 중에 신경외과가 ‘필수의료과’에서 제외돼 있는 현실을 아는 국민들이 얼마나 있을까. 사람 머리에 뇌출혈이 생겼을 때, 뇌출혈 수술을 하는 것이 ‘필수 의료’가 아니면, 도대체 뭐가 필수 의료란 말인가”라며 “우선 신경외과를 ‘필수의료과’에 넣는 일부터 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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