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 병상 가동률 90% 이상…“커버 못해…예견된 결과”
수술장·중환자실·전문인력 3박자 갖춘 필수중증질환 안전망 필요
“골든타임 중요한 응급질환 즉각 치료 가능한 환경 마련돼야”

서울아산병원 전경
서울아산병원 전경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사망한 사건으로 의료계가 들썩이고 있다. 빅5병원 중에서도 규모와 의료 수준에서 1, 2위를 다투는 서울아산병원이기 때문이다.

최고 의료시설과 의료인들이 모여 있다는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 중이던 간호사가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손쓰지 못한 채 서울대병원으로 전원했다고 하자 그 배경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와 서울아산병원 등에 따르면 일요일이었던 지난 7월 24일 새벽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A씨는 근무 중 두통을 호소하며 쓰러졌고,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서 검사 후 뇌출혈 진단을 받았다.

서울아산병원 측은 응급치료를 위해 색전술 등 의학적 처치를 시행했지만 A씨의 상태가 위중했고 수술할 의료진이 병원까지 오는 데 시간이 걸려 빠른 조치가 가능했던 서울대병원으로 불가피하게 전원했다고 했다. 서울대병원으로 전원된 A씨는 끝내 숨졌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뇌출혈 사망 사건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이를 둘러싼 파장도 점점 커지고 있다. 해당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요구는 물론 서울아산병원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은 2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상급종합병원 중에서도 최대 규모라는 서울아산병원의 의료 환경이 이 지경이었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며 보건복지부에 해당 병원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복지부 이기일 제2차관은 진상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답했다.

시민단체인 ‘간호와 돌봄을 바꾸는 시민행동’은 사망한 간호사가 근무한 서울아산병원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부에 진상조사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올해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전원 이유? 醫 "병상+전문인력 부족 복합적 문제"

의료계 내부에서는 서울아산병원이 환자를 서울대병원으로 전원한 배경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병상과 전문 인력 부족 등 의료체계의 한계를 원인으로 진단했다.

서울아산병원이 내부 직원인데도 불구하고 전원을 결정한 배경에는 부족한 ICU(중환자실) 병상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 특히 상급종합병원 대부분 병상 가동률이 90% 이상인 상황에서 이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은 서울아산병원 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뇌졸중학회 배희준 이사장(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는 본지와 통화에서 “골든타임이 중요한 환자의 수술적 치료를 할 때 중요한 요소는 수술장과 중환자실, 수술인력인데 상급종합병원일수록 이 3가지 모두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배 이사장은 “특히 병상 점유율이 90%에 육박하니 응급환자가 발생하더라도 들어갈 공간이 없다”며 “필수중증질환에 대비해 수술장과 병상, 인력 모두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이처럼 문제가 생기면 커버가 안 된다. 예견된 결과”라고 했다.

또 서울아산병원이 직원을 우대해 대기하고 있는 환자보다 우선하기 힘들었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응급의학과 B교수는 “서울아산병원을 포함한 빅5병원들은 ICU가 항상 없다. 응급실 대기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직원을 우대해 다른 환자를 전원 시키거나 (입원을) 미뤘다면 그 또한 윤리적으로 괜찮은 일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 직원을 살리자고 다른 환자를 안 받는다는 것을 우리나라 국민들이 용인할 수 있겠는가”라고도 했다.

또 해당 간호사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상황으로 보아 지주막하출혈처럼 수술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당시 서울아산병원 내 고난도 수술을 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부재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B전문의는 “혈관 조영술로 막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서울아산병원에서도 가능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뇌 꽈리가 터졌다면 그건 6~10시간이 걸리는 굉장히 어렵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수술이 아니다. 병원 내 그런 수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뇌수술 하는 의사들 중에서도 소수”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의사가 있다 한들 한 번에 환자가 2~3명이 오면 수술할 수가 없다. 6~10시간 걸리는 수술인데 나머지 (응급) 환자를 어떻게 수술하겠냐”며 “남들 보기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병원에서 (치료)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신경과 C교수는 “간호사가 일반적인 뇌출혈이었다면 다른 신경외과 파트도 수술이 가능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뇌출혈이 지주막하출혈이라면 동맥류 클립 수술을 할 줄 아는 신경외과 전문의가 필요했을 텐데 (부재로) 전원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골든타임' 사수 위한 의료 안전망 必

이번 사건으로 뇌졸중이나 뇌출혈 등 골든타임이 중요한 필수중증질환에 대비한 안전망 구축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도록 여유 병상과 수술장, 인력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더불어 골든타임이 중요한 환자 전원이 즉각 이뤄질 수 있도록 의료자원에 대한 정보가 빠르게 전달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했다.

뇌졸중학회 배희준 이사장은 “필수중증질환에 대한 즉각적 대응을 위해 병실을 비우더라도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 때문에 손해가 크니 병원들이 할 수가 없다”며 “뇌졸중 등은 1시간 단위로 예후가 바뀌어서 즉각 대응이 가능한 수술장, 병상, 인력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배 이사장은 “뇌졸중의 경우 첫 번째 병원에서 치료 받는 게 가장 중요하고 골든타임 내 병원에 도착해 치료가 시작돼야 한다. 그러려면 병상과 인력 등 정보 체계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 그런 시스템이 없다”고 했다.

배 이사장은 “심뇌혈관질환은 환자가 병원에만 도착했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치료가 시작돼야 한다. 심뇌혈관 치료를 위해서는 골든타임이 중요한 만큼 별도의 응급의료전달체계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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