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사건 커지면 일시적인 미봉책만 발표” 비판
‘중증필수의료 국가책임제’, 인력 양성 지원 등 제안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뇌출혈 사망 사건을 계기로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지만 의료계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비판한다. 현 구조에서 의사 수만 늘린다고 필수의료 분야 전문의가 늘지는 않는다는 지적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8일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과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의협은 “무작정 의사 수를 증원한다고 해서 필수의료 과목 전문의 부족이 해결되는 게 아니며 왜곡된 환경에서는 오히려 늘린 만큼 미용 분야 등 비급여, 저위험 분야 의사와 의료기관만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의협은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 전공을 기피하는 원인을 파악해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 총 6,507명이 참여한 ‘2020 전국의사조사(KPS)’ 결과에 따르면 흉부외과 전문의의 20.8%, 외과 15.3%, 산부인과 15.4%는 취득한 전문의 자격과 다른 진료과목을 진료하고 있었다. 이들 과는 대표적인 전공의 지원 기피과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에서는 기피과는 아니지만 뇌졸중 등 응급 수술이 필요한 중환자를 보는 세부분과 전문의 부족 문제도 드러났다. 전문의와 지원 의료 인력이 부족해 대학병원이어도 극소수 인원이 1년 365일 온콜(on-call) 당직을 서가며 환자를 돌보고 있다는 것이다.

저수가체계도 문제로 꼽힌다. 의협에 따르면 두개내 종양적출술의 경우 일본 수가는 1,581만원인 반면 한국은 15.5%인 244만원이다. 뇌동맥류 경부 클리핑(1개) 수가도 일본은 1,140만원인 반면 한국은 242만원으로 일본 수가의 21% 수준이다. 뇌혈관내 수술 수가는 일본이 662만원, 한국이 141만원이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 중이던 간호사가 뇌출혈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필수의료 분야 인력 양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 중이던 간호사가 뇌출혈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필수의료 분야 인력 양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의협은 국가 차원에서 나서서 필수의료를 챙겨야 한다며 ‘중증필수의료 국가책임제’ 시행을 요구했다.

의협은 “필수의료 분야는 국민 생명과 직결된 분야로, 응급·외상·심뇌혈관·중환자·신생아·고위험 등으로 적절한 처치가 지연됐을 경우 생명과 건강에 대한 영향이 크고 균형적인 공급이 어렵다”며 “국가가 직접 개입해야 할 필요성이 큰 의료영역”이라고 지적했다.

의협은 “권역·지역별 응급의료시스템과 같이 중증 필수의료기관을 지정, 국공립 의료기관의 기능을 이에 맞도록 개편 운영하고, ‘치매국가책임제’와 같이 ‘중증필수의료 국가책임제’를 시행하고 국고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증 필수 의료 분야 지원을 위한 재원을 다양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건강보험재정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별도 기금과 특별예산 편성 등으로 다양한 예산과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협은 특히 “우리나라 의료수가 체계와 상대가치 점수제도 하에서 뇌혈관 수술에 대한 비용책정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 아니라고는 해도 응급, 난이도, 위험도를 고려하면 낮게 책정됐다”며 “우선적으로 이 분야에 대한 수가 조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필수의료 인력 양성, 정부 재정 지원 필요…50% 부담으로 시작”

필수의료 인력 양성과정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며 단기적으로는 정부와 수련병원이 50%씩 부담하되 장기적으로는 정부가 100% 부담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미국은 전공의 1인당 수련비용의 70%는 메디케어에서, 30%는 메디케이드와 민간 의료보험사가 분담하고 있으며 영국과 독일, 일본, 캐나다도 의사 양성 비용을 국가와 사회에서 부담한다는 게 의협 측 설명이다.

의협은 이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제도개선을 통해 필수의료 분야에 적정한 수가 개선과 진료 여건을 제공해 향후 전공의들이 지원할 수 있는 유인 요소와 기전을 마련해야 한다”며 “국민 생명을 지키는 필수의료 분야 의사로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보상체계를 형성해야 한다”고 했다.

개두술 등 뇌혈관외과 수술을 집도하는 신경외과 전문의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정원에 미달된 과목의 전공의 정원이 발생할 경우 신경외과 등 필수 진료과 분야에 우선 배정해 중증 진료 분야 인력 풀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협은 그 외에도 ▲응급의료기관 환자 선택권 제한 등을 통한 의료전달체계 확립 ▲의료전문가 50% 이상으로 구성된 필수의료 협의체 신설 ▲권역, 지역별 민간병원과 연계한 필수의료 민관협력(야간 온콜 시스템 도입) 등을 제안했다.

의협은 “이번 사건을 건전하지 못한 의도로 왜곡하며 변질된 주장을 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와 국회는 다급하게 유관기관과 관계자를 대상으로 각종 회의, 정책간담회, 토론회 등을 통해 진위파악과 대책을 마련한다고 분주한 모습만 반복했다”고 했다.

의협은 “대부분 일시적인 미봉책을 발표하는 정도에서 지나갔고 향후 유사한 사건이 재발하면 또다시 일련의 형식적인 절차와 과정이 재연되는 장면을 의료계는 처절한 심정으로 목격해왔다”며 “제안한 의제들이 즉시 시행되고 중장기 과제로 별도 추진해야 할 부분은 중간 동력을 잃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 의료계 모두가 굳은 의지를 발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고인과 유가족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존중하고 애도해야 하는 시기에 어지럽게 확산되는 논란들을 심화시키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공의대 등 의과대학을 신설해야 한다거나 의사 정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등 사건의 본질보다는 고인을 정치적 이해관계나 특정 단체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행태를 배제하기 위함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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