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 피검사할 때 혈액형 검사도 함께 할까요?”“혈액형 검사는 뭔디요. 아니 빈혈 검사만 해주셔잉.” 옆에 서있던 애기 할머니가 의사에게 한발 다가서며 급히 제동을 건다.“왜! 피검사하는 김에 같이 하면 다음에 피 안 빼고 좋을 턴데.” 나는 시큰둥하게 말을 받으며 애기 손가락에서 피 한방을 빈혈 측정 장비에 떨군다. 할머니는 의사가 뭘 더 할까봐 며느리 품에 있던 애기를 빼앗듯이 안아 애기 뺨에 입을 맞추며 진찰실을 나간다.며느리는 좀 어색한 듯이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내 앞에 앉아 검사 결과를 듣고 이유식에 대해 상담을 했다.
분만이 임박했다는 전화를 받고 당직실에서 부시시 일어났다.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에이프론을 두르고 분만장 안으로 들어선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잔잔한 음악이 흘러 나오고, 아로마향이 가득하다. 천장 등의 조도를 낮춘 옅은 빛이 간신히 사람과 사물의 형체만을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홍체가 확대되면서 동공이 어두운 방에 적응 하기 시작했다. 아~악, 산모의 신음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아이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회음부를 비추던 스탠드를 치웠다. 미세한 확산광과 감각에 의존하여 회음 절개를 하고 아기 머리
유난했던 2016년 여름의 뜨거움이 가실 무렵, 서른아홉의 나이에 첫딸을 얻었다. 워낙에 결혼이 늦었던 것이 노산의 큰 원인이다. 허나, 한 차례 유산을 겪고 1년 넘게 다닌 난임클리닉의 시술들에서 모두 실패하면서, 서른여덟 겨울을 맞이할 무렵, 나는 마흔 전에는 출산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몹시 초조해졌다. 그리고, 임신과 출산을 위해서 일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재수, 유급 한 번 없이 교수가 되기까지 쉴 새 없이 달려온 외과의사로서의 삶에 나름 인생의 큰 쉼표를 찍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퇴직하기로 마
암환자를 치료하면서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은, 환자의 마지막이 떠오를 때가 아닐까, 특히 그 환자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나의 머릿속에 계산되는 그 순간, 의사라면 누구나 그런 자신에게 설명하기 힘든 죄책감이 들기 시작할 것이다. 내가 신이 아닌데, 내가 무슨 권리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벌써 5~6년 전, 그리고 더 이상 만나지 못한 것은 2년이 좀 더 지난 것 같다. 벌써 꽤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나의 기억도 많이 정리되었고, 손을 잡고 함께 눈물 흘리던 시간, 마음이 아프고 속상했던 그 시간
검은색 빵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가 상담실로 들어오더니 자리에 앉자마자 “쌍꺼풀 수술하러 왔습니다”하고 말했다.40세 초반의 나이, 상당한 미남형의 얼굴이다. 초롱초롱 반짝이는 눈, 몸은 운동선수처럼 군살 없이 탄탄해 보인다. 그런데 모자를 벗고 보니 긴 칼자국이 선명하게 보이는 까까머리였다.(스님인가?)(혹시…공갈단?) 요즈음 성형외과 병원을 돌아다니며 성형수술을 하고는 결과가 좋지 않다며 협박해서 돈을 뜯어내는 무리들이 있다는 말을 들어온 터였다. 환자는 오래 전부터 쌍꺼풀 수술하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말했다.“머리 흉
1.땅거미가 내려앉은 어느 늦은 여름날. 다섯 살배기 아들 녀석이 친구네 집에 놀러 간 틈을 타 아내와 함께 동네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살림과 육아에 지친 아내는 모처럼 갖게 된 둘만의 여유에 한껏 흥이 났다. 메뉴판을 이리저리 훑으며 여기가 요즘 뜨고 있는 봉선동 핫플레이스라는 둥 여기 와서는 이 메뉴를 꼭 먹어 보아야 한다는 둥 쉴 새 없이 재잘거린다. 저다지도 행복해 하는데 그 잠깐의 여유조차 쉽게 허락해 주지 못하는 것 같아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부쩍 선선해진 저녁 공기 탓에 여름내 거들떠보지도 않던 핫초코를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의 눈에는 미련이나 원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듯한 한없이 평화롭고 온화한 시선만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말할 힘도 없는 그의 말라버린 입술의 침묵 대신 눈가에 젖은 촉촉한 이슬이 그 동안 고마웠었다고, 그리고 미안했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괜찮다고 편히 가시라고 눈빛으로 화답했다. 그 어떤 강렬한 언어보다도 더 훌륭히 공감되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그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건 10여년 전 나의 내과 전공의 시절, 그가 난치병인 류마티스관절염을 진단 받으면서부터다. 60이
외과 전공의 4년차 어느 날 새벽 2시,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당직실에서 자고 있을 아랫년차 전공의와 수술실, 마취과, 또 어디다 연락해야 되더라. 교수님께서는 이미 연락 받으셨겠지만 전화 한 번 드려야지. 주섬주섬 옷을 입고 양치만 쓱 한 다음 집을 나서며 생각했다. 요즘 왜 이렇게 카데바(장기 기증이 가능한 뇌사자)가 많은 건지. 어제도 간이식을 두 건이나 하느라 오늘 겨우 집에 와서 눈 붙인 건데.나는 당시 이식 파트에 배정되어 치프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지만, 사실 이식에 큰 관심은 없었다. 전문의를
창밖에 낙엽이 떨어지니 곧 하얀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이제 나에게도 신체적 변화가 일어나 머리카락은 가을바람과 함께 자연과의 동화를 위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고 그나마 남아 있는 머리카락도 자연의 순리대로 곧 하얗게 변할 것이다. 또한 나의 기억도 차츰 가물가물하여 불과 며칠 전 일도 흐릿할 때가 많다. 이 또한 자연의 순리이겠지. 하지만 순리에 맞서 아직까지도 나에게 생생한 기억이 마음속에 남아 있는 추억이 있다.그 당시 나는 국가 병원에서 전공의 트레이닝 과정이었다. 이비인후과 전공의로 입국한 지 얼마 안 되어 윗사람 눈치 보
“쌍둥이란다.”전화기 너머로 뜻밖의 소식을 전해온 그는, 불과 두 달 전의 술자리에서 심각한 이혼 고민을 털어놓던 그 친구가 맞았다. 고향 친구 몇이 모인 추석 전날 밤, 우리는 꾸밈새 없이 막 담은 광어회 접시를 앞에 둔 채 사랑을 잃어버린 부부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의 넋두리 속에서 꼭 뱉어 버려야 할 생선가시처럼 묘사되었던 부인이 어느 날 선명한 두 줄이 생긴 임신진단키트를 그에게 보여줬고, 그들의 첫째와 둘째 딸을 받았던 단골 산부인과 의사는 그들에게 세 번째와 네 번째가 될 두개의 심장 소리를 들려주었다고 했다.“산부인과
“......아빠가 그랬어요.”오늘따라 화장이 좀 진하다고 생각했던 중학교 여자아이를 진료하던 중, 메이크업 아래 눈 주변의 약간 붉은 자국을 본 내 질문에 한참 눈을 굴리던 아이가 대답했다. 그제서야 손목 아래 오래된 자해 흔적 위에 붉은 새 상처가 보인다. 폭력에 망가진 아이의 뇌 내 감정 회로는 통제 불가능한 알람이 울렸을 테고, 스스로 자해를 하지 않으면 그 시끄러운 알람이 꺼지지 않았을 것이다. 내 눈길이 자신의 손목에 가닿은 것을 알자 슬그머니 아이는 교복 소맷자락을 당겨 상처를 덮었다. 머리카락도 쓱쓱 쓸어내려 눈가의
그 화두가 던져진 건 바이탈 사인을 알려주는 벤틸레이터와 모니터의 신호음 이외 고요했던 정적을 깬 갑작스러운 산부인과의 어텐딩 요청 콜로 인해서였다.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붙박이로 밤낮을 지내던 차라 밤인지 새벽인지 혹은 낮인지도 구분 되지 않던 시간이었다.“아, 선생님?! 본원에 다니던 산모는 아니구요, 지금 임신 21주에서 22주 가량 되었고 산모가 산전검사는 이제껏 아무것도 안 해서 아직 몸무게나 검사 결과 등은 전혀 모른답니다. 그런데 지금 응급실에서 조산끼 있어 분만실로 바로 보내 분만 시작했으니 분만실로 오시면 됩니다.”아
할머니는 그렇게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임종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인근 병원의 영안실에 전화를 걸었다. 장례식장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장례식을 준비하게 되면, 무엇부터 할지 종종 생각해본 적이 있다. 집 근처 종합병원을 눈여겨 봐두었다. 아버지는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7살. 기억이 없다. 어리다고 어느 친척 집에 잠시 맡겨져 있었던 것 같다. 겪어야 할 일을 겪지 않은 대가는 혹독했다. 그렇게 가려지겠는가. 할머니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할 때, 아버지가 안 계신 나로서는, 모든 것을 혼자서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겨울 눈발을 헤치며, 새
나는 피부과의사다. 20년도 전에 피부과를 시작했고 계속 대학병원 근무만 했고 어느덧 지천명의 나이이다.피부과는 생명이 위험한 환자를 보거나 몇 시간씩 걸리는 대 수술을 할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꽤 오래 대학병원에서 근무하였지만 소위 누군가에게 침을 튀기며 말하거나 듣는 이들의 눈이 똥그래질만한 그런 무용담은 없다.내 이야기는 생각하면 약간은 웃음도 들지만 어찌 보면 지긋지긋한 기억이기도 하다. 제목처럼 ‘찐한 악수’를 마지막으로 헤어진 그 청년에 대한 이야기의 시작은 최근 교수승진을 앞두고 지금까지 썼던 논문 목록들을 정리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