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진(전 햇빛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그 화두가 던져진 건 바이탈 사인을 알려주는 벤틸레이터와 모니터의 신호음 이외 고요했던 정적을 깬 갑작스러운 산부인과의 어텐딩 요청 콜로 인해서였다.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붙박이로 밤낮을 지내던 차라 밤인지 새벽인지 혹은 낮인지도 구분 되지 않던 시간이었다.

“아, 선생님?! 본원에 다니던 산모는 아니구요, 지금 임신 21주에서 22주 가량 되었고 산모가 산전검사는 이제껏 아무것도 안 해서 아직 몸무게나 검사 결과 등은 전혀 모른답니다. 그런데 지금 응급실에서 조산끼 있어 분만실로 바로 보내 분만 시작했으니 분만실로 오시면 됩니다.”

아이러니 1.

어린 산모는 아가를 유산시키려고 많은 시도를 했다 . 의도적으로 높은 계단에서 구르고, 담배를 평소보다 더 무수히 태웠고, 술을 많이 마셨으며, 여러명의 남자들과 많은 섹스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뱃속의 아기는 엄마의 의도와는 달리 바로 죽지 않았다. 아기는 엄마의 의도에 반해 끈질기게 살아남고 있었다. 모순적으로 산모가 뱃속의 태아에게 주었던 이러한 스트레스는 아가의 폐를 더더욱 성숙하게 만들어 같은 개월 수의 태아보다 아가의 폐는 허파의 폐포도 제대로 펴지지 않았을 제태기간 22 주임에도 불구하고, 폐 계면 활성제를 쓰기 전임에도 놀랄 정도로 깨끗하고 양호한 폐 사진을 보이고 있었다.

일반적인 22주 500g대의 미숙아라면, 아가는 허파꽈리가 펴지지 않고, 장기도 미성숙하여 태어난 직후나 1~2일 이내로 죽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이 아가의 폐가 일반적인 미숙아보다도 더 성숙한 것이 스트레스 호르몬인 cortisol이 폐의 성숙을 촉진하여, 생존을 도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산모가 불가피하게 조산하게 될 기미가 보이면, 태어나기 전에 미숙아들의 경우 보통 비슷한 계열의 호르몬 제제를 폐 성숙 촉진 주사로 산모에게 맞추고 태어나게 하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아기의 폐 성숙을 촉진해야 조산한 아가가 살아남을 수 가 있다. 22주라고 못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버려지지 않은 아가들의 이야기에 한한다. 그러나 이 아가는 뱃속에서 이미 버려진 아기여서, 그 어떤 산전관리며 조산을 대비한 치료도 받은 적이 없었는데도 그 이상의 폐 성숙이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비록 어머니의 자궁에서 너무 이른 시기에 떨려나오긴 했지만, 이러한 아기의 폐의 성숙상태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라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

아이러니 2.

산전 케어를 받기는커녕 아가가 죽어버리기를 바랬던 젊은 미혼모가 조산끼로 갑자기 응급실로 와 분만을 하게 됐으니 빨리 와서 어텐딩을 하라는 콜을 받고 달려가던 NICU(신생아집중치료실) 레지던트였던 나는, 으레 의사들이 하는 일 살리고, 치료하는 일-대신에, 사실은 그 아이의 삶을 끝내기 위해 달려가고 있었다. '주수와 산모 상태를 보아하니, 어차피 분만실에서 살아나오지 못 할 테니 Table death(수술방의 테이블에서 사망 선고)를 선언하고 나와야겠다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외의 일이 일어났다. 마스크와 수술모를 착용하고, 가운을 입은 후 들어간 분만실에서는, 어린 산모가“아악! 아프니까, '그거' 빨리 빼 주세요! 빨리 빼내란 말이에요!”하고 악을 쓰고 있었다.

그녀가 '그거'라고 지칭한 아기가 살아있지 않기를 바란다는 사실도 너무 명백했다. 그런데, 처음엔 죽어서 나온 줄만 알았던, 움직이지 않은 꺼멓게 죽은 것 같던 손바닥만한, 아니 그보다 더 작아 보이는 아가가-아기의 죽음과 삶의 교각이었던 그 여자의 다리 밑으로 갓 빠져나온- 갑자기 미약하게 울기 시작한 것이다.

첫 울음.

아가의 첫울음은 세상에 태어나 엄마와의 개별적인 순환과 호흡을 시작하면서 폐의 양수를 흡수시키고 양압(positive pressure)을 줘서 폐가 펴지게 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살아날 수도 있다는 가장 최소한이나 가장 중요한 신호이기도 하다.

크리스마스에 우리는 '울면 안돼, 울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주신대…'하고 울음은 좋지 않다는 간접적인 메시지를 담은 계도적인 노래를 부르지만, 울음은 필요하다. 시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다. 사람은 태어났을 때, 울지 않는다면 죽을 수도 있다. 그 울음을, 지금,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아가가 새끼고양이처럼 울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도 제태연령 22주의, 온갖 의도적인 스트레스를 다 겪은 아가가 멀쩡히 울음을 터뜨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조산에 대비해 철저히 준비하고 폐 성숙 주사를 맞고 벤틸레이터를 준비하고 수술방에서 모든 시술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마치고 아기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나서야 생존율이 조금 늘어나는 터인데, 이 아기는 잉태된 그 순간부터 아기의 삶을 끝장 내기위한 22주를 보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하여 수술방과 신생아중환자실의 모두가, 그 어미 되는 자까지 그 아이의 죽음을 예상하고 준비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아가는 저 혼자 삶을 준비하고는, ‘살아서 태어난것이다.

아이러니 3.

그 분만실로 달려가 ‘숨쉬어, 죽지마!’하고 아가에게 인튜베이션을 하고,산소를 공급하고 생선가시보다도 더 연약해보이는 뼈들이 튀어나온 흉골 근처를 손가락으로 눌러대며 방금 전까지도 어미와 이어져있던 실낱같은 제대정맥(탯줄의 혈관들)에 라인들을 꽂던 파견 당직 레지던트였던 나는 사실 당시 스스로 삶에 대한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신생아 집중치료실은 몸도 마음도 무척 힘이 드는 곳이고 , 신생아 집중 치료실의 규모에 비해 인력도 부족했으며, 오프는 무척 적었던 것이 일조했을 것이다. 폐렴을 앓고 난 직후라 기침도 끊임없이 나왔다. 볕이 들지 않는 지하에서 새벽 일을 시작하고, 병원 안에서 밤낮을 지내며 잠시 콜이 뜸해진 시간에 번개 샤워를 하다가도 분만실 콜이 올까 두려워 안절 부절 못 하면서 뛰어나왔다. 누구도 그런 곰팡내 나는 상황을 이해해 주지 못했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공간에 있는 것에 지친, 뭐하러 살지, 삶이란 게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하며 삶에 지친 내가 절박하게 그 아가가 어떤 삶이든 좋으니 아이가 잠시라도 살았으면 좋겠다’고생각하며 번개같이 손을 놀리고 있었다.

아이러니 4.

아가가 그리하여 그 분만실에서 살아남았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그 아기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기를 입원시킬 돈 따위는 없으니까, 아기가 빨리 죽게 해달라고도 말했다. 원치 않았던 아기, 막막한 일상에 지친 미혼모인 그녀는 아기의 얼굴을 단 한 번도 바라보지 않았었다. 아가는 만삭을 채웠다면 돈을 받고 타지로 입양 보낼 계획이 잡혀있었는데, 미숙아여서 키워봐야 입양도 안 되고 돈만 드니까 차라리 지금 죽는 것이 나으니 어떤 약도 쓰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 아가는, 부모들이 너무도 생존을 간절히 바라는 다른 미숙아 아가들보다도 잘 살아남고 있었다. 아가가 팔다리를 활발히 버둥거리며 움직이는 동안 아기의 어린 엄마와 법정대리인은 아가에 대한 모든 치료적인 절차와 투약을 포기하겠으며 더 진행하지 말라는 각서를 우리에게 넘겨주었고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 올 때마다 왜 아직도 살아있느냐는 타박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진들이 치료를 중단할 수 없었던 건 아가가 너무 잘 살아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삶에 찌들고 우울함에 지쳐있던 나도 그 자조감속에 단 하나의 기적을 바라듯이, 이 아가가 살기를 바랐다. 물론 그 아기는, 단지 시술과 약의 힘으로 겨우 며칠만을 반짝 연장한건지도 모른다. 이후 어떤 치료를 했어도 단지 죽음으로 걸어들어가는 길이 조금 더 길어졌을 뿐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가를 분만실에 차디차게 식어가도록 내버려 두고 왔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제태기간 22주짜리 아가는 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을 것이고 나는 단지 CPR 장소를 분만실에서 신생아 집중 치료실로 옮겨오게 될 뿐이고, 단 며칠의 생명연장을 위하여 아기를 더 고통스럽게 힘들게 만들 뿐이고, 퐁당퐁당 순서대로 밤을 새는 우리들 의료진과 당직자들의 잠을 설치게 만들 뿐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아가는 왜 그렇게 살아남고 싶다는 듯이 수술방에서 울음을 터뜨렸으며, 그 아기에 대한 모든 처치들은 내가 시술을 했던 어떤 때보다도 빠르고 정확하게 이루어졌을까? 나는 카페인을 대량 투하한것처럼 아주 빠르게 뛰는 스스로의 심장소리를 천둥소리처럼 들으며, 아기의 작은 턱과 목안에 아주 얇은 기관(Trachea)에 즉시 인튜베이션을 했고, 즉시로 폐 계면 활성제투여를 했다. 그렇게 얇은 정맥엔 처음 시술한 것인데도 가늘기 짝이 없어, 보이지 않는 아가의 혈관에 성공적으로 중심 정맥관과 배꼽 정맥관을 삽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아가는 정말 우연적으로라도 이 모든 치료적인 과정에 그만치도 순응하는걸 봐서는, 정말 꼭 살아남아야만 하는 것 같았다. 기적 같이, 이 아기를 살리는 모든 과정이 이렇게 잘 이루어 졌으니까, 그래야만 이 ‘생(生)’ 이라는 문맥에 맞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상황들은 오히려 이 모든 것이 단지 우연 이었던 것처럼 아기가 그 순간 살아남은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기가 살았으면 하는 나의 바람은, 삶에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나의 절망감의 투사 였던 걸까. 살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자, 때론 저 멀리, 여기 이 지하 어두컴컴한 NICU (신생아집중치료실)엔 도무지 안 내려오실 것 같은 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기도 했다. 우리들은 “이건 단지 하나의, 아니 혹은 두 번의 우연일 뿐이야. 음, 아니면 세 번째 우연일 뿐이야. 어 또 그렇다고 ? 음 그렇지만 어쨌든. 우연의 연속일 뿐이지.”

이렇게 말하는데 익숙해져 있고, 우리는 절대로 매일 매일의 기적의 존재를 믿지 않는데, 그 아가가. 저기서 살아서 울고 있다는 것이, 그게 단 하루의 울음일 뿐이라도 내게는 기적 같이 여겨져서 생과 사를 관장하는 신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모두가 죽기를 바라는데도 아기를 살아남게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매미는 단지 노래부르는 한철을 위해서 7년을 참는데, 하루살이는 단 하루만 살고 죽기도 하는데, 그런 삶이 다 의미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80년을 살아가는 것과 1일간의 삶에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80년을 살아도 의미없이 살수도 있는 것인데, 단 하루를 살아간다고 의미가 없는 것일까? 갑작스러웠던 아기의 분만어텐딩 콜이 온 이후부터 쭉, 아기의 죽음과의 투쟁을 보면서 이러한 답이 없는 질문들로 나의 마음은 어지러웠다. 산소 포화도라도 떨어지면, 혈압이라도 떨어지면 포기하자 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가는 내가 파견이 끝나고 본원으로 돌아갈 때까지 바이탈 사인중 어느 것도, 산소포화도도 흔들리지 않았다.

물론, 아가는 점점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피부를 보호해 줄 각질층이 거의 형성 되지 않아 맨질맨질한 물고기 같은 아가의 살갗사이로 조금씩 수분과 전해질이 빠져나가고 있어, 그 피부로 빠져나가는 수분과 전해질을 유지해 주어야하기에 인큐베이터 안은 습기로 가득채워져 수족관 같았다. (모친의 강한 반발과 요구로 인해, 생존에 필요한 약들과 연명치료들을 진행하기 어려워진 후에도, 하나에 1억원 상당하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지내게 하는 정도의 케어 만큼은 교수님을 비롯한 의료진들은 차마 중단할 수 없었다.) 그 푸르른 인큐베이터안에서 물고기처럼 인공 호흡기로 숨쉬던 갸날픈 아기의 모습을 눈에 담은 것을 마지막으로 , 파견근무 기간이 끝난 후 나는 더 이상 아기의 밤과 낮이 어땠는지 알 수 없었으나 동료는 내가 본원으로 돌아가고 난 후 아가는 3일을 더 살고 죽었다는 소식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위로하는 것처럼, 어차피 죽을 애였으니까, 더 힘들기전에 가는게 낫지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래'하고 나는 대답 했지만, 마음 속 깊은 곳 어디에선가는 아직도,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었다면, 아가가 살 수 있었다고 남모르게 생각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 며칠간의 아가의 삶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기가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던 기적과 그 아기를 둘러싸고 있는 아이러니사이에서 아주 잠시 살았던 아기의 ‘삶’이 내게 던진 질문들에 답을 하지 못했다. 단지 그 아기의 짧은 생은 나의 뇌리에 강하게 남았고 여전히 화두에 답을 달지 못한채 이상하게도 나는 스스로의 무력감에서, 길고긴 겨울 잠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나는 내 기억속의 이 작디 작았던 아기가 나에게 남긴 어떤 강렬한 인상, 모든 것이 사람들의 예상대로 되지 않았던 순간들을 보여주고 떠났던 이 아가의 아주 작은 투쟁이, 나 뿐 아닌 누군가에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단 한 계절이라도 목청 높여 울며 존재를 증명하던 매미처럼-아가의 단 며칠간의 삶이라도 이 글로 인해 의미가 남기를 바란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우리들이 종종 맞닥뜨리는 아이러니와 절망들을 궤뚫고 나올 수 있는 어떤 기적을 목격할지도 모르고, 그럼으로 인해서 조금이라도 우리가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절망들에 대항할 힘을 가진다면, 이 아기의 짧은 생존은 의미를 가지지 않을까. 아무리 이름을 불리지 못한 채 아무도 모르는 채로 태어나고 죽었다 해도.



<수상소감-이정진 전 햇빛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위로의 글이 될 수 있다면


레지던트 시절을 다시 떠올려보면 신생아 중환자실(NICU)은 외로운 곳이었습니다. 생의 처음(탄생)과 끝(죽음)이 공존하는 고립된 곳. 가장 사랑받는 존재들이 어른들보다도 훨씬 큰 고통을 안고, 기관 삽관이 되어 막힌 목으로 소리도 못내고 눈물을 흘리는 곳. 폐쇄된 그 공간에 있을 때, NICU의 근무자들은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책임감과 중압감을 느끼기에, 폐쇄된 공간 안에서 참 외롭습니다 . 몸도 힘들지만, 아픈 아가들을 책임져야 하는 그 마음이 참 힘들어서 NICU에서 아픈 아가들을 보던 시간은 2~3배속으로 앞으로 빠르게 테이프를 감아버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하루는 한 줄씩 느리고 정확하게 한 글자씩 찍어내서야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완성하는 책과 같았고, 그리하여 천천히 경험해 내는 수밖에는 없나 봅니다.

저의 무의식 어디서인가에서는 그때의 마음 아팠던 경험들이 적힌 페이지가 봉인된 채 묶여 있었는지, 레지던트를 마치고 봉직의로 일하던 중에도, 뭔가 정리가 안 되고 숙제처럼 남아있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했던 일은 두서없이 끄적여 놓았던 메모들을 글로 다시 쓰는 것이었습니다. 일종의 위로-아픈 아가에 대한 , 그 아가들을 사랑했던, 마음 아팠던 사람들에 대한 , 그 시절의 마음 아팠던 스스로에 대한- 또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격려 혹은 살풀이와도 같은 심정으로.

당시의 두서없던 메모를 글로 정리한 직후, 이번 해 4월, 제게 뜻밖에도 첫 아기가 생겼습니다. 뭔가 꼬여있던 실타래가 풀린 듯, 제 속에서 글을 끄집어 낸 후에야 아기가 들어설 공간이 있는 것처럼, 아가가 내게 온 것 또한 우연인 듯 필연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중 출산이 임박했던 막달에, 한미문학수필 공모전에 대해 알게 되어, 망설이다 마감 하루 전에야 졸필을 정리하여 공모까지 하게 된 것인데, 아기를 출산해 조리하던 중 기쁜 수상 소식까지 듣게 되어 무척 부끄러우면서도 감사합니다.

아가를 가지고, 낳고나니 더더욱 아픈 아가들을 사랑했던 보호자들의 마음과 아가의 아픔이 마음을 찌릅니다.

저는 전공의 시절만을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서 보냈을 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고독한 NICU 의 필드에서 일하시는 선생님들, 그리고 늘 환아에 대한 끊임없는 집중과 관심, 온 마음을 쏟으시는 저의 은사님들을 생각할 때 감사하고 한없는 존경심이 듭니다 . 아프실 때도 힘이 드신 날에도, 공휴일에도 아가에 대해 늘 걱정하고 지침을 내려주시던, 전공의 시절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차 의과대학 신생아 집중치료실의 이규형 교수님, 조희승 교수님, 전지현 교수님과 이초애 교수님께, 그리고 자신을 표현하는데 망설임이 많은 제게 늘 용기를 주고 격려해준 저의 멘토인 남편에게 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