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하 동원산부인과

분만이 임박했다는 전화를 받고 당직실에서 부시시 일어났다.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에이프론을 두르고 분만장 안으로 들어선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잔잔한 음악이 흘러 나오고, 아로마향이 가득하다. 천장 등의 조도를 낮춘 옅은 빛이 간신히 사람과 사물의 형체만을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홍체가 확대되면서 동공이 어두운 방에 적응 하기 시작했다. 아~악, 산모의 신음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아이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회음부를 비추던 스탠드를 치웠다. 미세한 확산광과 감각에 의존하여 회음 절개를 하고 아기 머리를 받친다. 태아의 머리가 오른쪽으로 돌아가면서 목이 신전된다. 세상과 마주하기 위한 마지막 순간. 모두가 숨죽이고 시간이 멈춘 듯 사방은 고요해진다.

엄마의 자궁 안은 어둡고 조용하다. 탯줄로 연결되어 엄마와 한몸인 아기에게 그 어떤 공간보다도 안전한 공간. 밖에서 엄마는 진통을 하고 있지만, 안에 있는 아기는 좁은 산도를 통과 하느라 사력을 다하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산도를 헤쳐 나왔을 때 마주하는 엄청난 밝기의 조명은 태양을 정면으로 쳐다보는 것과도 같다. 아이는 눈이 먼다. 의료진이 산모를 독려하는 음성이나 분만 기구의 덜그럭거리는 소리는 아이에게 천둥과도 같다.

아기를 엄마 배위에 올려 주었다. 엄마 젖을 물린다. 아이를 울리기 위해 때리지도 윽박지르지도 않는다. 탯줄에서 맥박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아빠가 탯줄을 자른다. 아빠가 간호사의 설명을 들어가며 아기 목욕을 시키는 동안 태반을 만출한다. 자궁 수축 상태를 확인하고 상처입은 회음부를 봉합했다.

아기에게도 인권이 있다. 프랑스 산부인과 의사 프레드릭 르봐이에 박사는 산모가 출산할 때 아기가 괴롭게 우는듯한 모습을 보고 기존의 출산법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아 새로운 분만법을 고안했다. 태아도 어른과 같이 시각, 청각, 촉각, 감정이 있다고 보고 환경 변화에 따른 자극을 최소화하여 태아를 배려하기 위한 철학으로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도 도입되어 인권분만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네분만, 자유분만, 공분만, 수중분만 등이 모두 인권 분만의 범주에 속한다.

구제적인 내용을 보면 아기의 자극을 최소하기 위해 조명을 낮추고, 분만 중 소음을 줄인다. 산모는 침대에 가만이 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자세를 취하여 공 등을 이용하여 운동을 할 수도 있다. 태어나자마자 아기를 엄마의 품에 안겨 젖을 빨게 하고 엄마의 심박동 소리 들려주기,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양수와 비슷한 온도의 욕조 물로 아기에 목욕시키기, 아기가 나오자마자 탯줄 자르지 않기 등. 어렵다기보다는 신경을 써야 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산모와 아기에게 의료진이 정성을 쏟는 일련의 과정들이다. 인권분만으로 태어난 아기는 감성지수가 좋고 정서적으로 안정된다고 한다. 논리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는 일부의 주장이 있지만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확고한 증거가 있다면 모든 산모들이 인권분만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말프렉티스(의료과오)다.

산모들에게 어필을 하면서 많은 여성병원에서도 인권분만을 표방하고 있지만 방법을 알지 못하기도 하고 인력, 시간, 노력이 필요하다 보니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중간에 흐지 부지되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정해 놓은 분만수가는 개별 산부인과에서 좌지우지할 수 없고 인권분만을 한다고 추가로 받는 비용은 없다. 분만 준비 과정의 번거로움과 인력의 원활함 등을 고려하면 확고한 분만 철학이 없이는 지속되기 어렵다. 의료의 기대치는 갈수록 높아져 간다. 요즈음 인권분만에 더해 자연주의 출산이 화두다. 기존의 인권분만이 아기 인권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자연주의 출산이란 엄마를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자연주의 출산이란 의학적인 조치를 최소화하거나 심지어 전혀 안 하는 옛날 그대의 출산이다. 산파가 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5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자연주의 출산을 하기로 한 환자는 분만실이 아닌 병실에 입원을 한다. 분만장 자체가 의학적 개념의 소산이다. 방에서 진통하다가 방에서 아기 낳고 그대로 누워 쉬는 것이다. 분만장으로 옮기는 것도 의료진의 편의를 위한 측면이 있다. 맨발로 딱딱한 바닥의 감촉을 종아리에 느끼며 복도를 걸었다. 방문 앞에 서서 숨을 가다듬었다. 분만장이 아닌 병실로 들어간다는 게 낯설었다. 가운, 진료실, 진찰대, 수술복, 준비된 의료 기구 – 이러한 공간과 상황의 설정 속에 의료라는 개념이 성립했다. 방안에서 신음 소리가 들려 왔다. 문을 살며시 열었다. 침대에 누어 있는 산모와 뒤에서 산모를 발 사이로 받치고 두 손으로 상체를 안은 남편의 실루엣이 보였다. 들어갈까 순간 망설였던 것 같다. 뉴런의 신호가 발에 전달되기도 전에 가로막는 손길을 느꼈다. “아직이요 원장님.” 조산사였다.

정사를 벌이는 남녀의 방을 엿보는 듯한 부끄러움이랄까. 묘한 기분이 들었다. 조산사의 안내를 받아 옆방으로 갔다. “원장님 잠시 누워 계세요.”

자연주의 출산 병실은 방 두 개를 사용하고 있다. 하나는 진통실이다. 말이 진통실이지 수중 진통과 수중 분만을 위한 커다란 풀을 제외하면 넓은 일반 병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방은 어둡다. 방 입구에 아빠와 엄마가 정해놓은 태명을 붙여 놓는다. 로또, 대박, 으뜸이, 쑥쑥이 등. 이벤트를 하는 방처럼 태어날 아기를 위해 매번 풍선 등의 장식을 꾸며 놓는다. 다른 하나의 방에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진찰대, 초음파, 태아 모니터링 장비, 의료 기구가 있고 산후조리용 일반 침대가 놓여 있다. 침대는 남편이 쉬는 공간이다. 진통 내내 산모와 남편이 붙어 있는 것은 아니다. 분만하고 산모 후 처리를 하는 동안 남편이 아기와 함께 있을 수 있는 공간이다. 분만이 임박해 남편이 부인과 함께 하는 동안 침대는 비어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한숨 잘까. 진통은 신의 섭리이다. 언제 진통이 시작될지는 의사도 모른다. 현대 의학의 발달로 약을 이용해 진통을 유발할 수는 있다. 원하는 시간에 아기를 나오게 맞춰 줄 수는 없지만 진통중인 산모에게 의학적 조치를 취해 분만을 앞당길 수는 있다. 가능한 밤보다는 낮에 아기가 나오게 하는데 어쩔 수 없이 밤에 분만이 이루어지는 경우 간호사는 분만이 임박에 콜을 하고 의사가 분만장에 들어가자마자 아기가 나오도록 의사를 배려하고 산모를 다그친다. 자연주의 출산은 그게 아니다. 의사가 미리 나와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새벽 3시였다. 아~아~ 산모의 고통에 겨운 몸부림이 5분간격으로 전해진다. 숨 넘어갈듯한 신음이 문지방을 건너 공기의 파동을 타고 살갗으로 전해진다. 분만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분만이 임박했을 때의 진통소리는 다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오랜 기간의 경험에서 오는 감이라고 해두자. 조금 있으면 부르겠지.

국내에 인권분만을 도입해 보급했고 르봐이예 분만을 기본으로 실천하는 병원이다. 의료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자연주의 분만이라니. 도입부터 갑론 을박이 있었다. 극소수의 병원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었지만 의료 사고의 위험을 볼모로 하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산모의 삼대 굴육으로 회자되는 회음절개, 관장, 회음부 면도를 안한다. 유도분만이나 오그멘테이션 (진통이 약할 때 약제를 투여하여 진통을 세게 함)을 하지 않는다. 분만을 촉진시키기 위해 양수 파막을 하지 않는다. 분만 후 자궁의 원활한 수축을 위해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자궁수축제도 사용하지 않는다. 약제 투여와 출혈 시 응급처치를 위한 수액도 맞지 않는다. 태아 상태를 감시하기 위한 모니터링도 하지 않는다. 그럼 병원이, 의사가 왜 필요한가. 심지어 분만도 의사가 꼭 해야 할 필요가 없단다. 수개월간의 준비과정과 몇 차례의 토론이 있었다.

조선 시대, 산모는 아기를 낳기 전에 신발을 한번 보고 들어 갔다고 했다. "내가 저 신발을 다시 신을 수 있을까?" 애 낳다가 죽는 경우가 흔했다. 가령 태반이 아기가 나오는 산도를 막고 있는데 자연 분만을 시도한다면 산모, 아기 모두 잘못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드라마 ‘허준’을 보면 공빈마마가 출산하는 장면이 있다. 심한 악취가 나고 역산의 조짐을 보이자 당황한 내의원이 아기의 발을 침으로 찔러 다시 넣은 후 분만을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잔 말은 아닌가 ?

아기가 둔위이거나 전치태반인 경우는 자궁을 가르고 수술적 분만을 해야 한다. 자연주의 출산이 가능한 환자는 의학적으로 위험이 없는 산모에 국한된다. 양수가 적거나 임신성 고혈압 등으로 유도분만을 하는 경우에도 해당 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의학적 위험을 최소화 해놓고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통중 태아가 진행되지 않는 난산, 양수가 파막이 되었는데도 진통이 시작되지 않는 경우 등에서는 의학적 개입을 허용한다. 초음파를 볼 것인가, 태아 모니터링을 할 것인가, 회음절개를 안 할 것인가 등을 두고 설전이 있었다. 기원이 다른 뿌리가 줄기에서 하나로 융합하기 위해서는 상처가 나고 치유가 되는 고통의 과정이 수반된다.

‘원장님, 오세요’ 누워는 있었지만 산모의 신음에 동조화되어 있었기에 어둠 속에 흔들리는 조산사의 몸짓만으로 이미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수중풀을 지나 침대로 다가갔다. 수중 진통을 한 흔적이 있었다. 물속 분만까지 할지 여부는 산모의 성향이나 진통중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아늑함이 방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의료 장비와 기구가 없으니 의식과도 같이 경건함이 흐른다.

남편과 산모는 혼연 일체가 되어 있었다. 산모가 진통을 할 때 마다 침대 위에서 산모를 감싸 안은 남편이 보조를 하고 있었다. 남편이 온몸을 밀착시켜 보내는 지지는 산모에게 크나큰 힘이 될 것 이였다. ‘자~ 촛불을 불어서 끄듯이~ 천천히~’ 아기의 머리가 보이고 있었지만 분만을 서두르지 않는 부드러운 음성이였다. 아기는 양막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진찰대나 환자용 침대가 아닌 퀸사이즈의 일상적인 안락함이 배어있는 침대 위에서 다리 벌린 산모를 보는 것은 짧지 않은 산부인과 역정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금새 사그라들 것 같은 촛불 같은 어두움이 다행 이였다. 17년전 아이를 처음 받을 때의 설렘과 불안감이 혼재되어 있었다. 법복을 입고 판사 봉을 들었지만 법정이 아닌 곳에 있는 재판관을 떠올렸다.

아기가 나왔다. 기척도 없이 세상의 문들 두드렸다. 힘을 주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산모가 자궁 수축을 못 이겨 아이를 내보냈다. 아이는 나와서 울지도 않는다. 배 안에서도 안 울고 잘 지냈는데 세상과 마주했다고 울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이라고 하나. '응애' 하고 우는 소리에 의사는 안심하고 부모들은 환호작약 하지만 아기도 그럴까? 간호사는 아이를 꺼꾸로 들어 엉덩이를 쳐대기까지 한다.

산모는 숨을 몰아 쉬고 남편은 나지막히 감탄사를 토해낸다. 아이는 탯줄과 연결된 채 엄마 배 위에 놓였다. 탯줄에서 박동이 멈추자 남편이 탯줄을 자른다. 한참 만에 태반이 만출되었다. 회음부 상처를 확인하기 위에 바닥에 앉았다. 산모 다리를 양쪽에서 부축해 주었다. 진료실에서 내진을 하려고 대기만 다리를 움추렀던 민감한 여성이었다. 진통 중에도 내진을 쉽게 허락하지 않을 만큼 까다로웠다고 했다. 골반이 넉넉하지 않아 마음 한 켠에는 수술을 염두해 두기까지 했었다. 바닥에 쪼그려 앉은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찢어진 환부를 확인하고 봉합을 하였다.

회음 절개를 꼭 해야 하나 하는 것은 전공의 시절부터 갖고 있었던 의문이었다. 서양인과 달리 동양 여성은 회음절개를 하지 않으면 지저분하게 다발성 열상이 생겨 좋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렇게 찢어지는 것보다는 일직선으로 미리 상처를 내는 편이 좋았고 모두가 그렇게 했다. 일부 회음절개를 하지 않아도 주장하는 논문은 파란 눈이 쓴 것이었다. 도제 시스템과도 같은 의료 교육의 전달 체계에서 배운 것을 거슬리기는 쉽지 않았다. 젊은 혈기가 충만하던 시절 골반이 넉넉한 산모를 대상으로 회음절개를 넣지 않는 분만을 시도해 본적이 있었지만 회음 절개를 한 것만도 못한 결과를 초래했다.

자연주의 출산을 하면 회음 절개를 하지 안지만 상처가 거의 나지 않는다. 비결이 뭘까. 어떤 차이가 있을까. 따지고 보면 현대 의학이 도입되기 전에도 수천년간 분만이 이어져 왔다. 시대마다 나름의 분만 조력자가 있었을 것이지만 회음절개를 하지 않았어도 대부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의사와 수술용 기구의 등장은 최근의 일이다. 서양 의료가 모든 것을 관장하면서 제 목소리를 못내고 억눌려 있는 부분은 없었던 것일까.

조산사가 진통 내내 자리를 지킨다. 격려, 안심, 지지는 물론 자세, 힘주는 방법을 알려준다. 남편의 역할에 대해 코치하고 지속적으로 이야기 하며 마사지 등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한다. 회음부 마사지를 통해 아기가 무리 없이 통과하도록 산도를 충분히 이완시켜준다. 한 두시간에 한번씩 내진을 하며 진행 상황만 체크하고 태아 감시 모니터랑만 슬쩍 보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분만 과정에 대해 잘아는 전문가가 지속적으로 옆에 붙어서 요령을 알려주고 힘을 북돋아준다. 시상식 연단에 혼자서도 갈 수 있지만 에스코트를 받으면 대우받는 느낌이 들고 마음이 안정된다. 혼자서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수 있지만 개인 트레이너가 있다면 효율적이다. 예전에는 진통중인 산모가 남편과도 격리되어 외롭게 홀로 사투를 벌어야 했지만 요즘에는 가족 분만실 등이 늘어남에 따라 남편이 산모 곁을 지키고 경우가 늘었다. ‘남편이 짜증만 내고 도움 하나도 안돼요.’ 배우자는 정신적인 위로에 보탬이 될 수 있지만 실질적 도움을 주기는 어렵다. 남편도 아내를 보면 안타깝지만 마음만 초초할지 뭘 할지를 모른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힘들고 지치기 마련이다. 자연주의 출산을 하기로 한 부부는 분만 전 산전관리를 하면서부터 지속적인 면담을 통해 성향을 파악하고 역할에 대해 교육을 한다. 정해진 것이 아닌 개개인 맞춤형이다.

일반적인 분만을 했더라면 소리를 지르고 난리 법석을 피웠을 만한 성정의 산모는 아이를 낳고 얼굴이 한없이 평온해졌다. 고통에서 해방된 얼굴이라기 보다는 행복이 넘치는 표정이다. 자궁수축은 양호했고 항문 손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직장 수직검사를 하고 마무리 했다. 간호 부장님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요즘 핸드폰은 후레시 없이도 어둠 속에서 DSRL 카메라보다도 잘 찍힌다. 가족은 물론 조산사, 분만실과 신생아실 간호사, 간호 부장까지 모두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 산모는 만족감을 표시한다. 진통방을 떠나기 전 옆방에 들러 남편에게 축하의 말을 전했다. 남편은 침대에 누워 아기를 꼭 안고 있다. 남자의 아기의 대한 사랑의 표현과 교감이 그렇게 감동적이고 아름다울 수가 없다. 가르쳐 주면 남자들도 아니 우리 남편들도 할 수가 있다.

날이 밝고 병실에 갔을 때 산모는 해맑은 모습으로 무한 감사를 표했다. 의사는 상황을 관장할 뿐이지만 그 역할이 작다고 볼 수 없다. 문제가 없으면 개입하지 않고 조용히 물러난다. 모든 것이 원만할 때 의사는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다. 아프지 않은데 의사를 찾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면 의사의 도움을 바라지 않는다.

아나로그적 감성이 부각되는 시대다. 기계로 만든 합성 섬유보다 천연 재료 가지고 장인이 직접 만든 옷이 최고가로 팔리고 있다. 자연주의 출산은 하이 클래스 분만 문화이다. 산모와 아기를 동시에 배려하고 사람과 시간에 대한 가치가 녹아 있다. 현대 의료는 산모와 아기의 건강에 기여했지만 잃어버린 것도 있다. 다른 것과의 통섭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개화기 이후 근거주의에 바탕을 두고 새롭게 등장한 현대 의학이 오랜 경험을 축적하며 이어져 왔던 전통적인 방식과 그 뿌리는 다르지만 땅 위 나와서는 합쳐지는 연리지가 될 순 없을까.

청년의사와 글로 인연을 맺어왔다. 대학에서 전공의를 마치고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하면서 청년의사를 알게 되었고, 독후감 공모(현재는 없어짐)에서 여러 번 수상을 했다. 한미수필문학상은 십년전 받은 적이 있다. 글을 보낸 사람들의 명단이 있는지 매해 수필 문학상 공모가 있을 때마다 단체 메일을 받았다. 메일을 열었다가 무심히 닫곤 했다. 반복되는 일상의 매너리즘에 빠진 탓일 것이다. 기자들의 요구나 정보 전달을 위해 메디칼 칼럼을 기고하기도 하고,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지만 문학적 소양이 요구되는 글과는 거리가 있었다.

인권분만을 추구하는 병원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국내에 처음으로 르봐이예 분만을 도입하여 보급한 병원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산모와 아기에서 좋은 출산 문화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자연주의 출산을 처음으로 시도하였다. 근대 의료가 도입되기 전인 조선시대 산파가 분만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이를 현대적인 개념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분만으로 거듭 날 수 있느냐가 화두였다. 수개월간의 준비과정이 있었다. 일부에서 반신반의하기도 했는데 결과가 좋았다. 경험상 자연분만이 힘들 것으로 판단되는 산모들이 자연분만에 성공하였다. 분만과정을 가족과 공유하고 전문 의료 인력이 산모 옆에 대기하고 있는 것에 대해 산모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메일을 열어 보았을 때 첫 자연주의 출산을 했을 때의 감회가 떠올랐다. 올해는 인권분만과 자연주의 출산을 한 산모들의 수기를 모아 작은 책을 하나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 환자뿐 아니라 의사가 쓴 글도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상까지 받게 되어 기쁘다. 문학적인 글을 써 볼 기회가 많지 않은데 계기를 만들어 주고, 부족한 글을 뽑아준 청년의사와 후원사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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