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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한미수필문학상 우수상]죽음을 배우다이근만(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 내과 과장)

할머니는 그렇게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임종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인근 병원의 영안실에 전화를 걸었다. 장례식장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장례식을 준비하게 되면, 무엇부터 할지 종종 생각해본 적이 있다. 집 근처 종합병원을 눈여겨 봐두었다. 아버지는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7살. 기억이 없다. 어리다고 어느 친척 집에 잠시 맡겨져 있었던 것 같다. 겪어야 할 일을 겪지 않은 대가는 혹독했다. 그렇게 가려지겠는가. 할머니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할 때, 아버지가 안 계신 나로서는, 모든 것을 혼자서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겨울 눈발을 헤치며, 새벽 2시에 낯선 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지하 사무실에서 장례식장 직원이 '긴 삼일장이군요'라 했다. 할머니는 자정을 막 넘긴 순간에 운명하셨다. 3일은 길지 않았고, 그 사흘 동안 한없이 울고 또 울었다. 의사가 된 지 15년. 내과 의사로서 무수한 죽음을 겪었다. 무수히 겪어 무감각해진 죽음이었는데, 내 가족의 죽음 앞에서, 낯설고 무서웠다. 외로웠다.

할머니가 중환자실로 입원한 한겨울 밤, 나는 외국에 있었다. 거동할 수 없는 할머니는 수년 전부터 요양원에 계셨다. 나는 가족들과 따뜻한 사이판 해변에서 할머니가 응급실로 오셨고 중환자실로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없었기에, 중환자실 담당인 다른 내과 선생님이 담당이 되어 주셨다. 부정맥, 심부전이 있는 할머니는 검사 수치가 모두 엉망이었고, 의식도 흐리고 위독했다. 사이판에서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으로 왔을 때는, 다행히 위기를 넘긴 듯싶었다. 눈도 뜨시고, 나를 보고 희미하게 웃음도 보이셨다.

내 할머니를 치료하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내가 의과대학 학생일 때는, 그냥 할머니셨는데,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치며 의사가 되어가는 동안에 할머니는 너무 빨리 늙어버렸다. 어느 날, 혈압이 높다 해서, 혈압약을 처방해서 가져가기 시작했는데, 몇 년 뒤 골반이 부서지는 바람에 내가 일하는 병원으로 모셔서 검사해보니 심장이 너무 커져 있었다. 멍했다. 심부전이었고, 부정맥도 있었다. 보호자들에게 ‘도대체 이렇게 될 때까지 모르셨어요?’라고 물어야 하는데, 나는 물어볼 곳도 없었다. 그렇게 약은 늘어갔고 할머니는 늙어갔다.

사이판에서 돌아온 내가 맨 처음 한 일은 수십장이 넘는 서류에 서명하는 일이었다. 할머니가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에 들어가고, 중심정맥관을 넣고, 혈압상승제를 주입하는 동안, 필요한 수많은 동의서가 텅빈채, 치료는 진행되고 있었다. 할머니는 의사 손자를 둔 덕분에 보호자 데려오라는 말없이, 보호자도 없지만 잘 치료받고 계셨다. 울컥했다. 동료 의사, 간호사, 그리고 다른 직원들 모두, 이 모두가 내 가족의 생명의 은인이었다. 은혜를 어찌 갚을까.

며칠 뒤, 겨우 병실로 올라온 할머니는 미음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다시 의식이 흐려졌고, 더는 넘기지 못했다. 가슴 사진에서도, 혈액검사에서도 나빠지는 것은 없었다. 기력이 다한 상황이라 느껴졌다. 어쩔 수 없는 죽음의 과정이 드디어 시작되는 것이리라. 이번에는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동의서’에 내가 서명했다. 주치의 이근만, 설명 의사 이근만, 보호자 이근만. 내 이름만 3~4번 나오는 서류에 서명했다. 이게 마지막일까?

할머니가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올라가는 동안, 나에게 입원한 김성구 환자분은 조금씩 더 나빠지고 있었다. 52세 남자, 췌장암이 여러 차례 재발한 환자였다. 수술한 기록과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 배액관을 넣었다가 뺀 여러 번의 기록들, 그것도 두 군데 병원을 거쳐, 사전처럼 두꺼운 서류뭉치를 갖고 내 진료실로 찾아왔었다.

식사를 못 한 지가 벌써 2달이다. 복수와 장폐쇄로 배가 터지도록 부풀고 있었다. 더는 관을 넣을 수 있는 부분도 없었다. 병실에 들어갈 때마다 도대체 어디를 쳐다보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차마 본인에게 시간이 별로 없다는 설명을 못 하고 있었다. 아주 힘들게, 보호자인 부인을 외래 진료실에서 만나자고 했다. 경과에 관해 설명하겠다는 핑계로. 그 말을 전하고 병실을 나오는데, 나를 보며 김성구 환자분이 말한다. 미소를 보이며. “너무 무섭게 말하지 마세요. 맘 약한 사람이에요.” 한 대 맞은 기분이다. 무슨 말 할지 아니까, 강약 조절하라는 말인 듯싶다. 저 환자가 여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많은 의사를 거치며, 얼마나 많은 의사의 도무지 알아먹지 못할 설명과 아무튼 죽을지도 모른다는 무수한 경고를 얼마나 들었을까.

할머니 상태가 나빠지면서, 나는 죽음에 서서히 다가가는 느낌이었고, 죽음에 이르는 환자의 가족이 어떤 느낌인지 온몸으로 겪고 있었다. 진료 시작 전, 점심시간, 그리고 진료가 끝난 후 할머니의 병실에 들어서면, 의사도 어쩔 수 없다는 무력감과 무거운 적막에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갔다. 찬송가를 들려 드리고 싶어도, 급하게 찾으니 시디(CD) 한 장 없었고, 겨우 먼지 구덩이에서 시디를 찾으니 그 흔했던 시디플레이어는 또 어디 갔는지 허둥댈 뿐이었다. 어디선가 기념품으로 받은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가져다가, 스마트폰으로 급하게 검색해서 드디어 찬송가들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찬송가를 틀어놓고, 잠시 앉아서 눈물을 흘리면, 뭔가 해 드린 느낌이 들었다.

할머니는 내가 초등학생일 때까지, 나보다 힘도 세서 무거운 것도 번쩍 들고, 머리에 이고 다니셨는데. 어느 순간 폭삭 늙어 거동도 못 하시고, 요양병원에 누워 계셔야 하는 상황이 됐다. 처음에는 매주, 몇 달 뒤에는 격주, 얼마 지나서는 월 1회. 바쁘다는 핑계로 점점 드문드문 뵙게 되었다. 어릴 때는 할머니가 나를 씻기고, 먹을 거 챙겨 주셨는데, 이제는 내가 과자와 물티슈를 가져다 드리며 부탁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노심동심(老心童心)’이라 했던가. 할머니는 손자, 손녀는 왜 안 데려왔냐고 서운해하시기도 했다. 기력이 점점 없어져, 나들이 가자면, 극구 사양하셨다. 가끔 아이들을 데려가면, 아이들에게 ‘네 아비는 어딨노?’하고 10번쯤 물으셨다. 손자가, 장성해서 아버지가 된 것이 신기하셨던 것 같다.

김성구 환자의 보호자와 상의해서,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려 했다. 그러나 병실 옮기고 싶지도 않고, 호스피스라는 말도 싫으니, 다시 그런 이야기 꺼내지 말아 달라고 한다. 더 나아가서, 부담스러우면 회진도 안 오셔도 되니, 호스피스 이야기 꺼내지 마시고, 지금처럼 필요할 때 진통제만 놓아 달라고 하신다. 아, 나의 무력감을 눈치챘단 말인가. 이런 환자야말로 호스피스가 더 필요하리라 생각했지만, 더 말하지 못했다. 환자는 아침, 저녁이 다르게 나빠지고 있었다. 병실에 들어갈 때마다 어디를 봐야 할지,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이제 말을 못하는 환자는 물론이고 보호자에게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이 자책, 무능, 무력. 병실 들어가기가 두려울 지경이다.

내 할머니도 더 나빠졌고, 의식이 흐려졌다. 크게 불러도 눈을 못 뜨신다. 귀에 대고 크게 이야기해본다. 사람은 죽음이 다가와도 청각이 제일 오래 유지된다고 한다. 크게 이야기하면 들리실 거야. 할!머!니! 사!랑!해!요! 정말 들리시는 걸까, 움찔하신다. 내 손을 꼭 잡는 것도 같다.

할머니 병실에서 한참 눈물을 흘리고 나면 힘이 나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나면 김성구 환자분의 가족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통증 치료 가이드라인'처럼 임종이 임박한 '환자 및 보호자 마음 치료 가이드라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내 할머니에게 하듯,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 김성구 환자의 손을 꼭 잡고, 귀 가까이 내 얼굴을 가져가 크게, 분명히, 또박또박 말해 드렸다. 걱!정!마!세!요! 두!려!워!마!세!요! 제가 다 알아서 해 드릴게요. 안 아프게, 안 무섭게 해 드릴게요. 제가 다 압니다. 제가 다 알아서 해 드릴게요. 환자의 몸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내 손을 꼭 잡는 것 같다. 이후, 김성구 환자분은 더욱 의식이 없는 상태가 되었지만, 내가 병실에 들어가서 손을 잡고 귀에 뭔가 말을 하면 반응을 보였다. 환자의 가족들은 참 고마워했다. 나와 같이,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아툴 가완디’라는 똑똑한 미국 의사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책에서 죽음은 실패나 패배가 아니라 했다. 그렇다고 승리나 축제도 아니지 않나. 최소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이라 했다.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알려줘서 고마웠다.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이제 마지막으로 서명했다. 사망진단서, 선행사인, 중간 선행사인, 최종사인, 의사 이근만. 또 내 이름. 할머니, 이제 정말 끝인가요? 장례식장에서 원 없이 울었다. 그 많은 환자들이 돌아가셔도 꿈적 안 했는데, 어디서 그렇게 눈물이 고여 있다가 나오는지. 하도 울어서 그런지, 장례를 치르고 오니 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출근해서 김성구 환자분 병실로 들어갔다. 겁도 나지 않고, 오히려 어서 빨리 그 병실에 가서 환자와 가족들을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얼마나 힘드세요. 이제 호스피스도 필요 없다. 며칠 안 남았다. 숨소리도 불규칙하다. 그런 몸이지만 즐겨듣던 설교, 찬송을 듣게 하려고 가족들이 귀에 이어폰을 꽂아두었다. 할머니 병실에서 쓰던 블루투스 스피커가 생각났다. 망설이다가, 오후 회진 때 그 스피커를 전해 드렸다. 이거 어떻게 쓰시는지 아시죠? 그 스피커로 병실에 울리게 설교, 찬송 들으면서 그렇게 김성구 환자분은 이 세상의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가족들은, 장례를 치르고, 상복을 입은 채 내 진료실로 인사하러 왔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보살펴 주셔서 우리가 너무 감사하다고, 환자분이 내가 진료실만 들어오면 몸을 움직이며 반응을 보였다고, 선생님 덕분에 우리 남편, 우리 아빠 편안히 가셨다고. 그 스피커 너무 감사하다고.

엉엉. 또 울어버렸다. 네, 가족분들, 저도 감사합니다.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아툴 가완디한테, 그리고 우리 할머니께, 할머니의 죽음으로부터. 아직 젊은 내과 의사가, 죽음이 뭔지 제대로 배웠습니다. 그렇게 김성구 환자분 보내드려서, 가족들이 편하시다니, 제가 감사합니다.

<수상소감-이근만(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 내과)>

사랑하는 내 아이들, 시우와 시현에게

아빠가 글을 하나 썼고, 신문사에 보냈다는 이야기를 했었지? 오늘 아빠는 기쁜 글을 쓰고 있단다. 상을 받아서 감사하다는 글을 쓰고 있어.

아빠가 밤마다뭔가를 읽고, 쓰고, 고치는데, 도대체 뭘 하는지 궁금했지? 왜 아빠는 밤마다 병원에 전화한다고 슬그머니 방을 나서는지, 그리고는 밤늦게까지 뭘 하는지. 금요일 밤부터는 책을 잔뜩 쌓아놓고 읽고, 옮겨 적고, 다시 읽고, 또 쓰고. 그게 그렇게 재미있는지. 그동안 많이 이상했니?

아빠는 '죽음을 배우다'라는 글을 한 달 동안 쓰고, 읽고, 고쳤단다. 무수히 읽고 또 읽고 고쳤어. 울면서 썼고, 고칠 때마다 울었지만, 그래도 울면서 고치고 또 고쳤단다. 아빠에게 글은 힘든 조각과도 같았어. 읽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산책이지만, 쓰는 것은 조각하듯 섬세하게 고치고 또 고쳐야 하는 고된 작업이었어. 처음에는 거칠지만, 갈고 닦아야 반짝이는 작품처럼.

그래도 참 쓰고 싶었다. 왜 그랬을까? 너희들에게, 상을 받은 걸 자랑하고 싶지는 않아. 재능은 없지만 읽고, 쓰고, 고치고, 또 고쳐 써서 내 맘에 드는 글이 만들어지고, 심사위원들이 ‘난상토론을 벌이는 최종심사까지 올라온 네 편의 작품’에 오른 자체가 감격스럽다.

아빠는 너희들이 재능만을 원하며, 그리고 없는 재능을 탓하며 살기보다는 노력하는 아이들이 되기를 바란다. 과정은 고통스럽더라도 꿈이 있는 삶은 즐겁지 않을까? 아, 아빠가 1년 전에는 2개의 공모전에 모두 글을 보내고, 수상자 명단에 이름이 없어 한동안 낙담했던 이야기는 기억이 나니?

1월 1일 밤 자기 전, 너희들에게 아빠는 내일 발표를 기다리고 있고, 지금 너무 떨린다고 말했었지? 내 떨리는 마음을 너희들이 느끼길 바랐어. 꿈꾸는 모습, 가슴이 두근거리는 모습,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단다. 너희들이 꿈을 갖고, 그 꿈을 키우고, 설레기를 바랐단다.그것만으로도 만족인데, 상까지 받았다.
아빠는 지금 행복하다. 아빠의 꿈에 한 걸음 더 다가간 느낌이야. 두근두근 쿵쿵, 가슴 설레는 아빠 꿈이 뭔지 가르쳐 줄까? 아빠 꿈은 말이야…. 음…오늘 밤에,잘 때 이야기해줄게. 오늘은병원에 전화 안 할게. 귀대 보렴. 소곤소곤… 어때! 멋있지? 두근두근 쿵쿵!

… … …

사랑하는 어머니, 요즘 ‘김사부'에 푹 빠져있는 아내 자랑, 그리고 내 아이들 시우와 시현. 그리고 파주병원의 모든 사람과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할머니, 그리고 가명으로 등장하는 나의 환자분. 하늘에서 보고 계신가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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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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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석 2017-01-30 00:15:01

    저희 어머니생각에 많은 눈물을 흘리며
    글을 읽었습니다. 이런 글로 누군가의
    마음의 위로가 될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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