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승민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아빠가 그랬어요.”

오늘따라 화장이 좀 진하다고 생각했던 중학교 여자아이를 진료하던 중, 메이크업 아래 눈 주변의 약간 붉은 자국을 본 내 질문에 한참 눈을 굴리던 아이가 대답했다. 그제서야 손목 아래 오래된 자해 흔적 위에 붉은 새 상처가 보인다. 폭력에 망가진 아이의 뇌 내 감정 회로는 통제 불가능한 알람이 울렸을 테고, 스스로 자해를 하지 않으면 그 시끄러운 알람이 꺼지지 않았을 것이다. 내 눈길이 자신의 손목에 가닿은 것을 알자 슬그머니 아이는 교복 소맷자락을 당겨 상처를 덮었다. 머리카락도 쓱쓱 쓸어내려 눈가의 상처를 더 가린다. 언뜻 보면 요즘 흔하게 자신을 다소 과장되게 꾸미고 심드렁한 태도를 가장한 10대 아이일 뿐이다.

표정없이, 미동없이 한 아이의 대답은 작은 진료실에서 큰 파장으로 징징 울려왔다. 아이는 그 대답 후 나와 눈도 맞추지 않고 멍하니 창문 밖만 응시했다. 아이의 표정이 점점 더 멍해질수록 나의 심장은 더욱더 쿵쿵 울리고, 머릿속을 온통 울리는 분노감을 진정시키느라 진땀이 났다. 하지만 아이는 나의 그런 내적 파도는 보지 못한다. 저 멍해 보이는 시선 안, 아이의 뇌 속은 나보다 더 큰 파도에 집어삼켜지고 있을 테니까.

그 여학생은 학기 초, 학교 선생님과 엄마의 손에 끌려 병원에 왔었다. 교복 자켓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찔러넣은 손, 서투르고 거칠게 빨간 립글로스를 바른 뾰루퉁한 입술, 한껏 부풀린 앞머리와 대조적으로 엉성하게 잘린 듯한 머리카락. 흔하게 보는 10대의 여자 아이였다. 하지만 보통 이런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들이 그간 자신이 얼마나 아이로 인해 힘들었는지, 얼마나 아이가 대하기 어려운 아이인지를 강조하는 것에 비해, 그 아이의 엄마는 내내 별 표현이 없었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항변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진료에 아무런 관심이 없고, 이 모든 것이 귀찮으니 빨리 자신을 놓아주었으면 하는 것 같았다. 학교 선생님은 참다 터진 봇물처럼 아이 어머니의 말을 자르고 그간의 일을 쏟아내었다. 수업시간 중 아이가 계속 자해를 해서 집에 이런 상황이 걱정되어 전해도 집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대해서 모두가 걱정이었다며, 급기야 지난 주에는 수업 중에 결국 피가 떨어질 지경이라, 그걸 본 같은 반 아이들이 비명을 질러 수업이 중단되기까지 했었단다. 아이는 어른들의 대화에는 전혀 끼어들지 않고, 헐거운 교복을 걸친 채 창문 밖을 멍하니 보다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자신을 둘러싼 이질적인 두 사람이 나가도 아이의 핸드폰 사랑은 여전했다. 내 질문에는 “몰라요.”, “아니요~”, 그것도 아니면 입술을 더 삐죽 내밀거나 어깨를 으쓱하는 것 뿐이었다. 그나마 밤에 잠이 잘 오지 않는다는 것, 악몽을 자주 꾼다는 것이 우리가 같이 치료의 목표로 삼을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그러다 자해에 대한 질문에는 심드렁하던 태도가 갑자기 바뀌어 눈에 살기가 어렸다. “...말하고 싶지 않은데요.” 그걸로 첫 진료는 끝이 났다.

처음에는 그다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소아청소년정신과에는 자해나 자살시도로 오는 학생들은 그 아이 외에도 끊임 없었고, 청소년기 아이들이 본인이 원한 게 아니라 끌려오다시피 한 병원에서 퉁명스럽고 비협조적인 것도 하루 이틀 겪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시간이 필요하다. 딱 한가지, 요즘 아이들보다 다소 작은 체구, 서툰 화장으로는 가려질 수 없는 수척한 안색이 마음에 걸렸지만, 내 생각은 그날 곧이어 들어온 그 다음 환자에 대한 고민으로 넘어갔었다.

아이는 항상 교복 차림이었다. 별로 깨끗하지 않고, 잘 다려져있지도 않았다. 어떤 때에는 음식을 흘린 자국이 그대로 말라붙어있기도 했다. 아이의 엄마는 처음 온 뒤 바쁘다며 오지 않았지만 아이는 혼자서도 진료에 성실하게 꼬박꼬박 왔다. 이를 칭찬해주면 예의 심드렁한 표정으로 답을 달았다.

“여기 오면 학교에서 일찍 나올 수 있잖아요. ”

진료시간의 대화는 별 진전이 없었지만 그래도 간혹 나의 안 어울리는 농담에 피식 웃거나, 내 화장이 오늘은 안 어울린다며 나름 진지한 코멘트를 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자해나 가족 이야기를 언급하면 아이는 다시 눈빛이 돌변했다. 이런 경우 나는 상처받은 들고양이를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어쩔 때는 살쾡이나 멧돼지가 되기도 했다. 돌변하는 아이들의 상처와 공포, 공격성은 상대방 역시 전염시킨다. 작은 진료실은 갑자기 동물의 세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대다수 이런 돌변 역시 익숙한 상황이라, 나는 익숙하게 잘못 울린 아이의 알람을 진정시키고 다시 진료실로 천천히 안내할 수 있다. 내심 자신이 두려워했던 것과 달리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니며, 그런 감정과 행동이 스스로 통제가 가능할 수 있다는 것. 자신이 돌변한 모습을 치료자가 봐도 전혀 놀라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치료자와 함께 자신을 압도하는 공포감에서 현실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아이들의 뇌는 회복의 과정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아이는 자해 얘기에만 들어가면 자신의 공격성을 도무지 감추기 어려워했다. 어느날, 아이는 숨이 거칠어지고 입술을 질근질근 깨물며 나지막히 비속어를 내뱉더니 진료실 밖으로 나가버리고 한동안 오지 않았다. 그러다 방학 시즌이 되었고, 부모 손에 이끌려 오는 아이들을 맞이하느라 나 역시 정신이 없던 그때, 여전히 교복을 입은 그 아이가 들어왔던 것이다. 진료 컴퓨터에 익숙한 아이 이름이 당일접수로 뜨는 순간 나의 뇌는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간 어떻게 지냈을까? 혹시 뭔가 더 안 좋은 일이 생겨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과 더불어 무슨 얘기가 쏟아지던 내가 그 말을 담을 수 있는 심리적 상태인가 하는 재빠른 자기 스캔을 하는 사이, 아이는 예의 그 무표정하고 뾰루퉁해 보이는 얼굴로 진료실 문을 열었다. 이제야 약간 교복이 몸에 맞게 보인다는 것 외에는, 그리고 약간 머리가 길어진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태도였다. 마치 지난 주까지도 매번 오던 곳에 왔다는 듯. 그때였다. 아이가 예의 진료실 창문 밖을 보면서 고개를 돌릴 때 약간 벌어진 머리카락 틈으로 화장 아래 붉은 자국을 내가 본 것은.

“아빠?”

바짝 마른 입술 사이로 나온 내 달라진 목소리 톤과 달리 아이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네..그 XX 종종 그래요. 한번 미치면 방법이 없어요. 한동안 조용하더니 또 XX해서.”

아이의 평소보다 길어진 대답이 나의 갈증을 더 불러일으켰다.

“...언제 그랬어?”

아이는 건성으로 마치 남의 얘기를 하듯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제요. 아니다 오늘 새벽이네. 술 처먹고 어제 밤부터 오늘 새벽부터 아주 집안을 다 때려부시더라고요. 동생이 아직 어려서, 걔는 아직도 그러면 울어요. 미친. 울면 될 줄 아나.”

아이는 피식피식 웃어가면서 말을 했지만 점점 눈가에 눈물이 맺혀오고 코 끝도 붉어졌다. 화장으로도 바르르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은 감춰지질 않았다.

“그게 가정폭력인거 알지? 너나 동생 어릴 때부터 맞았으면 그게 요즘 TV에 나오는 아동학대야. 이건 너나 동생의 잘못이 아니고, 너희를 돕기 위해서 신고해야 해.”

조용히 울던 아이가 신고라는 내 말에 갑자기 온 몸을 젖혀가며 발작적으로 웃기 시작했다.

“선생님 되게 웃긴다, 내가 신고 안해본 줄 알아요? 신고 했다고 또 맞았었어요. 그 XX 술 다 깰 때 쯤 경찰이 와서 별일 없냐고 물어보더니 지들끼리 말하고 그럼 다들 잘 지내라고 하고 가대요? 잘 지내래 크크크크, 아 웃겨. 다 웃기고 XX들이야 크크크크.”

“그래, 효과가 없을 수도 있지.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법으로 무조건적 신고해야 해. 내가 신고했을지, 시끄러운 소리에 이웃이 신고했을지, 학교에서 누군가 눈치채고 신고했을지 알게 뭐니? 한번 해서 안된다고 포기할 건 아니야. 신고건수도 누적되는 거니까.”

내 이어진 말들이 훈계라고 생각했는지 아이 표정은 더 날카로와졌다.

“아 씨, 선생님이 뭐라고 간섭이에요, 됐어요. 선생님이 신고하면 저 더 이상 여기 안 올 거에요. 아우 씨 짜증나게.”

나는 아직 덜 여물은 의사인지라 이럴 때 비겁한 방법을 쓰고야 만다.

“넌 버틴다고 해도 니 동생은 어떻게 하게?”

역시나 나의 비겁함은 환자들을 정곡으로 찌르곤 한다. 엉거주춤 일어나려던 아이는 한 대 맞은 듯한 표정이더니 다시 풀썩 의자에 앉았다.

“니가 항상 집에 있을거야? 너 없을 때는 어떻게 되는데?”

연이어 쏟아지는 내 말들에 아이는 울음을 참지 못하다 연이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수없이 얻어맞아도 아마 한 번도 끽 소리도 내지 못했을, 진료 내내 무슨 대화를 이어가도 언성이 높아지는 법이 없던 아이가 악을 썼다. 당신이 뭘 아냐며 악을 쓰던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을 때 쯤 나는 한마디 기어이 덧붙였다,

“그래 선생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몰라. 네가 말해줘야 알아. 말해도 다 모를 수도 있지, 그래도 들어볼게. 무슨 일이 있었니?”

어깨만 들썩이는 아이에게 내 말들이 비수가 아닌 감싸줄 날개가 되어주었으면. 저 얄팍한 어린 어깨에 얇은 보호막이라도 되어주었으면. 닿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끊임없이 기도하며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날의 진료는 우리 둘 모두에게 인생을 건 시간들이었다. 진료가 길어져 민원이 있다고 외래에서 독촉이 왔지만 아이가 나가고 나서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신고할 과정도 정리를 해봐야했다. 그때 내 눈에 아이가 종종 시선을 던졌던 창밖이 보였다.

진료실 창문에서는 우리 병원에서 최근 정비한 어린이 병원이 바로 대각선으로 보였다. 아이가 종종 멍하니 시선을 두고 있던 그 곳에는 그간 깨닫지 못했건만 젊은 부모가 어린 아이를 안고 활짝 웃는 간판이 걸려있었다. 오늘의 남은 하루,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많은 날들 역시 핑크빛 만은 아닐 것이 눈에 훤한 아이의 돌아가는 모습이 눈에 겹쳐 보였다. 기어이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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