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정 이정 자연미 성형외과 원장

검은색 빵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가 상담실로 들어오더니 자리에 앉자마자 “쌍꺼풀 수술하러 왔습니다”하고 말했다.

40세 초반의 나이, 상당한 미남형의 얼굴이다. 초롱초롱 반짝이는 눈, 몸은 운동선수처럼 군살 없이 탄탄해 보인다. 그런데 모자를 벗고 보니 긴 칼자국이 선명하게 보이는 까까머리였다.

(스님인가?)

(혹시…공갈단?)

요즈음 성형외과 병원을 돌아다니며 성형수술을 하고는 결과가 좋지 않다며 협박해서 돈을 뜯어내는 무리들이 있다는 말을 들어온 터였다. 환자는 오래 전부터 쌍꺼풀 수술하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말했다.

“머리 흉터는 뭔가요?”

“수술 받은 지 보름 밖에 안 됐어요. 요 앞 S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그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무슨 수술을 받았냐고 묻자, 뇌 암 수술이라고 한다.

“3년 밖에 못 산데요.”

남 말하듯이 무심하게 툭 내뱉는다.

3년이라니! 쌍꺼풀 수술을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되려면 6개월, 길게는 일 년도 걸린다. 3년 밖에 못 산다면 정리할 일도 많을 텐데 왜 하필 쌍꺼풀 수술일까? 대학병원에 입원해있다면 그쪽 성형외과에서 하는 게 여러모로 좋을 거라고 하자 이렇게 대꾸한다.

“암 병동에 있는데 의사들이 곧 죽을 사람이라고 우리들을 폐품 취급해요.”

아무리 시한부 생명이라고 해도 병원의 태도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곧 죽을 사람들, 의사 입장에서는 적어도 의학적으로 최선을 다했기에 도덕적으로 꿀릴 것은 없다. 그렇다고 특별한 묘책도 없으니까 환자가 아프다고 하면 독한 약만 놔주곤 해서 몽롱한 상태로 지낸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젠 중독이 되어서 그 시간만을 기다리게 되었다고.

암 병동의 환자들은 누구나 삶을 연장해보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러나 기댈 수 있는 것은 오직 방사선 치료나 항암제 주사 외에는 없다고 슬퍼했다. 그는 방사선 치료를 위해 병동 여기저기를 다니다 보니 환자들의 일상을 관찰하게 되었는데, 암 병동 환자들이 간호사나 담당자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짜증스럽게 곧 죽을 놈들이 귀찮게 한다는 식의 눈치를 준다고 한다.

“분통이 터져서 담당 주치의한테 밖에 내보내달라고 소리쳤어요.”

그는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잔뜩 화난 어조로 말했다.

“죽기는 왜 죽어요. 몸 보니깐 3년 아니라 30년도 더 살겠습니다.”

내가 말장단을 맞추며 얘기를 들어주니 그는 마음의 문이 열린 듯 한참 수다를 늘어놨다. 인간의 삶에서 수다는 매우 중요한 힐링(Healing)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의사로서 죽음 얘기는 꺼내고 싶지 않은데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으니 대화를 풀어가기가 수월했다.

녹차 한 잔을 마주하고 시작된 환자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의사한테 수술 끝나면 치과와 성형외과 상담 좀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거든요. 그런데 보름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는 거예요.”

그가 화나는 이유는 너무 기다리게 했다는 것이다. 수명이 3년 밖에 안 남은 사람에게 보름이란 시간은 일반인들의 시간으로 치면 4년에 해당한다는 논법이었다.

“4년을 조른 거라고요….”

그것은 입장의 차이다. 뇌수술 받은 지 보름 밖에 되지 않아 쌍꺼풀 수술을 받겠다고 하면 내가 담당 의사라도 거절했을 것이다. 게다가 충치 치료도 하겠다니 ‘죽을 때가 되니 별 희한한 돌출행동을 한다’며 간호사한테 환자를 잘 지켜보라고 ‘Close Observation’ 오더(order)를 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의사와 환자 간에 소통이 부재한 탓이다. 하지만 그런 오해는 우리가 사는 세상사이기도 하다.

얘기를 다 듣고 보니, 쌍꺼풀 수술을 안 해줄 수도 없게 생겼다. 그러나 적당한 말로 돌려서 ‘지금 모습이 훨씬 나은 것 같아요’라며 거절의 뜻을 담아 말을 건네자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하게 냉각되었다. 어색한 침묵 속에 빤히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원망의 빛이 가득했다.

‘당신도 나를 곧 죽을 사람이라고 폐품 취급하는 것이냐?’하고 질타하는 것만 같았다.

자기 말을 귀담아 들어주는 의사를 만나 기분 좋았는데, ‘너도 별 수 없는 놈이구나’ 하는 눈초리였다.

“벌써 치과에 들러 썩은 이빨 다 뽑았다고요!”

어차피 내가 안 해줘도 꼭 하고 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것은 사람의 소원을 풀어주는 일이기도 했다. 오래 전부터 죽기 전 꼭 쌍꺼풀 수술을 하고 싶었다는 그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고 꼭 쌍꺼풀수술을 하고 말겠다는 결연함을 보이고 있었다. 그 집착을 누가 말리겠는가!

“좋소. 까짓 합시다!”

내가 허락을 하자 그는 벌떡 일어나 어린애처럼 손뼉 치며 좋아했다. 솔직히 걱정스럽긴 했지만 환자의 건강상태를 보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수술 날짜를 뒤로 잡으면 그의 계산법으로 몇 년 뒤 스케줄이라고 할 것 같아 바로 해주기로 했다.

“어떻게 해줄까요? 남자들은 속 쌍꺼풀로 가늘게 만드는 편입니다.”

그러자 그는 신이 나서 봇물 터진 듯 원하는 바를 열 띄어 말하기 시작했다. 깜짝 놀랄 만큼 주문이 까다로웠다.

“여기는 바깥쪽으로 가면서 멀어지게 해주고, 앞 쪽은 이렇게 터주고요.”

그의 요청은 수술대에 누워서도 거울을 보며 계속되었다.

수술 후 4일째, 실밥을 뽑으러 온 그가 조금 풀이 죽어 보였다.

“주치의 선생님한테 혼났어요?” 하고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온다.

“아뇨, 병실 환자와 보호자들한테 기립박수 받았습니다.”

“네에!?”

“죽을 때 죽더라도 용기가 보기에 좋았답니다.”

위암 말기의 어떤 환자 보호자는 통쾌하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담당 의사 말에 무조건 순종하고 처분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저항을 보여준 것에 감사와 희망의 연대감이 형성된 듯했다. 사람들은 시한부 생명으로 조금 밖에 못 산다고 하면 멀쩡하던 사람도 침대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한다며 자기 침대 옆에 입원한 환자 이야기를 했다.

30대 남자인데 한 달 넘게 기침이 심해서 진찰받으러 왔다가 입원해서 조사해보자는 의사 말을 듣고 입원했다고 한다. 젊은 환자는 가슴 촬영에서 이상 소견이 나온 것도 없고 기관지 내시경 검사도 특이사항 없어서 너무 좋아하며 퇴원 준비를 하다가 담당 의사를 만나러 갔다.

마지막으로 촬영한 MRI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폐하엽 뒤쪽에 작은 종괴(mass)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병실로 올라와서 그대로 쓰러지더니 침대에서 영영 일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조직 검사 결과 역시 악성 소 세포 암으로 나왔다. 퇴원을 준비하던 환자는 며칠 지나지 않아 삐쩍 말라서 침대에 퍼져버렸고, 그걸로 끝이었다.

“바보 같은 놈이에요. 이겨보겠다는 오기가 있어야 하는데 멀쩡하던 녀석이 그 후로는 침대에서 일어날 때도 벌벌 기어요. 쯧쯧.”

그는 혀를 찼다.

오기?

MRI로 확인될 정도면 최소한 1cm 이상 커져있다는 것이다. 심인성 질병이 아니라 암세포가 폐 깊숙한 곳에서 자라고 있는데 오기로 해결될까?

“나는 억울해서 죽을 수 없어요. 이제 겨우 40을 넘겼는데….”

사람들은 처음 암 선고를 받으면 분노부터 생긴다고 한다. 왜 하필이면 나야? 뭔가 잘못된 것이라는 강한 부정과 함께 분노가 생기며, 마지막에는 체념하고 조용히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이 환자는 그런 종류의 분노와는 뭔가 달랐다.

- 깨어나 중환자실에 있었는데 다음날부터 밥을 먹었어요.

- 토하면서도 먹었어요.

- 나는 정말 살고 싶습니다.

방사선 치료 6주가 끝나면, 생식하고 영지버섯 따먹으며 지낼 강원도 산골로 갈 계획이라고 한다.

- 암이 생기는 이유는 면역력이 약해져서 그래요.

- 요즈음 가공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렇데요.

- 건강을 위해 뭐든 해볼 생각이에요!

누가 뭐라고 하던 자기스스로 준비를 이미 많이 해 놓았다.

가망 없다고 암 병동에서 쫓겨났던 어떤 사람한테 온 편지도 소개한다. 6개월 시한부라고 했던 그분은 여전히 건강하게 잘 산다며….

치료가 끝나면 퇴원하기 전, 얼굴이나 한 번 더 보자는 인사로 그와 작별했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그가 불쑥 나타난 것은 3년이 훨씬 더 지난 어느 날 오후였다. 그는 매우 단단하고 건강한 얼굴로 나타나서 자기를 아느냐고 물었다.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다. 그는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보이면서, 자기의 삶을 성형후기로 써보지 않겠냐고 한다.

그러면서도 자기 쌍꺼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손가락으로 원하는 형태를 그리면서 불만을 표시한다.

과연 그의 오기(?)는 삶의 원동력이었을까?

아무튼 살고 싶다는 열망으로 달궈진 그의 의지는 암세포도 기죽게 만든 것임에 틀림없다.

오래전에 써놓았던 글을 다시 수정하면서 세월호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빡빡 깍은 머리에 아직도 붉은 기가 채가시지 않은 수술자국.

자기가 먼저 3개월 시한부 인생이라면서도 쌍꺼풀 수술을 해달라고 요청했던 남자의 이글거리던 눈빛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 꽂혀 있었다.

의사가 알려준 3개월의 시한부 수명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의 외모를 개선시키고 싶다며 성형수술을 원하던 남자, 또 치과치료까지 예약해 놓았다던 남자.

그는 결국 살아남았다.

쌍꺼풀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한 번 더 수술하였고 3년 뒤 다시 찾아왔을 때는 또 다시 수술결과에 불만이 있어서 온 것 아닌가하고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다.

반대로 병실에 같이 있었다던 젊은 남자는 여러 검사결과로도 특이점을 찾지 못하고 마지막 퇴원인사차 주치의를 만나러 갔다가 폐 뒤쪽에서 발견된 소세포암이 있다는 말을 듣고 와서는 벌벌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나지를 못했다고 했다.

자신의 정해진 운명에 순종하지 않고 과감하게 도전하고 또 뿌리치며 맞장을 뜨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올해도 나라 안팎으로 경제상황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힘든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세월호 학생들처럼 차분하게 얌전하게 기다리라는 방송에만 순종하지 않고 과감하게 살길을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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