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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한미수필문학상 대상] 악수김원석 강북삼성병원 피부과 교수

나는 피부과의사다. 20년도 전에 피부과를 시작했고 계속 대학병원 근무만 했고 어느덧 지천명의 나이이다.

피부과는 생명이 위험한 환자를 보거나 몇 시간씩 걸리는 대 수술을 할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꽤 오래 대학병원에서 근무하였지만 소위 누군가에게 침을 튀기며 말하거나 듣는 이들의 눈이 똥그래질만한 그런 무용담은 없다.

내 이야기는 생각하면 약간은 웃음도 들지만 어찌 보면 지긋지긋한 기억이기도 하다. 제목처럼 ‘찐한 악수’를 마지막으로 헤어진 그 청년에 대한 이야기의 시작은 최근 교수승진을 앞두고 지금까지 썼던 논문 목록들을 정리하면서였다.

‘Treatment of recalcitrant wart using…’(치료가 힘든 사마귀의 치료 경험…)이란 제목의 오래된 논문에 실린 흉측한(?)손바닥 사진은 그 시절 나와 그의 이야기를 말해주었다.

15년 전이다. 두 손바닥 전체에 커다란 뿔들이 주렁주렁 달린 청년이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대학생이었고 20대 초반 이었다. 초진 환자에게 의례적으로 하는 “어디 때문에 오셨냐”는 말은 금방 뒷말을 찾지 못하고 끊어졌다. 중세시대라면, 그는 아마도 마귀나 악마로 몰렸을지 모른다. 양 손바닥을 둘러싼 크고 두꺼운 뿔 같은 덩어리들은 주먹을 쥐지도, 글씨를 제대로 쓸 수도 없게 만들었다.

그는 벌써 몇 년째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니며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는 없고 점점 커지기만 했다고 했다. 그는 내가 할 말들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게 되는 이상한 병에 걸린 사람들은 처음은 “왜 내게 이런 일이” 란 분노상태를 거친 뒤 결국 체념하는 상태에 이른다. 그는 체념의 단계가 분명했다.

“사마귀 같아 보이지만 이렇게 심할 수는 없을 겁니다. 조직검사를 해보고 치료합시다. 혹시 암 이나 유전 돌연변이 일지도 모릅니다”라는 말에 “그러죠, 다른 병원에서도 그랬어요”라고 힘없이 답했다. 그는 많이 지쳐 보였다. 조직검사 결과는 그냥 사마귀였다. 이 바이러스 덩어리는 사람 피부에 기생충처럼 달라붙어 성장한다. 냉동치료로 얼려 죽여도, 레이저치료로 불태워 죽여도 다시 부활해서 자라는 억척스런 질환이다.

작은 사마귀 하나도 치료가 힘든데, 손바닥 전체를 다 점령한 사마귀에 대한 치료는 막막했고 내 첫 번째 선택은 회피였다. 손바닥을 다 도려내거나 딴 살을 떼서 이식을 하는 게 가능할 리 없었지만 난 그를 정형외과로 보내버렸다. 폭탄 돌리기일 뿐이라 생각하면서도 그땐 그냥 피하고 싶었다. 아니 솔직히 환자가 그러다 지쳐 딴 병원으로 가버렸으면 했다.

딱 1주일만에 정형외과적 질환이 아니라는 짧은 답변을 가지고 그는 돌아왔다. 초점 없이 나를 바라보는 그에게 내가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던진 말은 앞으로 벌어질 2년 여의 사투의 시작이었다.

“레이저로 하나씩 잘라내 봅시다.”

치료는 2-3주마다 반복됐다. 2시간의 연고마취, 손바닥 전체에 수십 번의 국소 마취 주사가 끝나면, 레이저 치료가 1시간 이상 진행되었다. 고통 없이 치료를 진행하고자 전신마취를 의뢰해 보았지만 사마귀 바이러스로 수술 장을 오염시킬 수 없다는 마취과의 거부만 돌아왔고, 달리 다른 선택이 없었다. 고통스럽고 효율적이지 못한 국소마취, 역겨운 살타는 냄새를 만드는 레이저 치료, 그리고 고통으로 절규하는 환자의 비명은 반복되었다. 피부과는 그럴 때는 치료실이 아닌 고문장에 가까웠다.

정상적인 손에 대한 그의 열망이 통증을 이겼는지 두말없이 때가 되면 그는 치료하러 왔지만 먼저 지친 것은 나였다. 솔직히 누가 봐도 효과가 너무 없었다. 1년을 치료 했는데 고작 10%정도만 없어졌을까? 미친 듯이 태워놓고 다음에 보면 상처가 아물면서 사마귀들의 뿔은 우뚝 다시 솟았다.



하루는 식은 땀을 흘리며, 고통을 참던 그가 말을 걸어왔다. “좋아지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이제 제발 포기하면 안되겠냐는 말이 입안을 맴돌았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뻔한 대답을 했다. 그는 “어쨌건 참 고맙습니다. 여태껏 포기하란 말을 하지 않고 계속 치료하자는 의사는 선생님이 처음입니다”라고 했다. 그 말이 고맙지 않고 괜히 화만 났던 나는 화제를 돌렸다.

“손이 나으면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야?”란 질문에 잠시 생각하던 그는 “당구요, 제가 예전엔 친구들 중에 젤 당구를 잘 했는데, 지금은 큐를 고정하지도 못해요. 당구장에 가고 싶어요.” “오, 그렇지! 당구장…. 우리 다 나으면 당구장 같이 가볼까? 가서 자장면도 시켜 먹으면 좋겠다. 자장면 하면 당구장 자장면이지….” 잠깐 동안 어색했지만 웃음이 오갔다. 어쨌든 치료를 했던 그 긴 시간 동안 처음으로 같이 웃었던 거 같다. 나는 또 물었다. “그럼 손 때문에 제일 불편한 건 뭐야?” 생각하던 그의 대답은 짧았다. “악수요.”

악수는 인간의 오랜 습관이고 만국 공용어다. 먼 인류의 조상 때부터 나는 아무 무기를 숨기지 않았고, 당신을 공격할 뜻이 없다. 나는 당신을 존중하며 친구로 생각한다는 표시이다. 악수는 맨손을 붙잡으며 하는 짧지만 경건한 의식이다. 그에게 악수는 그가 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이 해주지 않는 것이라 더욱 서글픈 일일 것이다. 다시 우리는 웃음을 잃었다.

반복된 치료는 1년 이상 계속 되었다. 그 동안 두 번쯤 더 손 수술 전문인 정형외과 친구에게 수술을 부탁 해보았고 암 치료가 전문인 방사선 종양학과에도 의뢰를 했다. 물론 어쩌라고 우리과로 보내려 하냐는 핀잔밖엔 얻은 게 없었다.

한편으로 회피를 꿈꾸면서, 그 시절 업무가 끝나면, 습관처럼 나는 인터넷을 검색했다. 당연히 검색어는 사마귀다. 뭐라도 건질 게 없나 목말라하는 내 눈에 짧은 연구논문이 보였다. ‘건선약을 이용한 사마귀의 치료’. 피부를 빨리 벗겨주는 건선약이 사마귀를 치료하는 데도 쓸 수 있다는 연구였다. 당연히 국내에는 아무런 연구보고가 없었지만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본거 같았다. 당장 시도를 했고, 우리는 희망에 불탔다. 건선 약은 부작용이 꽤 있다. 특히 입술과 피부가 튼 것처럼 갈라지고 껍질이 벗겨지는 부작용이 있다.

약을 받아간 지 4주만에 그가 다시 방문했다. 입술이 다 터져 피가 나고 얼굴은 각질이 뒤덮여 노숙자 같은 모습으로 들어섰지만 그는 웃고 있었다. 성공을 직감했고 그 지겨운 사마귀들이 반으로 줄어 있었다. 부력의 법칙을 깨닫고 벌거벗은 채 목욕탕을 뛰쳐나와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의 기분이 이랬을까? 처음으로 우리는 완치란 단어에 대해 애기를 나누었다.

약과 레이저를 병행하자 사마귀는 급격히 치료가 되었고 치료가 잘 되면서 그가 오는 빈도는 점차 줄었다. 2~3달에 한 번 정도 경과 관찰만 하러 왔고, 가끔 다시 재발되는 것도 크기가 작아서 치료하면 바로 없어졌다.

그 즈음 나에게도 일신의 변화가 왔다. 전공의 시절부터 10년 넘게 지내온 병원을 떠나, 지금 있는 병원으로 갑자기 옮겨야 했다. 외래를 다른 교수들에게 넘기고 단골 환자들이 올 때마다 마지막 인사 나누느라 바쁘던 때 그가 갑자기 방문했다. 외래 일정도 없었는데 내가 다른 데로 간다는 말을 듣고 왔다고 했다.

“선생님, 다른 데로 가시면 전 어떡합니까? 제 치료는요?”

나는 말했다.

“참나, 다 나았는데 뭘 어떡해, 그냥 잘 살면 되지 혹시 조그만 게 다시 생기면, 어느 피부과의사든 가서 빨리 치료하면 되는 거잖아. 이젠 별로 해줄게 없어.”

아무 대화 없이 잠시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가 떨궈지고 있었다. 나도 감정이 복받쳐 왔다. 2년 이상의 치료 동안 사적인 대화나 서로를 알기 위한 교감의 시간이 있었던 거 같진 않다. 친하기엔 나이차도 나고 서로 치료에 지쳐 지긋지긋했던 사이였는데…. 뭐랄까? 표류하는 배에서 살기 위해 사투를 벌였던 사람들 간에 느끼는 감정이 이런 걸까 싶었다. 고맙거나 감사한 것보단 그냥 포기하지 않았던 서로에 대한 대견함 그런 감정 말이다.

눈물이 날 거 같아 서둘러 다른 말을 했다. “자, 우리 이제 다신 보지 말자. 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제일 축복 주는 말이다. 잘 살고 진짜 진짜 다신 보지 말자.” 그 말이 기어코 그를 울리고 말았다.

머쓱했지만 나는 악수를 청했다. “마지막이니까, 악수하고 헤어져야지 쿨하게.” 나의 쭉 뻗은 손을 보고 움칫하며, 그는 손을 내밀지 못했지만 난 그의 손을 세게 움켜쥐었다. 없어진 사마귀 부위에 남은 흉터로 손은 거칠고 따갑기까지 했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그와의 악수는 내가 당신을 존중하고 친구로 생각한다는 악수의 진정하고 오랜 의미가 담겨 있었다.

다시는 보지말자는 내 부탁을 어기고, 옮긴 병원으로 그가 한번 찾아왔었다. 맛이라곤 하나도 없는 빵 같은 걸 사왔는데 당구를 쳐서 친구들한테 딴 돈으로 샀다고 했다. 그게 사실은 진짜 마지막이었다.

요즘도 심한 사마귀를 가지고 이렇게 심한 것도 치료가 가능하냐고 묻는 환자들이 종종 있다. 어김없이 그와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내 대답은 한결 같다. “하나도 안 심한데요….”



행복이란 바구니에 담겨있던 소소한 열정의 기억


여느 날처럼 진료를 보다 외래 환자가 끊겨 핸드폰을 챙겨 보았다. 낯선 전화가 와서 다시 걸고 누구냐 물으니 청년의사 신문의 000기자란 대답이 들렸다. 수시로 피부질환관련 질문을 하는 기자들이 귀찮아 병원 홍보팀에 전화번호를 절대 가르쳐 주지 말라 당부했는데 누가 또 악착같이 알아냈다고 생각했다.

그때 전화기에서 수필공모 하신 게 대상으로 뽑혀 연락한 거란 말이 들렸다. 한달전쯤 수필응모 하라는 청년의사의 단체메일을 보고 글 욕심이 발동해서 써내려 갔다. 그리곤 기억 속에 묻어둔 것이 대상까지 받게 됐다.

사실 나는 7~8년전 다른 수필문학상에서 은상을 한번 받은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피부과란 처절하지(?)못한 전공을 하는 의사로서 극적인 소재도 없고 내 글 재주란 게 뭐 별 나아질 이유도 없어서 더 큰 상을 받는 건 무리라 생각했다. 의외의 결과만큼 기쁨도 컸다.

악수란 제목의 글은 그냥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편하게 적어 내렸다. 뭐 극적으로 묘사할 내용도 사실 없었다. 그냥 책상정리를 하다 우연히 옛날 사진이나 친한 이들과 주고받았던 쪽지를 발견하면 묻어둔 생각이 좌르르 펼쳐지듯 그렇게 써내려 갔다. 그리고 쓰는 내내 참 행복했다. 그땐 많이 찌든 삶을 살았고, 높지 않은 지위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불안했고, 내 자신의 치료에 대한 굳은 믿음도 약했었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환자에게 뭔가 더 해주고 싶었다. 때론 진짜 뭔가를 해줬었고, 한편으론 상처로 남기도 했다. 결과는 분류가 되어 남았지만, 소소한 열정의 기억들은 그냥 행복이란 한 바구니에 담겨졌다. 그리고 그것들 하나하나가 관록이란 다른 이름으로 지금의 환자들을 위해 다시 꺼내 쓰여지고 있다.

내가 입만 열면 재미없다고 집사람, 딸, 아들은 귀를 막는다. 앞으론 아빠가 말은 잘 못해도 글은 좀 쓴다는 건 인정해주길 바란다. 덧붙여 내가 헐렁하고 다소 무능해서(?) 그런지 띄엄띄엄 날 대하는 강북삼성병원 피부과 간호사와 전공의들도 나도 요런 재주가 있으니 새해엔 좀 존중해 주긴 바란다는 말을 하고 싶다^^. 물론 내 가족 그리고 피부과 식구들 모두 사랑합니다♥!

끝으로 2017년엔 모든 의사동료들이 그들의 환자들과 웃음을 공유하길 바라며, 저를 대상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분들, 수필문학상 관계자들 모두에게 평생 잊지 못할 선물에 대한 감사를 드린다.

청년의사  webmaster@docdocd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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