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의학회가 ‘중환자실 입원 우선순위’ 강조하는 이유
지난해 8월 중환자실 입·퇴실 기준 제안했지만 논의 안돼
“중환자병상 무한정 확대 불가능, 입원 우선순위 정해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현장에서는 ‘살릴 수 있는 환자도 죽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대한중환자의학회가 회복하기 힘든 환자는 중환자실 입원을 제한하자는, 꺼내기 힘든 말을 공론화한 이유다.

정부는 코로나19 치료 병상 확보를 위해 여섯 차례나 행정명령을 내렸으며 이를 통해 12월 중순까지 1,300여 병상을 추가로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병상을 무한정 확대할 수 없다. 의료 인력 등 자원도 부족하고 코로나19가 아닌 다른 중환자 진료에도 공백이 생길 수 있다.

중환자의학회는 병상 동원 행정명령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한계는 이미 지났다고 지적했다. 한정된 중환자 진료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중환자실 입·퇴실 기준을 마련하고 회복 가능성이 극히 낮은 환자는 입실을 제한해야 한다는 게 중환자의학회의 입장이다.

중환자의학회는 이미 지난해 8월 한국의료윤리학회의 검토까지 받은 ‘감염병 유행 시 거점병원 중환자실 프로토콜’을 발표하고 정부에도 중환자실 입·퇴실 기준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1년 3개월이 지나도록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고 있다.

대한중환자의학회는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학회 사무실에서 '코로나19 중환자 진료체계를 위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대한중환자의학회는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학회 사무실에서 '코로나19 중환자 진료체계를 위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결국 중환자의학회는 1일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 대유행 장기화에 대비한 중환자 진료체계를 위한 담화문’을 발표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중환자실 입·퇴실 기준을 마련해 진료 현장에 적용하자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합의된 ‘회복 가능성이 지극히 낮은 환자’는 중환자실 입실을 제한하는 게 핵심이다.

중환자의학회가 지난해 8월 마련한 중환자실 입실기준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진자가 ▲쇼크 ▲의식저하 ▲급성호흡부전으로 고유량 산소(High Flow Nasal Cannula, HFNC), 인공호흡기 치료 필요 ▲중환자전문의가 입실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 중 하나라도 해당하면 중환자실에 입원시킨다.

중환자실 입원 우순순위도 4단계로 제시했다. ▲질병이 없던 때와 같이 활동 가능하거나 활동을 제한되지만 가벼운 노동이 가능한 상태 ▲비만 등 가벼운 전신질환이 있는 환자 ▲장기부전 1개 ▲예측 생존율 80% 이상에 모두 해당하는 환자가 1순위다.

반면, ▲뇌·심장·간·신경근골격계 등 말기장부전 ▲예측 사망률이 90% 이상 중증외상/중증화상 ▲대량 뇌출혈, 중증 치매 등 시각한 뇌기능장애 ▲기대여명 6개월 이하인 말기암 ▲ASA Score Ⅳ(생명을 위협할만한 심한 신체질환)-Ⅴ(생존이 어려운 빈사상태) ▲예측 생존율 20% 이하인 환자는 가장 후순위이다. 중환자의학회가 제시한 ‘국제적으로 회복 가능성이 지극히 낮을 것으로 합의된 환자’이기도 하다.

출처: 대한중환자의학회가 지난해 8월 마련한 ‘감염병 유행 시 거점병원 중환자실 프로토콜’
출처: 대한중환자의학회가 지난해 8월 마련한 ‘감염병 유행 시 거점병원 중환자실 프로토콜’

이같은 기준이 없다보니 병상 배정도 환자의 중증도 고려 없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코로나19 환자 중 20% 정도는 이같은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게 중환자의학회의 지적이다.

중환자의학회 코로나19TFT 위원인 서울아산병원 홍석경 교수는 “병상 배정 업무를 맡은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사 등도 지침대로 할 수밖에 없다. 의료기관에서 배정된 환자를 거부할 권한도 없다”며 “중환자 병상을 무한정 확대할 수 없기에 중환자실 입실 우선순위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사회적 합의가 없는 한 병원에서는 순차적으로 환자를 입원시킬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현재는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서명한 환자까지 병상을 배정받고 있다. 재난 상황의 심각성과 가용 자원에 따라 조정해야 한다”고도 했다.

코로나19TFT 위원인 서울대병원 류호걸 교수는 “코로나19 중환자가 비(非)코로나 중환자보다 더 우선돼야 하는지, 어느 정도 자원을 코로나19 치료에 배정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논의가 없다”며 “코로나19 중환자는 간호 인력도 2배 더 투입해야 한다. 중환자실 입원 우선순위 없이 모든 코로나19 중환자를 다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중환자의학회 코로나19TFT 위원장인 삼성서울병원 서지영 교수는 “중환자를 볼 수 있는 인력은 한정돼 있는데 코로나19 중환자 치료에 투입되면 다른 중환자 진료 인력이 줄 수밖에 없다”며 “모든 환자를 다 치료해서 살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차기 중환자의학회장이기도 하다.

서 교수는 그동안 우리나라가 중환자 정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결과가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나타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서 교수는 “선진국 중환자실은 대부분 1인실이지만 우리나라는 여러 명이 오픈된 공간에 입원하는 다인실 구조다. 그런 구조로는 위드 코로나 시대를 버틸 수 없다. 다른 나라에 비해 인력도 적게 투입되고 준중환자실 개념도 없다”며 “급증하는 환자를 감내할 수 있는 여력이 적다. 정부가 중환자 정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데 담당 공무원도 없다”고 비판했다.

단계적 일상회복을 너무 일찍 시작했다고도 했다. 서 교수는 “현 상황에서 봤을 때 시기적으로 일상회복을 너무 빠르게 시작했다. 추가 접종(부스터샷)으로 취약층을 보호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게 바람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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