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기간 초과사망자의 49%가 非코로나 환자
중환자실 전담전문의 두지 않아도 되는 법규정
필수의료 논의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중환자의료
중환자의학회 “슈퍼 갑인 정부가 움직여야 바뀐다”

상급종합병원이나 종합병원 중환자실 대부분이 환자 여러명이 입원해 있는 다인실 구조다.
상급종합병원이나 종합병원 중환자실 대부분이 환자 여러명이 입원해 있는 다인실 구조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후진국 수준’인 우리나라 중환자의료체계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위중증 환자 급증으로 중환자 병상 부족 문제가 반복될 때마다 중환자의료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지만 행정명령으로 병상만 확보하면 그만이었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사건 이후 정부 차원에서 진행하는 ‘필수의료 살리기’ 논의에서도 중환자의료체계는 N분의 1일뿐이다. 대한중환자의학회가 최근 잇따라 국회 토론회 등을 열고 중환자의료체계 개편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유행 시 유독 한국만 초과 사망자 수가 증가한 원인도 ‘중환자의료 역량의 한계’에 있다는 지적이다.

“살릴 수도 있었던 非코로나 환자 2만2000여명이 죽었다”

중환자의학회 김영삼 연구이사(세브란스병원 호흡기내과)가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지원을 받아 실시한 통계청 자료 등을 이용해 지난 2020년 1월부터 2022년 5월까지 월별 초과 사망자 수를 분석한 결과, 초과 사망자는 총 4만7,516명 발생했다. 특히 이들 중 49.2%인 2만2,356명은 비(非)코로나19 환자였다. 특히 2022년 1월부터 5월까지 5개월 동안 발생한 초과 사망자는 총 3만6,825명이나 된다(관련 기사: 오미크론 변이 유행 시 한국만 초과 사망 증가…이유는?).

코로나19 위중증 환자가 300명 이상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을 때 비코로나19 초과 사망자는 일주일에 500명 발생하며, 위중증 환자 1,000명 이상 재원 시 비코로나19 초과 사망자는 2,400명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중환자의학회는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같은 연구결과를 다시 한번 강조하며 “놀라운 수치”라고 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중환자의료체계 개선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책임자인 김 연구이사는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다른 양상을 보였다. 오미크론 변이 유행 시 선진국에서는 초과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지 않았는데 우리나라는 유독 많이 발생했다”며 “중환자의료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자료로 확실히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그는 “임상 현장에서도 심각하다고 느꼈지만 객관적인 자료가 없었다”며 “코로나19가 아닌 다른 질환 환자가 2만명 넘게 사망했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의료체계가 감당하지 못해 살릴 수 있는 환자가 죽었다는 의미”라고 안타까워했다.

박치민 총무이사(삼성서울병원 중환자의학과)는 “비코로나19 초과사망자가 전체 초과사망자의 50%에 달한다는 게 문제다. 코로나19 위중증 환자가 급증했을 당시 임상 현장에서도 느꼈지만 우리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며 “중환자의료체계가 바뀌지 않는 한 또다른 신종 감염병 팬데믹이 오면 똑같은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지영 회장(삼성서울병원 중환자의학과)은 “다른 분야에 비해 우리나라 중환자의료체계는 매우 뒤처져 있다. 흔히 말해 ‘돈이 되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라며 “인력과 장비, 공간에 대한 투자가 있어야 하지만 수가가 잘 나오지 않는 분야는 병원 입장에서도 투자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 중환자실 수준은 국민에게 밝히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한 상황”이라고 했다.

서 회장은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동안 비코로나19 초과사망자가 그렇게 많이 발생한 이유는 중환자를 보는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취약하기 때문”이라며 “다른 선진국과 가장 큰 차이는 인력이다. 중환자 진료 경험이 적은 인력으로 운영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슈퍼 갑인 정부가 움직여야 한다. 진정한 필수의료 영역인 중환자의료체계에 병원이 투자하려면 결국 정부가 정책으로 이끌어줘야 한다”며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수가 조금 올려주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대한중환자의학회는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중환자의료체계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청년의사).
대한중환자의학회는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중환자의료체계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청년의사).

중환자실에 전담전문의 두지 않아도 되는 현실

중환자의학회가 제시한 중환자실 인력 확충 방안은 전담전문의 배치 의무화다. 현재 의료법 시행규칙은 중환자실에 전담의사를 ‘둘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담전문의를 배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이 조항을 ‘중환자실에 전담의사를 두어야 한다’로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상급종합병원 지정 평가에서 중환자실 인력과 시설 기준을 강화하고 의료질평가에도 중환자 전담전문의 확충 비율을 반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중환자실 전담전문의 관리료 기준과 중환자실 입원환자 간호관리료 차등제 개선 등도 필요하다고 했다.

서 회장은 “현재 의료법상 중환자실 전문의 배치는 필수가 아닐 뿐만 아니라 가산 수가도 일반 병실 입원전담전문의보다 적다.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중환자 전담전문의를 최소한으로 배치할 수밖에 없다”며 “중환자실 시설 기준도 적은 비용으로 많은 환자를 보도록 좁은 공간의 다인실 구조로 감염 전파에 취약하며 환자 인권 보호는 기대할 수 없다. 무엇보다 감염병 재난 시 감염병 환자 수용이 불가능한 후진국형 구조”라고 꼬집었다.

홍석경 기획이사(서울아산병원 중환자·외상외과)는 “정부는 중환자실 인력 기준을 만들면 지킬 수 있는 인력이 확보돼 있느냐고 한다. 하지만 인력이 확보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기준을 만들면 해결되는 게 없다. 그저 답보 상태”라며 “지금은 중환자실 전담의사를 둘 수 있다고만 돼 있는데 너무 후진국형이다. 개정이 필요하다. 인력을 충원할 동기 부여는 전담전문의에 대한 수가다. 제도와 수가 개선이 같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필수의료 논의 기대無…각개전투 시작한 학회

그러나 중환자의학회는 정부 주도로 구성된 ‘필수의료 살리기 협의체’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필수의료과’가 논의 과정에 참여하면서 정작 중환자의료체계는 주목을 받지 못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에 중환자의학회는 ‘각개전투’를 시작했다.

지난 21일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과 함께 국회에서 ‘필수의료 중환자의료체계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한 데 이어 이날 기자간담회에 앞서 열린 ‘Korea Healthcare Congress 2022’(KHC 2022)에서도 ‘팬데믹을 넘어 중환자진료체계의 뉴 업노멀을 향해’를 주제로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홍 기획이사는 “필수의료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진료과가 몰리면서 중환자의료 분야에 집중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며 “필수의료살리기협의체에는 다양한 진료과와 단체가 들어가 있고 중환자의학회도 그 일원 중 하나이기 때문에 중환자의료체계 논의에 집중하기 힘든 구조”라고 지적했다.

홍 기획이사는 “정부가 중환자의료체계를 개선할 의지가 있는지 궁금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중환자의료체계 문제를 인정하고 붕괴될 수 있다고 했지만 해결책은 병상 확보 뿐이었다”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환자의료체계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긴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앞으로 국민과 정부를 대상으로 홍보하고 개선 방안을 관철시키려 한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보건복지부 내 중환자의료 담당 부서 신설을 요구하고 있다. 담당 부서가 없다 보니 개편 논의에 진전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서 회장은 “복지부 내에서 수가 문제는 보험급여과, 인력은 의료자원과 등 중환자 관련 문제는 여러 부서에서 산발적으로 다루고 있다”며 “중환자 분야는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필수의료라는 인식하에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단계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조직이나 담당자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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