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20일 경과 시 증상 상관 없이 격리해제' 지침 내려
에크모 환자 등 예외 상황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조치’ 반발
일반 중환자실도 ‘부족’…“다른 환자들 나가라고 해야 하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중환자실 재원 기간을 20일로 제한한 정부 방침에 의료 현장이 들끓고 있다. 다른 일반 환자가 사용할 병상으로 '돌려막기'하는 임시방편일 뿐만 아니라 현장 상황을 무시한 ‘현실성 없는 대책’이라는 것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지난 14일 격리해제 기준에 재원일수 등을 추가한 ‘코로나19 확진환자 격리해제 기준 변경’ 내용을 일선 의료기관에 공문으로 전달했다. 이 기준은 17일 0시부터 적용됐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중환자실에 입원한 코로나19 위증증 환자 격리해제 기준이다.

기존에는 증상 발생 후 최소 10일이 경과되고 최소 48시간 동안 해열 치료 없이 발열이 없고 임상 증상이 호전되는 양상을 보이면 격리해제하도록 했다.

하지만 변경된 지침은 중환자실 입원 기간을 최대 20일로 제한했다. 증상 기준에는 '코로나19 증상과 유사한 호흡기질환을 기저질환으로 갖고 있는 경우 코로나19 감염 전과 비교해 임상증상에 차이가 없거나 인공호흡기 등 생명연장 치료가 안정적일 때'라는 단서 조항을 추가했다.

하지만 '증상 발생일로부터 20일 경과시 증상 기준과 관계없이 격리해제한다'는 조항이 명시됐다.

추가 치료가 필요할 경우 일반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아야 하며, 격리해제 이후에도 코로나19 중환자실 입원을 원하는 경우 입원비는 환자 본인부담으로 전환된다.

또한 의료기관에는 중증병상 재원일수를 줄이면 손실보상금을 더 많이 주는 차등 지급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관련 기사: 병상확보 총력 방역당국 ‘재원일수’ 따라 보상 차등지급)

중앙방역대책본부가 최근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기관에 보낸 '코로나19 확진환자 격리해제 기준'으로 인해 일선 의료진이 혼란에 빠졌다.
중앙방역대책본부가 최근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기관에 보낸 '코로나19 확진환자 격리해제 기준'으로 인해 일선 의료진이 혼란에 빠졌다.

이같은 지침이 내려지자 일선 현장에서는 의료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했다. 환자마다 상황이 다르고 임상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예외적인 상황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조치라는 것이다.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는 16일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20일 내 호전돼 중환자 병상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많고 실제로 그렇게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빼고 있다”며 “하지만 바이러스 전파력은 거의 사라졌는데 코로나19 중환자병상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는 환자도 있다”고 지적했다.

엄 교수는 “에크모(ECMO)를 달고 있는 환자의 경우 코로나19 바이러스 전파력이 사라져도 에크모 장비 때문에 다른 곳으로 움직일 수 없다”면서 “방을 바꾸거나 층을 바꿔 이동하는 경우 위험해질 수 있다”고 했다.

엄 교수는 “20일이 지나도 전파력이 사라지지 않는 환자도 있다. 면역저하자는 바이러스 억제가 빨리 안되기도 하고 고령 환자의 경우 20일 지난 뒤 PCR 검사를 해도 Ct값이 좋아지지 않는(전파력이 남은) 경우도 있다. 그런 환자들은 (코로나19 병상에서) 못 뺀다”고도 했다.

그는 “병상확보가 안 되니 회전율을 높이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이런 지침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며 “현장에서 실현 가능한 조항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일부러 환자를 중환자실에 붙잡고 있는 의사는 없다. 이런 지침은 내리지 않는 게 현장을 도와주는 것이다. 이 정도는 임상 현장의 판단에 맡겨도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번 조치로 인해 코로나19가 아닌 다른 일반 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대한중환자의학회 코로나19TFT 위원인 서울대병원 류호걸 외과계중환자실장은 “이번 지침으로 현장은 더 혼란스러워질 것"이라며 "증상 발생 후 20일이 지난 환자는 무조건 격리해제하고 일반 중환자실이나 병실로 내보내라고 할 텐데, 의사 입장에서 환자 상태가 그럴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보낼 수 없다"고 말했다.

류 실장은 "병원마다 일반 중환자실도 줄어서 격리해제된 환자를 보낼 수도 없다"며 "기존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을 다 나가라고 하고 어려운 수술은 하지 말라고 해야 가능하다”고 비판했다.

류 실장은 “환자 상태에 따라 상황이 다른데 20일이 지났다고 (일반 중환자실로) 가라고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지금처럼 병상 부족 상황이 지속되면 누가 우선순위가 높은지, 코로나19 중환자실 입·퇴실 기준을 정해야 한다. 정부는 그런 얘기는 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류 실장은 “인력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병상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의료의) 질은 떨어질 것이다. 일반 중환자실이나 일반 병실로 간다면 기존에 있던 비(非)코로나 환자를 담당하던 인력을 코로나19 진료에도 활용하겠다는 것인데 여유가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정부가 코로나19 중환자실에서 격리해제 된 환자들 중 중증도가 떨어진 회복기 환자들을 전원 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도 했다.

류 실장은 “병원마다 격리해제된 환자를 모두 수용하기 어렵다. 중증도가 떨어진, 어느 정도 회복한 환자를 보낼 수 있는 곳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며 “인공호흡기가 필요하진 않지만 모니터가 필요하거나 1~2시간마다 환자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인력과 장비를 갖춘 곳이 있어야 한다. 병동 환자를 격리해제 시킨다고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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