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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한미수필문학상 대상] 당신 탓이 아닙니다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 류현철 직업환경의학과장
  • 청년의사
  • 승인 2019.01.01 06:00
  • 최종 수정 2019.01.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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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뭇머뭇 지인의 손에 이끌려 상담실 문을 들어선 칠순의 노동자를 만난다. 단정한 옷매무새와 차분한 말투, 오랜 시간을 두고 일터에서 그을려온 이들 특유의 구릿빛 얼굴과 미간을 가로지르는 세월의 주름, 거기에 더하여 뭔가 짐작하기 어려운 무거움과 어두움이 더해진 낯빛을 한 아버지 세대의 노동자와 마주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노동을 시작했을 그가 아들뻘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를 찾아온 사연은 무엇일까? 하지만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보다는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히 풀어내도록 해야 한다. 한자리에 머물지 못했던 시선이 조금씩 내 시선과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아직 어색했지만, 언뜻 엷은 미소가 깊은 주름으로 굳어진 미간을 부드럽게 풀어주니 진즉부터 가지고 계셨을 순박하고 인자한 표정이 비친다.

“1년 반쯤 되었나 봅니다. 처음 그 일이 벌어진 것이….” 그는 차분했지만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고 도중에 한 번씩 갈증이 나는 듯 이야기를 멈추었다 이어갔다. “그때는 다들 그랬어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에 취업했다. 여덟 명이 일하는 조그마한 단조 공장에서 고무공장에 납품하는 가위를 만들었다. 열심히 일했다. 그 때는 다들 그랬다, 열한시간이든 열두시간이든 열심히 일했다. 일하면서 결혼을 했고, 아들 하나 딸 하나를 얻었다. 그리고 다들 그랬던 것보다 더 열심히 일해서 혹은 운이 좋아서 자신이 일하던 공장을 인수했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괜찮은 삶이었다. 그러나 IMF를 즈음하여 공장은 폐업할 수밖에 없었고, 다들 퇴직한다는 55세에 다시 임금 노동자가 되었다. 피혁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지만 3년이 지나 폐업했다. 어려운 시기였다.

“그때는 다들 그랬으니까요.” 백화점에서 경비노동자로 근무했지만 그곳도 문을 닫았고, 아파트 경비를 거쳐 10년 전부터 일하기 시작한 곳이 주물공장이었다. 시끄럽고, 덥고, 주물사와 로(爐)에서 날리는 분진과 흄에 뒤범벅이 되더라도 환갑을 지난 그에게 허락되는 일자리는 그 정도였다.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렇다. 주물공장을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그가 하던 일은 쇳물을 부어 모양을 만들 외주 주형에 들어갈 중자(심지, core)를 만드는 일이었다.

1년 6개월 전 한 주물공장에서 일한 지 2년 정도 되었던 어느 겨울이었다. 일요일이었지만 대부분 그랬듯이 그는 출근해서 일을 했다. 점심을 마치고 다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고가 났다. 그가 만든 중자가 크레인으로 들어 옮겨지다가 아래로 추락했다. 이상하게도 그 공장은 크레인이 높게 달려 있어 불안 불안했는데 기어코 사달이 났다. 떨어진 중자 아래로 동료 노동자가 깔려서 사망했고 처참한 시신을 수습해야 하는 것은 그의 몫이었다. 나이가 많이 ‘어려’ 자주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알고는 지냈다는 사망 노동자는 61세였다. 처참한 광경은 잊히지 않았고 꿈에도 나타나 괴롭혔다. 사고 현장에 가면 가슴이 떨려 도저히 일이 안 되어 며칠을 쉬었다가 업무가 바빠 다시 출근해도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를 그만두고도 그날의 일은 계속 떠올라 그를 괴롭혔다. 아무도 탓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자신이 만든 중자가 떨어져 사고가 난 탓에 죄책감에 시달리고 잠을 잘 이룰 수가 없었다. 하릴없는 심정을 달래려 기도하러 다니던 절에 부탁하여 사비를 들여 사망한 동료의 천도재를 지냈다. 이렇게라도 하면, 극락왕생을 빌어주면 이 심경이 나아질까 싶어서였다. 그래도 잊히지 않았다. 자리에 누우면 떠오르는 처참한 광경, 죄책감. 잠도 잘 수 없었고 무기력해졌고 집 밖으로 나가기도 싫었다. 10개월 동안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왜 집안에만 있느냐고, 나가서 뭐라도 하면서 움직여야 나아지는 것 아니냐’고, 반평생을 함께 해 온 아내와도 다투는 일이 잦아졌다. 다시 일을 시작해야 했다. 10년 전 주물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알게 되어 동갑내기라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일자리를 알아봐 주었다. 사망사고가 났던 회사에서 같이 일하다가 경기가 안 좋아 2개월 먼저 퇴직해야 했던 친구는 다른 주물회사에서 같이 일하자고 제안했다. 힘들었지만 ‘이제 한다면 얼마나 일하겠소, 할 수 있을 때까지는 같이 일해 봅시다’라는 친구가 고마웠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1개월 남짓 지났을까 현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지게차 사고가 난 것이다. 일하다 지게차에 치여 쓰러진 이는 그를 다시 일터로 불러주었던 바로 그 친구였다. 운행하던 지게차로 인해 손상된 칠순의 육신에서 흐르기 시작한 피는 멈추지 않았다.

“처음에는 의식도 있었고, 그렇게 갈 줄은 몰랐지요. 내게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요?” 지게차 사고로 쓰러졌던 친구이자 동료였던 노동자는 결국 과다출혈로 사망했고, 일터에서 두 번의 죽음을 경험한 그는 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차분히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진 일들을 풀어놓던 그의 목소리는 갈라졌고, 내 안에서도 무언가 갈라지고 뜨거운 것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칠순을 넘긴 나이, 세상사 웬만한 풍파는 겪고 넘어온 그에게도 지난 2년 동안 두 번이나 겪어야 했던 끔찍한 경험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의 처절한 경험과 고통은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로 여겨졌다. 신체나 정서상의 심각한 손상(외상, 트라우마)을 입은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그것에 대한 공포감이나 부정적인 감정이 계속 고통스럽게 떠올라 재경험되며 유사한 상황과 조건을 회피하고, 지나친 각성상태나 반대로 지나친 위축이 지속되어 사회적 삶을 영위하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참혹한 전장에서 본인이 심각한 죽음의 위협에 노출되었거나, 동료나 타인의 죽음이나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적나라하게 노출된 군인들의 사회 심리적 병리를 다루는 과정에서 많이 다루어진 질환이다. 매년 9만 명이 넘는 노동자가 병들고 다치고 2천 명 가까이 죽어가는 오늘 우리 사회의 일터는 참혹한 전장과 다름없다. 세상을 파괴하는 전쟁터의 군인이 아닌,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터의 노동자가 죽음의 경험과 공포에 시달리는 그로테스크한 현실.

그는 자신의 증상을 어떻게 다루어야할지 그리고 그것이 산재 요양의 대상이 되는지도 몰랐으나 세상일에 밝은 지인의 권유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나를 찾았던 것이다. 다행히도 수년전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에 대하여 산재로 인정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의 인식 속에 산재는 프레스에 손가락이 절단되고, 건설 현장에서 떨어져서 뼈가 으스러지는 사고성 재해로만 자리 잡혀 있다. 제도는 조금씩 진전했고, 이제는 사고가 아닌 고된 노동으로 인해서 발생한 골병인 근골격계 질환, 일터의 고단함과 모진 관계에서 비롯되는 정신 심리적 문제들에 대해서도 산업재해로 보상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건강문제를 모두 아우르기는 여전히 부족하기 짝이 없지만 그나마 진전된 제도적인 해결책에 대해 알지 못해서 혹은 여러 가지 사회적 장벽에 가로막혀서 요양과 보상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도 부지기수이다. 사회의 관심과 노력이 여전히 부족한 탓이다.

오늘 또 쓰러지고 죽어간다. 다들 그렇게 열심히 일했고 그렇게 다치고 스러져 갔다. 칠순이 넘긴 주물 노동자도, 40대 건설노동자도, 30대 비정규 조선노동자도, 지하철 문을 고치던 열아홉 노동자도 열심히 일했고 그리고 쓰러졌다. 폭발사고로, 떨어지고, 끼이고, 깔려서 그렇게 쓰러져 간다. 그러나 노동자들을 다치고 상하게 하는 시스템 안에 그들에 대한 기억을 담을 공간은 없다. 몸서리쳐지는 죽음에 대한 기억도 부실한 안전관리 시스템의 책임자가 아니라, 바로 옆에서 일하고 가까스로 죽음을 벗어난 동료 노동자들의 몫이라니! 더는 죽게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한다. 그것을 목도한 노동자들에게서만 재경험되고 각성되고 현장을 회피하게 두어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로 남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공공의 논의 속에서 같이 재경험하고 각성하여 일터가 죽음의 전장(戰場)이 되는 것을 막아야한다.

그의 삶의 여정과 고통에 대해 듣고 공감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리고 산재 요양 신청을 위해 필요한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해 드렸고, 현재의 증상에 대한 치유를 위해서 정신건강의학과 상담도 연결하도록 했다. 그는 아들뻘 의사에게 연신 고맙다 인사했지만 나는 미안함이 더할 뿐이다. 그의 죄책감과 심리적 고통은 언제쯤 가실지 모르는 일이며 산재는 인정받을지언정 그 고통의 시간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될 리도 만무하기 때문이다.

30년 전 열다섯 살 소년 노동자 문송면의 수은중독을 제대로 진단해 내지 못한 임상의료 시스템의 문제와 수많은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이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병들고 죽어 가는 과정에서 제 기능을 못한 안전보건제도의 문제를 통감하며 지금의 직업환경의학(산업의학)전문의 제도가 도입됐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을 이렇게 번듯하게 먹고살게 해 주는 직업은 당연히도 정당한 건강권을 요구하고 싸운 노동자들 덕으로 만들어진 사회적 일자리이다. 그러기에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공공의 직무가 있는 것이다. 주로 임상을 하는 의사들은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을 질병 예방에 주 역할을 하는 비 임상의로 보는 경우가 많다. 직업환경의학에서는 노동현장이 필드이고 임상현장이다. 예방이라는 것도 질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1차 예방, 질병이 발생하면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하는 2차 예방, 그리고 질병이 치유되고 온전하게 재활하여 복귀하도록 지원하여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3차 예방이 있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몫은 고된 노동과정을 들여다보고 그 결과로 드러난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며, 그러한 문제의 원인을 드러내고, 치유와 예방의 길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다. 동료 노동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도 그로 인해 노동자들이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로 고통 받게 되는 일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진료실을 나서는 칠순 노동자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만 주어 삼킨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터이다.

‘당신 탓이 아닙니다. 이제 그 기억을 놓아주세요.’

<수상소감-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 류현철 과장>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 류현철 과장

누구가의 고통스런 경험을 드러내어 쓴 글로 상을 받게 되니 수상의 영광과 더불어 복잡스런 감정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산재로 승인되어 알려진 것만으로도 1년에 9만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일어난 사고로 다치고 일터에서 질병을 얻고 있습니다. 그리고 2천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그로 인해 사망하고 있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도 화력발전소 협력업체에서 일하던 청년노동자 김용균씨가 안타깝게 죽어갔습니다.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습니다.

의사라는 직업은 고통과 죽음을 마주하는 일입니다. 어떤 의사든 막을 수 있었던 환자들의 고통과 죽음을 대할 때 좌절감과 열패감을 느끼게 됩니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로서 일터에서 다치고 죽어가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좌절감이나 열패감만으로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글을 씁니다. 의학기술이 진보하더라도 환자에게 직접 닿아 쓰일 수 있는 의료전달체계가 제구실을 해야 건강을 지킬 수 있듯이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사회적 시스템과 의식이 같이 진전해야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있으리란 생각으로 기록하고 드러내봅니다.

쾌적하고 건강한 일상을 누리고자 사람들은 직업을 얻고 일을 하는 것일진대, 일터 자체가 위험하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공간이 되도록 두어서는 안 됩니다. 부족한 글이 이번에 주시는 상으로 세상에 알려지고, 우리 사회가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함께 기억하고, 동료 노동자들이 고통의 기억을 넘어설 수 있도록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데 작은 도움이 된다면 비로소 온전히 수상의 기쁨을 누릴 듯 합니다.

강인하신 어머니, 현명한 아내 주신, 삶의 원천이 되는 아들 명현과 가족들, 그리고 직업환경의학 의사로 제대로 사는 길을 일러주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공공병원 역할 찾기에 힘쓰는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 동료들과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헌신하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청년의사  webmaster@docdocd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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