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 화순전남대병원 외과 교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아이들을 모두 재운 뒤 소파에 몸을 파묻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문득 아내에게 물었다.

“뭔데?”

“만약에 결혼 날짜를 받아 둔 신랑이 대장암 3기로 진단되면 결혼을 할 수 있겠어?”

“대장암 3기면 어느 정도인 건데?”

글쎄, 어느 정도라고 말하기는 참 애매하다. 요즘은 원체 수술 방법이 발달하고 항암치료도 좋아져서 생존율이 많이 높아지긴 했으니까. 게다가 3기도 3기 나름이라, 어떤 경우는 5년 생존율이 80퍼센트에 달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50퍼센트도 채 안되기도 하니, 질문이 잘못되었다.

“5년 안에 죽을 확률이 50퍼센트 정도 된다면?”

“그건 좀 그렇지. 반반 확률에 인생을 거는 거잖아.”

“거기다가 만약 자식들에게 유전될 확률이 50퍼센트인 유전성 대장암이라면?”

“그건 안 되겠다. 일단 집안에서 반대해서 안 될 걸?”

내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랑이 밥 먹여 주지는 않으니까. 육아에 치인 현실 부부의 입장에서 배우자의 질환이란 극복해야 할 산이 너무나 많은 거대한 장애물이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어느 여름날, 외래 진료실 문을 밀고 젊은 여자가 혼자서 들어왔다. 환자가 내민 소견서에는 대장암으로 진단되었으니 고진선처를 바란다는 건조한 문장이 여지없이 박혀 있었다. 생명의 소중함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냐마는, 내 나이 또래의 젊은이가 대장암 진단을 받고 내원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더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행히 원격전이는 되지 않았지만 CT에서도 커져 있는 림프절이 여럿 보이는 것으로 보아 3기일 가능성이 높은 에스상결장의 진행성 대장암이다. 안타까움을 애써 숨기고 환자와 상담을 시작했다. 대장암입니다. 수술을 해야겠네요. 수술은 복강경으로 진행이 될 것이고, 장을 일부 잘라내고 연결해 줄 겁니다. 늘 하는 수술이니 어렵지는 않을 거예요. 입원은 수술 전후로 열흘 정도 하게 될 겁니다. 수술은 하루 이틀이 급한 건 아니지만 당연히 빠르면 빠를수록 좋으니 가능한 빨리 일정을 잡아 볼게요.

“저, 수술 하면 괜찮은 거죠?”

괜찮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의학은 세상에 없다. 괜찮아질 가능성이 존재할 뿐.

“괜찮아질 거라고 굳게 믿고 최선을 다해야죠.”

타고난 성격이 쾌활한 것인지 무거운 얘기를 하는 중에도 참 밝다. 하지만 그 속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두려움을 숨기고 있는지는 들여다보지 않아도 훤하다.

“저기…수술 끝나면 항암치료도 해야 하나요?”

“수술을 하고 조직검사 결과를 봐야 하겠지만 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요. 보통은 수술하고 퇴원한 뒤에 한 달 정도는 쉬었다가 항암치료를 시작합니다.”

“아…네. 그럼 혹시 항암치료를 몇 달 연기할 수는 없나요?”

“그건 좀 어렵습니다. 항암치료는 적절한 시기를 놓쳐버리면 소용이 없어지거든요.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러시는 거죠?”

“제가 사실은 가을에 결혼을 하거든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다. 혼자 들어오길래 당연히 싱글일 것으로 생각했지. 외래 중에 그런 경우가 잘 없는데, 너무나 갑작스런 상황에 적절한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대화가 중단되었다. 공감의 기술이고 뭐고 아무리 배우고 익혀봐야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당황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환자와 얼굴만 멀뚱멀뚱 마주보다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아…그러시군요.”

“저, 괜찮겠죠?”

괜찮아질 거라고 믿고 최선을 다해야죠. 환자들이 수술하면 괜찮아지는지를 하도 많이 물어보니 미리 준비해 둔 모범답안인데, 아까는 아무 생각 없이 쉽게 내뱉은 말이 입 밖으로 쉽사리 나오지를 않는다. 이 환자, 정말 괜찮은 걸까?

“그런데 예비 신랑은 같이 안 오셨네요.”

“아직 말을 못 했거든요. 이제 해야죠.”

점입가경이다.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결혼 전에 건강검진 결과를 주고받는 것이 흔해진 시대에, 가족 중에 암 환자가 있어도 결혼의 결격사유가 되는 이런 시대에, 예비 신부 본인이 대장암 진단을 받은 것을 신랑 측에서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수술 당일이 되었다. 전날 회진을 갔을 때 환자는 병실에 혼자 있었다. 예비 신랑은 어디로 간 것일까? 혹시라도 헤어진 것은 아닐까? 궁금하긴 한데 차마 물어볼 수가 없다. 괜히 물어봤다가 헤어졌다는 대답이라도 듣는다면 그 뒷감당을 어찌할 것인가? 환자는 수술장 침대에 누워서도 여전히 쾌활하다. 모자와 마스크 사이로 눈만 내놓은 내 얼굴을 용케도 알아보고 교수님 잘 부탁한다며 얼굴 한가득 미소를 짓는다. 그래서, 결혼은 하시기로 한 거예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애써 집어삼켰다. 지금 내 앞에서 마취약에 취해 막 잠이 든 여인이 아침 드라마의 비련의 여주인공은 부디 아니어야 할 텐데.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보호자 상담실로 들어서니, 건장한 남자 둘이 상담실을 차지하고 있다.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저는 오빠이고, 이쪽은 남편 될 사람입니다.”

남편이란다. 만세! 보호자 설명이고 나발이고 남편이라는 자의 손을 잡고 만세부터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려운 결정 하셨습니다. 진정한 사랑꾼이시군요. 아차, 여기는 그런 잡담이나 나누자고 마련된 자리가 아니지.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수술은 별 탈 없이 잘 끝났습니다. 아마 일주일 정도면 무리 없이 회복하실 수 있을 것이고요. 외래에서 설명 드렸던 대로 항암치료는 아마 필요할 겁니다. 항암치료는 퇴원하고 한 달 정도 쉬었다가 시작하게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남자들은 연신 고개를 숙였다. 여느 때와는 다르게 만감이 교차했다. 이들의 예쁜 사랑을 위해, 정말 괜찮아야 할 텐데. 정말.

3주가 지났다. 수술 후 무사히 회복한 예비 신부가 퇴원했다가 첫 외래로 오는 날이다. 예비 신랑과 같이 올 줄 알았더니, 여전히 혼자다.

“남자친구가 평일에 시간 내기가 좀 어려워서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내가 궁금해 하는 걸 눈치챘는지 먼저 대답하고는 멋쩍게 웃는다. 나도 따라 웃으며 퇴원하고 불편한 곳은 없었는지 식사는 잘 하고 대변은 잘 보는지 물었다. 밥도 잘 먹고 아무런 문제도 없었단다. 다행이다.

“3기 대장암이고요, 주변 림프절로 전이가 비교적 많은 편이라 항암치료가 매우 중요합니다. 젊으시니까 항암치료는 충분히 견디실 수 있을 거예요.”

이런 저런 설명을 읊으며 병리검사결과를 살피는데 아뿔싸, MLH-1 면역화학염색결과가 음성이다. 부랴부랴 현미부수체불안정성 검사 결과를 살폈더니 역시나 MSI-H이다. 유전성대장암이 의심되는 상황. 분명히 가족력은 없었는데 하고 차트를 다시 뒤져 보니 부모님을 사고로 일찍 여읜 것으로 되어 있다. 허 참,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인가. 설명을 하다 말고 한참을 모니터만 뚫어지게 쳐다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불안한 기운을 감지한 환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알리지 않을 방도가 없다. 아니, 알리지 않으면 안 된다.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다시 말문을 열었다.

“병리 검사 결과를 보니 유전성대장암의 가능성이 꽤 있어요. 젊은 나이에 대장암이 생긴 것도 유전자 이상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차마 환자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설명을 하다 힐끔 환자의 눈치를 살폈다. 동요하는 기색이 얼굴에 살짝 드러나는 듯하다가 금세 사라졌다.

“우선은 유전자 검사를 해 봐야겠네요. 유전성대장암일 경우 남아 있는 대장에 다시 암이 생길 확률이 상당히 높고, 자궁내막암이라든가 다른 종류의 암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자식들에게 유전될 확률은 반반이에요.”

“네….”

내가 얼마나 엄청난 말을 내뱉고 있는 것인지 과연 알아듣기나 한 것일까? 예비 신부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수술을 잘 해주셔서 고맙다며 특유의 쾌활한 미소를 짓고 진료실을 나갔다. 닫힌 진료실 출입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예비 신랑이 같이 오지 않은 것이 다행일까 불행일까. 앞으로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아직 외래 대기 환자가 한참 남았는데 생각이 많아졌다. 제 시간에 진료를 마치기는 글렀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 지나가고 따스한 봄바람과 함께 예정대로라면 이제는 새색시가 되었을 환자가 외래 문을 밀고 들어섰다. 수 개월간의 항암치료를 견디고도 얼굴 가득 미소는 여전한데, 또 혼자 왔다. 아 제발 좀. 담당 교수 늙는 꼴 보기 싫으면 보호자하고 같이 좀 다니세요. 그래서, 결혼은 하신 거죠? 남편은 오늘도 바쁘셔서 못 오신 거죠? 제발 그렇다고 말해 줘요, 제발.

“항암은 힘들지 않으셨어요?”

정말 궁금한 건 물어보지 못하고, 의례적인 인사부터 했다. 안 힘들었을 리가 없는 걸 알면서도 으레 그렇게 물어본다. ‘많이 힘드셨죠’ 토닥토닥 뭐 이런 인사치레랄까.

“생각보다는 견딜 만 했어요.”

“다행이네요. 현재까지의 경과는 좋아요. 앞으로도 계속 정기적으로 검사를 하면서 재발하지 않는지 여부를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환자가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선생님. 뭐 하나만 여쭤 봐도 될까요?”

“네, 그럼요.”

“임신은 언제부터 해도 될까요?”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 졌다. 그날 상담실에서 보았던 듬직한 예비 신랑은 역시 진정한 사랑꾼이었던 것이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를 혼잣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기왕 참으신 거 몇 달만 더 참읍시다. 대개는 문제가 없긴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으니까. 다음 번 검사 결과 보고 이상 없으면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계획하자고요. 아시겠지요? 새색시는 고개를 끄덕이며 환한 미소를 남기고 외래를 나섰다.

그래요. 확률은 확률일 뿐입니다. 분명 괜찮을 거예요. 당신도 괜찮을 거고, 당신 남편도 괜찮을 거고, 앞으로 생기게 될 새 생명도 물론 괜찮을 겁니다. 다 괜찮을 거예요. 전부 다. 그렇게 믿어야지요. 새색시가 남기고 간 희망의 기운이 진료실을 가득 채웠다. 힘이 솟는다. 왠지 오늘 외래 진료는 시간 내에 순조롭게 끝날 것만 같다.

얼마 전, 한창 바쁘던 의과대학 학생 시절 일기를 뒤적이다 이런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난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낙서 한 장 갈길 여유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무엇인가를 쓰고 싶다는 욕구는 항상 제 안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고 하지요. 어느 날 문득, 환자와 함께 울고 웃는 소중한 기억들이 시간이 지나며 잊혀지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쁨과 환희, 분노와 좌절을 그때그때 기록해 두어야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쓴다는 것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었습니다. 투박하고 건조한 문장밖에 지어내지 못하는 좌뇌형 인간인 나 자신이 원망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썼습니다. 외과의사로서의 고뇌와 진심을 글이라는 형태에 담아 두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심사위원 분들께서 그 진심을 읽어 주신 것 같아 뿌듯합니다. 이번 상은 외과의사를 평생의 업으로 선택한 초심을 잃지 말라는 격려의 뜻으로 알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항상 기쁨과 새로운 영감을 주는 사랑스런 아이들과 영혼의 파트너 아내에게 특별히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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