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환자경험평가라는 이름의 새로운 평가가 도입된다. 이를 기획했고 주관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달까지 전국 권역별로 500병상 이상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했고 지난달 22일 서울이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이날 설명회는 예정시간보다 30분 가량 일찍 끝이 났다. 여느 설명회에서는 보기 드물게 요양기관 관계자들의 질문이 적었다. 아니, 적었다기 보다는 말문이 막혀 못했다는 표현이 나을 듯싶다.

병원들이 ‘전원하는 환자들에게 병원 정보를 줄 건지’, ‘설문 문항에 대한 설명방식이나 본인확인 방법’, ‘인센티브 가중치’ 등을 물었지만 되돌아오는 건, ‘검토 중이다’, ‘계획된 바 없다’, ‘향후 논의할 것이다’가 전부였으니까.

심평원이 이날 공개한 내용은 평가대상 기관, 환자 수, 설문문항이 전부다. 정작 병원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평가결과 공개여부, 범위, 방법은 확정되지 않았기에, 되돌아오는 답변은 한정됐고, 병원 실무진은 질문을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대신 병원으로 돌아가서 긴급회의를 소집해 머리를 쥐어짜는 상황이 벌어졌다. 평가는 코 앞인데 심평원은 병원에서 하던 만족도 조사와 경험 평가는 엄연히 다르다고 하니, 어디까지 차이가 있는지, 또 어떻게 대비해야하는지 자체 연구(?)를 해야 하는 것이다.

병원들이 고민하는 점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환자 연락처 정보 제공부터 문제다. 환자 1명 당 몇 개의 연락처를 줘야하는지, 병상규모에 따라 많게는 2,000명이 넘는(응답률 감안 10배수 요구) 환자의 연락처를 언제 다 확인하고 동의를 구할지, 이 과정에서 환자 민원은 어떻게 대응하고, 행여나 발생할지 모르는 정보누출로 인한 법적 책임책임은 누가 지는지, 중증도 보정은 어떻게하는지 등 나열하면 너무 길어 생략한다.

또 앞으로는 점수를 잘 받기 위해 환자에게 어떤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지, 연령과 성별을 막론하고 그 많은 환자들의 개인적 취향과 사정, 진료과목 간 특성을 충족시키는 의료서비스는 무엇인지도 고민한다.

심지어 병원 내 환자경험(만족도)을 높이는 프로그램까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한해 5,000억원이 배당된 의료질평가지원금 때문이다. 심평원은 2017년 이후 ‘진료과정의 환자경험평가’를 의료질평가 항목에 추가 예정인 지표에 포함했다. 올해는 500병상 이상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환자경험을 평가하니 당장의 일은 아니지만, 머잖아 환자경험이 반영될 것이라면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 한다는 소리다.

그런데도 심평원은 향후 계획도 정해지지 않은 평가를 우선 도입하고 있다. 그간 적정성평가에 대한 수많은 지적을 받았고, 대대적인 변화도 약속한 심평원이지만 이번 평가에는 의지가 반영되지 않은 듯하다.

아무리 의료계에서 반대한들, 하겠다는 심평원 입장은 완고했고, 심지어 확정되지 않은 계획을 심평원이 정해놓은 타임테이블에 맞도록 일단 시행하고 본다.

심평원은 기존 데이터가 없어 자료수집을 하는 단계고, 그 결과를 분석해서 이른바 해외에 버금가는 환자경험평가 결과가 나오는지 봐야 하고, 그게 맞게 평가등급을 나누고, 공개여부도 검토해야 한다고 한다.

이 말대로라면 아직은 환자경험평가는 검토해야 할 게 너무 많다. 그렇다면 적어도 ‘본 평가’라는 이름 대신 ‘시범 평가’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아직은 공개하지 않겠다고 해야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말 많았던 적정성평가의 틀에 환자경험을 포함부터 시키면 그 결과도 장담할 수 없다. 병원은 어쩔수 없는 평가에 체념한 채 결과만 잘 받으려는 노력을 하지, 환자별 맞춤형 의료서비스에는 힘을 쏟을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환자경험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의료기관도 환자도, 정부도 모두 환자가 중심이 돼야한다는 것에 공감하는 만큼 그 질을 높이기 위한 적절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그 지원 중 하나가 평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심평원이 평가의 목적과 그에 부합한 과정을 수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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