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 앞두고 병원들 속수무책…"안개 속 걷는 느낌"vs"지금 아니면 언제 하나"

“환자중심성은 다른 의료의 질 영역보다도 국민들에게 갖는 의미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환자경험 평가를 하기 위해 서울대병원에 위탁 수행한 보고서 <환자중심성 평가모형 개발 연구>에 인용된 문구다.

보고서는 여타 외국처럼 국내에도 ‘환자 중심성(Patient-centeredness)’을 기반으로 한 요양급여적정성 평가를 시작해야 한다면서도, 이 평가는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환자경험 조사는 의료기관 수준에 따른 보정이 필요하고, 환자의 치료만족도에 따른 경험 보고의 차이, 결과 공개 시 의료기관의 수용성 등 고려할 점이 많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심평원은 이 보고서를 기초로, 전국 10개 의료기관을 선정해 예비평가를 하고, 올해부터 당장 본 평가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나 환자경험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실상을 들여다 본 병원들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36개의 적정성평가 중 항목 하나가 또 늘었구나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평가의 준비부터 진행, 결과, 개선까지 모든 과정이 병원들에게는 자욱한 안개 속을 걷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병원들이 너도 나도 환자경험과 환자만족, 환자공감 등을 위해 변화의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이 시대에서, 유독 심평원의 환자경험 평가에만 의료계가 반대를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심평원이 그 의문에 답했다.

지난달 23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개최한 제1차 환자경험평가 설명회에 수많은 병원 관계자들이 참석해 강의를 경청했다.

많게는 2500명, 환자 연락처를 확보하라…민원도 병원 몫

지난달 심평원은 500병상 이상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제1차 환자경험 적정성평가 설명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해당 병원들에게 “병상 수에 따라 적게는 150명부터 많게는 250명의 환자에 대한 설문조사를 성공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곧 병원마다 10배 많은 1,500명부터 2,500명까지 환자의 연락처 정보를 심평원에 제출해야 한다는 의미다. 통상 전화설문의 응답 성공률이 10%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목표치의 10배에 해당하는 전화 시도가 필요하다는 것.

특히 환자 당사자의 전화연결이 즉시에 안될 수 있어, 그 외 2개 총 3개의 연락처를 제공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돌면서 병원들은 고민에 빠졌다. 전화설문에서 연락처는 필수항목이지만, 이를 심평원에 제출하기 위해서는 별도로 환자들에게 자료를 제공한다는 동의서를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병원들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대다수의 병원들이 환자 입원 시 환자정보와 보호자 연락처 등을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환자 대신 간병 또는 연락 가능한 보호자의 연락처만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병원들은 심평원이 요청하는 명단의 연락처를 주려면 당사자들에게 재확인을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경기도 A병원 관계자는 “입원환자들에게 연락처를 받긴 하지만 100%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다. 환자에게 2~3개의 연락처를 달라고 했는데 안주면 우리는 제공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면서 “이미 원무과와 상의해봤는데 요즘에는 집전화도 없는 경우가 많은 데다 보호자를 한명 더 세우기도 어렵다고 한다. 또 고령환자는 퇴원해서 요양병원으로 가는 경우도 많아서 조사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별도로 동의를 구하지 않는다고 하면 법적 논란과 민원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게 병원들 생각이다. 현재 병원이 보유한 연락처는 입원진료를 위해 사용되는 목적으로 요구한 것인 만큼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배될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심평원의 말만 듣고 환자 연락처를 건네 줬다가 왜 번호를 알려줬냐는 민원이라도 생기면 이 또한 고스란히 병원의 몫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A병원 관계자는 “환자들의 별도 동의없이 자료를 제공해도 되는지도 내부적으로 별도의 자문을 받아야 할거 같다”면서 “만약에 심평원으로부터 전화를 받고는 왜 연락처를 줬냐고 따지게 되면 우리도 나름의 근거를 제시해야 하지 않겠나. 평가는 심평원이 주관하는데 환자들의 민원을 받는 것은 오롯이 병원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산의 B병원 관계자도 “입원 약정서도 쓰는데 전화번호 제공을 위한 동의서도 쓰라고 하면 환자가 짜증을 낼 것이다. 또, 그동안 진료나 교육목적으로 (정보제공을)동의했는데, 번호를 병원에서 알려준 것을 알면 민원도 병원에 제기할 거다. 그러면 우리도 대응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찾던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심평원은 의료기관에서는 해당 환자의 연락처를 별도의 동의를 구할 필요 없이 보유된 번호만 제공하면 된다고 밝혔다.

심평원 관계자는 “의료기관에서 최대한 부담이 없도록 있는 정보를 그냥 주기만 하면 된다”면서 “법률 검토를 한 결과, 환자경험평가를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정보가 전화번호이기 때문에 정보제공자의 동의가 필수적이지 않으며, 심평원의 설문조사 위탁또한 제3자 정보제공에도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를 들어 성공콜 200건이 필요한 병원은 총 2,000명의 연락처가 필요하지만, 한번에 제출이 어려울 수 있어 2주에 한번씩 리스트를 병원에 제공하면 해당 환자 정보를 주면된다”면서 “예비평가 때에 자료제출이 어렵다는 사례는 없었고, 심평원이 해당청구자료의 접수번호,생년월일, 성별 등의 정보가 담긴 리스트를 주면 이를 매칭해 연락처를 보내주면 된다”고 강조했다.

시험 범위는 나왔는데 준비는 어떻게?

자료를 제공했다고 해도 평가가 온전히 될지도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병원마다 처한 상황이 다른데 일률적인 지표로, 그것도 환자의 경험을 평가한다는 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실제 이번 평가의 대상이 될 100여개의 병원들은 지역적 특성과 환자군, 인력 및 시설 등의 환경적 차이 즉, 중증도 보정에 관심이 높다.

이에 비해 평가지표는 병원별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도권 대형병원에 대한 환자의 높은 브랜드 충성도, 중증도가 낮은 병원의 환자 설문 결과값이 좋게 나올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의료계 C 관계자는 “예비평가를 했던 기관들 중에서 지역의 병원은 상대적으로 점수가 낮은 것으로 알고 있다. 지역적인 특성이 일부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한 보정없이 평가를 하면 상대적인 손해를 볼 수 있다”면서 “또 고령의 환자이거나 중증도에 따라 환자 본인이 아닌 보호자에게 의료진이 치료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경우도 많다. 당사자에게만 평가를 한다는 것은 왜곡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세부 평가지표에 대해서도 불만이다. 심평원은 그간 환자경험평가는 병원들이 자체적으로 했던 환자만족도 조사와는 다르다며 주관적 판단을 최대한 배제했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정작 24개의 평가지표를 받아 본 병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환자만족도 조사와 환자경험의 차이가 무엇인지', '존중과 예의, 공평한 대우, 위로와 공감은 어떠한 행동을 보여줘야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인지', '환자가 병원 문을 열고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모든 과정을 하나로 묶어 경험을 평가하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준비를 해야 하는지' 등 병원들이 볼 때 심평원의 평가지표는 기존의 만족도평가 설문문항과 별반 차이가 없고 오히려 더 난해하다는 지적이다. 아예 만족도평가와 심평원 평가지표를 비교하고 단어 바꾸기 수준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A병원 관계자는 “사실 평가 지표도 기존에 하고 있던 만족도 조사의 내용과 거의 비슷하다. 환자경험을 물어본다지만 그런 항목은 보이지 않는다. 존중을 받았나, 경청했냐라는 것은 주관적인 판단이고 용어만 달라졌다”면서 “예를 들어, 회진을 얼마나 잘돌았냐 등 수치가 반영될거같았지만 그것도 명확하지않고, 전체 병원에서의 평가가 하나로 나와서 어느 부분의 문제인지 파악도 어려울거 같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러한 평가지표를 전화설문으로 진행했을 때 과연 적절한 답변이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이들도 있다.

심평원은 1명당 전화설문에 소요되는 시간은 6분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병원 자체적으로 모의 설문을 했을 때 용어를 제대로 이해시키기도 어려운 사례가 적잖게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문항별 의미 중복이 상당수 있어서 실제 설문에 소요되는 시간은 길어질 것이며, 정확한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의료계 D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설문을 할 때에는 그 이유가 있다. 일종의 가설을 두고 이에 대한 문제점을 짚을 수 있는 항목을 질문한다. 그래야 현황이 파악되고 개선책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존중과 예의를 갖췄느냐 등을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산술적으로 구체화 할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의도 어려워 실제 설문을 할 때 대답을 듣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심평원은 환자의 전반적인 경험을 빈도로 표현하려고 했으나 완벽한 계량화에는 한계가 있다면서도 평가를 통한 병원의 개선이 이뤄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또한 평가 지표 역시 적지않은 시간동안 전문가들과 상의했고 예비평가 등을 통한 타당성을 어느 정도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심평원 관계자는 “환자가 본인 입원진료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추천하겠는가라는 문항은 만족도 차원의 질문이지만, 그 외에 의료진이 주의 깊게 들었는지 등 경험을 빈도로 측정하는 문항”이라며 “완전히 객관적인 것이 아닌 보다 객관적인 지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건의료서비스 이용자의 최종 경험과 서비스 성과를 평가할 때 필요한 문항으로 약간 주관성은 있지만, 자원 공개에 활용하고 의료질 향상이 필요한 기관에게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며 “실제 예비평가에서도 결과를 보고 개선이 필요한 점을 인지하는 사례가 있었다. 이러한 경험이 쌓이면 환자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경험 점수 향상, 어떻게 가능한가...평가위한 편법 불가피

무엇보다 이 평가가 환자경험이라는 의료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느냐라는 점에 회의적인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평가를 통해 질을 개선한다는 취지와 달리, 도출된 결과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도 모호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은 심평원의 평가 자체가 개선의 대상인 목표를 분명히 하지 않았고, 국내 사정과 환경을 감안하지 않은 평가를 위한 평가를 우선, 시작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D관계자는 “미국 메디케어는 DRG제도로, 의료기관은 고정된 비용에 서비스량을 줄여 이익을 내려고 하기 때문에 환자경험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지만, 반대로 우리나라는 행위별 수가로 의사가 최선의 진료를 더 하는 문화”라면서 “그럼에도 낮은 입원료 수가에 의료인력이 부족해 발생하는 (환자경험도) 문제를 평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환경의 차이를 감안하지 않은채 외국의 평가지표를 번역해 도입해야한다는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병원들 사이에서는 평가 점수만을 잘 받기 위한 편법을 쓰는 부작용도 생길 것으로 예상했다. 이를테면, 모 통신사에서 AS이후에 전화 설문 시 ‘매우 만족한다’라고 대답해달라고 부탁을 하거나 설문 참여시 선물을 주는 등 불필요한 노력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

심지어 평가를 해줄 환자군을 병원이 임의로 조정해 유리한 답변을 유도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B병원 관계자는 “평가를 한다니 피해갈 수는 없고 지표는 만족도와 비슷한거 같은데 준비는 해야겠고 병원의 고민이 많다”면서 “사실 이번 평가를 두고 병원들 중에는 환자를 별도로 선별할 전산적인 방법이 있는지를 고민한다거나 서울 수도권에서는 환자를 고를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이처럼 문제점이 많이 발생할 것으로 보이는 이 평가에도 불구하고 병원들이 편법을 불사해서라도 참여하려는 이유는 따로 있다. 사실상 참여가 아닌 당연평가인데다, 이 평가가 향후 전체 병원으로도 확대될 것이며 수천억원이 달린 의료질평가지원금을 받을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의료계에서는 이같은 평가가 개별 병원들의 불필요한 인적, 물적 낭비를 초래하고, 기관간 줄세우기와 환자의 대형병원 쏠림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병원들 불만 불 보듯 뻔해...재검토 필요하다 주장도

이에 지금이라도 이 평가를 중단하고,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병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개별 병원들이 민간 설문조사를 의뢰하면서 많게는 수천만원의 비용까지 투자하는 등 환자경험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일종의 평가 매뉴얼을 제공하는 식으로 보조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심평원이 하고 있는 QI사업을 확대해 질 향상에 참여하는 기관에 인센티브를 줄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다.

D관계자는 “평가 문항 중에 환자에게 치료를 하기 전 다른 의견을 묻거나 투약의 적정성을 묻는 등 중요한 항목도 있다. 하지만 그 외에 중복된 설문문항이나 불필요한 문항도 적지 않다”면서 “과연 어떠한 임상 질을 올려야 환자경험이 개선된다는 구체적인 목표와 방법 등의 구조가 설계돼야 한다. 지금이라도 지표의 정확성과 타당성을 재검토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설문 또한 심평원이 외부 전문기관에 위탁하는데 이로 인해 들어가는 비용대비 효율이 과연 높을지 의문”이라며 “의료기관의 수용성과 평가의 객관성, 이로 인한 개선 효과 등을 고려할 때, 이 평가가 필요한지 아니면 기존의 다른 적정성평가의 개선과 보완이 우선돼야할지도 원점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C관계자 역시 “무엇보다 환자경험평가를 한다고 해도 병원은 기존의 만족도 조사를 할 것이다. 병원의 행정적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평가를 대체할 수도 없으면서 많은 변수를 충분히 보정하지 않은 채 진행부터 하는 것은 문제다”라며 “특히 이 평가를 굳이 심평원의 적정성평가 틀 안에서 진행하는 것이 타당한지도 의문이 든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심평원은 “아직 평가 결과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결정된 바는 없다. 평가결과를 종합화 할지 여부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장기적으로 병원급으로 평가를 확대하고 지표가 안정화 되면 이를 활용하는 방안이 마련되겠지만, 최소한 2번의 평가를 한 뒤에야 평가값의 비교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평가 대상이 되는 기관들은 적어도 기존의 평가항목 이외에 환자경험 등의 질 향상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곳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이후에는 평가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 타 병원이 벤치마킹을 하는 등 준비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 관계자는 “그동안 의협, 병협 등 관계자를 수없이 만났지만 관계자마다 의견이 달랐다. 행정적 부담이 있다고도 하지만 개별적인 조사를 했던 병원 입장에서는 이익이 있다고 보기도 한다”면서 “결코 준비시간은 짧지 않았다. 물론 부족하지만 여러 의견을 충분히 듣고 출발한 것이다. 과연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언제 시작할 수 있을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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