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병원별 환자경험평가 시작...표본 수 적어 점수 왜곡 가능성 제기
병원 줄세우기 시작되면 혼란 가중...평가 앞두고 전문가들 우려 커

3개월 뒤인 7월, 의료기관은 새로운 평가를 받아야 한다. 첫 주자는 500병상 이상 규모의 전국 100여개 의료기관으로, 병원별로 ‘환자경험’이라는 점수표를 받게 된다.

대상이 된 의료기관에서 단 하루라도 입원한 적이 있는 만 19세 이상 성인이라면, 퇴원한 지 8주 이내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위탁한 전문설문조사업체로부터 전화를 받을 수 있다.

대략 1만5,000여명의 퇴원 환자가 대상이며, 전화로 총 21개 문항에 대해 4지선다형으로 대답하면 된다.

“담당 간호사는 귀하를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어 대하였습니까? 1번, 전혀 그렇지 않다. 2번, 그렇지 않다. 3번, 그랬다. 4번, 항상 그랬다.”

“다음 질문입니다. 담당 간호사는 귀하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 주었습니까. 1번, 전혀 그렇지 않다. 2번, 그렇지 않다. 2번, 그랬다. 4번, 항상 그랬다.”

이런 식으로 19개 문항에 대답(4지선다형)하고 나면, 병원의 입원 경험과 추천여부를 0점부터 100점 내에서 점수를 주는 것으로 평가는 끝난다.

심평원은 인터뷰이 1명 당 총 6분 정도면 설문조사가 끝나고, 그 결과를 모두 전달 받아서 환자구성, 영역별 산출 점수에 따라 최종 병원별 평가결과를 도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결과는 기본적으로 병원에게는 자신들의 점수를 제공하지만, 타 의료기관의 결과 공개여부, 공개 범위나 방법 등에 대해서는 의료평가조정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표본 수 적어 혼란만 초래"

하지만 이를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상식에 벗어난 평가이며, 이대로 진행했다가는 대혼란을 초래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환자경험 평가가 개별 병원 단위로 이뤄지는 데다 그 표본수도 병원 1곳당 최대 250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환자경험 평가는 2017년 3월말 허가(신고)병상을 기준으로, 상급종합병원 및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이 대상이 된다.

의료기관별 설문조사 대상이 되는 표본의 크기는 병상 수에 따라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2017년 2월 허가병상을 기준으로 짐작해 보면, 먼저 ‘500병상 이상~1,000병상 미만’ 의료기관은 총 81개소로, 이들 기관은 기관 당 총 ‘150명’이 설문조사를 완료해야 하는 응답자 수, 즉 표본수다.

그 외 ‘1,000병상 이상~1,500병상 미만’인 12개소는 표본이 200명이고, ‘1,500병상 이상’인 의료기관 4개소는 250명이 표본이 된다.

이를 더하면 전체 97개 의료기관의 총 표본수는 1만5,550명으로 기관 당 평균 160명에 불과하다.

이에 전문가들은 병원 1곳당 적게는 150명, 많아도 250명의 입원 경험을, 6분짜리 전화응답만으로 병원 전체에 대한 환자경험을 평가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의료기관에서는 표본의 10배수(많게는 2,500명)에 달하는 환자 연락처(전화번호)를 심평원에 전달하는 것에 대한 행정적 부담을 호소해왔지만, 결과적으로는 이중 단 1/10만으로 병원의 성적표가 나오게 되는 셈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표본수의 한계로 인해 병원평가의 결과도 오류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를 테면 병원에서 퇴원 후 환자경험 평가 조사가 이뤄지기 전에 환자를 대상으로 설문문항과 유사한 내용을 물어본다거나, 좋은 평가를 하도록 유도한다고 치면, 그렇지 않은 병원과의 형평성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지역적 특성 때문에 고령의 환자가 많은 병원의 경우 설문 과정에서 인지장애 등으로 응답에 어려움이 있을 경우 불리한 답변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환자경험 평가를 도입하고 있는 외국에서도 표본수의 관리에는 엄격하다. 또 만에 하나 점수의 왜곡이 발생하지 않도록 의료기관과 조사기관의 역할과 책임, 관리 등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美, 결과 공개까지 6년...예비조사만 2회

실제, 심평원이 평가지표 등을 벤치마킹을 했다는 미국의 경우도 이렇다.

미국은 2006년부터 병원 입원서비스의 질 향상을 위해 HCAHPS(Hospital Consumer Assessment of Healthcare Providers and Systems) 조사를 시행하고 있다.

이 조사가 이뤄지기 위해 2002년부터 초안개발이 이뤄졌고, 2003년 6월 132개 병원(3개 주)을 대상으로 예비조사를 했다. 이후 지표 수정 및 보완을 위해 2003년에 시민대상 4개 도시에서 포커스그룹 인터뷰 6회, 375개 병원대상 추가 예비조사가 이뤄졌다.

이후 사전조사를 거쳐 2005년 미국 질 지표관리기구인 National Quality Forum(NQF)의 지표 승인 등의 절차를 거치는 등 6년 뒤인 2008년 3월에서야 Hospital Compare라는 웹 사이트에 평가결과가 공개됐다.

하지만 HCAHPS 조사를 위해서는 의료기관과 조사기관에게 조사 참여 대가 제공, 조사 예고, 좋은 평가 유도, 암시적 의미 전달 등 금지사항이 정해져 있으며, 환자 정보보호의 책임, 조사 결과에 따른 인센티브 기준, 병원별 최소 조사완료인원(300명) 등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조사 방식도 우편조사, 전화조사, 혼합조사 등 다양하게 이뤄지며, 전화조사도 1인당 5회의 전화통화 시도와 전화통화 10%에 대한 모니터링 등을 하고 있다.

영국의 NHS inpatient survey는 2002년부터 시작돼 2004년부터 해마다 조사를 하고 있는데, 2013년을 기준으로 총 6만2,443명의 환자가 참여했고 이중 49%가 응답했다.

기관별로는 1년 단위로 총 850명의 환자를 선정해 조사를 하는데, 조사 방법도 우편을 통해 18주간 진행된다.

그 외 캐나다도 Canadian Community Health Survey의 일부로 의료서비스 경험에 대한 만족도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수준이다. 조사는 2년 단위로 하되, 첫 1년은 전체 인구단위 대규모 수집, 이듬해 특정 건강영역에 대한 주 단위 조사가 시행된다.

조사한 인원은 122개의 Health region에서만 6만8,000명이 응답자였고, 지역주소 및 전화번호로 랜덤 샘플링을 통해 이뤄졌다(심평원, ‘환자중심성 평가모형 개발연구’ 보고서).

이처럼 나라별 평가의 세부 계획이나 방법 등에는 차이가 있지만 대상기관수나 환자수, 대상기간 등을 확대해 일정수의 표본을 확보하고 있으며, 평가의 목적(성과기반 지불제도 활용, 인센티브 지급 등)도 분명히 하고 있다.

국가단위부터 평가하라...시행여부 두고 전문가 의견 엇갈려

외국과 비교해 표본수부터 크게 차이가 나자 일각에서는 병원별 평균 160명에 대한 환자경험평가는 상식 밖의 평가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의료계 A 관계자는 “환자경험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250명을 조사해서 어떻게 병원(경험)평가를 할 수 있느냐. 상식적인 평가가 돼야 한다”면서 “병원별로 조사를 하게 되면 결국 병원 줄세우기가 돼서 조사의 목적이 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A 관계자는 “병원마다 환자구성이 다 다를 수 있는데 250명으로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의 환자경험을 비교할 수 있느냐. 병원당 1000명의 인원을 조사한다고 하면 모를까, 이 또한 환자 구성을 구분하고 중증도 보정 등을 해야 가능하다”면서 “결국 병원을 비교하려면 충분한 환자수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국가단위 평가, 질환별 평가 등을 거친 단계적 평가와 표본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A 관계자는 “가장 우선적으로 국가차원의 환자경험평가가 필요하다. 아직 병원단위 평가를 하기에는 샘플 사이즈가 작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가단위의 1만명을 대상으로 한 환자경험평가를 하는 것이 낫다. 아니면 현 적정성평가에 뇌졸중 등 필요항목에 환자경험 지표를 추가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의료계 B 관계자는 “병원들은 환자경험평가가 기존의 다른 만족도조사 등과 대체되지 않는 데다 향후 의료질평가지원금에도 반영될 예정이라 불안해하고 있다"며 "더구나 지역별, 연령별, 성별 등 다양한 변수를 충분히 보정하고 진행될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조사도 환자 본인을 대상으로 한다지만, 고위험군의 경우 환자가 아닌 보호자와 진료 상담을 하는 경우도 많다. 간병문화 등 외국과 다른 국내 의료 환경도 감안해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표본의 확대가 필요하지만 현행 평가는 계획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의대 김윤 교수는 “병원에서 150명을 조사한 값은 오차구간이 클 것이다. 하지만 이 결과를 공표하거나 인센티브제공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 평가를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표본수가)계속 150명이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김윤 교수는 현재의 표본수는 병원전체의 환자경험을 대표하기에는 오차의 범위 등이 클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보정이 중요하고, 단계적으로 표본을 늘려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또 “환자경험평가를 하기까지는 15년의 시간이 걸렸다. 2000년대 초까지 환자만족도라는 이름으로 조사를 했다가 이후 병원서비스평가, 의료기관인증평가 등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중심의 노력은 부족했다. 병원이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했지 서비스 개선에는 관심이 적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물론 환자경험평가 결과의 공개가 병원 질을 올리는데 효과적인 수단은 아닌 것 같다. 가감지급도 마찬가지다. 다만 중장기적으로 의료질평가지원금에 연계되면 그 영향력은 다를 것이다”라며 “평가를 시작으로 병원들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는 기존의 효과성 중심의 평가가 아닌 환자중심을 포함한 균형있는 평가가 필요하다”며 “개인적으로는 의료기관이 무엇을 개선해야할지 고민하고, 이로 인해 환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가 이뤄질 수 있는 계기가 환자경험평가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심평원, Go~Go~Go..."지표와 대상 늘려가겠다"

하지만 평가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심평원은 이번 1차 평가에 약 3억원의 예산을 배당했다. 전문 설문조사업체에게 성공콜을 기준으로 2억5,000만원의 비용을 지불하기로 했으며, 평가 홍보를 위해 4,000만원을 책정해놓았다.

향후 전체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현행 표본수로 조사를 하게되면 설문조사 의뢰 비용에만 6억원 이상이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심평원은 또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 진행해온 평가 계획인 만큼,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보완해 가면서 시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평가1실 관계자는 “그동안 병원계에서 불안해 하는 사안들은 이미 충분히 잘 알고 있다”면서 “1차 평가를 진행하면서 현장의 의견을 많이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향후 결과 활용 방법 등 계획되지 않은 부분들이 많은 불안요소가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정을 다지는 단계라고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앞선 연구자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현실적인 조사방법으로 전문설문업체에 의뢰하게 됐으며, 향후 평가가 확대되고 안정화되면 조사 방법도 다양화할 수 있다”면서 “조사결과 또한 심평원에서 결과를 분석한 뒤 분과위원회에서 재반사항을 논의하고 의료계가 포함된 의심조에서 심의를 거쳐 결과 공개여부를 확정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최근 의료기관이 자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서를 만들어 공개하고 5월 중 홍보 포스터 및 리플릿을 배포하겠다고 밝혔다.

심평원은 향후 평가대상 기관에 민원 응대 매뉴얼을 제공하고, 설문조사시 Script도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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