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진료 제한 여파 충청권까지
후학 없는 상황에 "더 못 버틴다"
"손실 보상에 가산 수가까지 전폭 지원을"

소아청소년과 지원율 급감에 지방 국립대병원 소아청소년과가 과 운영은 물론 후계 양성으로 고민에 빠졌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소아청소년과 지원율 급감에 지방 국립대병원 소아청소년과가 과 운영은 물론 후계 양성으로 고민에 빠졌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지방 국립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들은 '오늘만' 보고 산다. 병상은 꽉 찼는데 의사는 사라지고 있다. 일을 맡길 후배도 가르칠 제자도 남아있지 않다. 쉴 수도 없고 아파도 안 된다. 내일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지방 국립대병원 소아청소년과가 곪아가고 있다. 전공의 지원자는 없고 세부·중증 분야는 대가 끊길 위기에 놓였다. 지방이라는 조건에서는 병원 투자도 한계가 뚜렷하다. 의료진은 하나둘 병원을 떠나고 있다. 반면 떠났던 환자들은 다시 지역 병원으로 밀려들고 있다. 인력과 인프라를 흡수했던 수도권조차 소청과 진료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수도권과 인접한 충청 지역은 이를 더 뚜렷이 느끼고 있었다.

충북대병원은 충북 지역에 하나뿐인 신생아 집중치료실을 운영하고 있다. 25개 병상을 갖췄지만 올해 들어 빈 날이 없다. 담당 교수 2명과 전공의는 물론 전담전문의가 1명 더 있지만 피로도가 극심하다. 수도권 소아 응급실까지 진료를 제한하면서 '그나마' 여력이 있는 충북대병원에 응급환자가 몰릴 가능성도 커졌다. 소청과 전공의 정원은 12명이지만 총원은 6명에 불과하다. 이번 2023년도 상반기 레지던트 모집 지원자는 단 1명이었다. 대전·세종·충청 지역 수련병원을 통틀어 유일하다. 국립대병원 중 소청과 지원자가 있는 병원은 충북대병원을 제외하면 서울대병원과 전북대병원뿐이다.

충남대병원 사정도 비슷하다. 충남대병원은 신생아 집중치료실 34개 병상에 소아중환자실 5개 병상, 소아혈액종양분과 병상 15개를 운영 중이다. 대전·충청 지역에 소아외과 수술은 충남대병원만 가능하다. 소아 중증 진료에 적극 투자하면서 어린이병원 없이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지정도 받았다. 그러나 동시에 국립대병원 중 유일하게 소청과 전공의가 단 한 명도 없는 병원이 됐다. 충남의대 출신조차 이제 '소아 중증 진료는 힘들다'는 이유로 충남대병원 소청과는 지원하지 않는다.

후학 없는 지방 병원들…수련 공백 곧 진료 공백으로 이어져

지방 국립대병원은 "위기를 더 일찍 감지"한다. 충북대병원과 충남대병원은 다른 상급종합병원들보다 2~3년 더 앞서 소청과 입원·응급전담전문의를 도입했다. 충북대병원은 응급전담전문의 5명, 충남대병원은 응급전담전문의 3명과 입원전담전문의 1명이 소청과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일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충남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임연정 교수와 충북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이지혁 교수 모두 "버티기 어려운 한계 상황"이 오고 있다고 했다. 임 교수는 "오늘만 버티자, 아프지 말자는 일념으로 일한다"고도 했다. 뒤를 이을 제자, 전공의가 없기 때문이다. 수련 공백은 진료 공백으로 이어진다.

임 교수는 "신생아 집중치료실이나 중환자실을 맡으려면 그만큼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충남대병원은 이런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최적의 환경도 갖췄다. 하지만 우리 병원 같은 곳에서 수련하는 사람이 없으니 전담전문의를 뽑는데도 그만큼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구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임 교수는 "앞으로 병원마다 전문의가 있어도 소아혈액종양 전문의 1명, 내분비 전문의 1명, 호흡기 질환 1명 수준에 그칠 것이다. 그럼 1년 365일 24시간 자기 분과는 전문의 1명이 알아서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임 교수는 "지금 대학병원에 있는 사람은 후학을 양성하고 본인 전문 분야가 발전하는 즐거움과 기쁨으로 남은 사람들이다. 힘들어도 일단은 버텨보자는 거다. 하지만 전투는 혼자서는 못 한다. 편을 이뤄 서로 보호하며 나아가야 한다. 지금은 나를 엄호해줄 사람도, 내가 지켜줄 사람도 아무도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충북대병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지혁 교수는 "충북대병원은 현재 전공의가 6명이지만 1년이 지나면 여기서 절반으로 줄어든다. 2024년도 모집에 따라 더 감소할 수도 있다. 지역 소아청소년 진료 거점 역할을 하고 있지만 외래와 입원 진료를 병행하면서 야간 당직까지 더 늘어나면 전문의들이 버틸 수 있는 한계 상황을 넘게 된다"면서 "이미 다른 지역에서 전문의 사직이 증가하며 확인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지방 국립대병원 소아청소년과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을 눈앞에 뒀다고 말한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지방 국립대병원 소아청소년과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을 눈앞에 뒀다고 말한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손실보상·가산수가'로 지방에 더 높은 받침대를…"견뎌낼 힘 달라"

이 교수는 수도권과 비교해 불리한 지방이 이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더 높은' 받침대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병원 경원진의 과감한 투자를 넘어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지방 소청과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지방 국립대병원은 급여나 근무 조건, 생활 여건 등에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종합병원보다 불리할 수밖에 없다. 수도권조차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인력 공백이 생겼을 때 지방 병원이 이를 보충하는 건 더 어렵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지 않으면 지방 소아의료 시스템 붕괴는 막을 수 없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1일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9곳을 대상으로 '사후보상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중증 소아 진료 과정에서 입은 의료 손실을 최대 100%까지 보상한다. 기존의 수가 가산이 아닌 일괄 사후보상 방식을 새로 도입했다. 충남대병원도 여기 포함됐다.

임연정 교수는 이번 시범사업이 9개 병원을 넘어 지역 전체로 전면 확대되면 "희망을 품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가산 수가와 자금 조달처럼 파격적인 지원이 동반돼야 한다고 했다. 손실 보상이 자리잡고 수가 개선이 병행되면 지원자가 돌아오고 기존 전문의들이 더 버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고 내다봤다.

임 교수는 "일본은 소아과 가산 진료수가가 (성인 진료의) 5~10배다. 전액 나라에서 지불한다. 거점 지역병원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운영비를 지원한다. 우리 돈으로 200억원에 이르는 돈을 병원 하나에 투자한다. 인력을 채용하고 시설을 설립하는데 쓰기 충분한 돈을 준다"면서 "한국도 소아 중증 환자 진료를 보는 지역 거점병원은 적자 보전을 넘어선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임 교수는 "이런 환경이면 소아 진료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분명 생긴다. 후학이 들어오면 기존에 있던 사람들도 힘이 난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식 보고 견디는 부모 마음과 똑같다"며 "1년 버틸 사람이 3년 버티고 3년 버틸 사람이 5년 더 버틴다. '내 제자' 위해서다. 아주 좋아지지 않더라도 모두가 조금씩 더 견딜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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