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카카오톡 오픈채팅 익명 인터뷰
"기피과 지원한 개인 책임 돌릴 때 힘들다"
"영원한 기피과 없다"…비전 있다면 '반등'
기피과 문제 개선까지 사회 관심 계속 되길

소아청소년과 위기와 함께 '기피과' 문제에 대한 사회 경각심도 커졌다. 기피과에서 일하는 전공의들에게 관심이 집중됐지만 수련의로서 신분을 드러내기 쉽지 않다. 청년의사는 2023년 신년특집으로 익명 대화가 가능한 카카오톡 '오픈채팅'을 활용한 인터뷰를 기획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협조를 구해 참여자를 찾았다. 지난 12월 22일 열린 오픈채팅에는 전공의 6명이 참여했다. 당일 참석하지 못한 소아청소년과 2년 차 C씨와 외과 3년 차 H씨가 메일을 통한 추가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 참여자: 소아청소년과 3년차 A, 소아청소년과 3년차 B, 소아청소년과 2년차 C, 가정의학과 3년차 D, 가정의학과 3년차 E, 응급의학과 4년차 F, 응급의학과 G, 외과 3년차 H


가정의학과 200명 모집에 112명 지원, 외과 200명 모집에 131명 지원, 응급의학과 170명 모집에 147명 지원, 소아청소년과 201명 모집에 33명 지원.

청년의사가 전국 68개 수련병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3년도 전공의 전반기 모집 결과다. 반등한 과도 있지만 '기피과' 대부분이 예년과 비슷하거나 더 좋지 않은 성적표를 받았다. 지원율이 10% 선으로 떨어진 소아청소년과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필수의료 살리기가 화두로 떠오르고 기피과 문제가 집중 조명받으면서 더 두드러졌다.

소청과 위기는 지난 12월 22일 청년의사가 진행한 전공의 익명 인터뷰에도 화두로 올랐다. 인터뷰에 참여한 소청과 전공의들은 예상한 결과라며 담담했다.

청년의사는 지난 12월 22일 이른바 '기피과'로 불리는 전문과목을 전공하고 있는 전공의 8명과 오픈채팅으로 대화를 나눴다(ⓒ청년의사).
청년의사는 지난 12월 22일 이른바 '기피과'로 불리는 전문과목을 전공하고 있는 전공의 8명과 오픈채팅으로 대화를 나눴다(ⓒ청년의사).

Q. 2023년도 소아청소년과 지원율을 보고 든 생각은?

소아청소년과 A: 결국 올게 왔구나. 이슈라도 된 점은 다행이었죠.
소아청소년과 C: 당장 우리 병원 지원자가 0명이라 이제 어떡하나 싶긴 해요.
소아청소년과 B: 오히려 지원자가 있는 병원이 놀라울 정도.

소청과가 기피과로 바뀌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지난 2017년 발생해 최근 마무리된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이 거론된다(관련 기사: '무죄, 무죄, 무죄'…5년 만에 막 내린 이대목동병원 사건).

그러나 전공의들은 이 사건이 소청과를 기피과로 만든 이유 중 하나여도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라고 했다. 기피과는 특정 사건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 2018년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가 진료 중 환자에게 목숨을 잃은 사건을 들었다. 의료계는 물론 사회에 충격을 준 사건이지만 정신건강의학과는 여전히 지원율 130~140%를 넘나드는 '인기과'다. 따라서 "특정 사건과 실제 그 과 지원율 하락은 다른 차원의 문제(가정의학과 E)"라는 지적이다.

전공의들은 소청과가 기피과가 된 이유가 '소아청소년 환자를 진료한다'는 사실 외에 다른 지원 동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아청소년과 A: 보호자 상대하고 우는 아기 달래며 진료해야 하는데 수가는 낮고 일은 배로 해야 돼요. 지금 소청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아이 돌보는 게 좋으니까 다 감수하면서 하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소청과 지원을 고민하는 학생이나 인턴이 봤을 때 '아기가 좋다'는 것 외에 유인 동기가 하나도 없어요.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전공의 인력에 의존하는 입원 진료가 한계에 이르자 병원은 진료 중단을 선택했다. 가천대길병원 소청과 입원 중단 사태는 그 일부에 불과하다. 수도권 대학병원조차 하나둘 소아 응급진료를 축소하거나 포기하고 있다. 갈 곳 잃은 환자와 보호자들은 문 연 병원으로 몰려들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B: 지금 우리 병원은 전공의 2명이 소아중환자실(PICU), 신생아 중환자실(NICU)을 하나씩 책임지고 있어요. 사람은 없는데 다른 곳들이 먼저 문을 닫으니 중환자가 더 몰려요. 수련을 제대로 받을 수가 없어요. 4년차들은 액팅(acting)만 하다가 외래 수련도 못 한 채로 전문의 시험 준비하고 있어요.
소아청소년과 A: 서로서로 힘드니까 바닥이 드러나요. 말도 안 되는 소리도 하고. 교수님 중에는 액팅은 하고 싶지 않은데 중환자는 보고 싶어 하는 분도 있어요. 그럼 그 부담은 거의 전공의가 감당하고요.

소청과 위기와 전공의가 짊어진 부담은 현재 기피과 전공의들이 처한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하기 일쑤지만 인정은 못 받는다. 수가는 낮고 진료 수익은 적다. 인력이 부족해도 충원되지 않는다. 수련의 신분인 전공의가 응급부터 중환자까지 감당해야 하고 극심한 업무량에 제대로 수련받기 불가능하다.

탈진한 선배들이 떠난 자리는 그보다 더 적은 수의 후배들이 물려받는다. 한 번 미달된 과는 다시 정원을 채우기 어려운 것처럼 한 번 악화된 환경은 "아무런 희망 없이 계속 나빠지기만 한다(소아청소년과 C)".

Q. 왜 '기피과'에 지원했나요?

외과 H: 자의식과잉 없다곤 말 못 하죠. 난 참의사다, 사람을 살린다, 이런 거.
가정의학과 D: 소신 따라 지원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기피과로 불렸어요.
소아청소년과 C: 아기가 좋아서.

전공의들은 다양한 이유로 기피과에 지원했다. 그 과가 '좋아서' 선택하기도 했고 남들 안 하는 걸 하는 '진짜 의사'가 되고 싶다는 이유로 지원하기도 했다. '어쩌다' 기피과 전공의가 되거나 본인 시각에서 비전을 찾은 전공의도 있었다.

사람이 부족한 기피과 전공의 생활은 고단하다. '워라밸'은 고사하고 퇴근조차 제시간에 할 수 없다. 칼퇴근이 가능하다고 대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과 생활이 양립하지 못하고 뒤섞여 굴러가는 상황에서 기피과 관련 정책을 살펴보고 제도 개선 요구에 목소리를 보탤 여력도 없다. 오픈채팅방 입장 후 3시간이 지난 오후 9시에야 인터뷰에 참여한 전공의도 있었다. 그는 당직은 아니지만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고 했다.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전공의법)이 제정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전공의 처우는 여전히 제도가 아닌 교수 재량에 달려 있다. 담당 교수가 전공의 처우에 관심을 갖는 것은 "교수의 개인적 인품이 좋아서(가정의학과 D)"이지 정책적으로 전공의를 보호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그래서 수련병원별 전년도 지원율은 중요한 지표다. 전년도 지원자 수는 앞으로 업무량을 가늠하는 척도다. 전공의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 과의 성향과 분위기까지 읽어낸다. 정원은 아무 이유 없이 비거나 채워지지 않는다. 대대적인 홍보와 좋은 조건에도 지원자가 없거나 기피과인데도 정원을 채웠다면 모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여겼다(관련기사: ‘찍히면 無?’ 전공의 0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련병원들).

가정의학과 E: 정원에 전년도 지원율 영향이 커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니까.
응급의학과 F: 지원자가 2년 연속 없다면 병원 내부적인 이유가 있다고 추측합니다.
소아청소년과 A: 한 번 펑크나면 끝이에요. 그대로 악순환의 굴레에 빠져버려요.

Q. 지원을 후회한 적 있나요?

소아청소년과 B: 후회한 적이야 많죠. 가족 포함해서 주변에서 말리는 걸 지원해서 들어왔는데 잘해야 본전일 때, 보호자 대응이 어려울 때, 아래 연차가 안 들어오거나 중도에 나가서 로딩이 줄지 않을 때….
외과 H: 일 자체도 부담이지만 제 선택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 힘듭니다. 의사 된다더니 굳이 돈 안 되는 과 갔다고 바보라 하고, 외과 너무 어려우니까 도와달라고 하면 의사가 돈만 밝힌다고 하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전공의들은 비록 기피과라도 "소신에 따라 한 선택이 틀렸다(외과 H)"는 생각이 들 때 후회가 든다고 했다. 전공의들이 보기에 정부는 필수의료를 살리고 기피과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면서도 변화가 거의 없었고 제도 개선은 더뎠다. 열악한 현실을 알리고 지원을 호소해도 사회는 기피과를 선택한 개인의 문제와 책임으로 돌렸다. 소신 지원인 점을 들어 "초심을 잃었다고 비난(소아청소년과 C)"하는 기류를 느낀다고도 했다.

외과 H: 가끔은 사회 전체가 윽박지르는 거 같아요.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알아서 버텨라? 그러다 누가 포기하면 그럴 줄 알았다고 개인 의지 문제로 돌리는걸요.
소아청소년과 C: 그 사람이 초심을 잃은 게 아니라 그런 사람조차 못 버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Q. 그럼 한 번 기피과는 영원히 기피과일까?

현재 기피과들이 반등 없이 계속 기피과로 남을 거라 보느냐는 물음에 전공의들은 정책과 시대적 변화에 따라 반등 가능하다면서 "영원한 기피과는 없다"고 답했다. 이번 2023년도 전반기 모집 지원율 100%를 넘긴 비뇨의학과나 차등수가제 폐지 후 지원자가 꾸준히 모이는 이비인후과가 그 예다. 지금 힘들어도 "앞으로 나아질 거란 믿음이 있다면(소아청소년과 A)" 후배들에게 지원을 권하겠다고 했다.

응급의학과 F: 전공의 생활이 고돼도 졸국 후 삶이 만족스럽다면 지원이 꾸준할 겁니다. 반대로 전공의 생활이 편해도 이후가 불안정하면 어렵죠. 핵심은 비전입니다.

최근 수련병원들이 내세우는 '편한 전공의 생활'은 초점을 벗어났다고도 했다. 전공의들은 편한 수련이 아니라 전문의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는지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고돼도 그에 걸맞은 보상이 돌아오고 능력을 펼칠 수 있길 원했다.

외과 H: 소청과나 외과나 학생 때부터 나 이거 꼭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어요. 힘들어 죽을 거 같아도 아기가 좋다, 수술이 좋다고 해요. 말하자면 '마니아(mania)'죠. 꾸준히 좋아할 수 있도록 조금만 도와주면 많은 게 변할 거라고 생각해요.
응급의학과 F: 급여도 중요하고 삶의 질도 중요해요. 하지만 내가 좋아서 선택한 전공의 생활로 쌓은 술기와 지식을 소신껏 활용하며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느냐가 정말 중요합니다. 이게 가능한 과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가정의학과 E: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죠. 의사로 살면서 경찰서나 법원을 들락날락하지 않을 거란 확신도 포함해서요. 정책과 수가 조정이 뒷받침돼야 해요.

Q. 기피과에 유효하고 필요한 정책은?

가정의학과 D: 수가 조정, 전문의 수 조정, 수련 연차 조정, 기피과 지원금.
소아청소년과 A: 수가 조정, 수련 연차 조정, 기피과 지원금, 졸국 조건 단순화.
외과 H: 수가 조정, 의료사고 책임(처벌) 면제.
응급의학과 G: 고소·고발부터 실형까지 리스크가 의료서비스 비용에 포함돼야 함.

이들이 바라는 수가 현실화와 의료사고 책임 경감은 단기간에 이루기 힘든 과제다. 수도권 대학병원들이 소아 진료를 포기할 만큼 의료체계가 무너졌지만 여전히 "정부, 국회와 국민 공감대 형성은 어렵고(응급의학과 F)" 더디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더 망해봐야 정신을 차릴지(가정의학과 E)"도 모른다.

그러나 의료 현장을 지키는 기피과 전공의들은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다(소아청소년과 C)"고 말한다. 의사로서 "내가 사람을 살렸다는 전율(외과 H)"과 "아픈 아기가 건강해진 모습을 볼 때 느끼는 말로 표현 못할 기쁨(소아청소년과 B)"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정받지 못하는 초과 근무를 하고 쪽잠을 자며 그 틈을 쪼개고 쪼개 인터뷰에 응하고 계속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A: 기피과에 대한 우리 사회 관심이 여기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부디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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