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간호사 전원 무죄 확정됐지만 의료계 충격 여전
소아 진료 기피 현상 다른 진료과도로 번져
다른 나라보다 의료과실 형사처벌 비율 높은 한국

의료계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이 10%대로 떨어진 원인 중 하나로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을 꼽는다. 이 사건에 연루됐던 의료인 7명은 지난 15일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나도 언젠가는 ‘살인자’로 법정에 설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에 회의감이 든다.”

의사 4명과 간호사 3명이 연루된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이 5년 만에 ‘전원 무죄’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법정 구속되는 동료의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의사들은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모습이다. 무죄가 확정됐다는 소식에도 소아 환자를 보는 한 의사는 이같이 말했다.

지난 2017년 12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NICU)에서 발생한 신생아 사망사건으로 의사 4명과 간호사 3명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 중 일부는 구속까지 됐다. 1심과 2심에 이어 대법원도 지난 15일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의사들은 씁쓸해했다. 결국 무죄였지만 그 여파는 컸다. 저출산과 맞물려 소아청소년과를 전공하려는 의사는 급격히 줄었고 다른 진료과에서도 ‘소아’는 기피 대상이 됐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김지홍 이사장은 16일 기자회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다. 증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의사 책임으로 여론 재판 하듯 몰아갔다"며 "진료에 최선을 다해도 결과가 안 좋을 수 있지만 의사 책임으로 돌린다는 건 위험하다. 이로 인해 전공의들이 신생아 진료를 꺼리게 됐다”고 말했다.

전공의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떠나고 있다. 경기 지역 A대학병원은 최근 소아청소년과 교수들이 줄줄이 사직했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가천대길병원은 의료진 부족으로 소아청소년과 입원 진료를 중단했다. 이미 많은 대학병원이 응급실에서 소아 응급 환자 진료를 중단하거나 제한하고 있다.

A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실에서 소아 환자를 받아도 메인 진료과인 소청과 의사가 없으니 진료에도 한계가 있다. 우리 병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국 대학병원의 상황이 대부분 비슷하다”며 “전공의는 뽑히지 않고 교수들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며 사표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대목동병원 의료진이 구속됐던 사건이 큰 충격이었다”고도 했다.

B대학병원 교수도 “소청과 뿐이 아니다. 수술이나 마취도 소아 분야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며 “만약 잘못돼서 아이가 죽으면 그 사정이 어떻든 ‘아기를 살리기 못한 나쁜 의사’가 돼 버린다”고 말했다.

분당차병원 응급의학과 박수현 교수는 모든 진료과에서 소아진료체계가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소아응급전문의로 분당차병원 소아응급센터에서 소아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 겸 대변인이기도 하다.

박 교수는 “소아 환자는 여러모로 진료하기 힘들다. 보호자와 충돌하는 일도 많고 병원에 민원도 많이 넣는다”며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이직률도 높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열이 나고 탈수 때문에 혈관이 좁아진 소아 환자가 응급실에 오면 혈관을 찾아 주사를 놓는 데 애를 먹는다. 이를 지켜보던 보호자가 다른 의료진을 불러오라며 화를 내고 이름을 적어가는 일도 많이 벌어진다”며 “소아응급 분야는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들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씁쓸해했다.

박 교수는 소송에 휘말린 교수들도 많다며 숙련된 의료 인력이 소아진료 현장에 남아 있기 힘든 상황이 돼 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박 교수도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라며 “진지하게 직업을 바꿔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박 교수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과 같은 일이 한 번만 더 생기면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소아 분야는 전공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며 “의사도 환자를 살리고 싶다. 진료하던 아기가 잘못되면 죄책감이 든다.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무엇보다 치료 결과가 나쁘다는 이유로 형사처벌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무엇보다 치료 결과가 나쁘다는 이유로 형사처벌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진료 과정에서 불가피한 일은 언제든 발생한다. 그로 인해 치료 결과가 좋지 않다고 의료인을 형사처벌하고 구속하면 누가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환자를 제대로 진료할 수 있겠느냐”며 “특히 신생아중환자실에 입원한 아기들은 중환인 경우가 많다 이런 부분까지 형사처벌하기 시작하면 과연 누가 그곳에 남아 있겠는가”라고 했다.

그는 “환자를 진료하면서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과 같은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버티기 힘들어진다”고도 했다.

한국이 일본이나 영국, 독일 등 다른 나라에 비해 의료과실을 저지른 의사를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하고 형사처벌하는 비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공개한 ‘의료행위 형벌화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의사 762명이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되고 있었다. 하루 평균 2명이 의료과실에 의한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된 셈이다. 한국은 검사가 의사를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한 건수나 이로 인해 의사가 형사처벌을 받는 건수가 일본이나 영국 등 다른 나라보다 많았다.

의료계가 형사처벌특례 조항이 담긴 ‘의료분쟁특례법(가칭)’을 제정하거나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을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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