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의료행위 형벌화 현황’ 보고서
의료과실 기소도 형사처벌도 압도적으로 많은 한국

지난 8년간 우리나라에서 의료과실에 의한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매년 762명이 기소됐다(사진출처: 게티미이지).
지난 8년간 우리나라에서 의료과실에 의한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매년 762명이 기소됐다(사진출처: 게티미이지).

일본이나 영국, 독일 등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는 의료과실을 저지른 의사를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하고 형사처벌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9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공개한 ‘의료행위 형벌화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의사 762명이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되고 있었다. 하루 평균 2명이 의료과실에 의한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된 셈이다.

지난 2011년부터 2018년까지 8년 동안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된 전문직은 8,255명이며 이들 중 73.8%인 6,095명(연평균 762명)이 의사였다.

우리나라는 검사가 의사를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한 건수나 이로 인해 의사가 형사처벌을 받는 건수가 일본이나 영국 등 다른 나라보다 많았다.

출처: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의료행위 형벌화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
출처: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의료행위 형벌화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

지난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우리나라에서 검사가 의사를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한 건수는 연평균 754.8건이었다. 이는 같은 기간 입건 송치 건수가 연평균 51.5건인 일본보다 14.7배나 많은 수치였다. 독일의 의료과실 인정 건수인 연평균 28.4건과 비교하면 26.6배 많다. 특히 영국은 의사가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되는 건수가 연평균 1.3건에 불과했다.

활동의사 수를 기준으로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연평균 활동의사 수의 0.5%가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된 반면, 일본은 그 비율이 0.01%에 불과했다. 일본의 경우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경찰에 신고된 의사도 연평균 82.5명으로 활동의사 수 대비 0.02%였다.

영국은 의료체계와 사법절차상 업무상과실치사상 관련 통계 자료가 없지만 의료과실 의심 과실치사로 경찰에 접수된 의사가 연평균 24명이다. 이는 영국 활동의사 수 대비 0.01%다.

독일은 의료행위 관련 비이상적 사망과 상해 의심으로 법의학감정서가 검사에게 제출된 건수가 지난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연평균 444건으로 활동의사 수 대비 0.1%였다. 이 중 의료과실이 인정된 건수는 연평균 28.4건으로 활동의사 수 대비 0.008%뿐이었다.

출처: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의료행위 형벌화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
출처: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의료행위 형벌화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형사처벌을 받는 비율도 우리나라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지난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1심 형사재판을 받은 의료인(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은 354명이며 이중 67.5%인 239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양형은 벌금형이 71%로 가장 많았으며 금고형 20%, 징역형 5% 등이었다.

반면 일본은 지난 1999년부터 2016년까지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형사재판을 받은 의사 202명 중 15.8%인 32명만 유죄 판결을 받았다. 영국은 형사재판까지 넘어가는 사례가 극히 드물었다. 지난 2013년부터 2018년까지 6년 동안 과실치사죄로 형사재판을 받은 의사는 7명이었으며 이중 4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출처: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의료행위 형벌화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
출처: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의료행위 형벌화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

형사재판이 많이 진행된 전문 진료과목의 경우 한국은 정형외과, 성형외가, 산부인과, 외과, 내과 순이었지만 일본은 외과, 내과, 순환기내과, 소화기과, 심장혈관외과 순으로 많았다. 영영국은 정형외과, 응급의학과, 산과, 부인과, 일반외과 순으로 형사재판이 많았으며 미국은 응급의학, 산부인과, 가정의학과, 일반외과, 정형외과 순이었다.

연구진은 의료과오 수사에 대한 사법경찰관의 전문 역량 강화와 사법절차 체계 개선 외에도 ‘의료분쟁조정법’을 개정해 필요적 조정전치주의를 도입하고 합의나 조정이 성립되면 원칙적으로 불기소 처분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3단계 절차를 제안했다.

1단계는 당사자 간 사적 합의 또는 조정이 성립되면 원칙적으로 불기소 처분하지만 합의가 성립되지 않은 경우 2단계로 의료분쟁조정중재위원회에 전심적 기능을 부여해 고의나 중대 과실로 판명되면 행정청 보고·심사 후 형사고소와 행정제재로 규율하는 방안이다. 3단계는 조정이 성립하지 않은 경우로, 조정 신청 전 고소가 진행되면 조정 신청을 전제로 기소를 유예하고 조정 신청 결과 고의 또는 중과실로 상해 또는 사망했다고 판단되면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의협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최근 필수의료 분야 전공 기피 심화 현상도 의사에 대한 과도한 형벌화 경향의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의료인의 의료과실에 대해 과도한 형벌화 경향을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해 정부, 언론, 학계 등에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서라도 의료인이 국민의 생명 보호와 건강 증진에 전념할 수 있는 안정적 진료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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