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청과 전공의 급감…중증 소아응급환자 진료 ‘빨간불’
대 끊긴 소청과 ‘배후 진료’ 어려워…소아 응급환자 병원 찾아 전전
“소아 중증·응급환자 살리려면 소청과 더해 세부·분과전문의 살려야”
서울아산병원 류정민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장 “파격적 재정지원 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재유행하면서 중증 소아응급환자들이 늘고 있지만 현장은 속수무책이다. 최근에는 경련 등의 증상으로 중증으로 분류 되더라도 이송 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해 구급차에 실려 전전하다 심정지로 사망하는 소아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게 현장의 증언이다. 경련 환자를 볼 소아신경과 전문의가 없어 환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터지면 소송으로 이어지는 사회 분위기도 환자 치료를 망설이게 하는 원인이다. 소아 응급환자나 중증환자를 진료하더라도 자칫 사망이나 심각한 후유증 등이 발생하면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부담이 진료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업무에 소송 부담까지 안고 진료해야 하는 소청과를 택할 의사는 극소수일 거라는 지적이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급감의 여파도 중증 소아응급환자 진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공의 지원이 줄어들면서 중증 소아응급환자의 배후 진료 능력을 좌우 할 세부·분과전문의는 사실상 전무한 수준이다. 의료 현장에서는 소청과의 맥이 이미 끊겼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정년 5~10년 남은 교수들이 은퇴한 이후에는 대학병원에 가더라도 중증 소아환자들을 치료해 줄 의사가 없을 거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고 있다.

규모와 의료 수준에서 국내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서울아산병원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로 지정돼 국내에서는 가장 큰 규모로 운영되는 서울아산병원이지만 당장 배후 진료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나마 지원자가 있는 ‘소아알레르기 및 호흡기’나 ‘소아내분비대사’ 분야를 제외하면 소청과 세부·분과전문의 지원자는 씨가 말랐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류정민 센터장은 본지와 인터뷰를 통해 “소청과는 위기를 넘어 이미 붕괴가 시작됐다”고 했다. 류 센터장은 중증 소아응급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소청과 회생을 전제로 ‘소아 세부·분과’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전폭적인 재정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류 센터장의 지적이다. 류 센터장은 대한소아응급의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 소청과 의사가 없어 소아 응급진료를 제한하는 응급실이 나올 정도로 소아 응급진료는 위기다. 현장 상황은 어떤가.

소아 진료 자체가 어렵고 힘든 일이다. 성인과 다른 아픈 애들을 진료 하는 것도 어렵지만 예민한 보호자들을 상대하는 일이라 정신적 피로도도 크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MZ(밀레니얼+Z세대)세대로 교체가 일어나면서 소청과 기피가 더 심해졌다. 가장 큰 문제는 소청과 의사의 대가 끊어지는 것이다. 당장 봐도 전공의들이 없으니 MZ세대 성향에 가까운 젊은 조교수들도 대학병원을 떠났다. 결국 나이 많은 교수들이 응급실 당직을 서고 있다. 그렇다보니 나이 든 교수들이 당직을 서다 포기하면 대학병원 응급실에서도 소아 진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대학병원의 80% 정도가 이런 상황이다. 결국 밤에 아이가 아프면 갈 곳이 없다.

- 최근에는 소아 진료를 위해 응급실에서 일할 소청과 촉탁의 고용을 늘였다고 들었다.

그렇다. 응급실을 봐줄 소청과 전공의도 없고 교수들도 힘들어 당직 서기 어려우니 촉탁의를 많이 뽑고 있다. 그런데 촉탁의를 뽑으려면 대우를 잘 해줘야 한다. 대학병원 교수보다 1.5배 정도 급여를 더 많이 주고 있다. 그러니 교수들에게서 그만두고 촉탁의 하고 싶다는 말이 나온다. 오히려 후대를 잇겠다고 나선 젊은 전임의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 시스템이 붕괴됐고, 전문성이 사라지는 거다. 결국 그 피해는 어린 아이들이 보게 되는 상황이다. 지난해 장 중첩으로 소아가 사망 이후 비슷한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다. 최근 경련으로 소아 환자들이 구급차에 실려 병원을 전전하다 심정지로 목숨을 잃는 일이 늘었다. 경련하는 아이들은 어디라도 먼저 가서 항경련제를 맞고 전원을 하면 되지만 소아신경과 전문의가 없으면 (환자를) 받질 않는다. 그러니 응급실에 인력이 있더라도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된다. 혹시 환자를 받았을 때 잘못되면 소아신경과 전문의도 없이 왜 환자를 받았냐는 질타를 받거나 소송으로 이어지니 방어 진료를 할 수밖에 없는 거다. 모두 배후 진료가 없어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다. 이런 일들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에 놓이게 됐다.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소아 응급진료를 더 어렵게 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발열이나 기침 등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있는 소아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실이 다 차게 되면 더 이상 못 받게 된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전문응급센터에 음압병실이 9~10개 정도 있는데도 입원 환자가 빠지지 못해 (다른 환자를) 더 못 받는 일도 있다. 큰 대학병원에서 소아 음압병실을 갖췄다고 하더라도 2~3개가 전부인 곳들은 상황이 뻔하다. 병원에 병실 증축을 요청해도 수지타산이 안 맞으니 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이전부터 응급실은 풀어달라고 요청했지만 여전히 그대로다. 인력이 있고 병실이 있어도 소청과 의사 대가 끊겨 배후 진료를 할 수 없어 진료를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혹은 배후 진료가 조금 잘 되는 병원으로 환자가 몰린다.

- 소아 응급환자 진료가 어려운 시기에 대한소아응급의학회에서 ‘소아응급의학 세부전문의’ 제도를 도입했다. 배경이 궁금하다.

소아응급실에서 일하려는 목적으로 세부전문의를 취득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세부전문의에 관심을 갖고 취득한다면 다양한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아이들을 더 잘 볼 수 있다. 아이들은 정말 다양한 문제로 응급실에 오지만 각각의 사례에 대한 증례는 굉장히 적다. 때문에 다양한 임상경험이 필요하다. 세부전문의 과정은 소청과 뿐만 아니라 초음파, 영상판독, 마취통증의학과, 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외상센터, 중환자실 등 다양한 임상경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벌써 10년 전부터 준비를 했고 올해 청사진이 잡히기 시작했다. 올해는 최초이기 때문에 무시험 전형으로 진행된다.

- 소청과 의사의 ‘대가 끊겼다’고 표현했다.

전공의 지원 감소가 소아 세부·분과전문의 배출에도 영향을 미쳤다. 중증 소아환자를 입원시키려고 해도 해당 세부·분과전문의가 없어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중환자의학 교수들의 정년이 5년 정도 남았지만 전임의도, 전공의도 없으니 후학 양성도 불가능하다. 대학병원 소청과에 세부·분과가 전임의가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소아알레르기 및 호흡기나 소아내분비대사, 일부 대형병원을 제외하면 전무하다. 현재 소청과 분과도 보면 교수들 1~2명이 전부다. 이들이 은퇴하고 병원을 나가면 중증 소아환자 진료는 대가 끊겨 볼 수도 없다. 파격적인 재정지원이 필요하다.

- 소청과 회생을 위해서는 파격적인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이 필요한가.

사실 수가로 해결될 시기는 지났다. 수가는 기본적으로 환자 수가 일정 수준 이상 돼야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출생률 감소로 환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소청과 의사 자체가 없기 때문에 획기적인 재정지원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대를 이어 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소청과 전공의도 전임의도 없는 상황에서 인력이 부족하니 소아 응급실 운영을 위한 인건비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해도 병원은 묵묵부답이다. 성인 응급환자 수가의 3분의 1 수준이니 경영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에 인력에 대한 인건비를 요청해 봤지만 ‘맛보기’ 수준일 뿐 확실한 해결책은 되지 않았다. 그렇게 10년을 버텼다.

정부가 장기적인 시각으로 소아 진료 문제를 봐줬으면 한다. 아이들이 없는 사회는 망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에게 투자하면 사회가 살아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정부는 아이들이 미래라고 하지만 정작 꼭 필요한 곳에 투자는 하지 않고 있다. 소아 진료 관련한 재정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보건복지부 내 공공의료와 응급의료 등 부서 간 통합이 필요하다. 의료계 전문가는 물론 정부 관계자 등 소통을 위한 논의기구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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