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순천향대천안병원 소아전문응급센터 이주영 교수
살얼음판 된 소아응급실 “무지개 같은 아이들 지키려 남아”

중증 응급환자의 응급실 수용을 거부하지 못하게 하고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면허가 취소되도록 법으로 규정한 정부 정책에 더해 의사들을 옥죄는 사법부 판결로 의료 현장은 말 그대로 ‘살얼음판’이 됐다. 이로 인해 응급의료체계가 흔들리고 있고, 그 중에서도 가장 ‘약한 고리’인 소아응급실에 충격을 줬다. 수년 째 전공의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며 가까스로 버텨오던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응급의료 현장을 하나 둘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장의 의사들은 환자를 낫게 했다는 자부심으로 진료해 왔지만 민·형사 소송을 걱정해야 하고, 언제든 ‘범죄자’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청진기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지난 12월 17일부터 전면 단축 진료에 들어간 순천향대천안병원 소아전문응급센터도 충격을 받은 곳 중 하나다. 센터 소속 교수 7명 가운데 3명이 병원을 떠났고, 2명은 휴직을 결정했다. 센터에 남은 소청과 교수는 2명이 전부다.

국내 첫 소아전문응급센터로 지정돼 소아 중증·응급환자를 지켜오던 순천향대천안병원이 흔들리면서 소아응급의료체계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이들의 진료 단축 소식에 수도권 소아전문응급센터들까지 긴장감이 일고 있다. 소청과 전문의 부족으로 소아응급실 운영이 어려워진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나 이들이 주목 받고 있는 이유는 10년 간 중부권의 허리로 소아응급의료체계를 든든히 받쳐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10년째 순천향대천안병원 소아전문응급센터를 지키고 있는 소청과 이주영 교수는 살얼음판 같은 이곳에 남기로 했다. 잘못된 의료정책과 이로 인해 왜곡된 의료문화로 환자와 의사의 라포(rapport)는 망가졌고, 모든 순간 방어 진료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번 아웃’ 된지 오래지만 그래도 ‘무지개’ 같은 아이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버텨보고 싶다고 말이다.

이 교수는 최근 소아응급실 의사로 살아가며 겪은 삶의 기쁨과 감사, 아픔과 슬픔을 담은 당직일지를 책 〈우리는 다시 먼 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로 펴냈다. 이 교수는 소아응급의료체계 뿐 아니라 소아 의료체계 전체가 이미 붕괴되기 시작했다고 경고했다. 지금이라도 위험을 인식하고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이 교수를 만나 무너진 소아 의료체계를 다시 복원하기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들었다.

순천향대천안병원 소아전문응급센터 이주영 교수는 최근 〈우리는 다시 먼 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를 펴냈다. 이 교수는 흔들리는 소아응급의료 현실 속 무지개 같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의료 현장에 남기로 했다고 전했다(
순천향대천안병원 소아전문응급센터 이주영 교수는 최근 〈우리는 다시 먼 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를 펴냈다. 이 교수는 흔들리는 소아응급의료 현실 속 무지개 같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의료 현장에 남기로 했다고 전했다(ⓒ청년의사).

- 소아응급실을 지키며 쓴 당직일지를 책으로 펴낸 계기가 있었나.

지난 2020년 생후 16개월 된 아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정인이 사건’ 당시 속상한 마음에 새벽 3시에 일 하다 쓴 분노의 글이 많이 공유됐다. 이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이 폭락하면서 그 배경에 대해 분노하며 쓴 글이 또 한 번 이슈가 됐다. 지금 소청과가 더 사라지기 전에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현실을 알리고 싶었다. 책이 나오고 동료들이 공감도 많이 해줬지만 엉망이 된 의료 현실에 슬퍼하는 모습을 보며 서글펐다. 환자들은 의사들을 믿지 않고 의사들은 방어 진료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 말이다.

- 의사와 환자의 불신이 커진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1970년대 당시 건강보험 취지는 좋았다. 저비용으로 많은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자는 취지는 공감한다. 그 사이 의료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그런데 너무 많은 부분을 급여로 해주다 보니 기본 진료의 가치가 점점 떨어졌다. 결국 ‘박리다매 진료’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 졌다. 의사들은 환자에게 잘 해주고 싶어도 그만한 여건도 안 되고 한편으로는 진료의 가치가 너무 적게 책정돼 있으니 충분히 집중하기도 어렵다. 반면 환자들은 돈을 많이 낸 것 같은데 3분 진료 보고 똑같은 약 받아오는 것 같으니 불만이 생기는 것 같다. 전문가들은 자괴감에 빠지고 국민들은 전문가의 전문적인 지식을 인정하지 못하게 되니 사이가 안 좋을 수밖에 없다.

- 의사의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회의감이 커지고 있는 것 같다.

이미 한국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바이탈(vital)’ 하던 친구들이 해외로 많이들 갔다. 그런 친구들이 하는 말이 똑같다. 똑같이 해외에서도 바이탈을 보고 있지만 ‘환자 보는 게 행복하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의사의 전문성조차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은 적 없었는데 해외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내 말을 믿고 존경 해주는 환자들이 있다고. 그래서 너무 행복하고 환자들에게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너무나 슬펐다. 우리나라는 감기 걸려 의원 가서 증상이 바로 호전되지 않으면 ‘실력 없다’는 이야기가 바로 나온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는 예약 잡는 데만 몇 주 걸리는데 환자들이 이런 의료 환경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가끔 진지하게 고민한다.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 소아응급실에서 언제부터 근무한 건가. 소아응급실을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소청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 3년 동안은 동네 의원에서 근무했다. 당시 보호자 설득이 너무 힘들었다. 즉각 증상이 사라지지 않으면 ‘실력 없는 의사’로 낙인찍히고 환자 상태에 따라 지켜볼 필요가 있어 약 처방을 하지 않으면 민원이 들어온다. 이런 논의가 가장 활발한 곳이 ‘맘 카페’다. 맘 카페에 가면 모든 의사들의 실력이 형편없다. 그러니 소아과 의사가 하기 싫은 거다. 그나마 응급실은 그 중에서도 상태가 나쁜 아이들 비율이 높다. 보호자들도 의사들의 진단을 납득 하고 따라준다. 그나마 유일하게 의사로서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이 응급실이었다. 그렇게 10년이 됐다.

- 최근 순천향대천안병원 소아응급실 운영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10년 간 소아응급실을 굳건히 지켜 온 팀이 해체됐다고 들었다.

소아응급실 40대 소청과 여의사 7명이 10년 가까이 일하는 동안 잡음 한 번 없던 팀이었다. 중간에 해외 연수, 병가, 출산, 코로나19 등 힘들법한 상황에서도 아쉬운 소리 한 번 나오지 않을 정도로 끈끈했다. 인간계 팀워크가 아니라고 할 정도였다. 1호 소아전문응급센터였던 터라 평택 서산, 태안 등 여러 곳에서 중환자들이 쏟아졌지만 함께 재미있게 일할 수 있었기 때문에 10년을 버텼다. 그런데 최근 소청과 전공의 지원자가 3년 넘게 없었다. 코로나19 3년 동안 50~60대 교수들이 당직을 서면서 이미 지칠 대로 지쳤다. 중환자가 와도 케어를 할 수 없으니 타 병원으로 이송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 응급환자 수용거부 기준을 명시한 응급의료법 시행규칙이 개정되고 의료인 면허취소법(개정 의료법)이 통과됐다. 여기에 더해 과도한 사법부 판결이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 사법부 판결이나 정책적 변화가 응급의료 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

주변에 문을 닫은 대학병원 소아응급실이 너무 많다. 중부지방에 소아응급실이 이 곳밖에 없으니 별의별 곳에서 중환자들이 몰려온다. 일주일에 한 번 출근하는데 하루에 CPR을 3번 한 적도 있다. 한 듀티당 의사 1명에 간호사 2~3명이고 야간에 전공의 1명이 들어온다. 전공의 3~4년차면 믿고 일할 수 있겠지만 1~2년차면 가르치면서 해야 한다. 환자는 계속 쌓이는데 중환자 1~2명에 잡혀 있고, 입원도 안 되고 전원도 못 한다. 환자들 민원은 계속 들어오고 응급실 내 숨어 있는 중환자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알 수 없다. 그 와중에 전원 요청 전화도 계속 온다.

얼마 전에는 의식이 안 깬 경련 환자를 받아 달라는 119구급대 연락이 왔다. 경련은 멈췄지만 우리 병원으로 오더라도 입원 치료가 불가능하니 다른 병원을 알아보는 게 낫겠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수용 못한다는 거냐며 기록하겠다고 이름을 물었다. 내가 면피하겠다고 환자를 받으면 환자가 놓치게 되는 골든타임은 누가 책임지겠나. 119구급대도 오죽 방법이 없으면 그랬겠나 이해한다. 그런데 이제는 무섭다. 응급실을 떠난 분들이 다 똑같이 이야기 한다. 이러다가 내 의사 면허가 날아갈 것 같다고. 이러다가 감옥가면 우리 애는 누가 보느냐고.

- 그럼에도 소아응급실에 남기로 한 이유가 궁금하다.

이번에 퇴사하신 분이 3명이다. 휴직을 결정한 한 분은 건강상 이유로 이미 휴직했어야 되는데 남은 팀원들에게 부담주기 싫다며 버티다 팀이 무너지고 나니 휴직 결정을 했다. 다른 한 분은 출산 휴가를 들어갔다. 만약 팀이 계속 유지됐다면 출산휴가 후 반드시 돌아오겠지만 이미 깨졌기 때문에 어렵지 않겠나.

소아 응급을 더 하고 싶은 마음에 남기로 결정했다. 지금 전문의 공석을 전공의들이 매우고 있다. 간호사들도 수습하느라 정신 없는 상황이다. 소아전문응급센터는 아직 돌아가지만 전공의들과 간호사들을 갈아 넣어 간신히 유지되고 있다.

- 순천향대천안병원 소아응급실만의 위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우리 병원뿐만 아니라 전국이 위기다. 병동 입원도 받아줄 수 있는 곳도 없고 전원도 못 보내니 데리고는 있어야 하는데 정말 시한폭탄 같다. 과거에는 어쩌다 폭탄이 왔다. 빨리 전화해서 급하니 꺼달라고 요청하면 보내서 끌 수 있었는데 지금은 심지는 타들어 가는데 스무 통 넘게 전화를 돌려도 보낼 곳이 없다. 출근할 때마다 불안하고 무섭다. 소청과는 무너져서 이미 생태계가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된 이상 1년차는 못 들어올 거다.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다.

- 어떤 부분이 가장 우려되나.

소청과 수련 시스템이 망가지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은사님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렸다. 대한민국 소청과 전성기에 배울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지금은 우리가 배웠던 만큼 못 배운다는 의미다. 모든 분과가 있어야 하고 분과별 교수와 전임의, 그리고 환자들도 많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수련할 수 있는 병원이 없다. 점점 대학병원들이 중환자를 못 보고 입원환자를 못 받고 없는 분과가 많아지고 있다. 빅5병원들도 소청과 전임의 지원이 전무하다. 아마 40~50대 잘 배운 의사들이 현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 시점이 대한민국 의료의 정점일 거다. 이대로라면 10년 뒤에는 사라진 수술 기법도 많을 거고 중환자 케어도 어렵지 않겠나.

- 정부에서 소청과 심폐 소생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정부 정책이 오히려 현장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를 막겠다고 응급환자를 수용거부 하지 못하도록 했다. 국민들은 환영했지만 그 사이 의사들이 응급실을 떠나고 있다. 야간에 소아환자 케어를 위해 달빛어린이병원을 확충한다고 하지만 야간·주말진료까지 해야 한다. 또 소청과 전공의와 전임의 수련을 위해 매월 100만원 수련보조수당을 지급하겠다고 하지만 3년이면 3,600만원이다. 수련 안 받고 미용시장을 택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의미가 없는 거다.

- 소청과가 또 소아응급의료체계가 붕괴되지 않으려면 어디부터 손 봐야 하나.

지금 상황에서는 정말 아픈 중환자만 응급실에 갈 수 있게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하고 그러려면 보호자들이 의료이용에 대해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또 의사들이 환자를 용감하게 볼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는 매 순간 의사들이 진단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여야가 소아과 무과실 의료사고 국가보상 법안을 발의했지만 통과되지 않는다는 것은 국회도 의지가 없다는 의미다.

바이탈과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자존감이 회복돼야 한다. 의사들은 환자 치료에 정말 진심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내 환자를 낫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그 시점에서 법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주변에 환자, 보호자, 동료들의 인정해주는 말 한마디면 의료현장을 떠나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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