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대동맥박리 환자 사망에 또 '응급실 뺑뺑이' 논란
응급의학회 "진단·치료 늦지 않았다…무분별 보도 자제를"
부산에서 울산으로 이송된 대동맥박리 환자가 수술 며칠 뒤 사망했다. 유가족은 응급실 파행으로 제때 수술받지 못한 탓이라며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전공의 사직 때문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수술을 담당한 전문의가 직접 상황을 설명하고 학회까지 나섰지만 '응급실 뺑뺑이' 낙인은 피하지 못했다.
대한응급의학회에 따르면 지난 1일 울산 A종합병원에서 수술받은 50대 남성 대동맥박리 환자가 중환자실 입원 중 사망했다. 환자는 지난달 26일 부산 한 병원에서 대동맥박리로 진단받고 A병원으로 전원돼 치료 중이었다.
수술 당일, 환자가 이상 증세로 119에 신고하고 부산 지역응급의료센터에 이송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46분이다. 환자는 여기서 대동맥박리 진단을 받고 응급 수술이 가능한 울산 A종합병원으로 전원했다. 처음 부산 응급실에 도착한 시간부터 A병원 도착할 때까지 걸린 시간을 따지면 약 3시간 30분이다.
이에 대해 응급의학회는 12일 보도설명자료를 내고 "정상적으로 응급 수술을 진행한 사례"라고 판단했다. 진단과 수술 지연으로 환자가 사망한 사례가 아니라고 했다. 119 구급대가 출동해 현장에서 환자 중증도를 평가하고 진료 가능한 응급의료기관을 찾아 이송하는 과정을 고려하면 "환자 안전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심각한 지연이라고 하기 어렵다"고 했다. 구급대의 이송 병원 선정도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대동맥박리 진단부터 A병원 전원도 "정상적으로" 이뤄졌고 전원 후 응급 수술도 "적시에" 진행됐다고 했다. 수술을 제때 받지 못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응급의학회는 "대동맥박리 진단은 혈액검사와 심전도, X-ray 검사, 흉부 CT검사까지 최소 1~2시간 걸린다. 만일 응급실 과밀화로 환자가 많으면 더 걸릴 수도 있다"면서 "(환자는) 진단 후 정상적으로 전원해 A병원이 적시에 응급 수술을 시행했다. 수술이 늦었다는 것은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언론이 "무조건 '응급실 뺑뺑이'로 몰아 보도"하고 있지만 "소위 '응급실 뺑뺑이'로 진단이 늦거나 수술을 제때 받지 못해 사망한 사례가 아닌 게 분명하다"고 했다.
전공의 사직과 연결 지어서도 안 된다고 했다. 대학병원조차 울산 A병원처럼 대동맥박리 응급수술이 가능한 곳이 많지 않고 흉부외과는 "전공의에 의존한 진료와 수술은 안 한 지 오래"라고 했다. 이미 "전공의 지원이 20여년째 적기" 때문이다.
응급의학회는 "119 구급대원과 의료진은 지금 이 시간에도 응급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런 이들의 사기를 꺾고 움츠러들게 만드는 언론 보도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며 "최소한 의학적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응급의료 체계를 불신하게 하는 보도는 자제해 달라"고 했다.
환자를 수술한 A병원 흉부외과 전문의 B씨는 본인 SNS에 "수술은 적시에 시작했다. 제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라면서 다른 의사들이 피해 입어선 안 된다고 호소했다. B씨는 "제가 환자를 살리지 못하니 (A병원에 앞서 환자 전원을) 받지 못한 병원들이 (보건복지부) 조사를 받는다고 한다"며 "모든 흉부외과 전문의가 환자를 살리려 노력하고 있다. 제 탓에 피해 입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다.
B씨는 "그동안 병원이 환자 이송을 거부한다고 악의적으로 보도할까 봐 외래를 취소하면서까지 (전원) 의뢰는 다 받아왔다"며 "흉부외과 의사의 숙명이라 여겼다. 하지만 앞으로 응급환자와 중환자를 계속 치료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해당 글은 현재 비공개로 전환됐다.
응급의학회 이경원 공보이사(용인세브란스병원)는 이날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언론이 응급의료 현장을 살피지 않고 무분별하게 '응급실 뺑뺑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이사는 "이번 일처럼 실제 내용을 잘 살펴보면 소위 '응급실 뺑뺑이'라고 불러선 안 되는 사건조차 응급실 뺑뺑이라는 말로 보도되고 있다. 가장 짧은 단어로 가장 극명하게 사건을 다루고자 이 단어를 쓰는 것"이라면서 "이제 '응급실 뺑뺑이'가 응급의료 문제를 이르는 말로 국민에게 각인됐다"고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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