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종충남대병원 이병국 신생아중환자실장
'오늘만' 버티는 신생아 중환자 의료, 더 어려운 지방
"세계 최고 되겠다…역량 충분, 사회 관심과 지원 必"

청년의사는 세종충남대병원에서 소아청소년과 이병국 교수를 만나 지역에서 신생아 중환자 의료를 맡아보는 보람과 어려움에 대해 들었다(사진 제공: 세종충남대병원).
청년의사는 세종충남대병원에서 소아청소년과 이병국 교수를 만나 지역에서 신생아 중환자 의료를 맡아보는 보람과 어려움에 대해 들었다(사진 제공: 세종충남대병원).

"아내가 오늘이 지구 마지막 날이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길래 '당신이 여기로 와. 둘이서 여기 있자'고 했죠. 그럴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의료진 대기실에 앉은 이병국 교수가 웃었다. 여기는 세종충남대병원 본관 내 신생아집중치료실이다. 신생아중환자실장인 이 교수는 여기를 떠나본 날이 없다. 365일 콜 대기다. 세종충남대병원이 지난 2020년 7월 문을 열고 이 교수는 휴가를 딱 5일 썼다. 신혼여행에 다녀왔다. 그 외는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인터뷰 장소도 자연스럽게 여기가 됐다. 급한 일이 생기면 바로 달려가기 위해서다. 이 교수의 시선은 신생아집중치료실은 물론 고위험산모실과 분만실까지 닿는다. 세종충남대병원 고위험산모·신생아 치료 시스템은 구조도 원스톱이다. 모든 시설을 일직선으로 배치하고 간격을 최대한 좁혔다. 설계부터 신생아 중환자 진료를 염두에 뒀기에 가능했다. 신생아집중치료실 의료진은 분만 과정부터 참여한다.

이런 체계와 의료진의 헌신 속에 세종충남대병원 고위험 신생아 치료 실적은 전국 최고 수준을 달리고 있다. 2023년에는 23주 이상 미숙아를 "한 명도 잃지 않고 다 살렸다." 국내 평균 생존율은 80% 정도다. 앞으로는 21주 미숙아처럼 "더 작은 아기도 살리는 것"이 목표다.

"21주는 사실 생존 한계 미만 연령이죠. (태어나도) 사망 처리하는 경우가 많고요. 그래도 저는 데려옵니다. 엄마 손도 한 번 잡아보고 세상의 온기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엄마에게도 그편이 더 좋은 일이리라 생각해요. 그렇게 한 달을 버텨준 아기들도 있습니다. 적어도 아기들에게 부끄러운 의사는 되지 말자 하죠."

이 교수는 "합병증 없이 잘 살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진료 과정을 빠짐없이 복기하며 내부 시스템을 다듬고 있다. 세종충남대병원은 신생아집중치료실 10병상에 5병상을 추가해 지난 11월 신생아집중치료 지역센터로 확장했다. 올해 말까지 20병상을 완비할 계획이다. 이 교수는 "세계 최고"까지 꿈꾼다.

"신생아 의료 1위로 꼽히는 일본의 22주 미숙아 생존율이 50%에 도달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걸 뛰어넘는 게 제 목표예요. 22주 생존율 50%가 아니라 80%, 90%를 달성하고 싶습니다. 21주 미숙아도 그보다 더 작은 아기도 살리고 싶고요. 신생아 의료 수준은 한국 그리고 세종충남대병원이 '탑'이라고 평가받으면 좋겠습니다."

희생으로 유지하는 신생아 의료 현장…"사회가 함께 할 때"

세종충남대병원 신생아중환자실. 최근 15병상으로 확대해 신생아 집중치료 지역센터로 발돋움했다. 올해 20병상을 갖추는 게 목표다(사진 제공: 세종충남대병원).
세종충남대병원 신생아중환자실. 최근 15병상으로 확대해 신생아 집중치료 지역센터로 발돋움했다. 올해 20병상을 갖추는 게 목표다(사진 제공: 세종충남대병원).

지금도 한국 신생아 의료는 세계 2~3위를 다툰다. 높은 신생아 생존율 아래에는 자리를 지키는 의료진 희생이 있다. 세종충남대병원은 이 교수와 입원전담전문의 2명이 맡고 있다. 이 교수가 개원 후 "단 하루도 쉬지 않아" 가능하다. 한 달에 20일은 당직이다. 치료 실적은 높고 시설도 계속 키우고 있지만 사람 구하기가 어렵다. 의사도 간호사도 의료진 모두 "뼈를 갈고 생명을 깎는다."

이 교수는 명절을 병원에서 보낸다. 차가 막히면 제때 병원에 돌아올 수 없어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절정일 때는 움직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격리라도 되면 신생아집중치료실 운영이 불가능해진다. 환자 모두 "다른 병원에 보내거나 여기서 잘못되거나 둘 중 하나"다. 오늘 지구가 멸망해도 여기 있겠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 교수 배우자는 간호사다. 같은 의료인이기에 "설령 운석이 떨어져도" 환자 곁을 떠나지 못하는 마음을 안다. 그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아서 "나도 그럼 여기 함께 있겠다"고 한다. 이제는 사회도 그 마음을 알아야 할 때다. 더 이상 의료진만 '운석이 떨어지는' 소아 의료 현장을 지키게 할 수는 없다.

모두가 오늘만 버티는 구조…"지역 격차 해소할 인센티브 있어야"

이 교수는 "개인적인 이유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됐다. 9살 때 동생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그 후 태어난 늦둥이 동생을 돌보며 "아기가 익숙해졌다." 사람을 살리고 싶어 의사가 됐고 좋은 의사가 되고 싶어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소아과를 선택했다. 공중보건의사로 강원도 평창군에서 근무하면서 소아과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보고 지역에서 일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지금 소아 의료 현장은 이 교수조차 "내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고민하게 만든다. 여기는 "오늘만 있다. 내일은 없다." 지방은 내일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다(관련 기사: '오늘만 사는' 지방 국립대병원 소청과…"교수가 아프면 끝"). 대도시는 포화 상태다. 중소도시는 신생아는 물론 고위험 산모를 보는 병원 자체가 없다.

소아외과 계열 질환을 다루는 병원은 충청권을 통틀어 한두 곳이다. 세종충남대병원이 안 되면 대전의 충남대병원으로 가야 한다. 충남대병원까지 어려우면 선택지는 서울뿐이다. 서울 외 수도권도 어렵다. 수도권인 일산이나 분당조차 의사가 부족하다. 서울도 장담 못한다.

전원이 가능해도 문제다. 인력도 시설도 한정됐다. 환자가 생기면 그만큼 다른 환자 '몫'이 줄어든다. 이 교수가 전원하는 환자와 동행하면 세종이 빈다. 서울은 서울 지역 환자에게 갈 병상이 하나 사라진다. "모두가 손해를 감수하며 버티고 있다."

"문제 핵심은 지역 격차입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격차예요. 지방에도 도로가 있고 대중교통은 있어요. 하지만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요. 버스 배차 간격은 길어지고 병원은 문을 닫죠. 수익 구조가 나쁜 소아과는 먼저 사라집니다. '의사니까' 희생하라고 강요하고 '국립대병원이니까' 버틸 거라며 의사와 병원의 의지에 기대선 안 됩니다."

지방은 격차를 뛰어넘을 수 있는 '더 높은' 받침대를 요청하고 있다. 이 교수도 지역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첫 번째가 수익이고 두 번째가 인프라다. 지방에서 일하는 소아과 의사는 "동료가 필요하다." 단지 아이가 좋고 소아 환자를 돌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이유' 외에도 "지방에서 소아과 의사로 살 이유가 있어야 한다."

지역 의료가 살려면 그만큼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사회 인식 변화도 시급하다(사진 제공: 세종충남대병원).
지역 의료가 살려면 그만큼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사회 인식 변화도 시급하다(사진 제공: 세종충남대병원).

더 중요한 것은 사회 인식 변화다. 정책을 만들고 투자를 이끌어내는 건 사회적 요구다. 소중한 아이를 지키고 필수의료를 지키자는 구호만 내세워서는 바뀌지 않는다. 지역에 소아 관련 인프라가 형성될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든 만들어내야 한다."

"저는 단순한 사람이라 다른 삶에는 욕심 없습니다. 은퇴해도 손이 부족한 곳을 찾아 도우며 살고 싶어요. 지금은 아이들을 더 잘 살리고 그래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꿈도 꿉니다. 하지만 내일을 걱정하는 게 현실입니다. 제게는 동료가 필요합니다. 소아과 의사가 진료의 기쁨과 보람으로 살 수 있도록 사회가 함께하길 바랍니다."

아래는 이 교수와 일문일답.

- 필수의료 위기에도 정부 정책이나 사회 인식 변화는 더딥니다. 의료계에서는 '망해봐야 정신 차린다'는 반응도 나옵니다. 필수의료 현장을 지키는 의료진을 '바보'라고 부르기도 해요.

그렇게까지 말할 수밖에 없는 심정이야 당연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 같은 사람도 있어야죠. 누군가는 여기를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 누구라도 해야만 한다면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제가 되고 싶습니다.

- '오늘만 버티자'라는 심정이라고 하셨어요. 그 힘은 어디서 얻으시나요.

아기가 퇴원을 계획할 때면 '네가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바로 그 순간의 힘으로 버팁니다. 겨우 500g이던 아기가 1.5kg이 되고 2kg까지 커요. 매일매일 조금씩 버티고 버티며 나아지고 자라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 스스로도 버텨집니다. 신생아를 돌보는 의료진은 물론 많은 소아과 의사가 같은 마음일 거예요.

- 환자가 성장해 20년 후 이 기사를 읽는다고 했을 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는 의사가 생명을 살린다고 해. 하지만 환자가 병을 이겨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야. 그래서 나는 항상 네게 고맙다. 20년 후 이 문장을 읽고 있다면 어렸던 네가 그 힘듦과 아픔을 이겨냈다는 뜻이겠지. 그것 또한 고맙고 기쁘다. 네게 상처가 남을 수도 있고 장애와 함께 살아가야 할 수도 있어. 혹시 그 때문에 힘들다면 어린 시절, 작고 아프던 갓난아기가 자라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다시 한번 용기 내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힘이 되어 주면 좋겠다.

- 퇴원한 환자가 힘들어할지도 모른다고 하셨어요. 이런 생각을 평소에도 하시나요.

고위험 신생아를 돌보는 의료진이라면 한 번은 고민합니다. 평생 상처와 장애를 안고 갈 수도 있는 삶을 과연 네가 반길까. 그런데 해외에서 펴낸 연구를 보니 성인이 된 뒤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이 '살아서 기쁘다. 그때 부모님이 나를 포기하지 않아 고맙다'고 답했더라고요. 그럼 나는 의사로서 지금의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해요. 네가 자라 어른이 됐을 때 세상은 네게 더 좋은 곳이겠지 믿으면서요.

- 교수님은 그때도 여기 계실까요.

네. 저는 그러고 싶습니다.

이병국 교수는 신생아중환자실에 끝까지 남길 바란다(사진 제공: 세종충남대병원).
이병국 교수는 신생아중환자실에 끝까지 남길 바란다(사진 제공: 세종충남대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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