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비인후과학회 자동복원정책으로 지난해 전공의 ‘양보’
2024년도 자동복원되는 전공의 정원, 정부 정책으로 ‘0명’

정부의 수도권-비수도권 전공의 조정 정책으로 인해 2024년도 모집부터 일부 전공의를 뽑지 못하는 수련병원들이 생겼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정부의 수도권-비수도권 전공의 조정 정책으로 인해 2024년도 모집부터 일부 전공의를 뽑지 못하는 수련병원들이 생겼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정부 정책에 의해 일부 전문과목은 아예 전공의를 뽑지 못하게 된 수련병원들이 ‘멘붕’에 빠졌다. 인제대 상계백병원 이비인후과도 그 중 하나다. 필수의료 대책으로 추진된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전공의 정원 조정으로 상계백병원은 전공의 정원 1명이 사라졌다.

대한이비인후과학회는 비수도권에 배정하는 전공의 정원을 40%에서 45%로 늘리라는 보건복지부 요구에 조정이 힘들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결국 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원회(수평위)에서 조정안을 마련했으며 상계백병원을 비롯해 의정부성모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보훈병원, 원자력의학원, 강동성심병원, 부산성모병원이 정원 감원 대상이 됐다. 이들 7곳은 모두 이비인후과 전공의 정원이 1명이어서 이번 조치로 당장 2024년도 모집부터 전공의를 뽑지 못한다.

상계백병원 이비인후과장인 최정환 교수는 9일 청년의사 보도를 통해 이같은 사실을 접했다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수련교육환경이나 지역 상황 등은 “깡그리 무시한” 정책으로 인해 또 다른 의료공백이 예상된다고도 했다.

인제대 상계백병원 이비인후과 최정환 교수는 정부가 학회 자율로 운영되던 전공의 수련교육체계를 흔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제대 상계백병원 이비인후과 최정환 교수는 정부가 학회 자율로 운영되던 전공의 수련교육체계를 흔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학회 정책인 전공의 배정 자동복원 “깡그리 무시”

상계백병원은 2023년도 전공의 모집 당시 정원을 배정받지 못했다. 상계백병원이 수련교육 여건을 맞추지 못해서가 아니다. 이비인후과학회가 시행하는 전공의 배정 자동복원정책 때문이다. 이비인후과 수련교육 명맥이 끊기지 않도록 전년도에 정원을 배정을 받지 못한 수련병원에 다른 수련병원의 정원을 주는 정책이다.

상계백병원은 이비인후과학회 차원에서 실시하는 수련교육실태조사 점수 상으로 신규 전공의 1명을 배정받을 수 있는 ‘1군’에 속한다. 하지만 2022년도 전공의 배정을 받지 못한 수련병원을 위해 상계백병원에 주어진 2023년도 전공의 정원 1명을 ‘양보’해야 했다. 최 교수는 이비인후과학회 정책에 의해 “강제로 뺏긴 정원”이라고 했다. 이에 상계백병원은 이비인후과 전공의 2~4년차만 1명씩 수련교육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정책에 의해 상계백병원은 2024년도 전공의 정원을 다시 배정받는다. 하지만 정부 정책에 의해 그 정원이 사라졌다.

최 교수는 “자동복원정책은 현재 수련을 받는 전공의의 정상적인 수련 환경을 유지하고 외래, 수술, 응급실 같은 모든 임상 진료에서 과도한 업무 배정 없이 수련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절차”라며 “지난 몇 년간 이비인후과 각 군별 병원은 이와 같은 자동복원정책에 따라 정상적인 수련 환경을 지켜나갔다”고 말했다.

전공의들 “윤석열 정부, 상식과 공정 원칙이 이거냐”

최 교수는 “2023년도 전공의 배정에 있어 이비인후과학회의 자동복원정책에 의해 충분한 수련실태조사 점수에도 불구하고 전공의를 배정받지 못한 현 상황에서 복지부 정책인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전공의 균등 배정으로 인해 갑자기 정원을 받지 못하게 됐다”며 “충분한 수련교육환경과 조건을 갖췄는데도 전공의를 배정받지 못할 경우 내년에는 3, 4년차 전공의 1명씩만 남아 정상적인 수련 업무와 진료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했다.

최 교수는 “수십 년간 학회 정책에 따라 수련교육환경을 유지해왔는데 일방적인 정부 기준에 의해 하루아침에 정원이 없어져 이비인후과 유지 자체가 어렵게 됐다”며 한숨을 쉬었다.

상계백병원 이비인후과에 지원하려던 인턴도 갈 길을 잃었다. 최 교수는 “지원예정이던 의사는 다른 병원으로 떠날지 이비인후과를 전공할 마음을 접고 군대로 갈지 고민 중”이라며 “남은 전공의로는 도저히 과가 돌아가지를 못하게 되며 진료와 응급실 관리에 구멍이 예상된다”고 했다.

상계백병원을 비롯해 원자력의학원과 의정부성모병원이 모두 전공의를 뽑지 못하게 돼 노원구와 경기 북부 지역 이비인후과 진료와 응급진료에 차질이 우려된다고도 했다.

최 교수는 “이비인후과학회의 기존 평가를 무시하고 과내 전문의 수를 기준으로 강제로 정원 배정을 없앴다”며 “정부의 즉흥적인 조치가 초래할 의료의 또 다른 위험은 국민이 감내해야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공의 정원을 다시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계백병원 이비인후과 전공의들도 반발했다. 이들은 별도 입장문을 통해 “내년에 신입 전공의가 들어온다고 생각하고 힘들지만 하루하루 수련을 받았는데 정원이 사라졌다고 하니 충격 그 자체”라며 “예측 가능한 수련교육이 헌신짝처럼 버려졌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내년에 상계백병원에서 이비인후과 전공의 수련을 받으려면 인턴은 어디로 가야 하며 기존 전공의들은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교수들이 남은 인력으로 어떻게 외래진료와 수술, 응급실 관리를 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이들은 “상식과 공정의 원칙을 바로 세우겠다는 현 정부의 외침이 너무 공허하게 여겨진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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