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종합병원 이어 26개 학회에도 수요 인력 요청
학회들 “하루 만에 제출할 자료 아니다” 거부하자 재요청
“막무가내” 비판 거세…“의대 증원 명분쌓기용” '부글부글'

보건복지부는 26개 전문과목학회에 공문을 보내 전공의 수요 현황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청년의사).
보건복지부는 26개 전문과목학회에 공문을 보내 전공의 수요 현황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청년의사).

정부가 지역·필수의료 분야 인력 확충을 명목으로 ‘막무가내식 정책’을 추진한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급기야 26개 전문과목학회들이 집단으로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정부가 요구한 자료는 향후 6년간 필요한 1년차 전공의 수요다. 제출 기한은 단 ‘하루’였다. 학회들은 수많은 요인을 감안해 분석해 마련해야 하는 자료를 하루 만에 제출하라고 통보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반발했다. 전공의 정원 조정이 아닌 의과대학 정원 확대 근거로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됐다.

복지부, 향후 6년 필요 전공의 정원 제출 요구

보건복지부는 지난 10일 수련환경평가위원회(수평위)를 통해 26개 전문과목학회에 전공의 수요 현황을 파악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전문학회별로 향후 6년간 필요한 전공의 1년차 정원과 추가로 필요한 전문의 수를 14일 오후 12시까지 제출하라는 내용이다. “지역과 필수 의료 인력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의사 인력 확충과 필수의료정책 패키지 마련”을 위해 필요한 자료라고 했다. 금요일에 시행된 공문은 주말을 넘겨 월요일인 13일에야 학회에 전달됐다. 학회들은 하루 만에 6년치 전공의 수요를 정리해 보내야 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복지부는 지난 10일 전국 종합병원에도 향후 5년간 연도별로 추가 채용이 필요한 전문의와 전공의 수요를 전문과목별로 정리해 13일까지 보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주말을 빼면 종합병원에 주어진 시간도 하루 정도에 불과하다(관련 기사: 복지부 종합병원 '긴급' 의사인력 수요조사, 왜?).

공문을 받은 학회들은 황당해했다. 공문을 지난 10일 전달 받았다고 해도 4일 만에 마련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니라고 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전공의 정원 조정으로 홍역을 치르는 중이기도 했다. 이미 2024년도 전공의 모집 정원을 수도권 55%, 비수도권 45%로 마무리한 상황에서 뒤늦게 향후 6년 인력 수요 추계가 필요한 이유도 납득하기 힘들었다. 발표가 미뤄진 의대 정원 확대의 당위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학회를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왔다.

학회들 “촉박하게 제출할 자료 아냐” 거부…복지부, 재요청

학회들은 자료제출을 거부하기로 했다. 그리고 수평위에 공문을 보내 “전공의 정원에 대해 학회 구성원에 따라서 이해관계가 달라 공식안을 마련하려면 내부 조율이 필요하다”며 “촉박하게 제출할 수 없다”고 했다. 2024년도 전공의 모집에서 달라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정원 배정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의대 정원 확대 방안으로 의료계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학회가 제출하는 안이 오해를 불러올 소지도 우려된다”고 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물러서지 않았다. 복지부는 지난 14일 오후 5시경 수평위를 통해 자료제출을 거부한 학회에 공문을 보내 “향후 6년간 전문학회별 전문의 수급 및 배출 추이를 참고하는데 활용”하려 한다며 수요를 제출해달라고 했다. 자료제출 기한은 이튿날인 15일 오후 3시까지였다.

학회들은 “우리가 호구냐”며 불쾌해했다. 하루 만에 6년치 인력 수요 추계를 제출하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며 정부가 밀어붙이기식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자료제출 재요청에는 답하지 않기로 했다. 학회를 중심으로 교수들 사이에서는 “들고 일어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보건복지부가 26개 전문과목학회에 공문과 함께 보낸 '전공의 수요 조사 양식'(ⓒ청년의사).
보건복지부가 26개 전문과목학회에 공문과 함께 보낸 '전공의 수요 조사 양식'(ⓒ청년의사).

“정부, 학회 무시하며 막무가내식” 성토

대한내과학회는 복지부에 2024년도 전공의 모집이 마무리된 후 그 결과를 보고 내부적으로 의견을 조율해서 제출하겠다는 입장을 지난 14일 공문으로 전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부는 그날 즉시 자료를 제출하라는 공문이 또 보내왔다며 “학회를 무시하는 처사이고 막무가내식”이라고 비판했다.

내과학회 김대중 수련이사(아주대병원)는 “전문학회별 전공의 수요 조사 양식에는 내과학회를 예시로 들어 설명해 놨더라. 이 부분도 어이없다”며 “전공의 정원 책정 결과도 아직 발표하지 않은 상태에서 향후 6년간 희망하는 인력을 제출하라니 너무 황당하다”고도 했다.

김 이사는 “자체적으로 수련환경평가를 해서 전문의를 배출하고 있는 학회들을 인정하지 않고 휘두르면 따라올 것처럼 대한다”며 “이번에 대규모로 전공의 정원을 조정했으니 그 모집 결과를 보고 평가한 뒤에야 논의할 수 있는 문제”라고 거듭 강조했다.

대한성형외과학회도 마찬가지였다. 성형외과학회는 지난 14일 복지부에 공문을 보내 촉박한 자료제출 기한에 유감을 표하며 2024년도 전공의 모집이 끝난 후인 내년 1월이나 2월경 다시 논의하자고 했다.

성형외과학회는 “향후 6년간 전공의 수요에 대한 것은 학회의 미래 구성원에 대한 계획이다. 물리적으로 공문 전달 후 하루 뒤 제출하는 것은 학회에도 도움 되지 않으며 수평위와 복지부, 나아가 국민건강을 다루는 보건의료정책에도 도움 되지 않는다”며 학회 내에서 논의하고 협의할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성형외과학회 홍종원 수련이사(세브란스병원)는 “전공의 정원은 중요한 문제다. 물리적으로 (자료제출이) 가능하지 않다. 말이 되지 않는다”며 “전공의 정원 조정 문제가 일단락되고 내년 1~2월 중 논의해도 충분하다. 그동안 학회들이 자료 조사하고 합리적인 안을 내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홍 이사는 학회 대부분이 자료 제출을 보류했다며 “(전공의 수요 조사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윤석열 정권이 의대 정원 1,000명 증원을 얘기하는데 정확한 규모를 알아야 학회도 그에 맞춰 전공의 수요를 계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형외과는 복지부 요구에 따라 지난 2014년부터 전공의 정원을 30% 가까이 줄였다며 “성형외과 전공의 수가 근본적으로 모자라다. 지금까지 증원 요청을 무시하다가 갑자기 하루 이틀 사이에 안을 내라고 하니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한) 명분 쌓기로 여길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신정호 수련위원장(고려대구로병원)은 "6년 계획을 하루만에 세울 수는 없다. 일의 순서가 뒤바뀌었다. 결국 의대생이 늘어나면 전공의 정원도 늘어난다"며 "순서를 따지면 의대 정원 결정이 먼저다. 그 후에 학회가 증원 규모를 기반으로 전공의 정원을 논의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신 위원장은 "지금은 '썰'만 많다. 의대 정원은 물론이고 전공의 (수도권-비수도권) 조정 정원조차 발표가 안 나니 참 어렵다"며 "지금은 학회 차원에서 필요 정원을 계산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복지부는 종합병원과 학회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의사 인력 수요 파악에 대해 “현장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진행한 조사"라며 현재 진행 중인 의대 정원 확대 관련 조사와는 관련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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