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보센터, 109억 들여 차세대 심사시스템 구축 착수...건보 연계 기왕증 심사강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자동차보험 심사에 건강보험 데이터를 연계하는 '자동차보험 차세대 심사시스템' 구축에 속도를 내자 의료계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민간보험 심사에 공보험인 건강보험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은 가입자인 국민의 개인정보보호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기왕증 등 과거 질환 치료내역을 토대로 편향된 심사를 할 수 있다는 게 의료계의 입장이다.

심평원 자동차보험심사센터는 지난달 8일부터 9일까지 대명비발디파크 오크동에서 ‘자동차보험 차세대 심사시스템 구축 사업 착수 워크숍’을 갖고 본격적인 사업준비에 들어갔다.

이날 심평원은 차세대 심사시스템 구축을 위해 업무 제반에 대해 점검했으며 자보센터 직원들과 IT장비 등 인프라 구축을 위한 업체 관계자들과 분과별 회의를 가졌다.

자보센터가 오는 2018년 5월까지 추진하는 이번 차세대 심사시스템 구축 사업은 응용개발 비용 67억원, IT장비 등 인프라 구축비용 40억원, 기타 2억원 등 총 109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자보심사가 보험사로부터 위탁 진행되는 만큼 이 비용 또한 보험사들이 제공하는 것이지만, 의료계에서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향후 심사 강화 등에 대한 불안감도 크다.

실제 자보센터는 이번 시스템 개편을 통해 심평원이 요양급여비용 심사 등에 활용하고 있는 건강보험 심사지식뱅크, 요양기관프로파일, 연구자료 등을 연계해 심사수행 체계와 모니터링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자보 환자들의 진료정보에 대한 이력관리 뿐만 아니라 심사 시 기왕증, 자격점검 등을 위한 각종 환자 정보를 연계할 계획이다.

건강보험, 의료급여 등의 진료정보 연계는 물론 수진자의 출국, 사망 정보 등도 연계할 수 있는 자격점검체계를 만든다는 것.

이를 통해 자동차 사고 다발생 환자도 관리하고 기왕증 심사, 비급여 관리체계를 도입해 적정진료를 유도하고 건전한 자동차보험 의료문화를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7월 심평원 자보센터가 공개한 '자동차보험 차세대 심사시스템구축사업' 설명회 자료 일부.


하지만 심평원의 이같은 방침에 의료계는 자보 심사위탁 시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노심초사하고 있다.

특히 이는 심평원이 해야 할 업무의 선을 넘어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심평원에 자보심사를 위탁한 것은 건보 심사를 수년간 해온 심평원의 심사 노하우를 활용하기 위한 것이지 건보 자료까지 활용하라는 것은 아니었다”며 “공적 기관이 민간보험 심사를 하는 것부터 논란의 소지가 있었는데 이제는 아예 민간보험 심사를 위해 건보 데이터를 마음대로 사용하겠다고 한다. 황당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를 들어 경추디스크로 치료를 받았던 환자가 교통사고가 나서 치료를 받는다면, 자보 분심위에서는 과거 기왕증이 있어도 외상이 있을 때는 치료를 다하도록 인정해주고 있다”며 “그런데 심평원이 기왕증 정보를 먼저 인지한 상태에서 심사를 하면 선입견을 가질 수 있고 삭감으로 인해 환자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2013년 1월경 심평원은 자보심사 위탁 결정을 앞두고 의료계가 기왕증 정보 유출에 따른 보험가입 거부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하자 그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또한 자보심사시스템을 건강보험과 완전히 분리해 개인정보 유출 등의 우려를 해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다른 관계자는 “자보센터가 건보자료를 활용하는 것이 타당한지 법리적 검토를 했는지도 의문스럽다”면서 “심평원은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위임된 범위 내에서 업무를 해야지 심사를 위탁했다고 해서 건보자료를 활용하는 것은 개인정보 보호법에도 침해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환자가 통증 등 치료를 받고 싶다고 호소를 하더라도 의료기관은 피해(삭감을)를 우려해 자보환자를 기피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삭감으로 의료기관에서 자보환자를 잘 안보고 있다”면서 “더욱이 의료기관에서도 환자의 정보를 다 알아야 정확한 진료를 볼 수 있지만 환자 동의 없이는 개인정보를 알 수 없다. 이는 심평원이 건보와 연계한 심사를 하면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심사위탁 논의가 나왔을 때 심평원은 건보 연계심사를 하지 않는다고 했었다”며 “심사연계 관련해서는 의료단체들과의 협의도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의 모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한 관계자는 “심평원은 자보심사에 대해 위탁 받은 것이다. 그런데 건보 데이터를 활용한다는 것은 국민에게 허락을 받은 것이냐”며 “국민 개인의 건강관련 정보는 민간보험 심사에 활용해서는 안된다. 또 보험사가 109억원의 돈을 준다는 것은 그만큼 이득을 얻기 위한 것인데 진료 삭감 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개탄해 했다.

그러나 심평원 자보센터는 이같은 논란에 대해 당초 발표내용과 달리 심사의 범위와 방법은 달라질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자보센터 관계자는 “차세대 심사시스템이 구축된다고 해서 지금과 심사체계가 달라지는 것은 없다”면서 “지금도 건보 자료를 활용해 심사에 반영하고 있다. 기왕증에 대한 일부 심사를 하는 정도이지 그 강도가 더 심해지거나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개인정보보호의 문제도 없다"며 "이번 시스템 개편은 기존의 건보 시스템을 활용하면서 불편을 겪었던 시스템상의 개편일 뿐”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자보센터는 지난달 8일 진행된 자보 차세대심사시스템 구축 사업 착수 워크숍과 관련된 회의 자료 및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일체 공개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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