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철기 초대회장 "의료 신기술 통합적으로 다룰 것"
의료메타버스 기술 이미 세계적 수준…"관련 법제도 정비돼야"

'메타버스(metaverse)'에 대한 의료계의 관심이 뜨겁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대학들이 가상현실을 이용한 교육과 실습 콘텐츠 개발에 나서고 원격진료 논의가 급물살 타면서 병원과 산업계도 관련 기술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달 서울의대 연구자들을 주축으로 창립한 '의료메타버스연구회'도 발족하자마자 200여명에 가까운 이들이 가입하며 높은 관심을 증명했다.

초대 회장인 서울의대 신경외과학교실 박철기 교수는 "의료 분야가 주목하는 신기술을 통합적으로 다루겠다"면서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의료 신기술을 통합한 '플랫폼'으로서 메타버스에 주목한 첫 번째 시도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 3D 프린팅 등 관련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만큼 '실험'을 넘어 실질적인 '의료메타버스'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따라서 임상과 교육 현장에서 의료메타버스가 제대로 정착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의료메타버스가 현실에서 효용성을 갖도록 관련 법제도 정비에도 힘을 쏟을 생각이다.

이를 위해 매달 메타버스 관련 기술을 다루는 온라인 강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오는 4월에는 심포지엄을 개최할 계획이다. 7월에는 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단체의 기틀이 잡히면 외부 회원 모집에도 나설 예정이다. 대학과 병원, 각계 각층 사람들을 모아 다양성을 확보한 뒤 학회로의 출범도 구상하고 있다.

의료메타버스연구회 초대 회장인 서울의대 신경외과학교실 박철기 교수는 지난 15일 청년의사와 진행한 ZOOM 비대면 인터뷰에서 의료메타버스 발전 방향을 짚었다.
의료메타버스연구회 초대 회장인 서울의대 신경외과학교실 박철기 교수는 지난 15일 청년의사와 진행한 ZOOM 비대면 인터뷰에서 의료메타버스 발전 방향을 짚었다.

- 의대가 주축이 돼 의료 분야 '메타버스' 연구회를 설립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부터 '메타버스' 자체를 목표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지난해 초 창립 논의 때만 해도 메타버스가 대두되기 전이었다. 그때 당시 AR, VR, AI 기술이나 원격의료, 원격로봇(수술)을 다루는 연구회나 학회는 있어도 이를 통합적으로 다루는 단체가 없었다. 그래서 이를 아우르는 '미래의학' 연구회를 하자고 했다. 그런데 논의를 거듭하다보니 '메타버스'야말로 우리가 다루는 기술이 통합된 모습이었다. 아직 전면에 내세우기 일러도 분명히 메타버스가 주목받는 때가 올 것으로 보고 '메타버스' 연구회로 결정했다. 그렇게 가닥을 잡고 한두 달 지났더니 갑자기 사방에서 메타버스 이야기가 들려오고 관심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 메타버스에 대한 높은 관심과 별개로 지금까지 '의료 메타버스'를 다루는 단체가 없던 것은 의외다. 해외에서도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메타버스 자체는 유행처럼 퍼지고 있지만 그 가운데 의료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1%도 안 될 것이다. 미국조차 아직 의료 메타버스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하거나 시스템을 개발할 여력은 없는 것 같다. 개인이나 병원 단위로 메타버스를 다루고 있지만 우리 연구회처럼 조직화된 곳은 없다. 그러나 기술 발전과 함께 노하우가 쌓이면 메타버스 관련 업계가 본격적으로 의료시장에 발을 들이면서 의료메타버스에 대한 논의도 급격히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 이런 상황에서 국내 의료계가 메타버스 논의에서 앞서 나가게 된 이유가 있다면.

무엇보다 메타버스와 관련된 기술에 대한 관심과 콘텐츠 수준이 뛰어나다. 국내 의학계가 VR이나 AR은 물론이고 AI와 3D 프린팅 기술 연구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성과를 내왔다. 관련 논의도 활발하고 그 수준도 높다. 세계적으로 메타버스 기반 기술 선도 그룹이라고 봐도 된다. 이런 배경에서 의료메타버스에 대한 관심도 좀 더 빠르게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은 뜨겁지만 그 역할이나 효용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이미 있는 기술과 차별점이 없다거나 '상술'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아직 메타버스가 완벽하게 실체가 잡혀있지 않아서 그렇다. 우리가 '메타버스'를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관련 기술 발전을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그 사이 1~2년간은 메타버스가 VR 안경을 끼고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를 체험하거나 10년 전 컴퓨터 게임처럼 아바타를 조작하는 수준으로만 비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시선에만 머물면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메타버스는 그저 VR을 이용한 트레이닝이나 회의 수준에 그칠 것이다.

- 그렇다면 연구회가 생각하는 메타버스란 무엇인가.

의료계가 주목하는 기술을 통합한 시스템이자 '플랫폼'이다. 컴퓨터와 디바이스를 통해 VR과 AR로 그래픽과 현실이 혼합되고 홀로그램이나 AR글래스를 이용해 환자를 진단하고 진료하는 환경이 마련될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의료메타버스'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제도, 사회적으로 더 많은 발전이 필요하다. 연구회는 이런 과정을 예상하고 발전을 극대화하기 위해 관련 기술과 제도를 갈고 닦고자 한다. 앞으로 메타버스의 시대가 도래했을 때 의료메타버스도 그 효용성이 드러날 것이다.

- 현재 국내 의료 메타버스는 어느 수준까지 왔는지 궁금하다.

샘플이 필요 없는 심리 검사나 안과 검사 등 검사 분야는 금방 적용이 가능하다. 수술 내비게이션은 물론 로봇수술도 법적 문제만 해결되면 '메타버스 수술'이 가능하다. 환자가 있는 수술장을 중심으로 로봇수술 콘솔을 연결하면 수술장 밖은 물론 심지어 병원밖에서도 수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각 의료진마다 수술 콘솔을 여러 개 연결하면 협동 수술도 가능하다. 현실에서는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가상의 공간에서 한 자리에 모인다는 점에서 메타버스라고 할 수 있다.

교육과 트레이닝 분야에서는 현재 국내외 콘텐츠가 의대생 교육에 큰 문제가 없는 수준까지 왔다. 그러나 실제 의사 면허를 따고 트레이닝을 받는 단계에서 '현실' 실습을 대체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있다.

- 기술적으로 보완이 필요하다는 뜻인가.

VR이나 AR로 구현한 그래픽을 현실과 정합하는 기술이 상당한 수준을 요한다. 컴퓨터나 디바이스 기술이 VR을 거쳐 AR 구현을 위해 한 단계 나아가야 한다. 3D 공간을 빠르게 스캐닝하는 기술과 그렇게 스캔한 데이터를 3D로 재구성하는 볼륨 렌더링(Volume Rendering)이 제대로 되려면 전체적인 컴퓨팅 기술과 성능이 받쳐줘야 한다. 앞으로 1~2년 안에 관련 기술이 한 단계 도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디지털헬스케어 산업이 크게 성장했지만 현장에서 기술은 있는데 법제도 제약 때문에 쓰지 못한다는 말이 나온다. 메타버스도 발전 과정에서 제도적 어려움을 겪게 될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법제도적 문제만 해결되면 몇 개월 안에 실현 가능한 부분이 많다. 특히 트레이닝이나 교육면에서 관련 제도가 전무하다시피 하다. 실험 수준에서 기술을 써볼 수는 있어도 시스템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힘들다. 기존의 근거 중심 승인·허가제도로는 메타버스를 담아내기 어렵다. 메타버스가 새로운 차원인 것처럼 평가 방법도 새로워야 한다. 기술 발전에 맞춰 관련 제도나 법령이 마련되도록 제안하는 것도 우리 연구회의 중요한 역할이 될 것이다.

- 의료계 메타버스 논의가 학계와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개원가 차원에서 메타버스는 어떻게 구현될 것으로 보나.

개원가에서의 메타버스는 앞으로 논의가 더 필요하다. 다만 메타버스를 통한 '가상 검사실' 등장을 그려 볼 수 있겠다. 메타버스 심리 검사, 치매 검사, 안과나 청력 검사 등은 현재 기술 수준으로도 가능하다. 실제 병원 현장과 동일한 결과가 나온다. 이 가상 검사실을 활용하면 시설이나 규모 때문에 종합병원급만 하던 검사도 개인 병·의원에서 할 수 있게 된다. 개원가에도 메타버스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 메타버스가 피할 수 없는 미래라고 보는 시선도 있지만 한편으로 왜 굳이 메타버스로 진단하고 진료를 봐야 하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아직 회의적이거나 '메타버스의 세계'에 들어오길 망설이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모든 기술은 세상에 첫 선을 보일 때마다 '왜 굳이'라는 반응을 맞닥뜨린다. X-ray, 자기공명영상(MRI) 필름을 컴퓨터로 옮길 때 '해상도 떨어지는 모니터로 보면 의료사고 난다'고 반발이 심했다. 전자의무기록(EMR) 도입 시기에도 '손으로 쓰면 더 빠르다'고 했다. 지금 병원에서 필름과 수기 차트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방대한 의료 데이터베이스(DB)가 구축됐다. 의료적 판단도 단편적인 수준에서 벗어나 데이터와 자료를 종합하면서 실질적인 진보를 이뤄냈다.

메타버스와 연결된 새로운 기술은 공간 자체를 스캐닝해 데이터를 '공간적'으로 집적한다. 2차원적 데이터에서 벗어나 공간적 데이터를 읽어내고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데이터 집적이 미래의학에 어떤 기여를 할지 예단은 어렵다. 그러나 새로운 길이 등장하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과거 의사가 환자를 봐오던 전통적인 시절에서 기술 발달을 거치면서 모든 환자가 '모니터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모니터 속의 환자들을 밖으로 꺼내 의사와 환자가 다시 만나야 하는 때가 왔다. 메타버스가 이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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