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서울대병원 스마트수술실에 구현된 ‘가상현실’
외국 흉부외과 의사뿐 아니라 국내 의학교육에도 적용
전상훈 교수 “규제 푼다며 새로운 규제 만들지 말아야”

상상을 현실로 바꾼다는 ‘메타버스(Metaverse)’가 의료도 바꾸고 있다. 그것도 가상과는 가장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수술 현장에 먼저 구현됐다. 분당서울대병원 스마트수술실에서다.

메타버스는 가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기존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보다 진보된 개념이다. VR과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 혼합현실(MR, Mixed Reality)을 아우르는 확장현실(XR, eXtended Reality)이 핵심 기술이다.

아시아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ASCVTS)는 지난 5월 29일 온라인 학술대회에서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폐암 수술 교육을 진행했다. 수술은 분당서울대병원 스마트수술실에서 이뤄졌으며 아시아 각국 흉부외과 의료인 200여명이 가상환경에서 이를 체험했다. 이들에게 필요한 장비는 HMD(Head Mounted Display) 정도다. 최근에는 관련 플랫폼이 업그레이드돼 HMD 없이 노트북으로도 360°로 수술실을 볼 수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스마트수술실에서 중계한 폐암 수술 시연(사진제공: 분당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스마트수술실에서 중계한 폐암 수술 시연(사진제공: 분당서울대병원)

ASCVTS 회장인 분당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전상훈 교수가 병원장 시절 구축한 스마트수술실 덕분에 가능한 교육이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4K나 3D 영상, 360° 카메라를 이용한 8K VR 영상을 제작할 수 있는 스마트수술실을 지난 2019년 구축했다. 스마트수술실에서는 근적외선을 이용한 영상유도 수술(Image Guided Surgery, IGS)이 가능하고 4K와 3D 수술내시경을 동시에 지원하는 디스플레이도 도입됐다. 실시간 의견 공유가 가능한 ‘원격 병리진단(Tele-Pathology)’ 시스템도 갖췄다.

ASCVTS를 통해 분당서울대병원 스마트수술실이 구현한 가상현실의 ‘현실성’을 체험한 싱가포르국립대병원은 이 시스템을 적용한 수술실을 만들기로 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스마트수술실이 싱가포르로 ‘수출’되는 셈이다.

국내 의학교육 현장에도 확대 적용된다. 의대생 임상실습 교육뿐 아니라 전공의나 전임의 수술 교육에도 활용할 계획이다.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서울의대 임상실습 교육에 적용된다.

전 교수는 최근 청년의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의료교육 외에도 다양한 의료 현장에 메타버스를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건강보험을 기반으로 한 제도가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라고도 했다. 제도가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면 우리나라 의료 현장도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분당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전상훈 교수는 청년의사와 인터뷰를 갖고 스마트수술실에 메타버스로 구현한 가상현실에서 수술 교육이 이뤄지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분당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전상훈 교수는 청년의사와 인터뷰를 갖고 스마트수술실에 메타버스로 구현한 가상현실에서 수술 교육이 이뤄지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 이번 ASCVTS 온라인 학술대회에서 메타버스가 구현한 가상현실에서 폐암 수술 교육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를 주관한 게 아시아흉강경수술교육단(Automotive Technical Education Program, ATEP)이고 이 연구단을 직접 설립했다.

아시아 흉부외과 전문의들에게 흉강경 수술을 가르치기 위해 지난 2011년 설립해 1년에 1~2회 워크숍을 가졌다. 주로 개발도상국이 대상이었다. 초기에는 우리나라나 일본 교육센터를 빌려서 이틀 동안 수술 교육을 무료로 진행했다. 40명이 2인 1조로 동물을 이용해 수술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이 교육 과정에 드는 비용이 상당하다.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ATEP 교육 방식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뀐 것인가.

지난 2019년 ASCVTS 회장에 취임한 후 폐 분야 수술 교육을 ATEP과 연계해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술 교육에 VR을 도입했다. 오프라인에서 수술 교육을 진행하는데 상당히 많은 비용이 든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시의적절하게 가상현실에서 교육이 이뤄지게 됐다. 필요한 장비는 HMD 정도여서 ATEP에서 40세트를 사서 베트남에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이달 말 모스크바에서 한 차례 더 교육이 진행된다. 초기보다 기술이 발전해 지금은 HMD 없이 노트북으로도 가상현실을 360°로 체험할 수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스마트수술실. 왼쪽 하단 사진은 통합 컨트롤 패널을 조작하는 모습이다(사진제공: 분당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스마트수술실. 왼쪽 하단 사진은 통합 컨트롤 패널을 조작하는 모습이다(사진제공: 분당서울대병원)

- 분당서울대병원장 시절인 지난 2019년 구축한 스마트수술실이 있었기에 가능한 교육이었다.

당시 수술 교육에 대한 요구가 많았다. 우리나라 의사들은 수술을 잘하지만 해외에 가서 다른 나라 의사들에게 이를 가르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이를 가능하게 하는 특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분당서울대병원에 세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수술실을 만들게 됐다. 수술 과정을 생중계하거나 녹화할 수 있는 장비들을 갖췄고 방송실도 별도로 마련했다. 수술실을 360°로 촬영하는 8K 화질의 카메라도 설치했다. 그래서 HMD을 쓰면 직접 수술실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

- 수술 과정을 생중계하는 방식은 오래전부터 해 왔다. 메타버스가 구현한 가상현실에서 이뤄지는 교육은 무엇이 다른가.

수술 현장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일방적으로 한 장면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HMD을 쓰고 고개를 돌리면 수술실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나 간호사는 무엇을 하는지 등을 실제 수술실 안에 있을 때보다 더 자세하게 볼 수 있다. XR 기술이 있어서 가능한 것으로 몰입도가 높다.

- 지난 2019년 카메라와 VR 시스템으로 폐암 수술을 생중계했다면 1년 뒤에는 XR을 적용해 직접 수술실에 들어가서 참관하는 환경을 구현했다. 관련 기술 발전, 어디까지 왔나.

관련 기술은 이미 상용화돼 있다. 기술이 없어서 의료 현장에 적용하지 못하는 상황은 아니다. 필요한 기술을 의료 현장의 특정에 맞게 현장에 적용하도록 구성하고 고민하는 기관이 별로 없다. 분당서울대병원에 스마트수술실을 만들 때도 엔지니어와 카메라 전문가, 가상현실 전문가 등을 모두 만나야 했다. 또 의료진의 의견도 수렴했다.

앞으로 기술이 더 많이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이 기술 발전을 앞당기고 있다.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당서울대병원 스마트수술실에는 360도 8K로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사진제공: 분당서울대병원)

- 현재 전문의나 전공의 교육에도 활용되고 있나.

요즘은 전공의가 수술할 기회가 많지 않다. 흉부외과에서는 동물 심장이나 폐를 이용해 전공의 수술 교육을 진행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가상으로 수술교육을 진행한다. 가상환경에서도 촉감까지 재현할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다. 앞으로는 서울의대 학생들 임상실습 교육에도 적용하기 위해 파일럿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는 의대생 임상실습 교육에도 적용할 계획이다. 서울의대와 싱가포르국립의대, 서울대병원과 싱가포르국립대병원 간 교육 MOU가 체결돼 있어 싱가포르국립의대에도 적용할 계획이다. 특히 임상실습 기회가 부족한 중환자실도 가상현실로 구현하고 있다.

- 교육 외에도 의료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분야가 있다면.

많다. 예를 들어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주사를 맞는 동안 휴대폰이나 잡지를 본다. 그러나 불안한 마음에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암 환자들이 편안하게 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는 가상환경을 구현하는 임상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임상에서 의사들이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좋은 기술을 찾게 된다.

- 최근에는 기류가 변하고 있기는 하지만 원격의료에 대한 의료계의 부정적인 시각이 국내 관련 기술 발전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VR이나 XR로 구현된 가상현실에서 교육을 하는 것과 원격의료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하지만 원격의료 도입은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원격의료가 어떤 장점이 있는지, 또 잠재적인 위험은 무엇인지 등을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 막연하게 반대만 해서는 안된다. 하나씩 해결하려는 노력을 의료계는 물론 정부, 시민들 모두 해야 한다. 밥그릇 싸움으로 보면 오해만 생긴다. 시대는 바뀌고 있다.

-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은 없나.

정부는 매번 규제를 푼다고 하지만 그 규제를 풀기 위해 또 다른 규제를 만든다. 건강보험은 더 답답하다. 일단 결정을 해놓고 발표하기보다 임상현장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야 한다. 의료계가 반대한다고 그 이유를 ‘의사집단의 이익’ 때문이라고 몰아가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간다. 의사 집단을 신뢰하지 못하고 무엇인가를 숨기고 속인다는 식으로 몰아가 국민과의 사이를 갈라 놓아서는 안된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논란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의료를 공공재로 보기 때문에 수가를 국가에서 통제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기술을 환자에게 제공한다면 이 또한 건강보험 등으로 보장해줘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신속하게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시스템이 있어야 일선 의료기관에서 더 많이 활용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료기관들이 돈을 투자해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임상에 적용하려 하겠는가. 국립대병원은 사명감으로 한다고 해도 다른 민간 의료기관들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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