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부외과학회 김웅한 이사장 “수술할 곳 없는데 흉부외과 늘겠나”
하루 13시간 일하며 수술 현장 지킨 흉부외과 전문의들
“후배들에게 짐 지워 미안하고 부끄럽다”
“의사 수 늘리고 ‘낙수효과’로 기피과 해결? 말도 안돼”

국내에서 소아심장 수술이 가능한 흉부외과 전문의는 20명 밖에 없다. ‘수술하는 흉부외과 전문의’도 적지만 소아심장 수술 분야는 극소수다. 그들 중 한 명인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김웅한 이사장(서울대병원)은 “멸종 단계”라고 했다. 흉부외과를 전공하려는 의사도, 소아심장 분야를 세부 전공으로 선택하려는 흉부외과 전문의도 급감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그러니 의사 수를 늘려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김 이사장은 ‘낙수효과’로 흉부외과를 살리긴 힘들다며 ‘근시안적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흉부외과가 병원 경영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적자만 낳는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전혀 효과가 없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지난 8일 청년의사 유튜브 방송 ‘코로나 파이터스 라이브’(코파라)에 출연해 이같이 말했다. 김 이사장은 “소아심장 수술을 할 수 있는 흉부외과 전문의가 우리나라에 20명 밖에 없다. 저도 은퇴를 준비할 나이다. 다음 세대가 걱정”이라며 “흉부외과 전문의가 되려면 시간이 걸리고 소아심장 분야는 더 오래 걸린다. 서서히 멸종하는 단계”라고 했다.

국내 스무명 남은 소아흉부외과 전문의 중 한 명인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김웅한 이사장은 지난 8일 청년의사 유튜브채널 K-헬스로그에서 진행된 '코로나 파이터스 라이브'에 출연해 의대 정원 화대 정책은 기피과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 스무명 남은 소아흉부외과 전문의 중 한 명인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김웅한 이사장은 지난 8일 청년의사 유튜브채널 K-헬스로그에서 진행된 '코로나 파이터스 라이브'에 출연해 의대 정원 화대 정책은 기피과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1일 평균 13시간 일하는 흉부외과 전문의들

흉부외과 전문의가 사라져가는 수술실을 지킨 것도 흉부외과 전문의들이었다. 흉부외과학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흉부외과 전문의는 1일 평균 12.7시간 일한다. 일주일 평균 4.6일은 8시간 이상 근무한다. 한달에 당직 근무를 서는 날도 평균 5.1일이고 병원 밖에서 대기하는 온콜(On-call) 당직은 평균 10.8일이다.

김 이사장의 표현대로면 환자를 살리자는 사명감으로 흉부외과를 선택한 ‘미친 의사들’도 버티기 힘든 게 현실이다. 흉부외과학회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서 흉부외과 전문의의 51.7%가 번아웃 상태였다. 그리고 93.9%는 전문의 번아웃으로 환자 안전에 위해가 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번아웃으로 멸종할 수도 있겠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흉부외과 전문의는 ‘극한직업’이 됐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상황에 지난 8월 21일부터는 전공의들이 무기한 업무 중단에 들어갔고 전임의도 동참했다. ‘교수 당직’이 일상인 흉부외과지만 전공의와 전임의가 떠난 자리는 컸다. 김 이사장은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옳았기 때문에 말릴 수 없었다고 했다.

“의사 수를 늘리는 것과 공공의료는 상관이 없다. 공공의료를 강화한다고 하는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런데 의사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높은 수준의 의료를 원한다. 의사들의 실력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런데 공공의료의 현실은 어떤가. 서울대병원을 제외하고 공공병원 중 경쟁력을 가진 병원이 있는가. 공공병원을 만들어도 의사들이 가지 않는 것이다. 1년에 수술 몇 번 하지 않는 병원에서 흉부외과 전공의를 수련시킬 수 있는가.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의사 수만 늘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흉부외과학회 정의석 기획홍보위원장은 지난 5일 코파라에서 의사 수를 늘린다고 흉부외과를 전공하는 의사가 늘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흉부외과학회 정의석 기획홍보위원장은 지난 5일 코파라에서 의사 수를 늘린다고 흉부외과를 전공하는 의사가 늘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낙수효과’로 기피과 문제 해결하려 하나

흉부외과학회 정의석 기획홍보위원장(상계백병원)도 의대 정원 확대가 흉부외과 전문의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현실을 모른 척하는 ‘단순한 생각’이라고 했다.

정 위원장은 “매년 의대 졸업생이 3,000명 정도다. 그리고 이들 중 15~30명 정도가 흉부외과 전공의로 지원한다. 1,000명 중 5~10명 정도 들어오는 셈이다. 그렇다면 의대 정원을 1만명 정도로 더 늘려야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자가 100명 늘어난다는 계산이 나온다”며 “흉부외과 전문의가 된 뒤에도 수술을 능숙하게 잘하려면 20년 정도 걸린다. 흉부외과 같은 기피과를 살리기 위해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정 위원장은 “흉부외과를 살리고 싶다면 현재 흉부외과를 전공한 의사들이 ‘흉부외과 전문의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런 생태계는 없는데 의사 수만 늘어나면 좋아지겠느냐”고 했다.

“핵심은 수가인데 정부는 왜 모르는 척 하나”

김 이사장은 어렵게 흉부외과를 전공하고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의사들이 수술실에 남으려면 수가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수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려 하지 않고 ‘의사 수 증원’이라는 엉뚱한 해법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흉부외과를 지원하는 친구들은 환자를 살리는 일이 좋고 그 보람 때문에 일하는 진짜 ‘미친’ 친구들이다. 그런데 정부는 일률적으로 전공을 정해주려는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한다”며 “수술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의사들이 많은 상황인데 의사 수만 늘린다고 해결되겠는가. 의사 수를 늘려봤자 안된다는 걸 정치인만 모른다”고 비판했다.

김 이사장은 “핵심은 수가다. 수가가 너무 낮게 책정돼 있다. 흉부외과 전문의들이 어렵게 수술해서 환자를 살려도 병원 수익에는 도움이 안되는 구조”라며 “그렇다 보니 흉부외과 전문의를 고용하는 병원이 줄었고, 갈 곳이 없어진 흉부외과 전문의들은 동네의원을 개원한다. 이런 상황에서 숫자만 늘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기피과는 챙기지 않았으면서 의대 정원 확대 핑계로 기피과 문제를 대고 있다. 그러면서 기피과의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은 하나도 없다”며 “지금까지 기피과가 알아서 해왔다. 정부의 고민도 이해는 되지만 실질적인 개선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개선되지 않으면 10년 뒤에는 외국에 나가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온다. 그런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선배들이 못해서 후배들에게 짐 지워 미안하다”

병원 밖에서 정부와 싸워야 했던 전공의들에게는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선배들이 못해서 후배들에게 짐을 지워줬다. 정말 미안하다. 저는 그래도 행복했고 어떻게든 살린 환자들도 있다. 그런데 이제는 점점 악화돼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며 “다음 세대에서 희망을 주지 못하면 유지되기 힘들다. 학회 이사장으로서 싸우겠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무작정 씨를 뿌려 놓고 농사가 잘될 거라고 해서는 안 된다. 이번 사태에서도 정부나 대한의사협회 모두 ‘흉부외과 같은 기피과’로 시작하는 말을 많이 했다. 대표 기피과로 꼽기도 했다”며 “하지만 끝날 때는 흉부외과 얘기는 별로 하지 않더라. 흉부외과가 살아남을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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