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대 이형기 교수 “논문 출간보다 어려운 게 약제비 급여화”
“절차 건너뛴 첩약 급여, 한의학을 신학 영역으로 내몰아”

“첩약 급여화는 의사가 시그마에서 원료를 사서 이것저것 섞고 중탕해 용액으로 만든 뒤 파우치에 담아 환자에게 처방해도 급여를 한다는 것과 동일하다.”

서울대 의과대학 임상약리학과 이형기 교수는 정부가 추진하는 첩약 급여화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이같이 말했다. 한약서에 나온 처방인 경우 안전성과 유효성 심사가 면제되는 한약보다 첩약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미국 조지타운대 의대 조교수를 역임했으며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종근당 임상의학연구실에서 신약 개발에 참여한 경험도 있다.

이 교수는 8일 열린 ‘한방 첩약 급여화 관련 범의약계 긴급 정책간담회’에서 ‘증거중심의학에 기초해 약리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첩약 급여화의 문제점’에 대해 발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간담회는 청년의사 유튜브 채널 K-헬스로그에서 생중계된다.

이 교수는 기존 의약품들이 안전성과 유효성 심사 결과에 근거한 적정성 평가를 받은 뒤에야 급여로 인정받는 반면, 첩약은 이 모든 과정이 생략된 채 급여화가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의대 이형기 교수는 8일 열린  ‘한방 첩약 급여화 관련 범의약계 긴급 정책간담회’에서 임상시험을 통한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과 경제성 평가 등을 거치지 않고 추진되고 있는 첩약 급여화의 문제를 지적했다.
서울의대 이형기 교수는 8일 열린 ‘한방 첩약 급여화 관련 범의약계 긴급 정책간담회’에서 임상시험을 통한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과 경제성 평가 등을 거치지 않고 추진되고 있는 첩약 급여화의 문제를 지적했다.

이 교수는 “논문 출간보다 어려운 게 약제비 급여화다. 그리고 급여화의 가장 큰 전제는 안전성과 유효성 심사를 거쳐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심사도 받아야 한다”며 “경제성 평가를 통해 비용 효과적인지도 따져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친 의약품이어야 건강보험에 등재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어 “첩약은 한의사가 한 종류 이상의 한약을 치료용으로 조제한 것으로, 복합제인 한의약의 복합제”라며 “첩약 의료는 감별 진단을 하는 변증과 환자의 변증 또는 상병에 따라 치료 원칙과 방법을 결정하는 유사 맞춤 의료인 방제로 구성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어 “첩약 급여는 신약인 첩약과 신의료기술인 변증과 방제 모두에 급여를 인정하는 정책”이라며 “첩약은 한약 제제보다 더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모든 의약품의 유효성, 안전성을 평가하기 위한 대전제는 제품의 품질, 즉 규격 확립”이라며 “첩약은 원료의약품인 한약재를 임의 조제한 복합제이므로 품질·규격 성립이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첩약 자체의 표준화도 안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첩약은 유효성, 안정성 입증 자체가 원칙적으로 불가하다. 설령 효과가 없거나 안전하지 않더라도 첩약의 특수성으로 몰면 항상 빠져나갈 구멍이 존재하는 ‘세상, 너무나 쉬운’ 장사”라고도 했다.

첩약 급여화가 한의학의 과학화를 저해한다는 지적도 했다.

이 교수는 “첩약 급여는 한의학을 경전 해석학, 더 나아가 신학의 영역, 즉 일화적 서사에 불과한 약효 경험을 일반화된 믿음의 영역으로 내모는 반과학적 정책”이라며 “안전성·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첩약에 급여하면 충분히 과학으로 발전하고 거듭날 수 있는 한의학은 영원히 초(超)과학의 영역에 고착돼 더이상 근거를 보완할 기회를 잃어 버린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첩약 등 한약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고 용량-반응 관계, 약물 또는 음식 상호작용, 병용 요법, 표준 요법 비교, 이상 반응 등을 확인하려면 임상시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3년 동안 첩약에 대한 임상시험은 한 건도 진행되지 않았으며 한약(생약) 임상시험은 2016년 15건, 2017년 23건, 2018년 31건 있었다. 같은 기간 합성의약품 임상시험은 1,224건, 바이오의약품은 616건 있었다.

이 교수는 “첩약 급여화 추진에 앞서 경제성 평가 연구를 통한 근거 구축이 더 시급하다”며 의약품과 한약제제는 급여 등재 시 필수적으로 경제성 평가를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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