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기 서울의대 임상약리학교실 교수

문재인 정권의 전문가 홀대는 유별나다. 얼렁뚱땅 탈원전을 결정한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제일 끗발 좋은 위원장과 사무처장은 모두 비전문가였다. 비상임 위원 중에도 원자력 전문가는 단 한 명에 불과했다.

공공의대 설립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도 현 정권의 전문가 홀대는 두드러졌다. 이미 2년 전부터 문 정권은 공공의대를 설립해 일정 기간 의료 오지에 근무할 의사를 배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이며 이 분야의 전문가인 의사는 아예 논의 상대에서 배제됐다. 그러면서도 복지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시민사회단체 관계자’가 전문가 코스프레를 하며 공공의대에 진학할 학생을 선발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이 정도면 홀대가 아니라 아예 전문가 혐오 수준이다.

이형기 서울의대 교수
이형기 서울의대 교수

그런데 왜 하필 공공의대일까? 그리고 왜 하필 코로나19 방역에 의료진이 사투를 벌이는 이 시점에 뜬금 없이 문 정권은 공공의대 카드를 꺼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실패한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의 역사를 살펴 보아야 한다. 의대에 바로 진학하는 경우 이외에도 일반 대학을 졸업하고 의전원에 입학하면 의학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당연히 의전원 졸업생도 국가 고시에 합격하면 의사가 된다.

하지만 의전원 제도는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뿌리를 못 내린 채 실종된 지 오래이다. 2020년 기준, 전국 40 개 의과대학 중 의전원은 단 네 곳에만 존재한다. 이마저 곧 두 곳으로 줄 예정이다.

많은 의전원 출신 의사가 중도에 수련을 포기하는 현실이 의전원 제도가 실패한 이유 중 하나라는 지적이 있다. 의대 갈 실력이 안되는 금수저가 우회 전형으로 의전원을 이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대개 이들은 힘든 수련 과정을 굳이 견뎌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간에 수련 포기자가 많이 나오면 인력 수급 때문에 병원은 골머리를 앓는다. 대부분의 의대가 의전원 전형을 없앤 이유다.

상류층과 권세가의 인사가 기득권을 대물림하는 방법으로 의사 자격증은 제법 그럴 듯해 보인다. 부모의 재력과 인맥이 이 과정을 가속화한다. 영원히 구설에서 헤어나지 못 할, 조국 전 법무장관의 의전원 따님이 딱 이 케이스다.

혼자서 공부를 열심히 하면 혹 변호사나 외교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대를 나오지 않고 의사가 될 방법은 전혀 없다. 그리고 전문가 혐오에 이골이 난 문 정권의 수뇌도 전문가인 의사가 없이는 의료 체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따라서 의전원이 의대 입학의 창구로 유명무실해진 현 상황에서 공공의대야말로 정부 말을 잘 듣는 의사를 양성하고, 입학 과정에 인맥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음으로써 문 정권 내 특권층이 부와 권력을 세습하도록 돕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었던 건 아닐까.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문 정권이 공공의대 카드를 꺼낸 것도 교활하기 짝이 없다. 공공의대에 의사 단체가 파업으로 격렬히 저항할 것을 문 정권이 모를 리 없다. 그러나 파업이 발생하면 의사를 ‘이기적이고 돈 밖에 모르는 비윤리 집단’으로 매도하기 쉽다. 의사가 반대하는 공공의대를 밀어붙이기에 이보다 더 좋은 상황이 또 어디 있을까.

‘미국의 반지성주의’를 쓴 호프스태터는 전문가와 지식인을 혐오하고 지성을 경멸하는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의 특성을 이렇게 기술했다. “반지성주의자는 실무에서 검증만 되면 보통 사람의 판단력이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지식이나 전문성을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문 정권에서 변호사 자격이 없는 법무장관이 임명되고 비고시 출신의 외무장관이 장수하는 현상은 전문가를 혐오하는 반지성주의를 떠나 이해하기 힘들다.

반지성주의의 신봉자인 문 정권도 어쩔 수 없는 전문 영역이다. 그래서 공공의대는 반지성주의를 의료 영역까지 확장하려는 문 정권의 교두보가 될 전망이다. ‘머리 좋은 학생이 공공의대에 올 필요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러나 어쩌랴. 원래 반지성주의는 근원적 복음주의자나 극우 보수주의자의 단골 메뉴인데 한국에서는 자칭 진보 세력이 반지성주의의 선봉에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했다. 공공의대 카드에 감춰진 반지성주의자의 음흉한 세습 시도가 드러나면 문 정권의 본질이 (반지성주의라는 점에서) 사실은 태극기부대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도 금세 드러날 것이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