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병협-의학회-약사회 공동 간담회 열고 첩약 급여화 문제점 공론화
급여기준 형평성에도 맞지 않아…안전성과 유효성 검증, 선결돼야

정부가 보장성 강화 정책의 일환으로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이 생략된 채 이뤄지고 있어 국민 건강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첩약의 생산과 제조, 유통, 복용 이후 의약품 안전관리 강화 방안 등 관리 시스템 부재 속에서 보장성 강화를 앞세운 나눠먹기식 정책으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대한의학회, 대한약사회가 지난 8일 ‘첩약 급여화, 선결과제는 무엇인가’를 주제로 연 긴급 정책간담회 패널토의에 참석한 의료계와 약계 대표들은 이 같은 우려를 쏟아냈다.

이날 간담회는 온라인으로 진행됐으며, 청년의사 유튜브 채널 ‘K-헬스로그’에서 생중계 됐다.

보장성 확대하고 싶다면 첩약의 과학적 검증부터

의학회 주명수 보험이사는 우선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도 없이 추진되고 있는 첩역 급여화 시범사업에 대해 “의약품은 안전성과 유효성 확립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시판 후에도 부작용을 집계하고 연구한다. 또 임상연구에서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게 발견되면 위험성을 얘기하고 심지어 품목취소 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주 보험이사는 “신의료기술과 신약에 대한 평가에 과학적 근거가 요구되는 것은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전제가 있기 때문”이라면서 “제조과정 문제나 시판 후 부작용 관리 시스템도 없는 상황에서 시행될 경우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주 보험이사는 “유효성과 안전성 검증 과정 없이 환자들에게 첩약이 제공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정부가 국민 건강을 생각해 보장성을 확대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시범사업 이전에 첩약의 과학적 검증을 통해 표준화에 이르는 작업부터 착수해야 한다”고 했다.

병협 김종윤 기획정책본부장도 “원료 약제뿐 아니라 최종 완성된 약제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런 검증조차 없이 실시되는 시범사업은 국민을 상대로 대규모 임상시험 하자는 것”이라며 “체계적 검증과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본부장은 “최근 메트포르민 제제에서 발암우려물질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검출된 사례를 보더라도 첩약의 원료 약제와 완성된 약의 추적 및 관리기전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의협 김대하 홍보이사, 의학회 주명수 보험이사, 병협 김종윤 기획정책본부장, 약사회 좌석훈 부회장.
왼쪽부터 의협 김대하 홍보이사, 의학회 주명수 보험이사, 병협 김종윤 기획정책본부장, 약사회 좌석훈 부회장.

건강보험 급여 기준 형평성과도 맞지 않아

정부가 보장성 강화 일환으로 첩약 급여화를 추진하고 있으나 건강보험 급여 기준에 부합하지 않음에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건강보험 요양급여기준은 ▲의학적 타당성 ▲의료적 중대성 ▲치료 효과성 ▲비용 효과성 ▲환자의 비용부담 정도 및 사회적 편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요양급여 대상 여부를 결정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첩약은 이 기준 가운데 환자의 비용부담 경감 이외에 부합하는 게 없다는 것.

의협 김대하 홍보이사는 “신약 후보물질들이 유효성, 안전성 검증을 거치는 과정에서 탈락하고 선택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반면 한방 의료행위는 검증을 거치지 않고 지식만 누적된 상태에서 건강보험 급여화 영역까지 들어오고 있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김 홍보이사는 “첩약이 설령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건강보험 요양급여원칙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첩약 급여가 당장 치료약이 없어 중대하거나 의학적으로 타당한 요구냐에 대해 정부가 어떤 답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약사회 좌훈석 부회장도 “첩약을 건강보험 급여화하려면 그 기준들을 고려해야 하는데 건강보험 추진계획 가운데 정부의 첩약 급여화 자료를 보면 딱 한 가지만 부합한다. 바로 환자의 비용 부담을 절감해준다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첩약 급여화를 추진한다니 안타깝다”고 했다.

이미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됐지만 고가 의약품으로 비용 효과성의 벽을 넘지 못해 건강보험 급여권으로 진입이 어려운 면역항암제나 표적항암제와도 형평성 측면에서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의학회 주 보험이사는 “면역항암제나 표적항암제 등 고가의약품은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보됐지만 경제성 때문에 투여하지 못하는 암 환자들도 많다”며 “필수의료를 살리는데 재정 투입하는 게 우선이지 않나. 그럼에도 첩약 급여화를 밀어붙이는 건 대한민국 의료와 국민 건강을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첩약 급여화, 한의학을 유사과학에 머무르게 만드는 하책"

명확한 기준도 대안도 없이 첩약 급여화 추진에 열을 올리는 정부를 향한 비판도 쏟아졌다.

서울의대 임상약리학 이형기 교수는 “과학의 반열에 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발로 차버리는 게 바로 첩약 급여화”라며 “첩약 급여화는 과학 영역에 흡수돼야 할 한의학을 유사과학 영역에 머무르게 만드는 하책 중 하책”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보장성 강화 중요하지만 한정된 자원과 재원을 갖고 가장 필요한 곳에 적절히 활용해야 하는 게 국가 재정 집행의 기본 원리라고 생각한다”며 “첩약 급여화는 공정한 행정집행 원리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한의학을 육성해야 한다고 하지만 첩약 급여화는 한의약을 육성하는 게 아니라 특정 직역만 선택적으로 육성하는 것”이라며 “아주 급하지도 않고 타당성, 과학적 원리 근거로 뒷받침 되지 않는 곳에 돈을 몰아주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첩약 급여화, 한의약 발전이라고 포장되지 않길"

좌장으로 참석한 병협 이왕준 국제위원장은 “건강보험 재정이 그간 누적 흑자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인해 필수의료 요구가 급증해 굉장히 많은 신의료기술에 대한 재원 필요요구가 속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국제위원장은 “이런 시점에서 첩약 급여화를 서둘러 왜 해야하는지 사회적, 정치적 논리조차 궁색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안타까운 것은 의협이 복지부나 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다보니 보편타당한 이슈 조차 윤색되고 사회적으로 공론화 시키는데 있어 장애가 되고 있다는 점”이라며 “첩약 급여 관련 문제들이 본격적으로 재검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첩약 급여화는 의사와 한의사 간 직역 갈등으로 봐서도 안 되고 한의약 발전이라는 추상적 수사로 이 문제의 본질을 덮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첩약 급여화를 무리하게 강행하기 이전에 정부가 선결해야 할 근본적 문제를 점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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