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기성세대가 본 한국의료
정형외과학회 정홍근 이사장의 '한숨'
위험부담 크지만 적자인 정형외과 수술
개원가로 향하는 정형외과 전문의들

의사들 사이에서 “한국 의료가 망해간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먹고 사는 문제 때문이 아니다. 의료체계를 두고 하는 말이다. 특히 고난도, 고위험 환자를 많이 보는 대학병원 현장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더 크다. 대학병원에 남아 환자들을 진료하고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칠 의사가 줄고 있는 상황이 한국 의료의 현실을 대변한다는 지적이다. 30년 가까이 대학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해 온 교수나 이제 막 전임의(펠로우) 과정을 밟기 시작한 젊은 의사가 느끼는 위기감은 비슷했다. 청년의사는 대한정형외과학회 정홍근 이사장과 젊은의사협의체 서연주 공동대표를 각각 만나 기성세대와 젊은세대가 바라보는 의료현실에 대해 들었다.

수술실에 남으려는 의사가 줄고 있다. 젊은 의사들 사이에서 의사 면허를 딴 후 인턴 포함 5년 동안 추가 수련교육을 받고 전문의 자격을 취득해도 대학병원에 남기보다는 개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기피과 얘기가 아니다. 매년 전공의 모집 때마다 지원율이 180%를 넘는 ‘인기과’인 정형외과 상황이다.

대한정형외과학회 정홍근 이사장(건국대병원)은 현 의료제도가 정형외과 전문의들을 수술실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고 했다. 수술할수록 적자인 구조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대학병원에서 정형외과는 ‘적자 과’다. 정형외과학회가 대학병원 10곳을 조사한 결과, 정형외과 수술 수익률은 마이너스(-) 53%였다. 때문에 병동을 축소하고 수술실 배정을 줄이는 곳도 있다. 수술을 제한하는 셈이다.

정형외과가 수술할수록 적자인 이유는 결국 낮은 수가 때문이다. 정형외과학회에 따르면 인공슬관절 치환술 비용이 우리나라는 약 70만원인 반면 캐나다와 프랑스는 약 1,300만~1,600만원이며 중국도 923만원으로 우리나라보다 12배 이상 높다. 정형외과에서 많이 하는 상위 10대 수술은 평균 40% 적자다.

대한정형외과학회 정홍근 이사장은 최근 건국대병원에서 청년의사와 만나 저수가에 허덕이는 정형외과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한정형외과학회 정홍근 이사장은 최근 건국대병원에서 청년의사와 만나 저수가에 허덕이는 정형외과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형외과 전문의 자격만 취득하고 개원하는 젊은 의사들

사명감에 기댈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고위험 환자를 진료하면서 생길 수 있는 의료사고에 대한 부감담도 젊은 의사들이 대학병원에 남길 꺼리는 이유 중 하나다. 환자를 진료해 수익을 내야하고 연구 성과도 중요한 의대 교수라는 자리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중시하는 젊은 의사들에게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이는 정형외과학회가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 전임의 과정을 밟겠다는 정형외과 전공의는 58.8%였으며 ‘수술하는 정형외과 전문의’가 되겠다는 응답은 21.6%에 불과했다.

실제로 최근 5년간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정형외과 전문의 비율은 줄고 의원은 늘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전체 정형외과 전문의 1,460명 중 17.2%인 251명이 상급종합병원에, 17.5%인 255명이 종합병원에 근무했다. 정형외과 개원의는 585명으로 40.1%였다.

그러나 5년 뒤인 2022년 정형외과 개원의는 750명으로 165명이나 늘었지만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소속은 오히려 줄었다. 2022년 기준 전체 정형외과 전문의 1,654명 중 45.3%가 개원의로 5년 전보다 5.2%p 늘었다. 반면 상급종합병원은 251명, 종합병원은 249명으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p 정도 줄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인력 통계 분석(ⓒ청년의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인력 통계 분석(ⓒ청년의사).

‘적자 과’인 정형외과, 수술하려는 젊은 의사가 없다

정 이사장은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의료제도 자체가 의사들에게 비급여 시장 진출을 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난도, 고위험 수술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건강보험 수가 구조로 인해 수술실을 떠나는 의사가 늘고 있다고도 했다.

정 이사장은 “건강보험체계 안에서 정도를 걸으며 열심히 환자를 수술하고 치료한 의사는 소송이나 적자에 허덕이고 편법을 써야만 수익이 나는 게 한국 의료”라며 “말도 안되는 시스템”이라고 꼬집었다. 30년 가까이 묵묵히 대학병원 수술실을 지켜왔지만 정작 수술을 기피하는 후배 의사들을 보며 뒤늦게 회의감이 든다고도 했다. 정형외과학회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인기과’라는 그늘에 가려진 정형외과 현실을 알리기 위해 올해 상반기에만 두 차례 공론화 장을 가졌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정 이사장은 “한국 의료가 쇠퇴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정형외과학 분야에서 뛰어난 성적을 내고 있지만 앞으로는 그럴 환경이 안된다는 것이다. 정 이사장은 “수술을 하려는 정형외과 전문의가 줄고 있다. 레지던트 수련이 끝나고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 1~2년 동안 펠로우(전임의)를 하는 이유는 술기를 배우기 위해서다. 그런데 펠로우를 하려는 젊은 의사도 줄고 있다”며 “수술을 잘 하려면 오랜 시간과 투자가 필요한데 그럴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정 이사장은 “정형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 펠로우를 하지 않고 개원하는 젊은 의사들은 수술보다는 주사 치료 등을 주로 한다. 수술실을 마련하려면 많은 투자가 필요한데 정작 수익은 나지 않고 적자만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 이사장은 “대학병원에 남는 전문의가 앞으로 더 줄 것이다. 예전에는 경쟁을 통해 교수가 됐지만 이제는 교수를 하기 위해 대학에 남는 의사가 적다. 한국 의료가 쇠퇴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 이사장은 이런 현실에서 한해 배출되는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도 '수술실에 남는 정형외과 전문의'가 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헐값으로 만든 의료 천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 이사장은 “일반 국민이 심각성을 알아야 한다. 남아 있는 의사들이 수술을 포기하지 않으니 ‘수익이 생기니까 하겠지’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환자를 포기할 수 없어서 하고 있다”며 “미국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 의사들이 이런 상황에 놓였으면 일찌감치 수술을 접었을 것”이라고 했다.

환자들은 적지 않은 돈을 의료비로 쓰고 있지만 정작 필요한 곳에 쓰이지 못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정 이사장은 “효과를 알 수 없는 치료에는 몇 백만 원씩 내지만 건강보험 수가로 정한 수술비는 몇십만원이다. 환자들은 돈을 쓰지만 정작 써야 할 곳에 안쓰인다”며 “고난도, 고위험 수술 수가를 원가 이상으로 책정하는 등 검증된 의료행위에 대한 값어치를 제대로 책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강보험 진료로 수익을 내지 못하니 비급여가 늘 수밖에 없다. 정부가 마련한 건강보험제도 하에서 진료하면 적자에 허덕이는 구조”라고도 했다.

정해진 재정을 진료과별로 나눠 갖는 상대가치점수제도 하에서는 달라질 게 없다고 했다. 더욱이 소아청소년과나 산부인과와 달리 대상 환자군이 많은 정형외과는 행위별수가를 인상하기도 쉽지 않다. 전체 파이에서 가져가는 비율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정 이사장은 “수가는 정상으로 올리고 과잉의료는 제재해야 한다”며 “헐값으로 만든 의료 천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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