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정형 분야 전문의 175명 중 40여명만 소아환자 진료
저평가된 소아정형 질환 중증도…대부분 ‘단순·일반’ 분류
소아정형외과학회 박수성 부회장 “사각지대 놓인 소아정형”

정형외과는 전공의 지원율이 높은 '인기과'이지만 세부 분야인 소아정형을 전공하려는 전문의는 사라지고 있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정형외과는 전공의 지원율이 높은 '인기과'이지만 세부 분야인 소아정형을 전공하려는 전문의는 사라지고 있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소아’ 분야를 기피하는 현상은 진료과를 가리지 않고 있다. 전공의 지원율이 높은 ‘인기과’에서도 세부전공으로 소아 분야를 선택하는 전문의는 드문 게 현실이다. 소아정형 분야도 마찬가지다.

대한소아청소년정형외과학회에 따르면 현재 소아정형 분야 진료를 하는 정형외과 전문의는 40여명에 불과하다. 소아정형외과학회에 등록된 정회원은 175명이지만 이들 중 현장에서 소아정형 환자들을 주로 진료하는 의사는 23%뿐이다. 45개 상급종합병원 중 소아정형 분야 전문의가 한명도 없는 곳도 여러 곳이다.

소아정형외과학회는 소아정형 분야 세부·분과 전문의제도를 운영하는 대신 정회원 자격으로 전문성을 인정한다. 소아정형외과학을 1년 이상 연수하거나 5년 이상 수련병원에서 소아정형외과 진료를 수행해 왔으며 업무의 50% 이상을 소아정형외과 분야에 종사하는 정형외과 전문의만 소아정형외과학회 정회원이 될 수 있다.

소아정형 분야 전문성을 인정받은 정형외과 전문의들 중 일부만 소아청소년 환자를 보고 있는 현실은 ‘소아 홀대 정책’에서 비롯됐다. 위험 부담은 큰데 진료할수록 적자를 보는 수가구조에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 정책까지 더해져 소아청소년 환자를 기피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소아정형외과학회 부회장인 서울아산병원 소아정형외과 박수성 교수는 “소아 골격계는 외력에 대해 탄력성이 크고 두꺼운 골막으로 덮여 있으며 왕성한 재성형력이 있고 손상을 받았을 때 치유 기간이 짧으며 성장판을 가고 있다는 점이 성인과 다르다”며 “성인과 비슷한 질병이나 손상이 발생하더라도 그 양상, 치료 과정, 예후가 성인과 크게 다르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초기 진단이 부적절해 치료시기를 놓친 경우 뼈가 어긋난 채로 골유합이 이뤄져 치료가 더욱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다”며 “전문가에 의한 초기 진단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소아정형 분야는 ‘전문가에 의한 초기 진단’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의료기관에서 소아정형 전문의를 고용해 소아 환자를 진료하는 게 득보다는 실이 되는 구조 때문이다.

서울아산병원만 해도 소아정형 분야는 매년 적자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소아정형 분야는 올해 상반기에만 3억4,200만원 적자를 기록했다. 그나마 올해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손실보상이 있어서 예년에 비해 적자폭이 줄었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소아정형외과 질환 대부분 단순·일반질병군으로 분류
수익에도, 상급종합병원 지정 평가에도 도움 안되는 구조

그러나 박 교수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저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저평가된 소아정형 질환 중증도라고 했다. 고난도 수술이어도 현행 입원환자 분류체계에서는 ‘단순’이나 ‘일반’으로 분류되는 소아정형 질환이 많았다. 이 때문에 전문진료질병군 환자를 많이 볼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 상급종합병원 지정 평가에서도 소아정형 분야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입원환자 분류체계에서 전문진료질병군은 희귀질환이거나 합병증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질환, 진단과 치료가 어려운 질환이다. 일반진료질병군은 모든 의료기관에서 진료해도 되는 질환들이며 단순진료질병군은 경증질환을 말한다.

소아정형외과학회가 마련한 ‘소아정형외과 질환의 중증도(전문질병군) 개선을 위한 보고서’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인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고려대구로병원에서 소아정형외과 입원 환자 전문진료질병군 비율은 평균 11.5%에 불과했다. 일반진료질병군 비율이 71.9%였으며 경증인 단순진료질병군 비율도 16.6%로 전문진료질병군보다 높았다.

이는 성인을 기준으로 제정된 전문진료질병군 분류 때문이라는 게 학회 측 지적이다. 척추수술과 복잡사지골절정복술만 전문진료질병군으로 분류돼 있고 그 외 소아정형 질병군은 ‘일반’이나 ‘단순’으로 분류돼 있다.

(사진 위) 우측 선천성 상위 견갑골(Congenital High Scapula, Sprengel Deformity) 환자와 ‘Smith-McCort’ 이형성증 환자 사례(출처: 
(사진 위) 우측 선천성 상위 견갑골(Congenital High Scapula, Sprengel Deformity) 환자와 ‘Smith-McCort’ 이형성증 환자 사례(출처: 대한소아청소년정형외과학회 '‘소아정형외과 질환의 중증도(전문질병군) 개선을 위한 보고서’)

일례로 오른쪽 어깨뼈가 위로 올라간 선천성 기형으로 팔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우측 선천성 상위 견갑골(Congenital High Scapula, Sprengel Deformity)’ 환자를 치료하려면 어깨뼈 주위 근육을 모두 옮기는 큰 수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질환은 경증을 의미하는 단순진료질병군으로 분류돼 있다.

희귀질환인 ‘Smith-McCort’ 이형성증으로 우측 하지가 바깥쪽으로 변형된 소아 환자의 경우 원위 대퇴골에 교정 절골술을 시행해야 다리를 교정할 수 있다. 이 질환은 일반진료질병군으로 분류돼 있다.

소아정형외과학회, 8개 항목 전문진료질병군으로 수정 요구

소아정형외과학회는 “소아정형 환자를 성인 환자와 같은 질병군 기준으로 분류하고 그 비율에 따른 페널티 등이 적용되면 상급종합병원에서 소아정형 환자 진료를 줄이거나 등한시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17세 이하 입원 환자 분류체계에서 아래와 같은 여덟 가지 항목을 전문진료질병군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 사지의 선천성 질환(Q코드) 또는 ‘의료급여 건강보험 희귀난치성 질환’에 대한 수술적 치료를 시행한 경우
- 사지 골의 ‘성장판 주위 골절’에 대한 수술적 치료를 시행한 경우(골절도수정복술 또는 골절 관혈적적봉술)
- 수술·마취에 대한 위험성으로 마취통증의학과와 각 소아 분과 등 2개 이상 과의 협진이 수술 전후 필요한 경우
- 소아 성장판에 대해 ‘골성장판성장억제술’을 시행한 경우
- 사지 골의 3차원적인 변형에 대해 절골술 및 변형교정술을 시행한 경우(절골술 및 체내금속고정술 또는 체외금속고정술)
- 성장판 주변 골이나 관절의 감염에 대한 수술적 치료를 시행한 경우
- 신경근육성 질환(G코드)에 대해 관절 구축이나 변형 교정/예방을 위한 근건 수술이 동시에 4곳 이상 시행된 경우
- 그 외 소아에 특이적인 질환인 레그-켈베-페르데스병(LCPD, M167), 원반모양반달연골(Discoid Lateral Meniscus, M231), 대퇴골두골단분리(SCFE, M939)에 대한 수술적 치료를 시행한 경우

또한 현재 단순진료질병군으로 분류돼 있는 ▲전완부 골절 수술 ▲단순 완관절 및 수부 수술 ▲족부 및 족관절 힘줄인대 수술, 기타 족부 및 족관절 수술의 중등도를 상향 조정해 전문 또는 일반진료질병군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했다.

대한소아청소년정형외과학회 부회장인 서울아산병원 박수성 교수는 지난 14일 청년의사와 만나 소아정형 분야 전공 기피 현상의 원인과 해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한소아청소년정형외과학회 부회장인 서울아산병원 박수성 교수는 지난 14일 청년의사와 만나 소아정형 분야 전공 기피 현상의 원인과 해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아정형 분야에서 사고 터져야 관심 가지려나” 한숨
“지원 기피하는 세부 전공에 ‘핀셋 지원’ 필요”

이번 연구와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박 교수는 이같은 제도적 한계와 모순으로 인해 소아정형외과 환자들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소아정형 전문의를 찾아 환자와 보호자들은 병원을 전전하고 있는데 정작 소아정형 분야를 전공한 정형외과 전문의들은 소아가 아닌 성인 환자를 보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박 교수는 “수가를 올려달라는 게 아니다. 소아정형 분야 전문가로서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며 “일반이나 단순진료질병군으로 분류될 수 있는 질환이 아닌데도 그렇게 분류된 소아정형외과 질환들이 정말 많다. 소아청소년 환자는 다양한 모습으로 병이 발현되고 성장하면서 나이에 따라 치료 방법도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소아정형외과 질환의 중증도가 저평가되면서 전문이 아닌 일반이나 단순진료질병군으로 분류되면서 상급종합병원에서도 홀대 받고 있다”며 “병원 입장에서는 소아정형 분야 전문의를 고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입원환자 분류체계만 중증도에 맞게 개선하면 소아정형 분야 전문의들이 대학병원에서 보람을 느끼며 환자를 진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정형외과 전문의들이 소아정형을 기피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돼 가고 있다. 소아정형 분야에서 어떤 사고가 터져야 정부 관계자들이 이 분야에 관심을 가져줄지 모르겠다”고 씁쓸해 하기도 했다.

정부가 마련 중인 ‘필수의료 강화 종합대책’에도 세부 전공 분야를 들여다보고 지원을 기피하는 분야에 대한 ‘핀셋 지원’을 할 수 있는 방안이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논란이 됐던 ‘서울아산병원 뇌출혈 간호사 사망 사건’도 신경외과 중에서도 뇌혈관외과 전문의 부족이 문제였다.

박 교수는 “신경외과나 정형외과 모두 전공의 지원율은 높다. 하지만 뇌혈관외과나 소아정형 등 세부 전공 분야에서 지원 기피과가 생긴다. 정형외과에서는 종양 분야도 전공하려는 전문의가 부족하다”며 “지원을 기피하는 세부 전공에 대한 핀셋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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