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의학교육학회 윤보영 총무이사
"교수님처럼 못 살겠다"고 떠나는 젊은 의사들
"교육부터 의료전달체계까지 개선 안 하면 무너져"

"인기과와 기피과로 지원율 따질 때가 아니다. 모든 과에서 똑같은 일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젊은 의사는 더 이상 교수도 전문의도 되려 하지 않는다. 이는 완전히 일반적인 현상이다."

명예의 상징이던 대학병원 교수가 '기피 직업'이 됐다. 비단 인기과와 기피과를 가리지 않는다. 모든 과가 가르칠 사람도 배울 사람도 없다고 호소한다. 대학병원은 후학 양성은 물론 당장 진료과 운영도 장담 못 하는 형편이다.

이에 대해 한국의학교육학회 총무이사인 인제대 일산백병원 윤보영 교수(류마티스내과)는 지난 8월 29일 한국의학교육협의회 토론회에서 "박리다매식 의료로 과잉 수요를 감당 못 한 교수와 젊은 세대가 현장을 이탈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9월 27일 오후 일산백병원에서 윤 교수를 다시 만났다. 토론회 후 한 달 만에 인터뷰할 여유가 생겼다. 이날 윤 교수는 부산 인제의대에서 오전 강의를 마치자마자 비행기를 타고 올라왔다. 평소에도 일주일에 두세 번 이상 비행기로 출퇴근한다.

요즘 병원 방침으로 몇 년 만에 신규 환자를 받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환자들은 일산 내 류마티스내과 5곳을 순화한 끝에 윤 교수에게 온다. 서울대병원까지 다녀온 환자도 있다. 오후 늦게 진료를 마치면 회진과 전공의 지도가 기다린다. 논문을 쓰려면 한밤중은 돼야 한다.

요즘 제자들은 "교수님처럼 해낼 자신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윤 교수에게 행복한지 묻기도 한다. 더러 "교수님도 계속 그렇게 사시면 안 된다"고 설득하기도 한다. 지난해 전국 대학병원 류마티스내과 전임의는 단 4명이었다.

윤 교수는 우리 사회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필수의료 분야는 그저 "조금 먼저 무너졌을 뿐"이다. 붕괴는 의료 전 영역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전공의 수당 100만원 지급처럼 "말초적인 대책만 남발할 때가 아니다".

"젊은 세대가 물질적 보상만 좇는다고 비난하기 전에 우리가 그런 사회를 만들었다고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힘들게 일했다고 그게 정상이 될 수는 없다. 그대로 물려줘도 안 된다. 교육부터 의료전달체계와 보험제도까지 시스템 전체를 점검하고 가치를 재평가하고 자원을 다시 분배하고 집중 투자해야 한다. 이제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

지난 9월 27일 일산백병원 연구실에서 청년의사와 만난 윤보영 교수는 대학병원 위기를 해결하고 의료 붕괴를 막으려면 교육부터 의료전달체계까지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청년의사).
지난 9월 27일 일산백병원 연구실에서 청년의사와 만난 윤보영 교수는 대학병원 위기를 해결하고 의료 붕괴를 막으려면 교육부터 의료전달체계까지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청년의사).

- 최근 전공의는 물론 교수까지 대학병원을 이탈한다는 우려가 크다.

내가 주니어 스텝일 때만 해도 대학병원 교수가 관둔다면 센세이션한 일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일산백병원은 올해만 교수 11명이 그만뒀다. 환자를 같이 보던 정신건강의학과와 피부과 교수도 그만뒀다. 사직 이유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경제적인 이유나 자녀 교육 문제가 대부분이었다. 요즘에는 너무 힘들다고 한다. 너무 힘들어서 다른 건 다 차치하고 일단 쉬고 싶다며 교수들이 병원을 나간다.

- 원인이 뭐라고 보나.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져서다. 지난주에는 서울대병원 예약 진료까지 받은 환자가 우리 병원에 왔다. 의료전달체계가 엉망이다. 3차 병원 갔다가 2차 병원 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체계는 엉망이고 신환은 밀려들고 교수는 진료에 연구에 교육·수련까지 해야 한다. 인프라는 없는데 결과물은 꼬박꼬박 내놔야 한다. 전공의가 없으니 당직까지 선다. 그러니 교수들이 못 견디고 나간다. 이걸 다 본 젊은 의사들도 병원을 떠난다.

물질적 보상 당연한 세대…전문의 할 이유 없어

정부 방관에 의료계 내부 갈등만 커지는 꼴

- 인턴 지원을 하지 않고 바로 개업하겠다는 의대생도 늘었다고 한다. 전문의가 절대다수인 한국 의료 현실에서 상식을 깨는 현상이다.

사실 전문의 수련을 받지 않은 의사보다 전문의가 더 벌어야 맞다. 현실은 반대다. 수련할 이유가 없다. 나가면 돈 더 버는데 4~5년을 더 적은 소득으로 보내라니 납득이 안 되는 거다. 젊은 세대는 수련을 기회비용 개념으로 다룬다. '우리 때는 안 그랬다'는 말은 안 통한다. 물질적 보상이 기본이다. 그런 세대에게 분과 전문의까지 2년 더 일하면서 교수처럼 연구·논문 압박받으며 살라니 당연히 안 한다.

- 젊은 세대 소위 'MZ세대'는 물질적 보상과 편한 것만 바란다는 비판도 있는데.

누구를 비난할까. 우리가 우리 자식을 그렇게 키웠다. 대학병원 교수 월급을 묻고 따지라고 키웠고 그런 식으로 세상을 바꿨다. 그래 놓고 우리와 똑같이 일하라고 할 수는 없다. 명예는 더 이상 보상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그 명예조차 없어졌다. 그보다는 저녁이 있는 삶, 취미를 누리는 삶, 평화로운 삶을 택하겠다는데 손가락질해야 하나. 이들이 제대로 일할 여건을 우리 기성세대가 미리 만들어줬어야 했다.

- 젊은 의사들은 지금도 업무가 과중하다고 호소한다. 전공의법 시행 후로도 과로가 일상이라 버티기 어렵다고 한다. 반면 전공의법 때문에 수련 시간이 줄고 전임의와 교수 부담이 급증하면서 의료 공백이 생겼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정확히 그 반대다. 전공의법을 너무 늦게 만들었다. 우리가 잠 못 자고 일했다고 그게 옳은 게 아니다. 그때는 몰랐어도 겪어봤으니 알지 않나. 의료 공백을 메꾸는 건 누군가의 과로가 아니라 정부의 투자다. 정부는 뒷짐만 지고 의사끼리 알아서 해결하라고 한다. 이러니 전공의, 전임의, 교수가 서로 비난하고 다툰다. 내가 힘든 이유는 전공의가 일찍 퇴근해서라고 여기게 된다. 그게 아니다. 교수가 낮에도 교육하고 연구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 의료는 부족한 자원을 민간 의료로 버텨왔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공공 분야를 키워야 한다. 언제까지 모른 척 사람을 갈아 넣을 수는 없다.

정부 방관 속에 의료 공백이 커지면서 의료계 내부 갈등도 심화하고 있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정부 방관 속에 의료 공백이 커지면서 의료계 내부 갈등도 심화하고 있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의사 면허 비상식적 부분 조율해야

의료원·보건소도 교육·수련 기능을

'사회가 함께 교육' 개념 전환 필요

- 문제 해결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무엇보다 의료전달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수련을 거쳐 전문의가 된 사람이 전문성을 살릴 수 있어야 한다. 대학병원은 고난도 환자를 치료하는 데 가치를 둬야 한다. 대학병원 교수의 존재 가치가 하루 환자 100명 보기라는 건 너무 비참하다.

- 정부가 공공 분야에 투자한다고 일반의로 개업하거나 전문과 대신 피부·미용 분야에 뛰어드는 흐름 자체가 바뀔까. 이런 흐름이 계속되는 한 의료전달체계 개선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자격과 면허를 다시 생각해 봤으면 한다. 상식선에 맞춰야 한다. 나는 류마티스내과 의사지만 당장 맹장 수술도 할 수 있다. 법적으로 허용된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20년 동안 임상 현장 한 번 안 나간 의사조차 내일 개업해도 아무 문제 없다. 간호법이나 직역 간 의료행위로 갈등을 빚었지만 의사 의료행위도 할 수 있는 것과 해선 안 되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 사람의 선의가 아니라 제도로 다뤄야 한다.

일본은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수련 2년을 마쳐야 독립적인 진료가 가능하다. 인턴은 필수의료과를 돌며 주치의로 훈련받는다. 이런 제너럴리스트(일반의) 층이 두텁고 스페셜리스트는 중증 질환으로 가야 의료전달체계가 돌아간다. 일전에 자매결연으로 일본 지바의대 부속 병원을 방문했는데 대학병원이 한산했다. 어려운 환자만 보기 때문이다. 그만큼 교수가 교육하고 연구할 시간도 확보된다.

- 교육 단계에도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 의학 교육 분야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나.

학생을 더 다양한 의료 환경에 노출해야 한다. 학생들이 지원한 대학과 병원 안에서만 돌아다닌다. 그러지 말고 동네 의원도 가보고 의료원도 돌고 대학병원에서도 일해봐야 한다. 우리는 올해부터 파주의료원으로 선택 실습을 나간다. 학생들이 의료원 재택의료팀을 따라다니면서 각양각색 가정 환경을 마주한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보건복지부와 공공지역의료 임상실습 사업을 진행했다. 전국 의대생 30명이 모여 마산의료원을 다녀왔다.

앉아서 외우기만 하면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가서 직접 보고 느끼고 '다른 생각'도 해봐야 한다. 연고 없는 지방 소도시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 공중보건의사로 일하며 지역 사회에 정착하는 길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이렇게 노출되는 게 중요하다. 더 다양한 환경을 마주하고 어디서 어떻게 일할 것인가 숙고할 기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최소한 의대 교육 과정만이라도 이런 기회를 줘야 한다.

- 지역 의료원과 협력은 정부가 공공 분야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말과 이어질 거 같다. 공공의료기관이 교육·수련에 더 깊게 참여해야 한다는 뜻인가.

맞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교육과 수련이 더 이상 교수 한 명, 병원 하나의 노력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 정부가 제도적으로 관할해야 한다. 의료원도 보건소도 교육장으로 개방돼야 한다. 지금은 다들 업무가 너무 많고 여력이 안 돼 어렵다. 인제의대에서 보건소에 실습 사업을 타진했는데 도저히 여력이 안 된다는 답만 들었다. 파주의료원 실습도 진료부장이 우리 대학 출신이라 가능했다. 정부가 공공의료 부문 투자를 전면 확대해 지역 공공의료기관이 교육·수련까지 제대로 맡도록 부양해야 한다.

공공병원에서 수련하고 의대가 교육을 지원하면 대학병원 부담은 낮아지고 그만큼 교수가 수련과 연구에 쏟을 힘이 생긴다. 이제는 사회가 의사를 함께 교육해야 한다.

윤보영 교수는 정부 투자로 공공의료기관이 교육수련을 함께 해 대학병원 부담을 줄이는 방법을 제시했다(ⓒ청년의사).
윤보영 교수는 정부 투자로 공공의료기관이 교육수련을 함께 해 대학병원 부담을 줄이는 방법을 제시했다(ⓒ청년의사).

- 국가가 의료 분야에 투자하고 제도를 개선하려면 의료계는 무엇을 해야 할까?

동료 시민을 설득해야 한다. 의료 문제가 사회적으로 가시화된 게 생각보다 얼마 안 됐다. 말하는 사람은 적고 그마저 묻히기 일쑤였다. 그사이 다들 포기해버렸다. 다 망하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설득에 실패한 우리 책임도 있다.

시민 역시 의료 소비자이자 의료 주체로 나서길 바란다. 의료는 결국 시민의 돈으로 한다. 주인의식을 갖고 어떻게 건강한 의료를 만들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한다.

- 의료 분야에 더 투자해야 한다는 여론도 막상 부담이 커지니 머뭇대고 있다.

최상의 서비스를 값싸게 누리기 위해 누군가 밤새워 노동해야만 하는 사회가 과연 온당한가. 이게 한국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돈은 더 쓰기 싫고 사람만 쥐어짠다. 이젠 더 이상 그렇게 살 수 없다고 거부할 때다. 누군가 혼자 밤 새우지 않으려면 일을 조금씩 나눠 여러 사람이 해야 한다. 당연히 돈은 더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자고 합의해야 한다. 모두 즐겁게 살려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도 응당 즐겁게 살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더 큰 비용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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