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 청원 올리자 반나절도 안돼 1만2천명 동의…“거버넌스 문제가 더 중요”

“말이 ‘질병관리청 승격’이지 속을 들여다보면 알맹이가 없다.”

행정안전부가 입법예고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한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의 신랄한 비판이다. 이 교수가 직접 청와대에 국민 청원을 올린 이유이기도 하다.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정부가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그 방향이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실질적인 권한이 없는 ‘허수아비’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많다.

이 교수는 3일 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질병관리청 승격, 제대로 해주셔야 합니다’라는 청원을 올렸다. 그리고 4일 오전 11시 기준 1만2,000명이 넘는 사람이 이 청원에 동의했다.

이 교수는 청원에서 국립보건연구원을 보건복지부로 이관하는 내용을 대표적인 문제로 지적했다. 개정안은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하되 산하 조직인 국립보건연구원을 보건복지부 산하로 이관하도록 했다. 또 국립보건연구원 내 감염병연구센터를 국립감염병연구소로 확대 개편한다. 몸집을 키운 국립보건연구원이 복지부 산하로 이관되는 셈이다.

이 교수는 청원에서 “질병관리본부의 국장과 과장자리에 복지부의 인사적체를 해결하기 위해 행시출신을 내려 보내던 악습을 국립보건연구원과 국립감염병연구소에서 하려는 것이냐”며 “국립보건연구원을 질병관리본부에서 쪼개서 국립감염병연구소를 붙여서 확대해 복지부로 이관한다는 계획은 철회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립보건연구원을 복지부로 이관하는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질병관리부가 청으로 승격되더라도 그에 맞는 역할을 할 수 없다는데 있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이 교수는 4일 본지와 통화에서 “거버넌스 문제도 많다.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만 하고 정책적인 기능을 넘길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어서 전문가들은 보건부 독립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며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독립만 시켜 놓고 위기대응을 제대로 못해서 다시 복지부 산하로 들어가길 바라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국립보건연구원이 복지부 산하로 이관되면 예산뿐만 아니라 질병관리본부 기존 인원의 3분의 1 가량도 떨어져 나가게 된다”며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해 놓고 알짜배기는 다 빼가는 셈”이라고도 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