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민청원까지 올린 이재갑 교수 “국회서 올바른 방향으로 논의되길”

‘차 떼고 포 뗀 질병관리청.’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하는 내용이 담긴 정부 법안에 대한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의 평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정부 차원에서도 질병관리청 승격이 추진되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보건복지부 몸집만 키우는 셈이라고 했다. 국립보건연구원과 감염병연구센터를 확대 개편하는 국립감염병연구소를 질병관리청이 아닌 복지부로 이관하는 내용이 대표적인 문제다.

행정안전부가 입법예고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보고 복지부 고위 관계자가 했던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질병관리본부가 독립한다고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도 복지부가 도와줬으니 잘한 거였다.’ 이 말을 직접 들은 이 교수는 설마 했다.

이 교수는 결국 지난 3일 밤 청와대에 ‘질병관리청 승격, 제대로 해주셔야 합니다’라는 국민청원을 올리고 이 문제를 공론화했다. 이후 비판 여론이 일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일 국립보건연구원과 국립감염병연구소를 복지부로 이관하는 방안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관련 법이 국회를 통과할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 심의 절차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이 교수가 국민청원을 제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교수는 지난 4일 오후 9시경 청년의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국회에서 많이 논의해 올바른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는 지난 4일 밤 청년의사와 인터뷰를 갖고 '질병관리청 승격, 제대로 해주셔야 합니다'라는 국민청원을 올린 이유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교수와 가진 인터뷰 전체 내용은 청년의사 유튜브 채널 <나는의사다>에 올라가 있다.

-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내용 중 어떤 부분 때문에 기대했던 질병관리청의 모습이 아니라고 하는 것인가.

질병관리청 자체가 독립돼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려면 자체 연구기능 부분을 가져가면서 정책기능과 방역 관련 기능을 같이 수행해야 한다. 제일 먼저 눈에 띈 부분은 국립보건연구원을 떼서 복지부로 가져가겠다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 얘기한 국립감염병연구소도 같이 가져가겠다고 한다. 그 부분이 가장 당황스러웠다.

- 국립보건연구원과 국립감염병연구소를 질병관리청 산하에 두지 않고 분산시키는 게 왜 문제인가.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질병관리본부가 많은 역할을 하고 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질병관리본부를 키워 질병관리청으로 하자는 여론이 형성됐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국립감염병연구소를 만들어야 한다고도 얘기했다. 당연히 질병관리본부에 있는 국립보건연구원 산하에 국립감염병연구소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질병관리부의 조직이 커지고 연구기능도 활성화될 것이라고 다들 생각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확대된 국립보건연구원과 국립감염병연구소를 복지부가 가져가게 됐다. 질병관리본부가 많은 노력을 했고 그 기능을 살려주기 위해서 만드는 조직을 복지부가 날름 가져가겠다고 하는 셈이다.

- 명목상으로 질병관리청으로 승격을 시키지만 실제로는 알맹이 없는 허깨비 조직이 될 수 있다고 걱정하는 것인가.

앞으로 질병관리청이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정책을 만들어내는 기능과 감염병 유행상황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기능이 더해져야 한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그런 정책과 분석 기능을 국립감염병연구소가 맡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국립보건연구원에 국립감염병연구소를 만들고, 그 부서 자체를 가져가겠다고 복지부가 얘기한 것이다.

- 복지부는 국립보건연구원을 더 전문화하고 육성하기 위해서 질병관리청에서 독립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 NIH(National Institutes of Health)도 CDC(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와 독립적인 관계라고 했다.

미국 NIH가 보건의료 관련 모든 연구를 수행하긴 한다. NIH는 산업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연구를 해서 그 결과를 넘겨주는 역할을 하지만 산업 정책 등을 만드는 조직은 아니다. 순수하게 연구를 열심히 해서 그로 인해 만들어진 결과물로 국민 건강 증진에 사용되도록 한다. 미국 NIH를 생각한다면 국립보건연구원을 국립감염병연구소로 바뀌어서 질병관리청이 갖고 있으라고 하면 된다. 그리고 복지부가 원하는 기능을 갖춘 NIH를 미국처럼 만들려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에 있는 연구소들 중 생명공학을 다루는 연구소를 다 끌고 와서 복지부 산하에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복지부는 지난 4일 정례브리핑에서 국립보건연구원 이관 필요성에 대해 “보건의료 R&D 기능을 강화시키기 위한 방안”이라고 했다. 그리고 “유전체 기반 의료와 재생의료에 대한 기술 개발 부분은 질병관리본부와 조금 다른 기능이다. 현 정부에서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바이오헬스산업 육성과 관련된 기술적 지원 등의 기능은 국립보건연구원에서 맡는 게 좋다는 정책적 판단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 복지부는 국립보건연구원의 독립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 국제적인 추세를 보더라도 방역과 연구기능은 각각 독립적으로 운영된다고 했다.

그 말도 맞긴 맞다. 그렇다고 해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연구기능을 아예 안 하는 게 아니다. 미국 CDC는 자체 실험실을 갖고 있어서 감염병 원인분석을 한다. 그 업무를 NIH에서 해주지 않는다. CDC가 하는 역할 중 감염병과 질병 대응 영역을 연구하는 곳이 미국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Allergy and Infectious Diseases, NIAID)다. 미국은 국립감염병연구소가 독립돼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CDC 소속이다.

-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국립보건연구원을 키우고 전문화되는 게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질병관리청에도 연구기능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립보건연구원과 국립감염병연구소를 복지부가 가져가면 연구기능이 복지부에 종속이 된다. 독립시켜 준다고 하지만 오히려 자기들 관리·감독 하에 감염병연구소까지 가져가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감염병 연구 부분까지 복지부 허락을 받아야 해서 독립이 아니라 연구와 관련해서는 종속될 수밖에 없다. 결국 국립감염병연구소 기능을 가진 부서를 질병관리청 안에 또 만들어야 한다. 뭐하러 그렇게 해야 하는가. 감염병에 대한 부분은 질병관리청에 맡긴다고 하면서 왜 그런 기능을 하는 연구소를 복지부가 가지고 가는가.

- 복지부가 질병관리청 승격에 반대한다는 얘기도 꾸준히 나왔다.

실제로 복지부 고위 관계자로부터 ‘질병관리본부가 독립하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코로나19 대응도 복지부가 다 도와줬으니 잘한 것이다. 질병관리본부가 잘해서 그런 것 같은가’라는 말을 들었다. 질병관리본부가 독립해 봐야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육성으로 직접 들었다. 그게 복지부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 같다.

- 질병관리청 승격에 부정적인 복지부 내 기류가 이번 행안부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반영된 것 같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복지부가 질병관리청 독립을 못하게 하려고 여러 군데서 막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그러다 대통령이 취임 3주년 기념식 때 직접 질병관리청 독립 이야기를 꺼냈다. 그 후 복지부 기류가 바뀌었다. 반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때부터 전략을 바꿨다는 생각이 든다.

-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독립시키지 않는 방법을 궁리하고 있다가 대통령 발언 이후, 독립시키되 기능을 최소화하는, 시늉만 내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그런 생각이 든다. 행안부 안대로 된다면 질병관리청에는 감염병 기능만 남고 다른 기능은 다 빼앗긴다. 그렇게 되면 감염병을 관리하는 방역청이 되는 것이다. 한 전문가가 행안부 안을 보고 ‘방역청을 만드는 것이냐’고까지 말하지 않았나.

- 행안부는 질병관리본부의 장기·조직·혈액 관리기능도 복지부로 이관한다고 발표했다.

만성질환 기능 중 대표적이며 파이도 크다. 그것도 복지부로 이관하겠다는 것이다. 장기이식 등을 가져가겠다는 건 질병관리본부 산하에 있는 관련 조직도 떼어 가겠다는 것이다. 결국 질병관리청 안에는 감염병과 만성질환 관리기능만 남는데 이런 추세라면 만성질환 부분도 언제 떼어 간다는 얘기가 나올지 모른다.

- 행안부 안대로 되면 질병관리청은 하는 일 없는, 작은 조직이 되고 복지부 산하 기관일 때처럼 운영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가.

그뿐만 아니라 자기들(복지부)이 알짜배기를 다 가져갔다. 몸집도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질병관리청에는 예산이랑 인사권을 줄 테니 감염병만 관리하고 살라는 것으로 보인다.

- 하지만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한다고만 발표했지 구체적인 내용은 정해진 게 없다.

솔직히 말하면 그게 더 무섭다. 일부 기능을 떼어 내지만 인원과 예산이 늘어서 (질병관리본부 때보다는 조직이) 확대될 것이라는 복지부 설명이다. 그런데 연구기능, 정책 준비, 분석기능을 하는 조직을 복지부가 가져간다. 질병관리청에는 행정이나 감염병 대응 조직만 남는다. 하는 일 자체가 줄어서 조직이 커질 수가 없다. 권역별 질병대응센터 만들어 준다고 하는 게 더 황당하다. (할 일이 없어서) 중앙인원을 늘릴 수 없으니 그 인원을 권역별 질병대응센터를 통해 늘리려는 것으로 보인다.

- 메르스 사태 이후 질병관리본부의 기능 키워야 한다고 해서 차관급으로 올리고 인원도 보강해주지 않았나.

본부장을 차관급으로 올리고 긴급상황센터를 만들었다. 과장 자리도 얼마 안 늘었고 대부분 역학조사관 30명에서 60명으로 늘린 것 말고 없었다. 그 정도로 끝났다. 메르스 끝나고 이런 상황을 겪어봤지 않나. 코로나19 사태 질병관리본부가 잘하고 있다고 하고 ‘덕분에 챌린지’도 하지만 지금 이대로 가면 (메르스 때와)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 행정부가 발표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정부 안에 불과하고 국회에서 다른 법안들과 병합심의를 거쳐 통과해야 한다. 아직 확정된 안이 아닌데 문제를 지적한 이유가 있는가.

여론을 환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회에 부담을 주고 싶은 마음도 컸다. 개인적으로 국회 넘어가게 되면 젊고, 개혁 의지에 공감하는 새로운 국회의원들이 동참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확한 정보가 전달돼 국회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수정되길 바란다.

- 생각하고 있는 질병관리청의 바람직한 모습은 무엇인가.

질병관리본부가 청으로 승격됐을 때 정책 부분을 강화해야 한다. 내부에 정책기능을 담당하는 국도 생겨야 하고 그 국의 이론을 뒷받침할 연구소도 있어야 한다. 청이 되면 행정기능도 커진다. 실행기능을 담보하는 행정 기능도 키워야 한다.

인원 확충도 필요하다. 현재 역학조사관은 전문임기제 공무원으로 말이 정직원이지 계약직이다. 역학조사과 등을 신설해서 역학조사관을 양성해야 한다. 역학조사관이 질병관리청장도 하겠다는 포부도 가질 수 있는 조직이 돼야 한다. 감염병과 관련된 정책 연구와 분석모델링 뿐만 아니라 매개체나 질병 기전 연구, 백신 연구 기능도 질병관리청에 남아 있어야 한다. 백신 개발 관련 기초적인 면역학적 연구도 질병관리청에서 담당해야 한다.

또 질병대응센터 같은 지역 사무소가 아닌 지방청을 만들어서 지방청이 보건소 기능 중 감염병 관리기능을 총괄해야 한다. 보건소의 다른 영역은 지자체가 담당하더라도 감염병 관리 부분은 지방청이 그 권한을 가져오는 형태로 거버넌스가 구성돼야 한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