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협 비대위 특별좌담회④ 의료계 내부 갈등과 화합
"전공의 편의 초점? 한계 이른 왜곡된 구조 개선 원해"
얽히고설킨 내부 갈등…"시간 걸려도 의료계 함께 해결"
돌아올 것 같지 않았던 전공의들이 수련 현장 복귀를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발걸음은 무겁다. “주술 같은 의대 2,000명 증원”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은 1년 넘게 이어졌고, 그 사이 의료 환경도 달라졌다. 돌아오려는 전공의들조차 지금 수련을 재개해도 되는지 스스로 묻는다. 지금이 수련환경을 개선할 ‘적기’라는 말도 나온다. 청년의사는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와 좌담회를 갖고 전공의들이 보는 수련교육 현실과 개선 방향을 짚었다.
① 수련 재개로 가는 길
② PA와 전공의 수련
③ 필수의료와 사법 리스크
④ 의료계 내부 갈등과 화합
사회: 청년의사 박재영 편집주간
토론: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정정일 대변인(서울아산병원), 유청준 비대위원(중앙대병원), 박창용 비대위원(국립경찰병원)
1년 넘게 이어진 의정 갈등은 역설적으로 전공의 수련 체계 문제점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응급의료체계가 마비되고 서울 대형병원까지 차례로 진료를 제한하자, 사회는 전공의의 빈자리를 비로소 인식했다. 주 69시간 근무제 논란 속에 주 80시간 근무가 '평균'인 직종이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그래서 전공의 사직을 정부 정책에 대한 항의를 넘어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외침으로 읽어내는 시선도 있다.
의정 갈등은 의료계 내부 관계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정부와의 대화만큼이나 의료계 화합도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의정 갈등 기간 내내 온라인과 언론을 중심으로 익명에 기댄 극단적 언행이 전공의 사회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다뤄졌다. 일부 발언은 전공의 '대표'를 거쳐 사실상 공식 입장처럼 유통됐다. 의정 대화보다 의의(醫醫) 대화가 더 어렵고, 의료계 내부 신뢰 회복이 더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누적된 감정은 수련 환경 개선 논의에 대한 회의감으로 이어졌다. 가혹한 수련 환경을 돌아보고 변화하자는 목소리 옆에는, '전공의들은 비판만 하고 현실적인 대안이 없다'거나 '권리만 주장한다'는 반응도 존재한다. 수련 체계 개선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전공의 입장이 과대표되고 있다'는 불만도 있다. 전공의 수련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에는 '전공의도 일정 부분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온다.
복잡하게 얽힌 상황 한복판에서 새로 출범한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도 전공의 수련 재개를 앞둔 현장의 다양한 반응을 주시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청년의사와 진행한 좌담회에서 대전협 비대위는 옳고 그름을 떠나 "다양한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도, 상황도 이해한다"(정정일 대변인)고 했다. 이들 역시 "동기, 지도교수와 소원해지고, 활발하던 단톡방(카카오톡 단체채팅방)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고, "'다시 잘 지낼 수 있을까'하는 불안과 긴장 속에" 수련 재개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공의들이 '편한' 수련을 원한다는 시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수련 연속성 보장이 '특혜성 조치'와 연결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수련 환경 개선은 "전공의 수련이 국민 건강, 보건의료체계와 직결된 만큼 제대로, 잘 배우고 싶다는 요청"(박창용 비대위원)이라고 했다. '전공의 편의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지적에는 의료 인력 양성 체계의 지속 가능성에 주목해야 할 때라고 답했다. '평생 전공의 신분은 아니지 않느냐'는 말에는 "왜곡된 수련병원 구조의 한 축이자 당사자로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것"(유청준 비대위원)이라고 돌려줬다.
유청준: 전공의는 근로자로서도, 피교육자로서도 권리 주장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의무만 부담했다. '근로자로서의 전공의'라는 정체성도 전공의 스스로 인식했다기보다는 강요받은 측면이 크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우리 정체성에 걸맞게 온당한 권리를 찾겠다는 것이다.
박창용: 전공의들이 수련 환경 개선과 국가 지원 강화를 요청하는 것을 전공의 개개인의 편의와 진로를 위한 주장이라고 치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 같은 공적 의료보험체계에서 양질의 전문 인력 양성은 사회 인프라 유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민간 의료보험 비중이 큰 미국조차 전공의 수련은 국가가 지원한다.
정정일: 그간 '우리는 하나'라는 정서적 유대감이 의료 시스템과 인력 양성 체계를 떠받쳤다. 의료계의 유대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우리도 기성 세대가 되고 후속 세대와 공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정서적 결속에 의지해 시스템을 유지하는 방식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제도 개선을 통한 지속 가능성 확보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공감대가 수련 현장에 형성되길 바란다.
- 교수 사회는 유대감의 약화 자체를 우려하는 듯하다. 의정 갈등 도중 나온 '중간착취자' 논란이 대표적이다.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는 반응도 있지만, 이런 논란을 예시로 들며 전공의 사회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정정일: 지난 의정 갈등 동안 일부 개인의 극단적 발언이 과도하게 조명되고, 온라인을 통해 확대 재생산됐다. 소수의 과격한 발언이 다수 의견처럼 다뤄졌다. 마치 모든 수련병원에서 전공의와 교수가 반목하고 파국으로 치달은 것처럼 인식됐다. 이런 과정을 거친 만큼, 교수 사회 의견이 분분한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는 표현이 의료계를 벗어나 사회에 어떻게 전달되고 소비되는지 우리 모두 뼈저리게 느꼈다. 충분히 서로 존중하며 의견을 나눌 수 있다. 의료 정상화와 수련 환경 개선 담론은 좀 더 신중하게, 정제된 방식으로 이뤄지길 바란다.
유청준: 세다마다 입장과 처지가 다르고 거쳐온 수련 환경이 다르더라도, 수련 현장에서 너나없이 모두 갈려 나갔다는 점만은 공유하지 않나. 현행 한국 의료 체계에서 병원은 거의 모든 구성원이 혹사 수준으로 일해야 굴러가는 구조다. 전공의는 물론 교수도 이런 시스템의 피해자다. 어쩔 수 없이 충돌하는 지점은 있더라도 직역 간 갈등만 이어져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대안 없는 반대와 오만에 절망" 제자 직격한 서울의대 교수들
"오죽하면 '중간착취자'라 하겠나…수련 현장 변화해야"
[히구라] ‘교수 씹기’ 유행하는 의료계 현실
- 앞서 복귀한 전공의와 이번에 복귀할 전공의 간의 관계도 고민될 듯한데.
정정일: 그런 고민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내부 갈등으로 인한 내상은 윤석열 정부가 의료계에 입힌 가장 뼈아픈 상처다. 감정적인 앙금을 털어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서로 피한다고 해결되지도 않는다. 대전협 비대위는 이 문제를 직시하고 의료계 내부 경색된 관계를 풀고자 더 노력하겠다.
박창용: 기복귀자와 복귀 예정자를, 어느 한쪽이 우위에 서는 일방적인 관계로 해석하면 안 된다. 오히려 기복귀자가 다수인 수련병원도 있다. 그런 병원은 복귀 예정자가 수련 재개 후 제대로 어울릴 수 있을지 고민한다. 상호 동등한 입장에서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다.
유청준: 외부에서 해결해 줄 수는 없는 문제다. 결국 대전협 비대위 몫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방법을 강구하고자 한다. 이 문제를 덮어두고 지나칠 생각은 없다.대전협 비대위에 해결할 의지가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 지난 1년 6개월은 의료계에 다양한 문제의식을 던졌다. 대전협 비대위 구성원을 떠나 개인적으로 느낀 바가 있다면.
유청준: 의료가 강조하는 논리정연함과 근거 중심 사고가 늘 최적의 설득법이 되지는 않았다. 내가 옳다는 확신만 가지고 부딪혀서는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어려웠다. 의료 현안을 짚고 정책을 비판할 때는 현실적인 대안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전문가의 책임이고 젊은 의사가 이 사회에 진 책무다. 갈등을 풀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젊은 의사가 신뢰받는 집단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도 동반해야겠다.
박창용: 수련에 쫓긴다는 이유로 사회에 무관심했다. 의대생부터 전공의까지 10년 이상 쉴 새 없이 달려오면서 의사라는 정체성에 매몰되고, 이를 또 지나치게 자부하기도 했다. 앞으로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이 사회에서 나는 어떤 존재이고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지 고민하려 한다. 이런 시각에서 중증·핵심의료나 의료 현안도 새롭게 접근해 보겠다.
정정일: 대전협 비대위 대변인을 맡으면서 의사가 사회와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말'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곤 한다. '3월에는 대학병원에 가지 말라'는 말이 있다. 막 수련을 시작한 인턴과 레지던트들이 채혈을 맡으니 피해야 한다는 뜻이다. 친구들에게 이런 말은 앞으로 농담으로라도 하지 말자고 했다. 수련을 하는 우리조차 이런 현실을 비꼬기만 하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전공의까지 수련의 가치와 중요성을 잃어선 안 된다. 우리부터 이런 무감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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