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논어에서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名不正則言不順, 言不順則事不成)”고 했다. 개념을 정확히 세우는 일은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운영과 규제의 원칙을 결정짓는 근본적 출발점이라는 의미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의료기기 정의를 돌아보면, 이 정명론이 왜 중요한지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현행 '의료기기법'은 의료기기의 목적과 기능을 일반적 정의로 제시하면서도, 그 뒤에 곧바로 다음과 같은 단서 조항을 붙이고 있다."다만, 약사법에 따른 의약품·의약외품과 '장애인
정부가 2030년까지 한국을 글로벌 임상시험 3위 국가로 도약시키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선언만 놓고 보면 야심차고 매력적이다. 그러나 업계의 현장 반응을 모아보면 이 목표가 현실화되기 위해선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특히 만성질환 분야에서는 이미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온다. 표면적으로는 '임상시험 강국'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정작 만성질환 분야에서는 출발선에 서기도 전에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업계가 가장 먼저 꼽는 문제는 한국의 임상시험 개시 속도다. 글로벌 임상에서
의사도 일반인과 같이 노화와 질병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결여되거나 저하될 수 있다. 치매나 정신적 질환을 앓을 수도 있다. 2011년 민법 개정으로 그간 익숙했던 용어인 금치산자나 한정치산자제도가 성년·한정후견제도로 변경되었다.피성년후견인은 중증치매나 지적정신장애가 심해 의사결정능력이 거의 없어, 지속적으로 본인에 관한 일상적 법률행위조차 스스로 하기 어려운 사람이 대상이다(민법 제9조). 피한정후견인은 금융이나 거래 등 부분적 판단능력 저하가 있는 사람이 대상이다(민법 제12조).이러한 사람은 본인이나 배우자 등 법에서 정한
정치 논리가 개입된 정책의 결과는 ‘혼돈’이다. 하루아침에 결정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총선을 두 달 앞두고 발표된 이 정책은 정권의 기대와는 달리 득표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대신 의료체계 전반을 뒤흔들어 놓았다.1년 6개월간 이어진 의정 갈등은 의료 현장을 파편화시켰다.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을 떠나자 병동과 수술실 등 현장 곳곳에는 공백이 생겼다. 진료지원 인력(PA)으로 그 자리를 메우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지방은 물론 수도권에서도 응급실 셧다운 소식이 들렸고 상급종합병원들은 중증·고난도 수술을
MSO를 통한 병원경영지원사업에 영향을 줄 판례가 나와 소개하고자 한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25. 6.경 병·의원 네트워크 본부(이하 ‘MSO’라 한다)가 개원의와 체결한 컨설팅 및 브랜드 사용 계약이 가맹사업법이 적용되는 가맹계약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치킨프렌차이즈나 편의점 같은 일반적인 가맹사업과 의료 네트워크 사업은 다르다는 기존의 일반적인 견해와 다른 판단이어서 시선을 끈다.사안에서 법원이 MSO를 통한 네트워크 병의원 사업에 가맹사업법이 적용될 수 있다는 판단 근거에는 (1)환자에게 제공하는 의료서비스가 어느 정
2025 APEC에 가장 큰 관심은 북미 간의 대화였다. 비록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조만간 현실화할 것으로 예측한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면서 남북 간의 대화 재개와 교류 확대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가장 시급하게 다가오는 과제는 남북한 보건의료 협력이다.오래된 자료기는 하지만 북한에는 9,000여개의 의료기관과 21만명의 보건의료인이 존재한다. 표면적 수치만 보면 상당한 의료 인프라를 갖춘 것처럼 보인다. 인구 1천 명당 의사 수는 3.3명으로 OECD 평균 3.1명보다 높고,
국가교육위원회 차정인 위원장은 지난 3일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 지역 필수의료 인력 문제를 국교위에서 논의할 예정이라며, 의대 전형을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지역 필수의료 전공 ▲의사과학자 학·석·박사 통합 과정 ▲일반 전형 등 3가지로 나누는 방안을 제안했다.특히 의대생을 입학부터 분리 모집하고 전공의 기간에 해당 전공에서만 유효한 면허로 근무하도록 하면 지역 필수의료 인력을 필요한만큼 양성할 수 있다고 했다. 더해 기피과로 인식되는 산부인과와 소청과 등에 대한 병역 면제 혜택 제공도 언급했다.하지만 이 방식은 현실
이번 국회에서 응급실을 전전하다가 사망하는 사례가 없도록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됐다고 한다.개정안의 내용은 현장에서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 시스템적인 변화를 주겠다는 것이고, 핵심 골자는 응급환자의 수용 가능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응급실에 구급대원이 일일이 전화해서 응급환자 수용 가능 여부를 묻고 움직이느라 결정적인 타이밍을 놓치고 그로 인해 불행한 결과가 발생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즉, 모든 응급의료기관은 해당 병원의 응급환자를 위한 병상 유무, 해당 전문의의 당직 여부, 중증 환자 수용 가능 여부를
최근 핫이슈인 성분명 처방 처방 논쟁을 지켜보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처방전에 무엇을 어떻게 적을 것인가를 두고 격렬히 다투면서도, 정작 처방의 대상인 ‘전문의약품’이 법적으로 어떻게 정의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무심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눈앞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 밑바탕이 되는 기본 개념과 분류 체계는 종종 간과된다. 이번 논쟁을 계기로, 우리 약사법이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을 어떻게 정의하고 분류하는지, 그 체계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실무적 혼란을 줄이고 규제의 명확성을 높이기 위해
의사들은 의사의 실수나 잘못이 없지만 진료나 수술의 결과가 나쁘면 의료사고로 몰아가는 현실을 비난한다. 결과가 나쁜 것과 상관없이 의사에게 책임을 물으려면 의사의 과실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느정도의 과실인지 이를 입증한 후 그에 따라 합리적인 처리결과를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지난 십여년 동안 의료계의 여러가지 정치적인 상황을 보면서 의료사고에 대한 한국 사회의 적절치 않은 대응처럼 나 역시 감정에 치우친 행동을 한 적은 없는지 생각해 본다. 대한의사협회 집행부가 과실이나 나쁜 의도를 품고 잘못된 행동을 저지르지 않았는데 결과가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여기서 말하는 의사의 진료는 어디까지일까. 처방은 분명히 진료의 결과물인데, 처방 행위 다음에 일어나는 조제 과정은 약사의 재량에 속하는 것이니, 환자가 받은 약이 의사가 생각했던 그 약이 아니라도 성분명이 같으니 상관없다는 것일까.우리 동네 약국은 내가 건네준 처방전에 적힌 대로 약을 준다. 해당 약이 없으면 다음 날에 찾으러 가면 된다. 초기 의약분업 때만 해도 처방전에서 명시한 약이 없는 경우가 흔해서 의사에게 직접 연락해서 대체 조제 여부를 물어서 처리하곤 했는데 최근에는 이런 경우도 거
대한민국의 의료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가만 보면 대개 이런 것 같다. 굵직한 정책은 절대 선제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충분히 여론화된 뒤에 들여다보기 시작한다.예를 들어보자. 수도권으로 의료 인력이 쏠리는 것은 이미 20년 이전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언젠가도 말했지만, 입학 정원 40명인 의과대학에, 그것도 서울 소재 의대도 아닌 의대 병원에 2,000병상 이상을 서울 강남에 허락했다. 누가 봐도 입학 정원의 몇 배의 신규 의사 인력이 해마다 필요할 테고, 그러한 인력은 대부분 지방 의대 출신자들일 텐데, 아무런 고민 없이 허락됐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제외하면 셀트리온 만큼 미국과 유럽의 규제당국과 소통해 다수의 글로벌 임상을 이끌어온 기업은 없다. 이 점은 분명 향후 셀트리온 신약개발의 큰 자산이 될 것이다.""바이오시밀러와 신약 개발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항체를 잘 모방하는 것과 새로운 물질을 발굴해 임상 전략을 세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셀트리온의 신약개발 역량을 놓고 바라보는 시각은 이처럼 다양하다. 이는 창업 초기 서정진 회장이 바이오시밀러를 내세웠을 때 제기됐던 다양한 시선과도 닮아 있다.셀트리온은 처음부터 이단아였다. 비전공자인 창업주
최근 의료 현장에서 특정 의약품에 이어 의료기기의 수급 불안이 심화되고 있다. 심각하게 공급 부족을 겪는 제품들에는 명확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가격이 저렴한 제품'과 '비용이 많이 드는 소량 생산 제품'이라는 점이다. 언뜻 상반되어 보이는 이 두 범주의 제품들은 모두 판매 수량이 적고, 의료 현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품목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저가 제품의 경우 낮은 수익성으로 인해, 고가라고 하더라도 소량 생산 제품은 제한된 시장 규모로 인해 제조·수입업체들이 생산을 포기하거나 시장에서 철수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특히
일본에서는 종합진료과를 두고 ‘고미바코(쓰레기통)’라는 말이 있다. 종합진료과란 우리나라의 가정의학과와 입원의학과를 합친 정도의 전문과목인데, 여러 중증질환이 겹쳐 어느 과에서 봐야 할지 모를 환자들을 모두 종합진료과에서 담당한다는 의미에서 붙인 자조 섞인 별명이다.이런 사정은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응급실에 원인이 불분명한 중증 환자가 오면 각 진료과 의사들은 명백히 자기 분야 문제가 아니면 입원장 내기를 망설인다. 이럴 때 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들은 일단 환자를 입원시키고 여러 진료과와 상의하며 치료방침을 결정한다. 외
최근 우연한 기회에 중국 의료를 소개하는 책 〈중국 병원의 속살〉을 저술한 저자로부터 서평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중국 병원과 교류해 본 경험이 있던 터라 중국 의료하면 낙후된 사회주의 의료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현장 의료는 아직 우리보다 못하지만 중국 정부가 추구하는 의료 정책은 눈여겨 볼만한 내용들이 있어서 잠깐 소개를 해 볼까 한다.중국은 사회주의 의료임에도 불구하고 무상의료는 아니다. 과거 우리의 조합형 의료보험과 유사한 형태의 의료보험을 전 국민이 가입해서 사용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가장 큰 고민은 의료
서울행정법원 5월 29일 선고 2024구합74779 판결을 중심으로서울행정법원은 지난 5월, 의사가 SNS에 올린 모발이식 광고에 대한 보건소의 경고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을 기각했다. 핵심 쟁점은 ‘SNS 의료광고가 사전심의 대상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해당 의사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1,000모 심어드린다”는 내용의 영상을 올렸으나, 의료광고심의위원회의 사전심의를 거치지 않았다. 이에 관할 보건소장은 의료법 위반을 이유로 경고처분을 내렸고, 해당 의사는 의료광고 사전심의제도가 표현의 자유와 직업 수행의 자유를 과도
필수의료 붕괴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최근에는 분만 가능한 병원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이미 산모가 갈 수 있는 분만 병원이 없는 지방 중소도시도 늘고 있다. 사법 리스크로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분만을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최근 신생아 뇌성마비로 분만 담당 산부인과 교수가 형사 기소되면서 의료계는 소아청소년과 지원 기피를 불러온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을 떠올리고 있다.의사들이 분만 현장을 떠나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근무 강도, 낮은 수가, 불확실한 미래가 얽혀 있다. 그 중에서도 결정적인 원인으로 꼽히는 게 사법 리
요즘 들어 제품의 표시를 확대하자는 목소리가 부쩍 커졌다. 소비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정보를 빠짐없이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식품 분야에서는 이런 요구가 강하다. 얼핏 보면 합리적이고 바람직해 보이지만, 조금 더 차분히 들여다보면 표시와 광고의 본질적 차이를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표시는 말 그대로 제품을 사용할 때 꼭 알아야 하는 기초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장치다. 알레르기 유발 성분, 유통기한, 보관법처럼 안전과 직결되는 최소한의 사실이 여기에 포함된다. 반면 광고는 제품을 알리고, 소비자의 선택을 이끌
환자가 준다고 해서 병동을 통합하는 예가 있다. 예를 들면 3개 병동의 병상 가동율이 각각70% 이하라고 할 때 3개 병동을 2개 병동으로 줄여서 운영하면 환자는 다 수용하고 직원은 1/3 줄일 수 있어서 아주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산술적으로는 2개 병동의 병상 가동율이 90%를 선회하고 인건비도 줄일 수 있으니 지표상으로는 아주 건전해 지는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1개 병동을 없애고 2개 병동으로 통합하는 경우, 다시 환자가 늘어서 3개 병동 체제로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물론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급격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