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협 비대위 특별좌담회① 수련 재개로 가는 길
"특혜성 '날치기 수련' 아닌 양질의 수련 바란다"
"수련 현장 구조적 문제, 함께 풀어나가고 싶다"
돌아올 것 같지 않았던 전공의들이 수련 현장 복귀를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발걸음은 무겁다. “주술 같은 의대 2,000명 증원”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은 1년 넘게 이어졌고, 그 사이 의료 환경도 달라졌다. 돌아오려는 전공의들조차 지금 수련을 재개해도 되는지 스스로 묻는다. 지금이 수련환경을 개선할 ‘적기’라는 말도 나온다. 청년의사는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와 좌담회를 갖고 전공의들이 보는 수련교육 현실과 개선 방향을 짚었다.
사회: 청년의사 박재영 편집주간
토론: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정정일 대변인(서울아산병원), 유청준 비대위원(중앙대병원), 박창용 비대위원(국립경찰병원)
2024년 2월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이 다시 수련을 생각하고 있다. 새로운 대표를 뽑고, 정부·국회와 소통하며 교수들과 마주 앉았다. 새로 출범한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사직 전공의 76.4%가 복귀 조건으로 '윤석열 정부 의료정책 재검토'를 들며, 수련 재개 의사를 표했다. 각 수련병원 대표가 모인 대전협 임시대의원총회에서는 이재명 정부의 "사태 해결 의지를 주목"하고 대화와 협상을 시작해 보자는 데 의견이 모였다. 지난 정부가 행정명령으로 압박하고, 추가모집과 특례로 달래려 했을 때는 볼 수 없던 모습이다.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분위기"다.
이런 여론을 가다듬은 새 '전공의 3대 요구안'도 마련됐다. 전공의들은 윤석열 정부 의료정책 재검토와 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를 논의할 협의체를 설치하고, 수련 환경 개선과 수련 연속성 보장을 요청했다. 대전협 비대위는 이번 요구안의 방향성을 "현 사태를 촉발한 근본적인 원인을 짚고, 중증·핵심의료(필수의료) 재건을 위한 논의 시작"으로 잡고 있다.
그러나 전공의 수련 재개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특혜 시비'가 불거졌다. 1년 5개월 간 진료 현장을 떠나 있던 전공의는 아무 조건 없이 복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등장했다. 수련병원으로 돌아오더라도 먼저 국민에게 사과하라는 요구도 거세졌다. 이 역시 지난 정부가 수련병원 복귀를 재촉하며 각종 특례를 내놓았을 때는 보기 어렵던 모습이다.
이제는 전공의들의 9월(하반기) 복귀를 기정사실화하며 특혜 논란에 집중하기 전에, 끝내 수련을 포기한 이들을 돌아보고 '근본적인 원인'을 들여다볼 때다. 전공의 76.4%가 복귀 조건을 제시했을 때, '어떤 조건이든 수련 재개를 고려하지 않겠다'는 뜻을 드러낸 이들도 있었다. 이렇게 수련 재개 의향이 없다고 밝힌 사직 전공의 72.1%가 정부 지정 '필수과목' 출신이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대전협 비대위가 전공의 3대 요구안은 "복귀를 위한 선결 조건이나 혜택 요구가 아닌, 사태 해결과 갈등 해소를 위한 기본적인 내용"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 지난 12일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의 '전원 복귀 선언'이 있었다. 1년 5개월 만인다. 전공의들도 '전원 복귀'하는지 관심이 쏠린다. 현시점에서 9월 복귀자 규모가 얼마나 되리라 보나.
정정일: 100% 전원 복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수련을 중단하기로 마음먹은 이들도 있다. 대전협 비대위가 '이번에 지원하라' 지시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다. 정부와 협상 진척 상황을 공유해 전공의 개개인의 결정을 돕고, 다수가 수긍하는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최선이다. 비대위 역할은 최대한 많은 전공의가 수련을 재개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창용: 아직 귀추를 지켜보는 이가 많다. 중증·핵심의료 분야 전공의들이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중증·핵심의료는 어려워도 이 분야에 종사한다는 자긍심으로 움직인다. 본인 소신으로 지원한 만큼 복귀에 대한 판단도 온전히 개인 몫이다. 이번 사태로 그 자긍심이 무너졌는데, 대전협 비대위가 복귀 지침을 내렸다고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와 국회의 자세, 협상 과정을 지켜보며 다시 희망을 걸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겨야 돌아온다.
유청준: 전공의 사회 분위기 자체는 지난해와 확실히 달라졌다. 정권이 교체됐고, 이번 정부는 의정 갈등 해소와 사태 해결 의지를 보여주고 있으니 대화하고 협상해 보자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9월에 다 돌아가자거나 대전협 비대위에 9월 복귀를 목표로 움직이라고 요구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현 시점에서 복귀율 예측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 그럼 전공의들이 수련 재개를 결심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은 뭔가.
정정일: 이번에 확정한 3대 요구안이 기본이다. 전 정권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던 의료개혁 과제를 재검토하고, 수련협의체를 중심으로 수련 환경 개선과 수련 연속성 보장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 중증·핵심의료 등 '바이탈'과는 사법 리스크 해소가 제일 중요하다.
물론 모든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의료사고처리특례법조차 평행선을 달리며 매듭짓지 못했다. 다만 정부가 정치적 상황에 따라 주춤하지 않고 책임 있게 논의를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로드맵을 제시하면 복귀에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하리라 본다.
박창용: 정부와 협의하는 자리를 믿을 수 있느냐도 중요하다. 전문가 참여가 얼마나 보장되는지, 의료계 의견이 실제 정책에 얼마나 반영될지, 이런 요소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도 이런 사태가 다시는 벌어지지 않으려면, 이번에 제대로 외양간을 고칠 수밖에 없다. 기본 골격을 세운 뒤, 차근차근 대책을 마련해 이번에야 말로 해결에 이를 거란 믿음이 필요하다.
유청준: 수련 연속성 보장이 핵심이라고 보는 전공의도 많다. 군 문제와도 연결된다. 수련을 재개하자마자 입대해야 한다면, 미필 전공의 입장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 입대를 기피한다거나, 시기를 일괄적으로 미루도록 조치해 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적어도 수련을 재개하면서 군 문제가 예측 불가능한 돌발 변수가 되지 않길 바란다는 것이다. 올해 초에도 고연차 전공의들이 갑자기 입대하게 되면서 본인도 수련병원도 큰 혼란을 겪어야 했다.
"특혜성 '날치기 수련' 원하지 않아…제대로 수련받고 싶다"
전공의 군 문제를 다루는 태도에서 보듯이, 대전협 비대위는 수련 연속성 보장을 '특혜성 조치'와 연결하는 시각에 선을 그었다. 수련 환경 개선도 마찬가지다. 수련 기간 단축이나 전문의 자격 시험 추가 시행은 대전협 비대위 요구 사항이 아니라고 분명히 했다. 대전협 비대위 차원에서 "이를 요구하거나 거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정정일: 대전협 비대위는 '날치기 수련'을 원하지 않는다. 개선된 수련 환경에서 제대로 수련받길 바라고 있다. 단축 수련 같은 요구는 대전협 비대위 방향성과 완전히 배치되는 주장이다.
앞서 청년의사가 진행한 내·외·산·소 수련이사 좌담회에서 "수련 현장이 준비 되어 있지 않으면 전공의가 복귀하지 않는 게 맞다(대한내과학회 김대중 수련이사)"는 발언이 나왔는데, 여기에도 동감한다. 9월 복귀만 목표로 하는 '극적 타결'은 능사가 아니다. 만에 하나 의정 합의, 전공의 모집, 전원 복귀가 8월 한 달 안에 이뤄지더라도, 수련 현장이 감당해야 할 부담은 상상 이상이 될 것이다. 우리가 요청하는 양질의 수련이 이뤄지기 힘들다.
'사과부터 하라'는 사회에 전공의들이 돌려준 답
특혜 시비와 함께 수련 재개를 준비하는 전공의를 따라다닌 문제가 '대국민 사과'다. 의정 갈등으로 불거진 사회 혼란과 환자 피해에 의료계 책임도 있다면서, 전공의가 돌아오더라도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좌담회 후 지난 28일 대전협 한성존 비대위원장이 국민에게 사과했다. '전공의 특혜 조치 반대' 시위 중인 한국환자단체연합과 만난 자리였다. 의정 갈등 장기화와 의료계 일각의 부적절한 행태에 책임을 느낀다는 한 위원장의 발언은 간담회 현장을 놀라게 했다. 의료계에서는 당위성 차원에서 필요한 일이었다는 반응이 나왔다. 물론 '저자세를 보였다'는 부정적인 시선도 없지 않다.
이같은 비판에 대해 대전협 비대위는 "옳은 선택도 그릇된 선택도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시점이라고 봤다. 사과와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정 대변인은 "전공의 또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니 사회적 상생의 중요성을 짚고 넘어가라는 목소리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좌담회에 참석한 비대위원들은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모였다고 말했다. 수련 현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전공의 가운데 이에 공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정정일: 서울아산병원 전공의협의회 회의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다시 수련을 시작하고 고연차 레지던트가 되면, 우리는 저연차에게 '업무 몰아주기' 하지 말자고. 누가 혹사당하지 않도록 다함께 나눠서 하자고 한다.
엄밀히 말해 우리가 반성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우리는 이제서 고연차로 올라가는 입장이고, 이전까지 일감을 몰아받는 저연차 입장에 가까웠다. 우리가 저지른 잘못은 아닌 거다. 하지만 그런 행태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가 양질의 수련을 바라고 지속 가능한 의료 체계를 원한다면, 이런 구조적 문제를 우리 손으로 멈출 수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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