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협 비대위 특별좌담회② PA와 전공의 수련
'PA 중심 병원'으로 돌아가는 일 되지 않으려면
수련 내실화 논의, 1인 당직 '던져진' 현실 고민해야

돌아올 것 같지 않았던 전공의들이 수련 현장 복귀를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발걸음은 무겁다. “주술 같은 의대 2,000명 증원”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은 1년 넘게 이어졌고, 그 사이 의료 환경도 달라졌다. 돌아오려는 전공의들조차 지금 수련을 재개해도 되는지 스스로 묻는다. 지금이 수련환경을 개선할 ‘적기’라는 말도 나온다. 청년의사는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와 좌담회를 갖고 전공의들이 보는 수련교육 현실과 개선 방향을 짚었다.

수련 재개로 가는 길
② PA와 전공의 수련

사회: 청년의사 박재영 편집주간
토론: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정정일 대변인(서울아산병원), 유청준 비대위원(중앙대병원), 박창용 비대위원(국립경찰병원)

의정 갈등이 이어진 1년 5개월, 수련병원은 진료지원인력(PA)이라는 생존법을 택했다. 전공의 없는 시대를 맞이한 병원은 이제 전공의 대신 PA에 익숙해졌다. 간호법 시행으로 PA 제도화가 속도를 내면서, 전문의 중심 병원이 아니라 'PA 중심 병원'이라는 한탄도 나온다.

지난달 13일 대한의학회 학술대회에 정지태 전 의학회장이 참석해 이같은 수련 현장을 향해 "교수라면서 후속 세대 양성에 대한 책임감을 갖추라"고 일갈했다. 행사장에서는 "교수들이 PA와 일하는 것을 편하게 느끼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런 분위기가 곧 '수련병원이라면 전공의 수련을 중시해야 한다'는 문화 자체를 훼손할 거란 전망도 있다. 전공의가 돌아와도 PA와 경쟁하면서 최소한의 수련 기회마저 잃을지 모른다.

PA 문제는 지난 24일 청년의사가 전공의 수련 재개 방향성을 논하고자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와 진행한 좌담회에서도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전공의들은 PA 제도화와 수련 환경을 둘러싼 논의조차 수련의로서 전공의 신분을 잊고, 노동자로서 역할에만 주목하는 시선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병원 노동력 확보와 배치 문제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전공의와 PA 공존은 "어려울 게 없다(정정일 대변인)".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이 일은 당신이 하라'고 시키면 그만"이다.

박창용 "현재 진행 중인 PA 제도화 논의는 선후가 바뀌었다. 전공의 교육 방향과 역할을 먼저 정립한 뒤, 이에 맞춰 PA 업무와 역할을 논의하는 것이 순서다. 수련병원이 그간 피교육자라는 특성은 지우고 전공의를 오로지 노동자로만 대했기 때문에 불거진 문제다. 전공의라는 노동자가 사라졌으니 서둘러 대체 노동자를 찾아야 하고, 그게 PA의 제도화로 이어진 것이다. 이렇게 수련병원이 수련병원으로서 역할을 잊고 PA를 통한 진료에 치중하면 전공의 수련 체계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정정일 "전공의와 PA의 역할 분담이나 수련병원 내 공존을 논하려면 인력 수급이라는 단편적인 접근법을 깨야 한다. PA의 제도화와 수련병원 내 편입을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면, '전담간호사'가 전문간호사처럼 보편화되고 검증된 제도로 바꿔가야 한다. 엄격한 자격 관리와 교육 내실화가 없으면 의료인 면허 제도 위기와 환자 안전 위협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전공의들은 PA 제도화를 "피할 수 없다면", 역량 중심 수련을 내실화할 기회로 삼자는 교수들의 의견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았다. 간호법 시행으로 법제도 환경이 바뀌었고, 수련병원조차 진료 실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교육·수련 패러다임 전환은 전공의와 교수 모두 진료 부담을 덜고 수련에 집중하는 환경이 마련돼야 가능하다는 점도 '진료를 지원하는 인력'의 필요성에 설득력을 더한다.

그러나 이런 논의 와중에도, 전공의들은 교수들에게 되물었다. 정말 PA만이 수련병원의 유일한 해법이냐는 것이다. PA 제도화는 "되돌릴 수 없는 변화"라면서, 이를 '뉴노멀'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전공의들에게는 여전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된" 현실일 뿐이다.

정정일 "수련병원의 진료 부담을 반드시 PA로 해결해야 하나? 의사가 할 일은 의사가 해야 마땅하다. 업무가 너무 많으면 전문의를 늘리고, 당직할 사람이 없으면 당직 전담 의사를 채용해서 해결할 일이다. 병원이 최저 한도가 아니라 적정 수준으로 의사를 채용하는 방향으로 가자고 하는 게 맞다. 그렇지 않고 진료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직군에 업무를 나누는 방식을 제도화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청년의사는 지난 24일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와 수련 환경 개선과 진료지원인력(PA)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왼쪽부터) 대전협 비대위 박창용 비대위원, 정정일 대변인, 유청준 비대위원(ⓒ청년의사).
청년의사는 지난 24일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와 수련 환경 개선과 진료지원인력(PA)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왼쪽부터) 대전협 비대위 박창용 비대위원, 정정일 대변인, 유청준 비대위원(ⓒ청년의사).

역량 중심 수련 과정을 구체적인 지표로 계량화하고, 이를 달성해야 승급하도록 하자는 제안에도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자칫 '전공의 유급제'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다.

정정일 "전공의 수련에 유급제를 도입한다는 인식이 퍼지면 현장 반발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역량 미달 평가를 받았을 때, 당해 연차에서 수련 기간을 연장하기보다는 유예 기간을 두고 재평가하거나 다음 연차에서 보충하는 방향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전문의 면허 취득을 앞둔 레지던트 3~4년차는 학회와 함께 보완책을 상의해 봐야 할 듯하다."

박창용 "보충 시간도 정규 근무 시간 내 진행하기보다는 수련 보강 기간을 별개로 설정하고 그 안에서 전공의 개인별로 시기를 지정하는 방식이면 좋겠다. 낙오자를 솎아 내려는 게 아니라, 전체 전공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 되길 바란다."

유청준 "단순히 전공의 개인 성취를 평가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각 수련병원 교육 시스템을 점검하고 평가하는 장치가 돼야 한다. 의대가 의사 국가시험 합격률을 신경 쓰는 것처럼 수련병원이 역량 중심 평가 달성률을 중요하게 보고, 교육 시스템 보완과 공정한 평가에 공들이도록 유도해야 한다."

여전히 많은 수련병원이 응급실과 중환자실에 전공의를 '홀로 세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청년의사).
여전히 많은 수련병원이 응급실과 중환자실에 전공의를 '홀로 세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청년의사).

전공의들은 수련 과정의 계량화가 양보다 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당직 근무 횟수와 시간도 중요하지만, 당직이 온전히 수련이 될 수 있는 환경인지 따져봐야 한다(유청준 위원)". 상당수 수련병원은 응급실에 "전공의를 홀로 세울 수밖에 없어서" 당직을 맡기는 형편이다. 전문의로서 역량 함양을 위해 권장하는 '전공의의 홀로서기'와 거리가 멀다.

정정일 "규모도 크고 백업 체계도 갖춰진 수련병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수련병원도 많다. 1년차 레지던트가 별안간 응급실에 '던져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걸 수련 차원에서 필요한 홀로서기 과정이라 부를 수 있을까. 외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라고 한다."

박창용 "국립경찰병원은 펠로우도 없고, 인력도 많지 않다. 고연차 전공의 혼자 중환자실이나 응급실을 담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처법도 전공의 혼자 알음알음 깨우쳐야 한다. 그러니 동기 간에도 알고 있는 지식이 달라진다. 지도전문의나 온콜 대기 중인 전문의가 있더라도 진료 과정을 실시간으로 확인받지는 못한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 쫓겨 전공의가 잘못 판단해도 즉시 바로잡아 줄 사람이 없다. 만일 치명적인 실수가 벌어지면 복구하기 어려운 피해가 발생한다."

유청준 "전공의들은 당직 근무 다음날도 불안하다. '혹시 어제 내가 뭐 잘못했으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진료 과정을 지도하고 점검할 전문의의 부재, "여기저기서 동시에 터지는 문제들" 한 가운데서 전공의들은 의료사고 우려와 법적 책임 압박까지 견뎌야 한다. 마땅한 보호 장치도 없다. 그저 "제발 오늘 당직도 아무 문제 없이 지나가게 해 달라고(박창용 위원)" 기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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